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표제
 이 책은 다니엘서의 중심 인물로 등장하는 다니엘의 이름을 따라 명명되었다. 중심 인물의 이름을 따라 책명을 붙이는 구약의 관습은 여호수아, 사무엘, 에스더, 욥기등의 책들에 의해서도 나타난다. 그러한 책명이 반드시 그 책의 저자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다니엘서의 경우처럼 저자가 그 책명 속에 포함될 수도 있다.

 2. 저자
 유대인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의 전통적 견해는 다니엘서가 B.C. 6세기에 기록되었고, 이 책의 저자는 다니엘이라는 것이다. 이 전통적 견해가 옳다는 것을 지지하는 증거들은 다음과 같다.
 (1) 다니엘서의 주장.
 선지자 다니엘은 여러 구절들(단 8:1-7, 13-19, 27; 9:2-22; 10:2-5)에서 제 1인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을 간수하라는 거룩한 명령을 개인적으로 받았다고 진술한다(단 12:4). 저자가 자신을 제 3인칭으로 언급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는 사실(단 1:6-11, 17, 19, 21; 2:14-20)로 인하여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고대의 저술들 가운데서 그러한 어법을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이다(스 7:28 참조).
 (2) 다니엘서의 저자는 역사를 잘 알고 있다.
 B.C. 6세기의 사람으로서 바벨론의 사건들에 정통한 사람만이 이 책속에 나타나는 역사적 사실들을 제시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지식이 B.C. 6세기 이후에는 잃어버린바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러한 사실들이 그 시대 이후 고대의 다른 문헌 속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의 고고학적 발견들로 인하여 이 사실들이 한번 더 밝혀지게 되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다니엘서로부터 한 구절을 인용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다니엘을 이 책의 저자로 언급하신다(마 24:15). 모든 그리스도인 신자에게 있어서 이 증언은 결정적 증거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아주 명백하게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첫 부분(단 1-6장)은 주로 역사이며 둘째 부분(단 7-12장)은 주로 예언이다. 그러나 이 책은 문학적 구성 단위(literary unit)로 되어있다. 다음의 논리들은 그러한 통일성(unity)을 지지하는 것으로서 열거될 수 있다.
 (1) 이 책의 여러 부분들은 상호 연관되어 있다. 성전 기명들이 벨사살의 잔치에 사용된 일은 그 기명들이 어떻게 바벨론에 옮겨져 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에 비춰 이해할 수 있다(단 1:1, 2; 5:3). 단 3장12절은 단 2장 49절에 처음으로 묘사된 느브갓네살의 정치적 조치를 언급하고 있다. 단 9장21절에는 앞서 받은 묵시가 언급되고 있다(단 8:15, 16).
 (2) 역사적 부분에는 이 책의 후반부(7-12장)에 나오는 예언들의 주제와 매우 밀접한 예언(2장)이 내포되어 있다. 제 7장에는 제 2장에서 제시된 주제가 더 발전된 형태로 나온다. 또한 역사적 요소와 예언적 요소 사이의 관계가 역력하다. 역사적 부분(1-6장)은 한 나라, 곧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취급 방법과 그 나라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취할 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다루어져 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를 어떻게 다루시는가에 대한 하나의 예증으로서 나타날 것이다.
 바벨론과 같이 이 책의 예언 부분에 그림같이 묘사된 바벨론 이후 연이어 일어날 제국들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 또 거기에 협력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었다. 각 제국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데서 보인 충성으로 평가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언 부분에 묘사된 나라들의 흥망성쇠는 바벨론의 사례에서와 같이 역사 부분에서 제시된 원칙들에 의거하여 이해하여야 한다. 이러한 사실이 이 책의 두 부분을 하나의 단위로 묶어 놓으며 바벨론 이후에 일어날 세계의 각 제국들로 말미암아 연출될 역할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를 놓아 준다.
 (3) 이 책의 문학적 구성 단위가 매우 잘 증명될 수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학파의 대표자들이 그 사실을 인정한다. 구성, 곧 사고의 전반적인 방향과 두 가지 언어로써 사용된 표현법은 이 책 전반에 공통됨으로 이 책의 어떤 부분은 한 저술가가 쓰고 다른 부분은 다른 저술가가 썼다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무색해진다.
제 1 쿰란(Qumran)굴에서 발견된 수백 사본 조각 가운데 세개는 다니엘서 사본 조각이다. 이것들은 바르텔레미(D. Barthelemy)와 밀리크(J.T. Milik)에 의하여 “유대 제1 사막 쿰란 제 1 동굴에서 발견물”(Oxford, 1955, 150-152)이라는 책에 발표되었다. 그 사본 조각들은 두 서기관들에 의하여 쓰여졌는데 그것은 따로따로 된 두 두루마리에 속하든지 아니면 제 1장과 제 2장은 한 서기관이 쓰고, 제 3장은 다른 서기관이 쓴 같은 두루마리에 속하든지 할 것이다. 그 사본 조각들은 다음에 나오는 22절들의 부분들이 포함되어 있다. 단 1:10-17; 2:2-6; 3:22-30. 이 절들과 마소라 사본과를 비교해 볼 때, 거기엔 16가지의 차이점들이 있다. 그러나 그 중 어느 하나도 구절의 의미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16가지 중 9가지는 철자상의 차이이고, 그 철자가 미치는 영향도 고작 한 문제에 불과하다. 아홉 중에서 둘은 철자의 오기인 것같고, 나머지 일곱은 마소라 사본에서까지도 여러가지로 철자되어 있다. 네 가지의 첨가된 것이 있는데, 하나는 접사 “그리고”이며, 하나는 “만약”이라는 말 앞에 있는 “경우”라는 불변화사요, 나머지 두 단어에는 모음이 첨가되었다. 마소라 사본에 있는 모음 글자가 조각에는 없는 경우가 한번 있다. 두개의 동사 어미는 기록상의 잘못인 것같다. 마소라 사본과 사해 사본 조각들과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번역상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같다. 이것은 다니엘서의 히브리어 사본은 실질적으로 적어도 그리스도 당시에 있었던 것과 동일한 형태의 것이라는 강력한 증거이다.
 다니엘 2장의 사본 조각에 히브리어에서 아람어로 바뀌어지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단 2:4). 바로 그곳에는 히브리어의 마지막 단어와 아람어의 처음 단어 사이에 공백이 남겨져 있어 두 언어 사이의 구별을 뚜렷이 해 놓았다. 이 사본 조각들은 위경서에 나오는 “세 아이들의 노래”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마소라 사본과 일치한다(단 3:23).

 3. 역사적 배경
 다니엘서는 바벨론 시대의 유대인 포로였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의 생애에서 일어난 어떤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기록, 느부갓네살 왕이 꾸었고 다니엘이 해석했던 예언적 꿈에 대한 기록과 다니엘 자신이 받았던 이상에 대한 기록을 함께 싣고 있다. 비록 다니엘서가 포로 기간 동안과 그 직후에 바벨론에서 기록되었다 할지라도, 그 목적은 유대 민족의 포로 역사나 다니엘의 전기를 기록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정치가이자 예언자인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의 경험 중 가장 중요한 점들을 말하고 있고, 특별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편찬되었다.
 먼저 다니엘은 그가 왜 바벨론 왕의 공무에 임하게 되었는지의 사유를 간략히 서술하고 있다(단 1장). 느부갓네살왕의 제1차 시리아 원정 때, 즉 B.C. 605년 제1차 포로로서 바벨론으로 잡혀갔을 때, 왕족의 피를 받은 다니엘과 다른 귀공자들이 정부의 직무를 위하여 훈련받도록 선택되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체류한 첫 19년은 바벨론의 속국으로 있었을찌라도, 유다가 한 나라로서 존속할 수 있었던 마지막 해들이었다. 유다의 말년에 있었던 왕들의 빈번한 반바벨론 정책의 결과로써 재난들이 유다 국민에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덮쳤다.
 다니엘이 포로로 붙잡혀 갈 당시 유다를 통치했던 여호야김왕은 몇년 간은 바벨론에 충성하였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그는 친이집트파의 정책에 동의하여 반역하였다. 그 결과로서 유다는 군대의 침략을 받았고, 그 백성들은 그들의 자유를 빼앗기고 포로로 붙잡혀 갔고, 왕은 그 생명을 잃어 버렸다. 그의 왕위를 계승한 그의 아들 여호야긴은 겨우 석달의 짧은 통치 후, 그의 불충성으로 인하여 응징하러 온 바벨론 군대를 맞게 되었다. 그와 함께 수천명의 유다 상류 계급 사람들이 B.C. 597년에 포로로 붙잡혀 갔다. 여호야긴의 뒤를 이은 시드기야왕은 분명히 바벨론에 충성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의 연약성과 우유부단함 때문에 그는 애굽의 제안과 그의 주요 보좌관들의 반바벨론 감정을 오래 지탱할 수 없었다. 그 결과 팔레스틴에서 계속적인 반역에 지친 느부갓네살 왕은 유다 왕국을 멸망시키기로 결심하였다. 2년 반 동안 바벨론의 군대는 유다를 약탈하고, 그 성전과 그 왕궁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포함한 도시들을 점령하고 파괴하고, B.C. 586년에 유다 주민들의 대부분을 포로로 잡아갔다.
 다니엘은 이 다사다난한 때에 바벨론에 있었다. 그는 바벨론 군대가 그의 고국 땅을 치려고 몇번 출발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며, 바벨론 군대의 승리의 개선과 포로된 유대인들의 도착을 목격하였을 것이다. 그 포로들 중에는 그의 가족을 동반한 젊은 여호야긴왕과(왕하 24:10-16), 나중에는 눈 먼 시드기야왕이(왕하 25:7) 있었다. 이러한 때에 다니엘은 포로된 유대인들 중에서 꾸며지고 있던 정치적 소동도 알았을 것이다. 이 소동의 결과로 느부갓네살은 그 주모자들 중 몇을 태워 죽였다. 바로 이 소동 때문에 예레미야는 포로된 그의 동포들에게 바벨론에서 조용히 평화롭게 지내라고 촉구하는 편지를 보내게 되었다(렘 29장).
 이 모든 시기 동안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관리로서, 그 나라의 신민으로서 잠잠히 그리고 충성스럽게 그들의 직무를 수행하였다. 그들은 학문적 수련을 쌓은 후, 박사라고 불리는 상류 그룹의 일원이 되었는데, 그들은 왕의 고문으로 봉사하였다. 다니엘이 미래의 제국들에 대한 꿈을 느부갓네살왕에게 해석할 특별한 기회를 얻었던 때는 바로 이때였다(단 2장). 그 결과 다니엘은 수년간 재직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아주 높은 지위에 임명되었다. 이 지위는 다니엘에게 그와 그의 친구들이 섬기는 하늘과 땅의 하나님의 권세를 왕에게 알릴 기회를 제공하였다. 다니엘이 얼마동안 이 지위에 있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도 B.C. 570년 전에 그 지위를 상실한 것같다. 왜냐하면 그의 이름이 당시의 느부갓네살 정부의 관직을 맡은 고관들의 이름을 기록한 설형문자(쐐기문자)로 기록된 현존하는 “왕궁 정부 연감”의 목록에 없기 때문이다. 느부갓네살의 통치에 대한 이외의 왕궁 정부 연감은 현존하지 않는다.
 사실상, 다니엘의 이름이 현재로서는 성서 밖의 자료에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 문서에 다니엘의 이름이 없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니엘이 얼마 동안 공직에 있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느부갓네살의 통치 기간 중에 있은 사건들 중 네가지 중요한 사건들만이 다니엘서에 기록되어 있고, 그 중 세 사건에서 다니엘이 활약하고 있다. 그 네 사건들은, 느부갓네살의 즉위년을 포함한 그의 통치 첫 3년 동안의 유대 왕족들의 교육(1장), 왕의 치세 제2년에 있은 느부갓네살의 꿈 해석(2장), 연대가 확실치 않은 어느 해에 두라 평지에 신상을 세운 일과 그 결과로 다니엘의 친구들이 당한 경험들(3장), 아마도 왕의 말년에 일어났을 것으로 짐작되는 것으로서, 왕이 7년간 미쳐서 쫓겨나 고생할 것을 선고하는 그의 꿈을 다니엘이 해석함(4장)등이다.
 느부갓네살이 실각되어 있는 시기 동안의 다니엘의 활동에 대하여는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느부갓네살이 권세와 왕위를 복권한 후에 다니엘이 무엇을 하였는지, 느부갓네살을 계승한 왕들­아멜마르둑(Amel-Marduk: 성경상의 에윌므로닥), 네르갈샤르우수르(Nergal-shar-usur), 라바쉬마르둑(Labashi-Marduk), 나보니더스(Nabonidus)­의 통치 기간 동안에도 그의 봉직이 요청되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의 강대한 제국이 이전 왕들을 시살(弑殺)한 왕들의 통치하에서 도덕적으로 약하여지고 부패하는 것을 관찰하는 일이 허락되었다. 또한 그는 동방의 페르시아에서 고레스 왕이 혜성같이 나타나는 것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보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해방자로서 고레스라는 이름이 예언 중에 언급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사 44:28; 45:1). B.C. 553년(고레스가 메대 제국의 정복자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해), 나보니더스는 아라비아의 테마(Tema)를 정복하기 위하여 출발하면서, 바벨론을 그의 아들 벨사살이 다스리도록 임명하는 것을 다니엘은 보았을 가능성이 있다. 다니엘에게 큰 이상들이 주어지고(단 7, 8장), 지금까지는 단순히 꿈과 이상의 해석자로만 알려졌던 그가 모든 시대의 위대한 예언자들 중의 한 사람이 되었던 것은 바로 벨사살의 통치 첫 3년 동안에 있었던 것이다.
 B.C. 539년 바벨론이 망하던 그 밤에 벨사살의 잔치가 베풀어지고 있던 홀의 벽에 손으로 쓰인 운명의 글을 읽고 해석하라고, 바벨론 사람들은 다니엘의 봉사를 한번 더 요청하였다. 페르시아 사람들이 바벨론과 그 제국을 정복한 다음, 새 통치자들은 전대(前代)의 노 정치가의 재능들과 경험을 이용하였다. 다니엘은 또 다시 왕궁의 고문관장이 되었다. 이사야의 예언들을 왕으로 알게 한 사람은 다니엘이었을 것이다. 그 예언들은 페르시아 왕이 유대인들의 포로 생활을 끝나게 하고 그들의 성전과 그 땅을 회복하게 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다니엘의 이 후기의 공직 기간 동안, 그를 시기하는 동료들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받았으나, 주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개입하셔서 그의 종을 구원하셨다(6장). 다니엘의 생애의 말년에 중요한 이상들을 추가로 받았는데, 그 처음 것은 메대왕 다리우스 때에 받았고, 그 다음은 고레스 왕 때에 받았다(10-12장).
 (1) 다니엘서의 역사성
 다니엘서의 역사성에 대한 첫 주요 공격이 신플라톤 철학자 폴피리(Porphyry:A.D. 233-304?)에 의해 있었던 이후로, 이 책은 처음에는 간혹 있었으나 지난 2세기 동안에는 계속적으로 비평의 불길에 휩싸여 왔다. 그 결과로 오늘날의 대다수의 그리스도인 학자들은 다니엘서가 B.C.2세기의 마카비 반란 시대에 살았던 무명의 저자에 의해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학자들이 다니엘서의 연대를 그렇게 늦게 잡는 데는 두가지 주요 이유들을 들고 있다. 첫째, 그들의 주장대로 어떤 예언은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Antiochus Ⅳ Epiphanes:175-163 B.C.?)를 가리키고 있다. 그들의 개념에 따르면, 대부분의 예언들­적어도 정확히 성취되었다고 증명되어 온 예언들­은 묘사된 사건들이 일어난 후에 기록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다니엘서의 연대는 안티오쿠스 4세의 통치 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저들의 논리에 의하면, 다니엘의 역사 부분은 입수할 수 있는 자료들에서 알려진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어떤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 불일치점에 대하여는 그 저자가 실제적인 사건과 시간상, 공간상 너무 떨어져 있었으므로 B.C. 7세기와 6세기, 곧 400년 전에 실제로 일어난 것에 대하여 한정된 지식밖에 가질 수 없었다고 가정함으로써 최선의 설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두가지 논쟁들 중 첫번째의 것은 고대의 영감받은 선지자들이 역사의 진로에 대하여 실제로 정확한 예언을 하였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타당성이 없다. 두번째의 것은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만한 가치가 있는데, 그것은 다니엘서에는 역사적 부정확성, 시대 착오와 오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의 심각성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다니엘서의 역사적 신빙성에 대한 간략한 논의를 다음에 제시한다.
다니엘서가 오늘날이라 할찌라도 입수할 수 있는 고대의 문헌적 자료들에 의하여 증명될 수 없는 몇몇 사건들을 기술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한 사건 중의 하나가 느부갓네살 왕이 미친 이야기인데, 현존하는 고대의 어떠한 기록들 가운데서도 찾아볼 수 없다. 신바벨론 제국의 가장 위대한 왕의 일시적 실각에 대한 입증할만한 자료가 없는 것은 왕실의 실록에는 오로지 칭송할 만한 것만 기록한 그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단 4:36). 또한 메대 왕 다리우스도 수수께끼 같은 인물인데, 역사상 그의 참 위치가 성경 외의 믿을만한 자료들에 의하여 입증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신분에 관한 암시가 헬라 저술가들의 저서 속에서, 그리고 설형 문자로 된 자료로부터 단편적 정보는 찾을 수 있다.
 다니엘서의 보수적 주석가들을 당혹하게 만든 그 외의 역사적 난점들은 근대에 고고학에 의한 역사적 지식의 증가로 말미암아 해결되었다. 지금은 해결된 문제들 중 중요한 몇가지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① 다니엘 1:1; 예레미야 25:1 사이의 상상적 연대 차이-학자들이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바와 같이, 믿을만한 역사적 출처가 되는 예레미야는 유다 왕 여호야김 4년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의 원년과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첫 예루살렘 정복의 해가 여호야김 제3년이라고 말함으로써 느부갓네살의 원년과 여호야김의 제3년과 같은 해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같다. 고대 왕들의 통치년을 산출하는 여러가지 제도에 대한 그 당시의 기록들을 발견하기 전에는 언듯 보기에 서로 모순되는 것같은 이 문제를 주석가들은 설명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꼈다. 그들은 느부갓네살과 그의 아버지 나보폴라사르와의 동시 집권으로 추측함으로써, 그리고 예레미야는 유다 제도를 따르고 다니엘은 바벨론의 제도를 따르는 서로 다른 계산법에 따라 사건들의 연대를 매겼다고 추정함으로써, 이 난제를 풀려고 애썼다. 두가지 설명은 다 오늘날 낡은 것이 되었다.
 모든 어려움들은 그 당시의 유대 왕들과 같이 바벨론의 왕들도 그들의 통치 연대를 “즉위년” 방식에 계산하였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풀리게 되었다. 바벨론 왕이 왕위에 오른 그 해는 왕의 공식적 첫 해로 계산하지 않고, 다만 그의 즉위년으로 계산했다. 그의 원년은 그가 처음 맞는 만 일년을 의미하며, 종교적 의식으로서 그가 바벨론의 신 벨(Bel)의 손을 잡는 때인 정월 초하루 이후에야 이 원년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요세푸스가 인용한 대로(아피온에 반대하여 1권 19), 베로수스(Berosus)에게서 느부갓네살이 그의 군사 원정 중 애굽 국경에 있을 때, 그의 아버지가 죽고 그가 왕에 올랐다는 것을 알게 된다(2권 95, 96, 161; 3권 91). 그러므로 다니엘과 예레미야는 서로가 완전히 일치한다. 예레미야는 느부갓네살의 첫 통치년을 여호야김 제4년과 같은 해로 보고 있고, 반면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즉위년에 포로로 잡혀 갔는데, 그 해를 여호야김 제 3년이라 하였다.
 ② 바벨론의 위대한 건축가 느부갓네살-헬라 역사가들에 의하면, 느부갓네살은 고대 역사의 사건에서 별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는 결코 위대한 건축가로 또는 더 큰 바벨론의 건설가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영광이 바벨론의 역사상 탁월한 위치에 있었던 세미라미스(Semiramis) 여왕에게 돌려진다는 사실을 헬라의 고전 역사를 읽는 사람들이라면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수 백년에 걸쳐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발굴된 그 당시의 설형 문자의 기록들은 고대 저술가들에 의한 양상을 크게 변화시켰다. 그 설형 문자의 기록들은 “이 큰 바벨론”(단 4:30)의 건설을 느부갓네살에게 돌리는 다니엘서의 기사를 확증하였다. 이 일은 이제서야 발견된 사실인데, 설형 문자 비문에 삼무-라마트(Sammu-ramat)라 불리는 세미라미스는 앗시리아의 모후(queen mother)였고 그는 그의 어린 아들 아다드니라리 3세의 섭정이었고 고전 문헌이 주장하는 것같이 바벨론을 통치한 여왕이 아니었다. 바벨론에서 아무런 건축 활동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반면 느부갓네살의 무수한 건물 비문은 그가 궁전들과 신전들과 도시의 신전탑을 재건하고, 새로운 건물들과 방어 성벽들을 다시 세움으로써, 어떤 의미에서 신바벨론의 창시자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신바벨론 시대의 기자 외의 그 어느 누구도 이러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헬라 시대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이 다니엘서에 있음으로 해서 다니엘이 6세기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2세기에 기록되었다고 믿는 비평 학자들이 당황하게 되었다. 그들의 난처한 입장을 말해 주는 전형적 실례가 다음에 나오는 하바드 대학의 파이퍼(R.H.Pfeiffer)의 말 중에 나온다: “예측컨대 우리는 우리 저자가 발굴이 증거한 대로, 신바벨론은 느부갓네살이 건설한 줄 어떻게 알았는지 결코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구약 입문, 뉴욕, 1941, 758, 759 페이지).
 ③ 바벨론 왕 벨사살-나보니더스(Nabonidus)가 페르시야가 정복하기 전의 바벨론 마지막 왕으로 언제나 등장하는 것에 반해, 벨사살의 이름이 성경 외의 어떠한 고대의 저술들 중에도 없다는 사실은 다니엘서의 역사성을 반박하는 가장 강력한 논쟁들 중의 하나로 정규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지난 수 백년에 걸쳐 나온 발견물들은 이 점에 있어서의 다니엘에 대한 모든 비평들을 반박하였고, 그 예언자의 벨사살에 관한 역사적 진술에 신빙성이 있음을 아주 인상깊게 변호하였다.
 (2) 다니엘서의 언어들
 에스라서와 같이 다니엘서는 일부는 히브리어로, 일부는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에스라서의 경우 두 가지의 언어가 사용된 것은 저자가 역사적 기술이 포함되어 있는 아람어 문서를 택하여, 그 부분을 그의 책 속에 써 넣고, 그렇지 않은 때는 그의 백성의 모국어인 히브리어로 기록하였을 것이라고 추정함으로써 설명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아람어 부분이 2장 4절에서 시작되어 7장 마지막 절에서 끝나는 다니엘서의 경우엔 이러한 해석이 맞지 않다.
 다음에 나오는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학자들이 제시한 여러 설명들 가운데 일부인데, 괄호 안에 있는 것은 이러한 설명들의 타당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말들이다.
 ① 저자가 역사 이야기는 아람어로 말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썼고, 예언은 히브리어를 말하는 학자들을 위하여 썼다(그러나 아람어로 된 2장, 7장은 모두 대 예언들이므로 이 견해가 틀렸음을 말해준다).
 ② 두 가지의 언어는 두 가지의 자료를 가리킨다(이 견해가 옳지 못한 것은 여러 과격한 비평가들까지도 시인한 사실로서 이 책은 강력한 통일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③ 이 책이 원래는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기록되었지만, 그 부분들이 후에 번역되었다(이 견해는 왜 한 부분만 다른 언어로 번역되고 전체가 번역되지 않았느냐에 대한 의문을 답하지 못하고 있다).
 ④ 저자는 모든 계급의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는 히브리어로 하나는 아람어의 두 판으로 출판하였다. 마카비안의 박해 기간에 이 책의 부분들이 상실되어, 두 판에서 남은 부분들을 아무런 변경도 없이 연결했다(이 견해는 정확하다고 증명할 수 없으며, 너무나 많은 불확실한 점들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로 불리한 입장에 있다).
 ⑤ 저자는 갈대아 사람들이 “갈대아 방언(Syriack: 정확히 말하면 아람어)으로 왕에게”(단 2:4)라는 이 부분에서 아람어로 기록하기 시작하여 그 당시 그가 기록하고 있는 동안은 이 언어로 계속하다가 다시 쓰기 시작했을 때는 히브리어(단 8:1)로 기록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견해가 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것같다. 왜냐하면 이 책의 여러 부분이 같지 아니한 때에 기록된 것같기 때문이다. 훈련받은 정부의 관리로서 다니엘은 여러 언어로 말하고 기록했다. 그가 어떤 역사적 사건들과 이상들은 히브리어로, 어떤 것은 아람어로 쓴 것같다. 이러한 가정에 기초하여 제 1장은 히브리어로 아마도 고레스 원년에 기록된 것같고, 제 3-6장의 이야기들은 아람어로 같지 않은 때에 기록된 것같다. 제 7장이 아람어로 기록된 것 외에는 대부분의 예언적 이상들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미래의 왕국들에 대한 느부갓네살왕의 꿈 이야기는(2장) 갈대아인들의 말이 인용되는 데까지(2:4)는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여기서부터 이 이야기가 끝나는 데까지 아람어로 되어 있다.
 다니엘이 그의 말년에 그의 모든 저술들을 한 책으로 모았을 때, 그는 자기 독자들의 대부분이 두 나라 말에 통하는 것을 알고 - 다른 문헌들로 보아 명백한 사실이다- 이 책을 언어상 통일을 기하기 위하여 어떤 부분도 번역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다니엘서에 두 언어가 사용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이 책의 기원을 늦게 잡는 논쟁거리가 될 수 없다. 다니엘의 기원을 B.C. 2세기로 잡는 사람들은 왜 마카비 시대의 히브리 저자가 그 책의 일부는 히브리어로, 일부는 아람어로 기록했는지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철자법상 다니엘서 아람어의 특이점들은 3-4세기에 서부 아시아에서 쓰이던 아람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히브리 성경에서 볼 수 있는 특징으로서 언어의 현대화 때문인 것같다. 철자법이 기록 연대를 나타낼 수 없는 것은 마치 가장 최근의 영어 성경 개정판이 성경은 원래 20세기에 기록되었거나 번역되었다는 증거로 채택될 수 없다는 것과 같다. 철자법상의 특징은 기껏해야 언제 철자의 최근 교정이 있었는지를 암시할 뿐이다.
 사해 사본 가운데는 B.C. 2세기의 다니엘서 사본 조각들이 여러개 있다. 그 가운데 적어도 두 개가 히브리에서 아람어로 바꾸어진 그 부분을 보존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 당시 그 책에 두 가지 언어로 된 특징들이 있었음을 매우 명백히 보이고 있다.

 4. 주제
 다니엘서는 역사와 예언의 안내서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장래를 말하는 예언은 역사를 미리 보는 것이 되며, 역사는 장래를 예고한 예언이 눈에 보이게 지나가는 것이다. 예언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시간의 일들을 영원한 빛에 비추어 볼 수 있게 하고, 적절한 때에 효과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깨우치게 하고, 최후의 위기를 위하여 개인으로 준비하게 하고, 성취된 예언 위에 믿음의 굳건한 기초를 놓게 하는 요소가 있다.
 다니엘서의 예언의 네 중요 부문에는 세계 역사의 배후에 대하여, 다니엘 시대로부터 세상 끝날에 이르기까지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경험들이 간략히 제시되어 있다. “장막이 걷히고 모든 인간의 흥미와 능력과 감정의 활동과 반동을 위와 뒤와 속으로 전능하신 분의 힘이 그분 자신의 계획들을 묵묵히 참을성 있게 실현시키시는 것을 우리는 본다.” 네 분야의 예언은, “하늘의 하나님이”, “영원히 망하지…아니할” 한 나라를 세우실 때(단 2:44), “인자”가 “영원한 권세”(단 7:13, 14)를 받을 때, “만왕의 왕”에 대한 반역이 “사람의 손으로 말미암지 않고 깨어”질 때(단 8:25),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저들의 압제자들에게서 영원히 해방될(단 12:1)때에 각기 그 절정에 달한다. 이렇게 하여 다니엘의 예언들은, 위태로운 때와 영원히 끝없는 바닷가를 연결하는 다리, 곧 다니엘과 같이 마음 속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에게 봉사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믿음으로 현실 생활의 불확실과 곤혹에서 영원한 생활의 평화와 안정으로 건너가는 하나님께서 놓으신 한 다리를 준비한다.
 다니엘의 역사 부분은 가장 현저한 방법으로 참된 역사 철학을 드러낸다. 이 부분은 예언 부분의 서론에 위치한다. 한 나라, 곧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취급 방법을 자세히 이야기 함으로써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이 책의 예언 부분에 요약되어 있는 기타 나라들의 흥망성쇠의 의미들을 깨달을 수 있게 해 준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내포되어 있는 바벨론의 역할이 보여주는 역사 철학을 분명히 깨닫지 못하고서는 예언적 이상의 영사막 위에 나타난 바벨론을 뒤이어 일어난 다른 나라들의 역할도 충분히 깨닫거나 인식하지 못한다.
 이 책의 역사 부문에서 우리는 당대의 하나님의 사람인 다니엘이 이방 세계의 천재 느부갓네살과 대면하여 왕에게 다니엘의 하나님, 곧 역사의 중재자를 알리고 협력할 기회를 얻게 한 것을 본다. 느부갓네살은 당대의 가장 위대한 나라의 군주이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고, 또한 정의와 공의에 대한 천부적인 판단력이 있었다. 사실상 그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특별한 역할을 위하여 권좌에 오른 “열국의 능한 자”(겔 31:11)요, 이방 세계의 지도적 인물이었다. 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제 내가 이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렘 27:6)라 하셨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붙잡혀 갔을 때, 그들이 엄하나 잔인하지 않은 손아래 붙들리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었다. 느부갓네살의 왕국에서의 다니엘의 사명은 왕의 의지를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목적을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역사의 극적인 이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두 인물을 등장시키셨다.
 다니엘의 첫 네 장들은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의 충성을 획득하시게 된 방편들을 진술하고 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왕궁에서 하늘의 원칙들과 정책들을 대표할 만한 한 적절한 인물을 필요로 하셨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개인적 대사로서 다니엘을 선택하여서 느부갓네살에게로 보내셨다. 포로인 다니엘로 하여금 느부갓네살의 호의를 사게 한 하나님의 방법, 느부갓네살로 먼저는 다니엘 그 다음에 다니엘의 하나님께 확신을 갖게 한 방법은 오늘날 세상에서 당신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예증한다.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사용하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원칙의 사람이요 믿을 수 있는 성품의 사람이요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을 생애의 첫째 가는 일로 삼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계시된 모든 뜻과 일치된 삶을 살기 위하여 “뜻을 정하”(단 1:8)였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바벨론 관리들의 “은혜와 긍휼을 얻게”(9절)하셨다. 이것은 제 2단계, 곧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의 신체적 탁월성을 증거하는 일을 위한 길을 준비하였다(12-15절). 그 다음에는 지적 우월성을 증거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저들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17절) 결과로서 저들은 저들의 경쟁자들보다 “십배나 나은 줄”(20절)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다니엘은 인격에 있어서나, 육체와 지능에 있어서 그의 동료들보다 월등하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느부갓네살의 신임과 존경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느부갓네살로 하여금 다니엘의 하나님을 대면하도록 준비시켰다. 일련의 극적인 경험들-2장의 꿈, 3장의 풀무불로부터의 인상적인 구출, 4장의 꿈-은 다니엘의 하나님의 권위와 권세와 지식을 왕이 만족하도록 증명하였다. 2장의 경험 가운데 나타난 인간의 지식의 열등성은 느부갓네살로 다니엘에게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요 모든 왕의 주재시요 모든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자시로다”고 시인하게 하였다(단 2:47). 그는 솔직하게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의 지혜보다 나을 뿐 아니라 자신의 신들의 추측된 지혜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시인하였다. 금 우상과 불타는 풀무불의 사건들은 하늘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을 구원”(단 3:28)하셨다는 사실을 느부갓네살로 시인하게 만들었다.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수 있는 다른 신이 없다는 사실로 보아, 그의 온 나라 안에서 아무나 히브리인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29절)지 않아야 한다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이제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하나님은 지혜로우실 뿐만 아니라 권세가 많으신 분이라는 것과 전지하실 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분임을 시인하였다. 세번째의 경험-그의 자만했던 지혜와 권세가 일시적으로 제거되었던 7년간-은 “지극히 높으신 자”(단 4:32)는 지혜와 권세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인간 나라를 다스리기 위하여 쓰신다는 사실을 왕에게 가르쳤다. 그분은 지혜와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느부갓네살의 이성이 되돌아 온 다음 그가 행한 최초의 행동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고 그가 오랫동안 했던 것같이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하나님이 “능히 낮추심”을 시인하게 된 사실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수년에 걸쳐 느부갓네살이 개인적으로 배운 교훈들은 그를 이어 바벨론의 왕위에 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였다. 바벨론의 마지막 왕인 벨사살은 그가 느부갓네살의 경험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22절), 하늘의 하나님을 공공연히 모독하였다(단 5:23). 하나님의 계획과 조화되게 일하는 대신, “바벨론은 … 교만하고 잔인한 압제자가 되었”고, 하늘의 원칙들을 거절함으로써 파멸을 자초하게 되었다. 그 나라는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하게 되었고(단 5:25-28),세상 통치권이 페르시아로 넘어가 버렸다.
 사자굴에서 다니엘을 구출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바벨론의 통치자들 앞에서 그리하셨던 것처럼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자들 앞에서 그의 권위와 권세를 증명하셨다(단 6:20-23). 메대 왕 다리우스의 조서는 “사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였고, “영원히 변치 않으실”것을 시인하였다(26절).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않는 규례”(8절)조차,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는”, “지극히 높으신 자”(단 4:32)의 명령 앞에 굴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고레스는 사자굴로부터 다니엘을 구출함에 있어서 나타난 하나님의 기적적 능력의 증거로 말미암아 좋은 인상을 받았다. 예루살렘과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그가 행할 역할을 말한 예언들 역시 그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의 마음은 깊이 감동되어 그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의 사명을 완수하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하여 다니엘서는 하나님의 목적을 마지막으로 성취할 나라들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과 권위가 행사될 원칙들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시려고 바벨론을 높이셨다. 바벨론은 시험기를 거쳤으나, 결국 실패하고 그 영광은 쇠하고 그 권력은 떠나고 그 지위는 다른 나라로 말미암아 점령되었다.
 다니엘서의 네 이상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를 세우기까지 다니엘 때로부터 지상에 있을 선악의 세력들 사이의 투쟁과 관련이 있다. 사단은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지상의 세력들을 사용하려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이상들은 그 세력들을 알려주고 있는데, 사단은 이 세력들을 통하여 맹활약하고 있다.
 첫째 이상(2장)은 주로 정치적 변화를 다루고 있고, 이 이상의 주요 목적은 느부갓네살에게 바벨론 통치자로서의 그의 역할을 나타내 주며, 그에게 “이 일후에 일어날 일”(29절)을 그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마치 첫째 이상을 보충하려는 듯, 둘째 이상(7장)은 첫 이상 중에 언급된 세력들의 통치 기간 동안의 하나님의 백성이 당할 경험들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성도들이 마침내 승리하게 될 것과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의 원수들 위에 임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14, 18, 26, 27절).
 셋째 이상(8-9장)은 둘째 이상을 보충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백성과 종교를 없이하려는 사단의 시도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넷째 이상(10-12장)은 앞의 이상들을 요약하면서, 그 앞의 어떤 이상들보다 더 세부적으로 망라하고 있다. 이것은 둘째와 셋째 이상의 주제를 확대시키고 있다. 이것의 강조의 촛점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과 “이 이상은 오랜 후의 일”(단 10:14)이라는 것, 그리고 “큰 전쟁에 관한 것”이다(1절). 11장 2-39절에 망라된 역사 이야기는 “말일”(단 10:14)과 “마지막 때”(단 11:40)에 일어날 사건들에까지 미친다.
 다니엘의 예언들은 계시록의 예언들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대체로 계시록은 다니엘과 동일한 범위를 다루고 있으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로서의 그리스도 교회의 역할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의 애매한 부분들은 종종 계시록과 비교해 봄으로써 분명해진다. 마지막 때와 관련된 예언, 곧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하라는 명령을 다니엘이 받은 이 예언의 부분은, 부지런한 연구를 통하여 말세에 그 의미에 대한 “지식”이 “증가”할 것이다(단 12:4). “말세와 관련된 다니엘의 예언의 이 부분”이 인봉되었다 할찌라도(단 12:4), 요한은 “때가 가까우므로” 그의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계 22:10)는 특별한 지시를 받았다. 그러므로 모호한 경향이 있는 다니엘서의 어떤 부분들을 보다 명확히 해석하기 위하여 우리는 어둠을 몰아내는 빛을 위하여 계시록을 주의깊이 연구하여야 한다.

 5. 개요
Ⅰ. 역사 부분 1:1-6:28
     1.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의 교육 1:1-21
       (1) 유다에서 바벨론까지의 제1차 포로 이송 1:1, 2
       (2) 왕의 봉사를 위하여 훈련 받도록 선택된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 1:3-7
       (3) 다니엘이 자기 법에 따라 살도록 허락을 얻음 1:8-16
       (4) 성공적 교육과 왕에게 봉사하도록 용납됨 1:17-21

     2. 큰 신상에 관한 느부갓네살의 꿈 2:1-49
       (1) 느부갓네살이 꿈으로 인하여 번민함 2:1-11
       (2) 박사에 대한 사형 집행 명령과 취소 명령 2:12-16
       (3) 다니엘이 지식을 받고 감사함 2:17-23
       (4) 다니엘이 왕에게 꿈을 전함 2:24-35
       (5) 다니엘이 꿈을 해석함 2:36-45
       (6)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시인함 2:46-49

     3. 다니엘의 친구들이 무서운 풀무불에서 구출됨 3:1-30
       (1) 느부갓네살이 신상을 세우고 그것에 경배하기를 요구함 3:1-7
       (2) 신실한 히브리 사람들이 경배를 거절함 3:8-18
       (3) 하나님의 개입으로 풀무불에서 건짐을 받음 3:19-25
       (4) 느부갓네살의 고백과 조서, 히브리사람들의 승진 3:26-30

     4. 느부갓네살의 두번째 꿈, 그의 겸비와 회복 4:1-37
       (1) 하나님의 지식과 능력에 대한 느부갓네살의 고백 4:1-9
       (2) 꿈에 대한 묘사 4:10-18
       (3) 다니엘의 꿈 해석 4:19-27
       (4) 느부갓네살의 쇠잔과 회복 4:28-36
       (5)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하나님을 칭송함 4:37

     5. 벨사살의 잔치와 나라의 상실 5:1-31
       (1) 벨사살이 성전 기명을 모독함 5:1-4
       (2) 분벽 위에 손으로 쓴 신비한 글씨 5:5-12
       (3) 다니엘의 해석 5:13-28
       (4) 다니엘이 영예를 얻음 바벨론의 멸망 5:29-31

     6. 사자굴에서 다니엘이 구출됨 16:1-28
       (1) 다니엘의 승진과 그의 동료들의 시기 6:1-5
       (2) 기도를 금지한 다리우스의 조서 6:6-9
       (3) 다니엘의 조서 위반과 그 정죄 6:10-17
       (4) 다니엘의 놓임과 고소자들의 처벌 6:18-24
       (5) 다니엘의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공인 6:25-28

Ⅱ. 예언 부분 7:1-12:13
     1. 다니엘의 두번째 예언적 기별 7:1-28
       (1) 네 짐승과 작은 뿔 7:1-8
       (2) 인자의 심판과 영원한 통치 7:9-14
       (3) 한 천사의 이상 해석 7:15-27
       (4) 다니엘이 받은 이상 7:28

     2. 다니엘의 세번째 예언적 기별 8:1-9:27
       (1) 수양과 뿔들 8:1-8
       (2) 작은 뿔과 그의 간교성 8:9-12
       (3) 성소 정결에 관한 시간적 예언 8:13, 14
       (4) 가브리엘이 이상의 첫부분을 해석함 8:15-26
       (5) 이상을 본 결과로 다니엘이 앓음 8:27
       (6) 다니엘이 회복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의 백성의 죄를 자복함 9:1-19
       (7) 가브리엘이 이상의 남은 부분을 해석함 9:20-27

     3. 다니엘의 네번째 예언적 기별 10:1-12:13
       (1) 다니엘의 금식 10:1-3
       (2) “한 사람”의 나타남과 다니엘에게 생긴 결과 10:4-10
       (3) 그 사람과 다니엘과의 예비적 대화 10:11-11:1
       (4) 장래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이상 11:2-12:3
       (5) 기사가 계속되는 동안 다니엘에게 개인적인 약속을 함 12: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