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다둑다둑 재였다.
바,람이 한들한들 머물렀다.
비가 황홀하게 내렸다.
마침내 감나무에 감꽃이 피었다.
감꽃은 푸른 하늘 아래 먼 데서
벌이 날아오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였다.

햇볕 다습고 바람 또한 맛있는 아침이었다.
감꽃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나무의 소리를 들었다.
"떠날 길을 준비하여라."
감꽃의 얼굴이 노오래졌다.
"제가 왜 떠나야 하나요? 저는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나무가 말했다.
"네가 왔기 때문이지.  왔다가 다시 떠나는 것이 만물의 이치란다."
"떠나는 것은 고통스럽잖아요."
"하지만 그 고통이 열매를 남긴단다. 정말 괴로운 것은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하고
온 값조차 하지 못하는 걸음이지."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나무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오지 않은 것만 못한 걸음도 있다."
"어떤 걸음인데요?"
"미움을 주고 떠나는 것이지."
감꽃이 송이째 뚝 떨어졌다.
감꽃이 진 자리에 아기 감이 들어서고 있었다.

11월 샘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