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표제
 초기의 헬라어 사본들에서 이 편지서의 표제는 단순히 “유다”이다. 흠정역에서 이 책의 이름에 덧붙여져 있는 “~의 일반 편지서”(The General Epistle of)란 말은 이 편지가 어떤 특정한 개인이나 교회 또는 일단의 교회들에게 부쳐진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모두)에게”(유 1) 부쳐진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편지서는 가끔 “일반 편지서” 또는“공동서신”(catholic epistle)이라고 불리운다.
여기서 “가톨릭”(catholic)이란 단어는 “일반적인”또는 “보편적인”이란 뜻이다.
 2. 저자
 이 편지서의 저자는 자신을 일컬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유 1)라고 한다. 그리고 비록 이 말이 한가지 이상의 방법으로 해석될 수도 있기는 하지만 밝혀진 대로의 신원을 의심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신약에는 유다라는 이름의 남자들이 여러 사람 언급되었다. 이들은 가룟 유다(막 3:19), “가룟이 아닌” 유다(요 14:22), 갈릴리의 유다(행 5:37), 다메섹의 유다(행 9:11), 바사바라 하는 유다(행 15:22), 그리고 야고보와 요셉과 시몬의 형제인 유다(막 6:3)등이다. 주님의 형제 야고보가 바로 예루살렘 총회에서 사회를 맡은 그 야고보(행 12:17, 15:13)이며, 어쩌면 또한 그후에 야고보서를 기록한 그 야고보(야고보서 서론의 ‘저자’ 참조)일 것이라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므로 유다서의 기자는 이 야고보의 형제였고, 따라서 주 예수의 형제였을 것임이 거의 확실하다. 이러한 관계로 인하여 그는 당시 교회의 두드러진 존재가 되었으며, 그의 편지서에 반영되어 있는 바와같은 높은 권위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가 이 편지서에서 주와의 인척 관계를 공개적으로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유 1)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으로 하여금 예수와의 관계를 남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그의 섬세한 조심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3. 역사적 배경
이 편지서는 그것이 기록되게 된 당시의 형편에 관하여 아무런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또 그것의 수신인이 될 회중에 대하여 아무런 단서를 포함하지 않고 있으나, 편지의 내용으로부터 어떤 정보를 어느 정도 연역(演繹)할 수가 있다. 분열시키는 요소들이 교회 안으로 잠입하여(유 4, 8) 많은 사람들을 복음의 순수성으로부터 이탈하게 하였던 것은 분명하다. 골로새서와 목회 서신들과 요한 계시록에 나타난 암시들은 영지주의적 이단들이 소 아시아의 교회들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음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유다서는 이러한 교회들에게 부쳐졌을 가능성이 있다.
 유다서의 자료 중의 많은 부분이 또한 베드로 후서에서도 나타나 있다는 사실에 의하여 하나의 흥미있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유 4-18; 벧후 2:1-3:3). 그 사상들이 같을 뿐만 아니라 많은 경우에 그 단어들까지 꼭같이 사용되었는데, 그 중 어떤 단어들은 매우 드물게 쓰이는 단어들이다. 유다가 베드로후서로부터 모방하여 사용한 것일까, 아니면 그들 둘이 오늘날 알려지지 않은 공통적인 자료로부터 표절(剽竊)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확정적으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대부분의 성경 학자들은 두 편지 중에서 유다서가 더 일찍 기록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베드로후서에 이미 잘 표현되어 있는 내용 이상으로 할 이야기가 거의 없었다면 도대체 그가 왜 편지를 쓰는지 그 까닭을 설명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 학자들은 베드로가 유다의 간략한 편지서에 표현된 사상들을 이용하고 또 거기에다 자료를 추가시킨 경위를 설명하기는 쉬운 일이라고 주장한다. 문헌 연구에 의하면, 두개의 유사한 작품이 있을 경우, 그 중에 보다 짧은 작품이 더 일찍이 기록된 것이 상례이다. 그렇지만 소수의 학자들은 베드로후서가 유다서 보다 선행하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그들이 제시한 이유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베드로후서 2:1은 거짓 교사들의 출현을 장래 일로 말하고 있는 반면에 유다서는 이러한 교사들이 이미 활약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유 4).
 (2) 유다는 회의주의자들이 나타날 것에 대한 경고를 과거에 있은 일로 말하는 반면에(유 17, 18), 베드로는 현재적인 경고를 발하고 있다(벧후 3:3).
 양측의 논증들이 모두 그 두 편지서 가운데-유다서냐, 베드로후서냐-어느 것이 더 일찍이 기록된 것인지를 결정하기에 충분한 증거를 갖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다서의 연대를 매기는 일은 불가능하다. 만약 유다서가 베드로후서보다 먼저 기록되었다면, 그것은 베드로의 사망한 해로 생각되는 A.D. 67년 이전에 저술되었음이 분명하고, 만약 유다서가 베드로후서보다 뒤에 기록되었다면, A.D. 70년과 85년 사이에 저술되었을 것이다.

 4. 주제
 유 3에 보면 저자는 신자들을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 확고히 세우기 위하여 정규적인 목회 서신을 기록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단적인 교사들이 일으킨 소란에 대한 소문을 들은 그는 성령의 인도하에 그의 원래의 계획을 바꾸어, 그의 독자들에게 신앙을 담대히 옹호하라는 권면을 급히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그와같은 일을 잘하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그는 기만자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그들이 신령한 권위를 반대하던 초기의 배도자들과 가진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그의 양무리가 이러한 기만자들을 멀리하고 그들의 주께 전념하라고 권면한다. 이 편지서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베드로후서를 자주 참조하고 그것과 비교하는 일이 필요하다.

 5. 개요
Ⅰ. 인사 1, 2

Ⅱ. 편지를 쓰는 계기 3, 4

Ⅲ. 뒤로 물러감에 대한 역사적 경고 5-7
     1. 이스라엘 민족 5
     2. 천사들 6
     3. 소돔과 고모라 7

Ⅳ. 죄인들의 불순한 태도 8-11

Ⅴ. 죄의 허무한 결과 12, 13

Ⅵ. 불경건한 자들의 암담한 운명 14-16
     1. 오래 전에 예언됨 14, 15
     2. 멸망당하기에 적합한 그들 16

Ⅶ. 위기가 예언됨 17-19

Ⅷ. 결론 20-25
     1. 권면 20-23
       (1)신자들에게 대한 개인적 적용 20, 21
       (2) 다른 사람들에 대한 책임 22, 23

     2. 송영 2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