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표제
 히브리어 사본들과 70인역에서 이사야서의 표제는 “이사야”이다. 눅 4:17에서는 이 책이 “선지자 이사야의 글”로 불리워졌고, 행 8:30에도 “선지자 이사야”로 되어있다. 히브리 경전에서는 이 책이 “선지자들”이라 불리우는 항목에 속해 있고, 이 책 바로 전에는 열왕기서가 있으며 이책 다음으로는 예레미야, 에스겔, 그리고 “12 소 선지서”가 나온다.

 2. 저자
 선지자 이사야는 그의 이름으로 명명된 이 책의 저자였다. 아모스의 아들이며 왕족의 후손인 이사야는 그의 젊은 시절, 즉 웃시야(아사랴, 790-739 B.C.)의 통치 말엽이며 요담의 섭정기에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 시기는 B.C.750년에서 739년 사이였을 것이다. 그의 봉사 기간은 웃시야, 요담, 아하스, 그리고 히스기야의 통치 기간에 걸친(사 1:1) 적어도 60년간 계속되었다. 이사야가 B.C. 686년에 단독 통치를 시작한 므낫세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과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한 사람들에 대한 므낫세의 대학살시에 이사야는 “먼저 학살당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왕하 21:16) 사실은 그의 봉사가 B.C.686년 히스기야의 사망 직후에 끝났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그의 봉사는 B.C. 745년보다 일찍 시작되었음이 틀림없다. 이사야 1-5장의 예언적 기별들은 웃시야의 통치 마지막 해이면서 6장의 계시를 받기 전인 B.C. 745-739년 사이에 주어진 듯하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이상을 보고 그 가운데서 이미 그에게 위탁된 거룩한 임무에 대한 격려와 확증을 깨달은 것은 그 알고 있는 당면할 역경을 고려하여(렘 20:7-9) 그의 선지자직을 포기하려고 생각했을 때의 일이었다.
 이사야는 결혼하여 스알야숩과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하는 두 아들이 있었다(사 7:3; 8:3). 그가 주로 활동했던 예루살렘에서 그는 궁중 전도자가 되었으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여러 해 동안 그는 그 나라의 정치적,종교적 고문이었다. 그의 선지자적 봉사는 미가의 봉사와 또한 북방 왕국에 속한 호세아의 간접적인 영향과 함께 히스기야의 개혁 사업에 공헌하였다. 그러나 므낫세는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의 개혁들을 폐하고 조부인 아하스의 악한 정치를 따랐으며 참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권장하는 사람의 생명을 취하였다. 탈무드에 의하면 이사야는 므낫세에게 죽임을 당했다. 한 영감의 말씀은 이사야의 죽음에 대한 서술(사 1:1)로, 어떤이들은 “톱으로 켜는…것을 당”했다는 히 11:37의 말씀을 확증한다.
 거의 25세기 동안 이사야서의 저자에 관한 의문은 제기되지 않았다. 그러나 19세기에 독일의 고등 비평가들은 이사야의 기원의 일치성에 대해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주장은 결국 이사야서가 적어도 두명의 저자, 즉 소위 제1이사야인 1-39장을 기록하고 B.C. 8세기 말엽까지 일한 사람과 바벨론 유배 말기에 제2이사야 혹은 둘째 이사야인 40-66장을 다른 사람에 의하여 기록되었다고 하는 저들의 견해가 거의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바 되기까지 계속되었다. 위에 언급한 학설을 변형한 것들도 있다. 어떤 비평가들은 이사야서의 반이상을 마카비 시대, 곧 B.C. 2세기의 것으로 간주한다.
 이사야서의 합동 저작에 관한 이들 비평가들의 주요 논쟁들 중 하나는 40-66장은 B.C. 8세기 말엽에 살고 있던 한 저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바벨론 포로가 거의 끝날 무렵에 살았던 한 저자의 견지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고레스의(사 44:28; 45:1) 이름이 언급된 것은 이 장들(역자주: 사 40-66장)이 고레스 시대, 즉 B.C. 6세기 후반에 기록된 결정적인 증거라고 저들은 생각한다. 이 개념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예언적 지식이 불가능하다는 전체 가설에 기초된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가 고레스를 언급한 사실은 이 책에 대한 후기설을 지지하는 논증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지혜와 예지에 대한 증거인 것이다. 이 책 전반에 걸쳐 미래에 대한 예언들이 있다. 예언들 중에는 이스라엘과 시리아 통치자들의 몰락(사 7:7, 8, 16), 두로의 멸망(사 7:23), 앗시리아의 패망(사 14:25; 31:8; 37:6, 7, 29, 33-35), 바벨론의 굴욕(사 14:4-23), 애굽을 신뢰함의 어리석음(30:1-3; 31:1-3), 고레스의 사업(사 44:28; 45:1-4)등에 관한 것들이 있다. 참으로 이사야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대한 웅변적인 증거로 그의 예지를 설명한다(사 41:21-23; 42:9; 43:9; 44:7, 8; 45:11, 21; 46:9, 10; 48:3, 5-8).
 이 책의 처음과 마지막 부분들 사이에는 사고(思考)와 표현의 일치성에 대한 많은 증거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이사야의 한가지 특성은 하나님에 대한 칭호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 표현은 이사야서에 25회 나타나고, 구약 다른 곳에서는 6회에 불과하다. 더구나 그 표현이 이사야서 어느 한 곳에 치우쳐 있는 것이 아니라 1-39장 사이에 12번, 40-66장까지 13번 나온다. “이스라엘의(혹은 야곱의) 전능자”라는 칭호는 오직 이사야서에만 나타난다(사 1:24; 49:26; 60:16). 이사야서의 처음 부분과 나중 부분 사이의 문체와 언어의 유사성들은 추측된 상이점들 보다 휠씬 더 강한 인상을 준다.
 사 40-66장에서의 주제 내용과 문체가 사 1-39장의 것들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주제는 양쪽 부분에 일관하고 있는데, 그것은 곧 정치적, 영적 대적들로부터의 구원과 영육간 압제로부터의 구원이다. 이 책의 첫 부분에서 “주는 도움이시다” 혹은 “주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사야는 회개와 개혁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통하여 얻는 죄와 수리아와 앗수르, 그리고 다른 적들로부터의 구원을 제시한다. 후반부에서는 바벨론으로부터의 해방과 오실 구주를 믿음으로 마침내 이루어질 죄의 권세로부터의 구원을 다루고 있다. 주제 내용에 있어서 명백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와 목적의 한 기본적인 통일성이 책 전체에 걸쳐 흐른다.
 이 책의 첫 부분은 산헤립 치하의 앗수르 군대들로부터의 구원으로 절정에 이른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예언적인 안목으로 바벨론 포로로부터의 해방을 내다본다. 유사한 과정, 곧 B.C. 586년 예루살렘의 멸망과 함께 포로에 대한 예측으로부터 포로에서 회복될 때까지의 과정이 에스겔서에도 나온다. 더우기, 이사야의 처음 장들은 이사야가 그의 젊은 시절에 전한 기별을 기록한다. 이 책의 뒷장들은 예언적인 통찰력과 연령에 따른 문체의 노련함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결과 이 책의 첫 부분에 나오는 훌륭한 문장들보다 더욱 사려깊고 위엄있는 표현으로 탁월한 명작을 구성한다.
 이사야의 앞 부분은 유다에 대한 앗수르의 침략과 관련된 것이고, 뒷 부분은 바벨론으로부터의 구원을 예기하는 것이다. 이사야의 사명은 북방 왕국이 앗수르의 포로로 추방됨에 따라 남방 유다를 굳게 붙드는 것이었다. 그때의 지도자들은 이사야를 통하여 당시 사건들의 성질과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유다가 북방 왕국의 비참한 운명에서 교훈을 얻고, 그 결과 진정한 회개로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앗수르 침략의 추세는 마침내 작은 유다 왕국만을 제외한 모두를 점령하였으며, 하나님의 현저한 역사로 앗수르의 군대는 예루살렘 성문 바로 앞에서 퇴각되었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저들의 악한 행위들을 고치지 않으면 비슷한 운명이 저들을 기다린다고 하는 역사의 암시적인 훈계와 더욱 뚜렷한 예레미야의 경고에 유의하는데 실패했다.
 따라서 이사야는 40장을 시작하면서 바벨론에 포로가 될 것이지만 최근 앗수르에서 얻은 경험과 같이 언젠가는 분명히 바벨론으로부터 구출될 것이라는 확신을 예기한다. 더욱이 국가적인 원수들로부터의 구출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죄악의 지배로부터 궁극적인 구원의 약속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의 두 구분 사이에 있는 모든 차이점들은 변모하는 역사적 사건의 배경에 기초하여 예언의 주제 내용면에서 생겨난 변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이사야의 문체가 바뀌어질 수 있는 가능성 등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어떤 비평가들은 이사야서의 상당한 부분을 마카비 시대의 것으로 정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이 책 전체가 단권으로 존재했다고 하는 증거가 있다. 집회서(외경서 중의 하나)의 저자 지저스 벤 시라크(Jesus ben Sirach)는 이사야서의 많은 부분을 그 이름이 지니고 있는 선지자의 것으로 돌렸다. 이사야서가 그리스도 이전 수백년 동안 단권으로 간주되었다고 하는 가장 감명적인 증거는 그 시기의 것으로 1947년 사해 부근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고대 성경 사본들에 있다. 이것들 중 “1QIsa”(역자주:이사야 전편)와 “1QIsb”(역자주:이사야 후편)로 알려진 두개의 이사야서 두루마리가 있다. 거기에는 1-39장이 40-66장과 따로 분리되어 그 자체들만으로 존재한 적이 있었다는 어떠한 확증도 없으며 오히려 모든 증거는 그 반대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그의 이름을 지닌 책 전체의 저자임을 믿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신약에서 이사야서를 자주 인용하지만 1-39장과 40-66장사이에 어떠한 구분도 짓지 않는다. 신약에 인용된 이사야의 구절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이사야서의 언급신약에 인용된 절
1:9롬 9:29
6:9, 10마 13:14, 15
6:9, 10요 12:40, 41
6:9, 10행 28:25-27
9:1, 2마 4:14-16
10:22, 23롬 9:27, 28
11:10롬 15:12
29:13마 15:7-9
29:13막 7:6, 7
40:03마 3:3
40:03막 1:3
40:03요 1:23
40:3-5눅 3:4-6
42:1-4마 12:17-21
53:01요 12:38
53:01롬 10:16
53:04마 8:17
53:7, 8행 8:32, 33
61:1, 2눅 4:18, 19
65:1, 2롬 10:20, 21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이사야서를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한 단권의 책으로 받아들인 것은 확실하며 우리도 그와같이 받아들이는 것이 대체로 안전하다. 특별히 요 12:38-41에 그리스도께서 사 6:9, 10; 53:1을 언급하여 인용하신 것을 보면 그곳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이 책의 양쪽 부분 모두의 저자로서 이사야를 인정한다. 또한 롬 9:27, 29, 33; 10:15, 16, 20, 21에서도 바울은 그와같이 인정한다.
 이사야의 주석가들은 현재 이전에 알려진 다른 어떠한 히브리 구약 사본들보다 일천년 이상이나 오래된 이 구약 성경의 히브리 사본 두개를 마음대로 소유하는 다행스런 입장에 있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사해 두루마리들로 알려진 매우 귀중한 이 문서들은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 이것들에 대한 발견, 일반적인 특성 및 중요성과 1947년 이래로 사해 근처의 동굴에서 발견된 다른 히브리 두루마리들에 대해서는 여기서의 설명은 피하기로 한다. 두 이사야의 두루마리들은 키르벳 쿰란(Khirbet Qumran)에 가까운 첫번째 동굴에서 발견되었으므로 공식적인 명칭으로서 “1QIsa,” “1QIsb”와 같은 부호를 받았다. 처음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수리아 수도원의 소유였으나, 1954년 이스라엘 정부로 넘어가 완전히 보존된 두루마리는 “1QIsa”부호가 주어졌다. 히브리 대학교에 소장돼 있는 다른 단편적인 이사야 두루마리는 공식 부호 “1QIsb”를 받았다.
 두 사본들은 모두 에세네파에 속한 장서의 일부였다. 이 책들은 그 동굴과 키르벳 쿰란에 대한 과학적 발굴에서 드러난 바와같이 제1차 유대 전쟁(A.D. 66-73)이 종료되기 전, 보존을 위하여 한 동굴에 저장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여러가지 증거들이 시사하는 바와같이 B.C. 2세기 혹은 1세기 보다 휠씬 이전에 기록되어졌다. “1QIsa”는 “1QIsb”보다 약간 오래된 것 같다.
 “1QIsa”안에는 이사야서의 첫절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들어 있다. 그것은 밀러 부로우스(Millar Burrows)가 현대 히브리 문자로 음역한 복사판으로 출판되었다 이 두루마리를 다루는 수 많은 학구적 논문이 발표되었으므로 1954년말까지 출판되지 않았던 “1QIsb”보다 이것(역자주:1QIsa)을 다소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대체적으로 “1QIsa”로 알려진 그 두루마리는 알려진 이사야서의 마소라 본문과 상당히 일치함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필기사는 전문가가 아니었으며 그 필체도 “1QIsa”의 것보다 아름답지 못하다. 그는 필기상의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어떤 부분에서는 받아쓰기 형식으로 기록된 듯하며, 약간의 오자들은 잘못 청취되었기 때문이라는 인상을 준다. 또한 대본으로 쓰여진 사본에도 어떤 탈문(脫文)이나 공백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따라서 그 필경사는 누락된 구절이 나오면 그의 사본에 공백을 남겨 두었다가 나중에 보다 완전한 다른 사본을 보고 그 빠진 부분을 필시하였을 것이다. 때로 그 필경사는 누락된 내용의 양을 실제보다 적게 판단하여 그것을 위해 남겨둔 공백이 충분치 못했다. 그 결과 삽입된 부분들이 가끔 난외로 흘러나갔다. 그 본문(역자주:1QIsa)에서 누락된 몇 귀절들은 필경사, 혹은 받아쓰기 하는 사람의 눈이 어떤 한 낱말에서 조금 뒤에 나오는 같은 낱말까지 뛰어넘어 그 사이의 모든 낱말들을 빠뜨린 것으로 보인다. 필경사들의 이 흔한 실수는 신약 사본들 중에서 빈번한데 이를 호모에오텔류톤(homoeoteleuton)이라고 한다. 본문에 첨가된 것들은 불과 몇 단어를 초과하지 않을 정도로 극소수이며 간단하다. 본문의 상이점들이 많이 있긴 하지만 거의가 다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며 본문의 의미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 동일한 책 바로 후에 기록된 히브리 사본보다 일천년 더 오래된 사본에서나 예기될 수 있을 정도로 수천개의 철자상 변형들이 있다.
 “1QIsb”는 다른 사본들보다 휠씬 불완전하다. 예루살렘에 있는 히브리대학교 교수 A.L. 수케닉(A.L. Sukenik)씨가 상인들 혹은(이사야 사해 사본을 발견한:역자주) 아랍 유목민들로부터 그것을 입수했을 때, 그것은 한심한 상태에 있었다. 그것을 펴보니 그 두루마리에는 우리들을 위해 사 10, 13, 16, 19, 22, 26, 28-30, 35, 37-41, 43-66장과 같은 단편들이 보존되고 있음이 발견되었다. 37장까지의 본문 자료를 포함하는 단편들은 매우 작기 때문에 비록 매 페이지마다 양피지에 크고 작은 구멍이 나서 본문에도 역시 구멍이 나 있긴 하지만 비교적 잘 보존된 그 책의 마지막 부분보다 정보 제공에 미흡하다. 이 두루마리의 형편없는 보존 상태가 특별히 안타까운 것은 그 남아있는 것들이 질적인 면에 있어서 “1QIsa”보다 휠씬 우월하기 때문이다.
 “1QIsb”사본은 필체가 아름답고 필기상의 실수가 거의 없는 노련한 필경사의 작품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 두루마리의 보존은 그 없어진 부분들이 맛소라 본문과의 현저한 일치성에 있어서 현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결론을 확증하기에 충분하다.
 그 보존된 부분들은 마소라 본문과 거의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어떤 비평적 학자들은 저들이 휠씬 후기의 것으로 믿었던 본문상의 특성을 보이는 한 두루마리의 고대성을 처음에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 둘째 이사야 두루마리는 그 본문이 그리스도 시대 이래로 실제로 변하지 않고 우리에게 전달되어져 왔음을 나타낸다. 좀 부주의하게 필사된 본문도 그 같은 시대에 존재했었다는 것이 동일한 기원의 에세네파 도서에 속한 다른 이사야 두루마리(1QIsa)에 의하여 밝혀진다. 히브리 대학교의 이사야 두루마리(1QIsb)는 엔. 아비가드(N. Avigad)의 편집하에 수케닉씨에 의해서 (그의 사후에) 히브리어 저술(Osar hammegiloth haggenuzoth)로 출판되었다(Jerusalem:The Bible Institute and the Hebrew Uni-versity, 1954).

 3. 역사적 배경
 이사야서는 시기가 명확히 정해져 있으며 그 만들어진 기간은 근동 역사에 잘 알려져 있다. 이사야는 제 6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이상이 주어지기 전에 그의 선지자 직에 부르심을 받았으며 그의 봉사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의 통치 시대에 수행되었다(사 1:1). 웃시야는 B.C. 739년경에 죽었고 히스기야는 B.C. 686년에 죽어 그의 아들 므낫세가 위를 계승하였다. 이 기간동안의 앗수르 왕들은 다음과 같다. 디글랏빌레셀 Ⅲ세(745-727), 살만에셀 V세(727-722), 사르곤 Ⅱ세(722-705), 산헤립(705-681), 에살핫돈(681-669). 이 왕들은 앗수르에서 나온 가장 강력한 통치자들이었다. 그리하여 이사야는 앗수르가 곧 동방 세계의 완전한 지배권을 잡을 듯이 보이는 앗수르의 전성기 동안에 그의 사업을 수행하였다. 디글랏 빌레셀 Ⅲ세는 주변 나라들에 대한 일련의 정복을 시작하였는데, 그 결과 점점 더 많은 근동 국가들이 앗수르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앗수르는 세계의 강력한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지게 되었으며, 어떤 나라도 그 세력에 맞설만큼 충분한 힘이 없었다.
 B.C. 745년 디글랏 빌레셀은 바벨론을 침공하였고 B.C. 744년에는 북동 지방을 향하여 진군하였으며, B.C. 743년부터 B.C. 738년까지는 이스라엘의 므나헴과 또한 “유다의 아사랴”(웃시야일 것임)와의 전쟁을 유발시킨 서북과 서쪽 지방에 대한 거대한 원정을 감행하였다. 아사랴는 앗수르가 지중해 지역의 지배권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데 목적을 둔 서방 국가들의 대 연합에 있어서 주도적인 정신을 가져온 듯하다. B.C. 737년 디글랏 빌레셀의 원정은 메데 지방을 대적하여 북동쪽으로 재개되었다. 그러나 그는 B.C. 736년에 다시한번 북서쪽으로 돌아와 그곳에서 서방 아시아를 완전히 그의 지배하에 두기 위한 필사적인 5년 전쟁에 돌입했다. B.C. 735년 그의 원정은 현재의 아드메리아 지역에 있는 우라르투(Urartu)로 향하여졌으며, B.C. 734년에는 블레셋을 대항하여 싸웠고, B.C. 733년과 B.C. 732년에 다시 다메섹(Damascus)을 대항하여 싸웠다. B.C. 731년 그는 한번 더 바벨론에 있었으며, 기록에 의하면 B.C. 730년 그는 본국에 체재하였다. 그러나 그는 B.C. 729년 다시 바벨론에 돌아가 “벨(역자주:바벨론의 주신(主神) 마르둑)의 권세를 취하여,” “불”이라는 칭호로 군림하는 바벨론의 왕이 되었다. B.C. 727년에는 다메섹과의 또 다른 싸움이 있었다.
 살만에셀 Ⅴ세에 관한 기록은 비록 불완전하지만 그의 주요 원정은 이스라엘 나라에 대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B.C. 725년부터 B.C. 723년에 걸쳐 3년간 사마리아를 포위하였으며, 이때 그 도성이 함락되어(723-722 B.C.) 이스라엘 국가는 영원히 사라졌다.
 사르곤 Ⅱ세는 B.C. 723-722년 사마리아를 함락시킨 군대를 지휘하였을 것이다. 그는 B.C. 722-721년에 통치를 시작하였고, 앗수르 역사상 어쩌면 가장 강력한 군 출신 군주가 되었다. 그는 북동 지방, 바벨론, 북서 지방, 그리고 지중해 연안국들에 대한 일련의 원정을 감행하였다. B.C. 720년, 북서쪽과 서방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였고, B.C. 715년에는 한 아랍 족속들을 정복하였으며 알려지지 않은 여러 애굽 통치자들로부터 조공을 받았다. 그는 B.C. 711년, 아스돗(사 20:1참조)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시키기 위해 다르단을 파송하였다(왕하 18:17). B.C. 709년 사르곤은 바벨론의 왕이 되었다.
 산헤립은 B.C. 705년에 통치를 시작하였으며 B.C. 703년에는 바벨론의 므로닥 발라단을 패배시켰다. B.C. 701년에 그는 그 유명한 “제3차 원정”에 돌입하였는데 그것은 베니게와 블레셋과 유다를 대적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모압, 암몬, 그리고 에돔을 포함하는 지중해 지역의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정복 당했으며 조공을 바치도록 강요되었다. 하지만 그 원정은 예루살렘이 함락되지 않은 사실 때문에 완전한 성공은 아니었다. 산헤립은 분명히, 앗수르의 기록 중에 언급되지 않은 또 다른 원정(왕하 18:13)으로 서방에 다시 와서 예루살렘을 위협하였으나 그의 군대가 주의 사자에게 전멸당한 후 앗수르로 강제 퇴각하였다(사 37:36, 37).
 애굽과 바벨론은 이 시기 동안에 비교적 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앗수르의 공격에 대항하여 힘을 썼다. 바벨론의 므로닥 발라단은 사르곤과 산헤립 통치 기간 동안에 특히 활동적이었고 애굽의 디르하가는 유다에 대한 산헤립의 제2차 침공시 그를 대항하는 한 군대를 이끌었다(왕하 18:13; 19:9).

 4. 주제
 이사야는 불안한 세상에 살았다. 유다와 이스라엘에게는 모두 위험한 위기의 시대였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악의 길로 깊이 타락하였다. 유다의 아사랴(웃시야)와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Ⅱ세 치리하에서 두 나라는 강대하게 성장하고 번영하였다. 그러나 물질적인 번영은 영적인 쇠퇴를 가져 왔다. 그 백성들은 하나님과 그의 의로운 길들을 저버렸다. 사회적 도덕적 상태를 두 나라가 모두 더욱 그러하였다. 재판관들은 보수를 위해 재판하고 정치가들은 주로 향락과 사치에 치중하였으므로 도처에 그릇된 판결이 있었다. 욕심과 탐욕과 악덕이 그 당시 유행이었다. 부자는 더욱 부하여지고 가난한 자들은 더욱 가난하게 되므로 많은 사람들이 빈곤의 심연에 빠졌으며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되었다. 그 당시의 사회적, 도덕적 상태들은 이사야와 당대의 선지자들인 미가, 아모스, 호세아에 의하여 생생하게 서술되었다. 대부분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한 경배를 저버리고 이방 신들을 좇았다. 그 나머지 사람들도 종교의 외적인 형식에는 집착하였지만 그것의 참된 의미와 능력에는 전혀 무지하였다.
 이사야는 백성들에게 그러한 상태들이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경고하였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의의길을 따르기로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악한 길을 따른 민족으로부터 자신을 돌이키실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아야 할 절대적인 필요성, 그리고 그의 의와 공평과 사랑의 길들에 관한 이상을 받았다. 그는 보좌에 좌정하시어 높임을 받으시는 지고하신 하나님께서 여전히 지상의 일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인간들이 회개하도록 부르시며 언제나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시지만 악행을 고집하는 자들을 심판하실 수 밖에 없는 그의 의로운 품성을 보았다.
 의의 길은 생명과 평화와 번영의 길이지만 사악한 길은 고난과 두려움으로 채워진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그는 백성들에게 종교의 참된 의미와 하나님의 진실된 성품을 가르치고자 노력하였다. 좀 더 순결하고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하여 호소하였다. 그 나라는 악행을 계속함이 급속한 멸망을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에 관한 경고를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판결을 선고하며 재판에서 가난한 자들을 외면하고 빈곤한 자의 권리를 빼앗으며, 과부들을 저들의 희생물로 삼고, 고아를 약탈하는 위선자들의 나라에 대한 심판을 이행하시기 위한 그의 도구로 앗수르 사람들을 사용하실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사야는 재난과 황폐의 날이 확실하고도 신속히 임할 것을 명백히 하였다.
 이사야는 전세계가 한 하나님, 곧 히브리 백성들에게 뿐만 아니라 지상 모든 나라에게 의를 요구하시며, 저들의 악행을 고집한 모든 자들을 심판하실 분에 의해 통치된다는 사실을 천명하였다. 주의 심판은 앗수르와 바벨론, 블레셋과 애굽, 그리고 수리아와 두로에 내려질 것이었다. 끝내는 온 지구가 그 죄과로 인해 완전한 멸망을 가져올 것이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으실 것이며, 그 백성들은 완전한 기쁨과 평화의 새로운 세상에서 하나님을 경배할 것이었다.
 이사야는 선지자요, 또한 정치가였다. 그는 그의 조국을 깊이 사랑하였으며 국가적 이익과 위배되는 여하한 행위에 대해서도 용기와 확신을 가지고 말하였다. 그는 애굽의 도움을 의존하는 어리석음을 보고 유다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애굽 현자들의 조언이 혼란케 되며 도시와 도시들이 서로 싸우고 모든 사람들이 저들의 이웃과 분쟁하므로 애굽 자체가 분열될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도록 하였다.
 이사야는 세력을 위해 세상의 동맹국들에 의존하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충고하였다. 그는 인간들의 조언은 실패하게 될 것이며 오직 저들의 의지를 하나님께 두는 자들만이 끝내 승리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저희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는 가운데서 그 힘을 찾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와 보호하심을 거절하였다.
 임박한 멸망에도 불구하고 이사야는 주님께 충성하므로 구원받을 한 남은 무리에 관해 계속해서 언급하였다. 이 남은 무리를 제외하고 주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은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철저하게 소멸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 남은 자들은 신뢰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에게 두며 그의 법도 안에서 행하는 것을 배울 것이었다.
 이사야는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서의 주(主)를 말한다. 그는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의 백성들도 그와같이 거룩하기를 요구하시며, 또한 의로우시므로 죄와 함께 하실 수 없다. 이사야는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의의 성읍”(사 1:26)이 될 새 예루살렘을 앞서 바라보았다. 이사야에게 있어서 거룩함이란 의식의 철저한 준수나 종교상의 예법들 이상의 것을 내포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이러한 것들은 성품의 개혁과 거룩하고 흠없는 생활이 수반되지 않으면 여호와께 가증하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관한 한 이사야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절박한 멸망을 피할 것이라고 예기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유다에 대해서는 임박한 위험으로부터의 도피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약속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유일한 안전의 길은 하나님과 그의 의롭고 거룩한 길로 돌아오는 데 달려 있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하였다.
이사야는 그의 책 후반부인 40-66장에서 성경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관한 가장 두드러진 소묘(素描)들 중의 하나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고난당하시는 구세주로서의 그리스도에 관한 가장 사실적인 영감적 해설이 기록되어 있다(사 53장). 하나님의 무한하신 위대함과 선하심에 관한 성경상의 가장 계시적인 묘사가 여기에 있다. 또한 교회의 위대한 사명을 밝히고 있다. 이사야는 그리스도께서 “이방의 빛”으로 오실 것과 그의 구원의 기별이 마침내 “땅 끝까지 이르게”(사 49:6)될 것을 분명히 보았다. 그는 시온에게 깨어날 것과 그의 아름다운 옷을 입을 것을 명하였으며(사 52:1), 시온이 열방을 얻고 땅의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할 영광스러운 때를 위한 준비로서 그 장막터를 넓히며 처소의 휘장을 널리 펼 것을 요청하였다(사 54:2, 3). 그는 바로 주의 영광이 시온에 임할 것이며 열방은 그의 빛으로, 열왕은 그의 비취는 광명으로 나아올 것이므로 시온에서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명하였다(사 60:1-3).
이사야는 메시야적인 선지자로 불리워지는 것이 적절하다. 다른 어떠한 선지자도 하나님의 거룩함과 위대하심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인성과 그 사명에 관하여, 그의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목적에 관하여 그처럼 명백한 표현을 갖지 못한 것 같다. 이사야가 이스라엘의 유명했던 선지자들 중의 거물로서, 그리고 그의 저술이 모든 선지자의 기록들 가운데 걸작으로 여겨지는 것은 당연하다.

 5. 개요
Ⅰ. 국가적 배교와 투쟁하도록 이사야가 부르심을 받음 1:1-6:13
     1. 서론: 이사야의 선지자적 봉사 1:1

     2.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호소 1:2-31
       (1) 이스라엘의 반역과 하나님의 교정하시는 징벌 1:2-9
       (2) 종교적 형식주의의 무익함 1:10-15
       (3) 순종에 대한 축복과 계속적인 반역에 대한 심판 1:16-31

     3.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그 실패 2:1-5:30
       (1) 이방인들을 수확함 2:1-5
       (2) 유다의 실패 2:6-9
       (3) 하나님의 큰날 2:10-22
       (4) 유다 지도자들의 실패 3:1-15
       (5) 백성들의 상태 3:16-4:1
       (6) 의로운 남은 자들에 대한 구속과 회복 4:2-6
       (7) 유다의 실패에 대한 하나님의 실망 5:1-7
       (8) 이스라엘의 범죄 목록 5:8-25
       (9) 하나님의 보복 5:26-30

     4. 이사야: 배교한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사자 6:1-13
       (1) 하나님의 위엄에 관한 이상 6:1-7
       (2) 이사야의 부르심과 임무의 확인 6:8-13

Ⅱ. 수리아와 앗수르로부터의 구원 7:1-12:6
     1. 아하스에 대한 이사야의 기별 7:1-7:25
       (1) 이스라엘과 수리아로부터의 구원이 약속됨 7:1-9
       (2) 구원의 징조 7:10-25

     2. 유다에 대한 앗수르의 침략이 예언됨 8:1-10:34
       (1) 침략의 징조 8:1-8
       (2) 유다가 인간이나 권력보다 하나님을 신뢰함 8:9-22
       (3) 메시야의 오심을 통한 궁극적인 구원 9:1-7
       (4) 계속적인 완고함과 교정하시는 징벌 9:8-10:4
       (5) 하나님의 진노의 막대기인 앗수르의 멸망 10:5-34

     3. 메시야의 왕국 11:1-12:6
       (1) 메시야를 통한 구원과 회복 11:1-9
       (2) 이방인들과 유다의 포로들을 모음 11:10-16
       (3) 구원의 노래 12:1-6

Ⅲ. 바벨론과 다른 나라들로부터의 구원 13:1-23:18
     1. 바벨론에 관한 엄숙한 기별 13:1-14:23
       (1) 바벨론의 황폐 13:1-22
       (2) 바벨론으로부터 이스라엘의 구원 14:1-3
       (3) 바벨론 왕의 몰락 14:4-23

     2. 앗수르에 대한 엄숙한 기별 14:24-28

     3. 블레셋에 대한 엄숙한 기별 14:29-32

     4. 모압에 대한 엄숙한 기별 15, 16장

     5. 다멕섹(수리아)에 대한 엄숙한 기별 17장

     6. 에디오피아에 대한 엄숙한 기별 18장

     7. 애굽에 대한 엄숙한 기별 19, 20장

     8. 바벨론에 대한 엄숙한 기별 21:1-10

     9. 두마(세일)에 대한 엄숙한 기별 21:11, 12

     10. 아라비아에 대한 엄숙한 기별 21:13-17

     11.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엄숙한 기별 22:1-25

     12. 두로에 대한 엄숙한 기별 23:1-18

Ⅳ. 사단의 지배로부터의 구원: 하나님의 큰날 24:1-35:10
     1. 땅의 황폐 24장

     2.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 25-27장
       (1) 찬양과 승리의 노래 25장
       (2) 하나님에 대한 확신의 노래 26:1-27:1
       (3) 주의 포도원에 관한 노래 27:2-6
       (4)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모음 27:7-13

     3.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엄숙한 경고 28:1-29:24
       (1) 에브라임(이스라엘)에 재난 28:1-6
       (2)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28:7-29
       (3) 다윗성 아리엘(예루살렘)에 대한 경고 29:1-17
       (4) 야곱의 구속과 회복 29:18-24

     4. 애굽을 의지함의 어리석음 30:1-31:9
       (1) 애굽을 의지하는 자들에 대한 화 30:1-14
       (2)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에 대한 자비 30:15-33
       (3) 애굽과 앗수르의 패배 31:1-9

     5. 메시야의 왕국 32:1-35:10
       (1) 한 왕의 의로운 통치 32:1-33:24
       (2) 여호와의 보수의 날 34:1-17
       (3) 새 땅의 노래 35:1-10

Ⅴ. 역사의 중간 시대 36:1-39:8
     1. 앗수르의 유다 침략 36:1-37:38
       (1) 히스기야에 대한 랍사게의 첫번째 기별 36:1-37:7
       (2) 히스기야에 대한 랍사게의 두번째 기별 37:8-13
       (3) 히스기야의 애원 37:14-20
       (4) 구원의 약속과 그 성취 37:21-38

     2. 히스기야의 질병과 회복 38:1-39:8
       (1) 질병과 건강의 회복 38:1-22
       (2) 므로닥 발라단의 사절단 39:1-8

Ⅵ. 하나님의 계획이 승리함: 구원과 구원자 40:1-53:12
     1. 하나님의 목적들을 신뢰하기 위한 확고한 근거 40:1-47:15
       (1) 하나님을 신뢰함: 그의 말씀은 영속함 40:1-41:25
       (2) 하나님의 “종” 그리스도 42:1-25
       (3) 하나님의 “종” 이스라엘 43:1-44:23
       (4) 하나님의 “종” 고레스 44:24-46:13
       (5) 바벨론의 몰락 47:1-15

     2. 이스라엘이 그의 메시야적 역할을 성취하도록 도전받음 48:1-52:12
       (1) 포로 생활의 교훈을 배우라는 도전 48:1
       (2) 열국 앞에 하나님을 드러내라는 도전 49:1-26
       (3) 인간 지혜의 권고들을 버리라는 도전 50:1-11
       (4) 하나님의 부르심에 과감하게 응답하라는 도전 51:1-52:12

     3. 하나님의 고난당하시는 “종” 메시야 52:13-53:12

Ⅶ. 이방인들을 수확함 54:1-62:12
     1. 하나님의 계획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역할 54:1-56:12
       (1) 이스라엘의 기업: 하나님을 위하여 세상을 얻음 54:1-17
       (2)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진 구원의 기별 55:1-13
       (3) 만민을 위한 기도의 집 56:1-12

     2. 개혁하라는 부르심 57:1-59:21
       (1)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기 위한 간절한 탄원 57:1-21
       (2) 개인적 신앙의 참된 정신 58:1-14
       (3) 죄를 버리라는 간절한 탄원 59:1-21

     3. 열방에게 빛이 되라는 간절한 탄원 60:1-62:12
       (1)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운명의 때 60:1-22
       (2) 이스라엘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도록 정해짐 61:1-11
       (3) 충실한 봉사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상 62:1-12

Ⅷ. 메시야의 왕국이 건설됨 63:1-66:24
     1. 하나님의 큰날 63:1-65:16
       (1) 보수의 날 63:1-6
       (2) 그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 63:7-19
       (3) 변화와 구원을 위한 기도 64:1-12
       (4)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을 책망하시고 용납하심 65:1-16

     2. 하나님께서 지구를 회복하심 65:17-66:24
       (1) 새 땅 65:17-25
       (2)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자비 그 대적들에게 임하는 고통 66:1-21
       (3) 우주 앞에 드러난 하나님의 공의 만민이 그를 경배함 66:2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