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자주 이메일을 보내왔다.

'오늘은 아주 기쁜 날이었어요.'라는 제목의 메일을 읽어 내려가면서 내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아들은 이제 막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남들이 갖고 있는 테니스 라켓을 유심히 보았다.

남이 쓰다 준 오래 된 라켓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도 돈이 생기면 저런 라켓을 하나 마련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다.

테니스 라켓을 세일하다는 곳에 가서 가격표를 보니 백 달러였다.

 

자신이 사기에는 좀 비싼 금액이라고 여겨졌지만 갖고 싶었다.

마침 이백달러가 좀 넘는 장학금을 받게 되었단다.

통장에 장학금이 입금된 것을 확인하자마자 테니스 라켓이 사고 싶었다.

그때 순간적으로 '내가 혹시 너무 이기적으로 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나만을 위해 사는 삶이 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무엇인가 양심 가운데 그늘이 지고 있음을 느꼈다.

대학 운동장을 지나가는데 마침 그 반항아가 지나갔다.

끔찍히도 속썩였던 그 반항아가 회심을 해서 검정고시로 고교 졸업을 하였다.

 

이번 가을 학기에 그 반항아가 대학에 합격을 해서 입학을 하였다.

반항아가 아들을 보더니 너무나 반가워하였다. 그러면서 아들 보고 야영회에 가느냐고 물었다.

안 갈 것 같다고 대답하자 반항아는 가고는 싶은데 돈도 없고,

갈 수 있는 방법도 몰라서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의를 듣고 있는데 그 반항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야영회에 가고 싶다고 한 그의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십일금을 드리고 남은 장학금을 주고 싶다는 마음과 한편으로는 주고 싶지 않은 여러 가지 이유가 줄줄이 생각났다.

테니스 라켓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수업이 잘되지 않았다.

더 이상 갈들을 하면 안 될 것 같아 심호흡을 하고는 테니스 라켓을 포기하기로 결심하였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마음이 변할까 봐 급히 차를 몰고 가서 이백 달러를 찾았다.

기숙사로 반항아를 찾아갔다.

아무도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 기숙사에 아들이 찾아가자 반항아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아들이 "대학 합격한 것을 축하한다."하고 봉투를 건네 주었다.

반항아는 단순한 편지인 줄 알고 봉투를 받았다. 반항아의 배웅을 받으며 아들은 아파트로 돌아왔다.

 

마음속에 뿌듯함이 가득했다. 만족의 기쁨으로 온 세상이 다 아름답게 보였다.

돈 주고는 살 수 없는 행복감이 온 전신을 휘감았다.

반항아가 봉투 속에 들어 있는 이백 달러를 보고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그래서 아들이 오늘은 가장 기쁜 날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남편이 아들의 이메일을 읽더니 "우리 아들이 나에게 아주 큰 추석 선물을 주었군.

그래 인생은 바로 이렇게 사는거야." 하고 매우 흐뭇해하였다.

이기심과 싸워서 이긴 아들의 편지를 읽는데 목이 메였다.

고맙고, 감사하고, 대견스럽다.

-김종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