2008. 12. 5 (금)

2008년 12월 5일 금요일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

하나님께서는 이 생애의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우리가 잊게 하심으로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인가? 아니면 아픔을 명료하게 기억할 것이나 그것이 우리를 더 이상 참담하게 하지 않을 것인가? 어느 정도로 ‘이전 것들이’ 지나갈까? 나는 우리가 여전히 기억할 것이나 고통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기억은 유지할 가치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알려 주는 부분이다. 기억 때문에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을 때, 기억은 깊이 있는 품성을 계발하는 능력이 될 수 있다.

삶에서 크게 상처를 받은 자들은 눈물을 자아내는 고통이 시간이 지나면서 수그러든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러한 일이 가능하다. 그리고 때로 그러한 과정이 오래 걸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막내딸과 나는 새벽 1시 30분에 침대에서 더듬거리며 빠져나왔다. 최근 홍해에서 침례 받은 딸아이는 시내 산 야간 등반을 결심하였다. 우리는 새벽 2시에 몇 사람과 출발하였고, 우리가 자신들의 도움 없이는 정상까지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 낙타꾼들이 뒤를 따랐다.

오직 손전등 불빛이 있을 뿐 어둠은 여전히 깊었다. 우리가 운동화 앞머리로 붉은 흙을 파듯이 걸어갈 때 별똥별이 간헐적으로 우리 뒤로 떨어져 내렸다. 등반의 나머지 3분의 1을 알리는 거대한 벽에 다다르자, 7,400피트(약 2,255미터)의 산은 점점 더 가팔라졌다. 낙타꾼들은 계속하여 뒤를 따라왔는데, 우리 중 누군가가 곧 진퇴유곡의 상황에 굴복할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리고 몇 사람은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딸은 결심한 듯이 계속 전진하였다.

등반의 가장 가파른 부분은 정상에 이르는 전설적인 계단이다. 홍암(紅岩)으로 된 거의 수직으로 깎은 750개의 계단. 드디어 우리는 해냈다! 낙타 없이! 나귀도 없이! 쑤시는 근육만으로. 아침나절쯤 되어 딸과 나는 호텔로 돌아왔다. 딸아이는 침대에 얼굴을 묻고 엎어져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들고서 이렇게 말하였다. “앞으로는 그와 같은 일은 어떤 것도, 절대로 하지 않도록 저에게 상기시켜 주세요!” 그리고 나는 몇 시간 동안 아이로부터 아무 말도 듣지 못하였다.

며칠 후 독일에서 딸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불쑥 말하였다. “아빠, 언제 우리가 다시 시내 산에 오를 수 있을까요?” 그 말을 들은 나는 놀랐으나 실은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 기억은 생생했으나 고통이 사라졌던 것이다. “이전 것들은” 지나갔으나 또 다른 의미에서 그 기억은 지나가지 않았다.

주님, 제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새 땅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는 것을 앎으로 오늘을 잘 지내도록 인내심을 주십시오.

하나님을 섬기노라고 공언하는 사람이 형제에게 잘못하거나 손해를 입힐 때는 하나님의 품성을 그 형제에게 잘못 나타내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그는 잘못을 고백하고 그것이 죄가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형제에게 잘못한 것보다 형제가 우리에게 더 크게 잘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의 책임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보훈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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