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표제
 초기 교회는 이 편지서가 에베소에 있는 교회에게 보내졌다는 사실에 대하여 전적으로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알려진 모든 성경 사본들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에베소인들에게”라는 표제를 갖고 있다. 그런데 에베소 1:1에 있는 “에베소에 있는”이란 말이 가장 오래되고 권위있는 사본들 중의 두개인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 그리고 그보다도 훨씬 더 오래된 파피루스 사본인 체스터 베티 사본등에는 빠져 있다. 4세기에 바질(Basil)은 그의 기록 가운데 말하기를, “에베소에 있는”이란 말이 생략되어 있는 고대 사본들을 보았다고 했다. 오리겐(Origen)과 터툴리안(Tertullian)의 진술들도 이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제2세기의 사본들 중에는 문제된 이 말이 생략된 사본들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또한 바울이 한창 성공적으로 전도활동을 하면서 3년이란 세월을 에베소에서 보냈고 따라서 분명히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편지에 개인적인 인사와 안부가 없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오히려 이 편지서는 일반적인 교회에 적용될 수 있는 교리들을 다루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제시된 해결책으로서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견해가 있다.
 (1) 이 편지서는 라오디게아에 있는 교회에게 보내진 것이다(골 4:16).
 (2) 이 편지는 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보내진 회람용 편지였다.
 (3) 이 편지는 에베소인들에게 보내진 것이었다.
 둘째와 셋째의 견해를 합치면 아마도 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편지가 아시아 지방의 총독이 주재하는 수도였던 에베소의 교회에 보내져서, 그 편지로 하여금 그 지역내에 있던 다른 교회들에게도 회람되게 했을 가능성은 매우 짙은 것이다. 이와 같은 견해는 이 편지가 에베소에 있는 교회에게 보내진 것이라는 전통적인 생각과 또한 “에베소에 있는”이라는 말이 생략된 초기의 사본들이 존재하는 사실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여튼 이 편지는 의심할 여지없이 에베소에 있는 신자들에 의하여 읽혀졌으며, 또한 아시아 도(道)내에 있는 다른 신자들에 의해서도 읽혀졌었다.
 2. 저자
 에베소서의 바울 저자설은 지난 세기까지 전혀 의심된 적이 없었다. 지난 세기에 들어와서 많은 현대 비평적인 학자들은 이 편지가 바울의 편지가 아니거나 부분적으로 바울의 기록이 아니라는 주장을 내세우게 되었다. 그들은 이 편지가 골로새서의 장황한 반복이라고 말하고, 어떤 표현들은 필자가 에베소에 한번도 가 본 적이 없음을 암시해 준다고(엡 3:2, 3; 4:21) 주장한다. 그들은 또한 바울이 약 3년간 일한(행 20:31) 에베소에 있는 교회의 교인들에게 아무런 인사를 기록하지 않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편지는 문체와 감정과 목적에 있어서 바울의 것이 아니라고 선언하고, 나아가서는 감옥에 갇힌 사람이 그처럼 유쾌한 편지를 쓸 수 없다고 단정했다.
 가짜 문서들과 외경들이 진짜 성경에서 분리되던 초기로부터 에베소서는 신약 정경(正經) 가운데 포함돼 있었다. 그것이 그러한 위치에 이를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외적인 증거는 확실하고 충분하다. 이러한 사실은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 A.D. 90년경)에게 분명히 알려졌으며, 2세기 초에는 이그나티우스(Ignatius)와 폴리갑(Polycarp)에 의해서도 증명되었다.
 저자로서의 바울이란 이름은 무라토니 단편(Muratorian Fragment)에 언급되었고, 후기에 와서 이레내우스(Irenaeus, A.D. 185년경),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A.D. 190-195년경), 터툴리안(Tertullian, A.D. 207년경), 그리고 다른 많은 초기의 저술가들에 의하여 언급되었다. 그러므로 이 편지서의 저자가 바울임을 구태여 의심할 필요가 없다.

 3. 역사적 배경
 바울은 로마 시민으로서의 그의 권리를 행사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므로 마침내 로마에 보내졌다. 로마에 도착한 것은 아마도 A.D. 61년 봄이었을 것이며, 거기서 2년간 그는 죄수의 몸으로 머물렀다. 그러므로 이 편지가 기록된 시기는 A.D. 62년 쯤일 것이다.
 그는 죄수였으나 상당한 자유를 누렸던 것 같으며(엡 6:19; 골 4:3-11), 그로 말미암아 과거를 회고하면서 기록을 할만한 기회를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이러한 잇점을 활용하여 그는 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좀 더 교리적이고 실제적인 교훈들을 써 보내고자 마음 먹었다. 이 편지는 골로새서와 빌레몬서와 같은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두기고가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둘 다 전해 준 전달자였고, 그의 동행인인 오네시모는 빌레몬서의 전달자였기 때문이다(엡 6:21; 골 4:7-9; 몬 12). 그리고 에베소서는 사도의 첫번 투옥 기간 동안에 기록한 4통의 편지들 가운데 하나이며, 빌립보서도 또한 같은 기간 동안에 기록되었으며 4통중에 마지막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에베소서는 사도가 가이사랴에서 투옥되어 있는 동안 기록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어 왔으나 로마에서 기록되었다는 증거가 훨씬 더 강하다. 이 편지를 기록할 때 감옥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엡 3:1; 4:1). 그러나 로마에서의 그의 구금(拘禁) 형편이 그의 편지들을 기록하기에 훨씬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행 28:16, 20).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그는 속히 석방될 것을 희망하고 있었으나(몬 22), 가이사랴에 있는 동안에는 그러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는 암시가 전혀 없다. 바울은 오랫동안 로마를 방문하고 싶어했으며(롬 15:23, 24), 그곳에 이르렀을 때에 그는 골로새로 갈 계획을 세웠다(몬 22). 그렇지만 그가 가이사랴에서 골로새로 갈 의향을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이 편지를 기록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그가 주고자 하는 기별의 배경을 적절하게 형성하고 있다. 잔인무도한 폭군 네로가 당시 황제였고, 방종과 사치와 살상이 창궐하고 있었다. 일례(一例)를 들면, 로마의 원로원(元老院) 의원 세쿤두스(L. Pedanius Secundus)가 한 노예에 의해 살해되자 법적인 권리에 의하여 그의 가문에서 약 400명의 노예들이 보복으로 사형을 당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편지를 기록할 무렵(A.D. 62), 영국에서는 보아디케아(Boadicea) 또는 부티카(Boudicca)의 반란이 일어나서 로마측에서는 “7만명 이상”이 떼죽음을 당하고, 반역자들 측에서도 수천명이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와 같은 혼란의 와중에서도 사도는, 깊은 생각과 영감의 결과로서, 인간에게 평화와 연합을 회복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믿음에 관하여 그의 가장 우미(優美)한 언설(言說)중의 하나를 내놓았다. 이 편지서는 “신약의 알프스”(the Alps of the New Testament)라 불리워 왔으며, 바울이 일곱 교회에 보낸 아홉 통의 편지서들로 이루어지는 봉우리들의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다.

 4. 주제
 에베소서의 주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이다. 바울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아시아인들과 유럽인들, 노예들과 자유인들이 섞여서 구성된 교회(또는 교회들)에 편지를 쓰고 있었다. 이러한 각기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분열된 세계의 상징들로서, 조만간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으로 회복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여기에는 개인, 가족, 교회, 인종의 연합이 필요하였다. 각 신자의 생애에서 이뤄지는 개인적인 연합의 회복은 하나님의 우주의 연합을 확증한다. 이 책 전편을 통하여 연합이라는 주제는 문자적으로 명백히 나타나지 않았으나, 은연중에 뚜렷이 드러나 있다.
 사도는 그의 주제를 영적으로 매우 고조된 음조로써 선포하고 있다. 교리와 조직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인 교회 안에서의 연합을 적극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이 주된 귀절이긴 하나, 중심절을 골라내기는 매우 힘든다. 왜냐하면 어떤 형태로든지 기본적인 주제를 제시하지 않는 절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택하심, 용서, 애정, 가족관계-이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
 사도는 믿음에 대하여보다는 은혜에 대하여 더 많이 말한다. 먼저 쓴 편지들에서 그는 개인의 구원에 대한 관계를 강조하였으나, 여기서는 단체, 교회, 몸을 더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를 통하여”성취된 사물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있는 것에 관하여 말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리스도보다는 오히려 신자의 안에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바울은 그의 주제를 형식적인 논증이나 명제로서 발전시키지 않는다. 그는 계시에 의하여 그에게 이른 것을 단순히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 계시는 어떤 탁월한 지성이나 직관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인 그에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이었으며, 그 목적은 왕국의 본질적인 요소인 영적인 연합을 이룩하기 위함이었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가 16세기의 개신교 종교 개혁에 대하여 가졌던 관계는 바로 에베소서가 오늘날의 교회에 대하여 가지는 관계이나, 개인과 가족, 가족과 민족, 민족과 인종, 나아가서는 만인과 교회 그리고 하나님과의 제반 관계에 대하여 그리스도교는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이에 대하여 바울은, 교회를 통하여 그의 목적을 실천하시며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엡 1:10)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물의 중심이요 궁극적인 목표로 제시함으로써 대답한다.
 오늘날 개인의 자유를 유지하는 연합, 딱딱한 획일성으로 묶지 않는 연합에 대한 필요보다도 더욱 긴급한 필요는 없다. 모든 선한 사람들의 마음에 늘 붙어다니며 괴롭히는 이에 대하여 유일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하나의 제시가 사도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에베소서는 바울 편지서의 지성소(至聖所)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2:2에서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경험을 말하였다. 말하자면, 그는 이제 여기서 그 때의 보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한 대로 그는 하늘에 이끌려 올라갔었으며, 거기서 본 계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진리에 관한 계시였다. 그것은 창세전부터 감취어 온 신비(神秘)요, 오묘(奧妙)였다.
 이 책은 교회의 위대한 오묘를 보여준다.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신성한 몸의 지체들이다.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들어가서 고난을 당하실 하나의 몸을 예비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는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서 영광을 받으셔야 할 또 하나의 몸을 예비하셨다.
교회를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 “에클레시아”(ekklesia)는 “불러내어진 무리”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위하여 한 백성을 취해 내신다(행 15:14). 교회는 하나의 유기체요, 그리스도의 몸이며, 각 신자는 그의 몸의 지체요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이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0-22).

 5. 개요
Ⅰ. 인사 1:1, 2

Ⅱ. 교리적인 부분 1:3, 21
     1. 믿는 자의 축복 1:3-14
       (1) 찬송 1:3-10
       (2) 믿는 자들은 구원의 인침을 받았음 1:11-14

     2. 교회를 위한 기도 1:15-23

     3.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임 2:1-22
       (1) 하나님의 권능에 의한 재창조 2:1-10
       (2) 만민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 2:11-22

     4. 비밀의 계시 3:1-21
       (1) 비밀이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알려짐 3:1-6
       (2) 하나님의 지혜가 교회를 통해 나타남 3:7-13
       (3) 믿는 자를 위한 기도와 송영 3:14-21

Ⅲ. 실제적인 부분 4:1-6:20
     1. 성령의 선물을 통한 연합 4:1-16
       (1) 생명의 연합을 위한 호소 4:1-6
       (2) 선물의 본질과 목적 4:7-16

     2. 생활의 개혁 4:17-5:21
       (1) 영적인 암흑과 영적인 삶이 대조됨 4:17-24
       (2) 개혁된 생활의 질(質) 4:25-32
       (3) 생애의 순결을 향한 권고 5:1-14
       (4) 어리석음과 지혜 5:15-21

     3. 가정 관계에서의 의무 5:22-6:9
       (1) 남편과 아내 5:22-33
       (2) 자녀와 부모 6:1-4
       (3) 종과 상전 6:5-9

     4. 그리스도인의 갑옷 6:10-20

Ⅳ. 결론과 축도 6:2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