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표제
 가장 오래된 헬라어 사본들에 붙은 이 책의 표제는 단순히 “히브리인들에게”이다. 이 책은 주로 성소와 성소 봉사의 중요성과 의미에 대하여 논하고 있는바,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제에 대한 통찰은 초기의 히브리인 또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특별히 중요한 것이었으므로 이 표제는 특별히 적합한 표제임에 틀림없다.
 2. 저자
 히브리서의 저자는 초기부터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히브리서를 바울의 저작으로 인정하는 한편으로, 다른 사람들은 그 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하고 나섰다. 초기 교부들 중의 한사람인 오리겐(Origen)은 이 책의 저자에 대하여 오랫동안 연구를 한 끝에 마침내 그는 “누가 이 편지서를 기록했는지는 참으로 하나님만이 아신다”라는 선언으로서 그의 연구를 끝내었다. 다른 교부들은 이 책의 저자가 바나바, 아볼로, 클레멘트, 또는 누가일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와같이 히브리서의 저자가 불확실하게 여겨진 사실은 로마 제국의 서부에 살고 있던 많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이 편지서를 정경(正經)으로 받아들이기를 꺼려한 주요 요인이 되었다. 사실에 있어서 4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히브리서는 로마 제국의 서부에서 일반적으로 받아 들여지게 되었다. 그 이후로 여러 세기 동안 히브리서 저자에 관한 논란은 중단되었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책을 바울의 저작으로 받아들였다. 이 견해는 일반적으로 지지되어 비교적 가까운 현대까지 이르러 왔으나, 마침내 그 문제는 다시금 학자들간에 의문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였다. 1885년까지만 해도 개역 성경에서는 히브리서를 바울의 편지로 보았으나, 현재는 이러한 견해를 견지하고 있는 비평가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바울이 히브리서를 기록했다는 견해를 반대하는 주장들은 주로 이 책의 문체와 내용에서 그 증거들을 들고 있다. 한 저자의 어휘와 문체가 주제에 따라 달라지는 일은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이러한 변화들은 그 저자가 기록하는 상이한 주제의 특징을 이루는 전문적인 용어들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보다 일반적인 그의 어휘들과 특별히 거의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단어들, 말하자면 전치사, 부사, 및 특히 연결어 등은 전문적인 용어들보다도 더 저자의 특성을 이루는 것이라고 대부분의 학자들은 생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바울의 편지들과 비교할 때 히브리서는 그것의 저자가 문장의 절들을 연결시키는 작은 연결어들에 있어서 특별히 두드러진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뚜렷한 차이점은 구약 성경을 인용하는 방법이다. 먼저 받아들여진 편지서들은 구약을 인용할 때에 일련의 다소 표준적인 귀절들을 사용하고 있는 반면에, 히브리서는 다른 유(類)의 귀절들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이 편지서들은 사도 바울의 구약 자료들을 사용함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자유스러워, 때로는 70인역에서 인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히브리어에서 자기가 스스로 번역하여 쓰기도 하며, 또 때로는 정확하지 않는 애매한 인용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히브리서에서의 구약 인용구들은 사실상 언제나 70인역으로부터 자구적(字句的)으로 옮겨진 것들이다.
 좀 더 넓은 견지에서 볼 때, 히브리서의 일반적인 문체는 바울의 저작으로 되어 있는 다른 어떤 편지서들의 문체와도 현저하게 다른 것이 사실이다. 후자의 문체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저자의 사상들을 표현하는 비등(沸騰)하고 열렬한 귀절들로써 현저하게 특징지워져 있기 때문에 매끈하고 우아한 문체가 손상되어 있다. 반면에 히브리서는 철저하게 정돈된 논증을 제시하고, 따라서 신약의 그 어떤 책보다도 높은 수사학적(修辭學的)수준을 견지하고 있다. 이와같은 문체상의 차이점은 코이네 헬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던 초기 교회의 저술가들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A.D. 215? 사망)는 바울이 처음에 히브리서를 히브리어로 기록하였고, 누가가 그것을 헬라어로 번역하였다고 말하였다. 그와같은 설명은, 히브리서가 다른 언어에서 번역되어질 수 없는 헬라어 단어들로써 말놀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 의하여 타당하지 않는 것으로 비록 판정이 되긴 하였으나, 클레멘트의 진술은 그것이 히브리서의 헬라어가 바울의 헬라어 같지는 않다는 인정을 함축하고 있는 점에 있어서 의미있는 진술이다.
 초기 교회의 뛰어난 학자들 중의 하나인 오리겐(A.D. 254? 사망)도 마찬가지로 히브리서의 문체와 바울의 문체를 조화시키는 일에 어려움을 인정하였다. 그가 내린 해결책은 이러하였다. “그 사상은 바울의 사상이다. 그러나 그 문체와 작문은 그 사도의 가르침들을 회상하여, 말하자면 그가 한 말에다 약간의 주석을 붙인 다른 사람의 것이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바울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하나의 추정 근거는 3세기의 것인 체스터 베티 성경 파피루스들의 발견으로 비교적 근래에 나타나게 되었다. 바울 편지서들로써 구성된 사본 가운데서 히브리서가 로마서와 고린도전서 사이에서 발견된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이 곧 히브리서의 바울 저자설을 확증하지는 못한다하더라도, 그것은 교회 역사의 매우 초기에 히브리서가 바울의 저작의 일부로 포함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던 사람들이 존재했던 사실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히브리서의 바울 저자설을 반대하는 유력한 논증들이 제시되긴 하였으나, 그와같은 논증들이라 할지라도 바울이 이 책의 저자라고 생각하는 전통적인 견해를 뒤집어 엎기에는 불충분하다. 이미 알려진 바울의 편지서들과 비교할 때, 히브리서의 음조와 문체에서 발견되는 차이점의 대부분은, 그 다른 편지서들이 특정한 교회 집단들, 또는 개인들에게 특정한 문제 해결을 위하여 보내졌다는 사실을 고려함으로써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같은 기초 위에서도 설명될 수 없는 문체상의 어떤 차이점들이 혹시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러한 차이점들은 바울이 하나의 특별한 주제인 그리스도의 제사장 봉사에 관하여 설교들을 했다는 점과, 그 설교들은 속기로써 기록되었다는 점 등의 추측된 사실에 의하여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기록이 되는 문서들에 있어서 흔히 그런 것처럼, 전사(轉寫)된 문서의 최종적인 문체는 그 전사자의 색채를 강하게 띠기 마련이다. 바울이 그의 설교들을 편집하고 교정할 기회를 가질 수가 없었으리라는 점은 우리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쉴새없이 여행하였으며, 이윽고 그의 여행은 순교를 당함으로써 종지부를 찍었다.
 히브리서가 예루살렘 함락 이전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동의를 얻고 있다. 그런데 A.D. 70 이전의 몇 해 동안에는 교회 지도자들의 수효가 매우 적었다. 그렇다면 그 지도자들 중에 과연 누가 이 히브리서에 제시된 바와 같은 심오한 논증을 진술하였을까? 십중팔구 그 인물은 바울이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와같은 초기의 교회사에 알려지지 않은 어떤 그리스도인이라고 간단히 말해 버리는 것은 하나의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킨다. 히브리서와 같은 위대한 저작을 내놓을 만한 신학적 통찰력과 논리적 설득력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 교회 지도자들의 수효는 그토록 적은 반면에 교회의 일군들의 기록은 그토록 풍성하던 그 시기에 미지, 또는 무명의 저자로 전해진 것은 어찌된 일인가?

 3. 역사적 배경
 사도 교회에 따른 어떤 문제보다도 더 심각한 분열을 초래한 문제는 필경 의문률(또는 예식법)과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지키는 문제였다. 예루살렘 총회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예식법 준수의 의무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팔레스타인에 살던 유대인 그리스도인 대집단은 아직도 그 동일한 자유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유대인이기 때문에 그들 자신이 그 법을 지켜야 한다고 의심 할 여지없이 믿고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문률의 준수 문제가 완전히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되었다. 하나의 커다란 분파가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이미 폐기된 신앙 생활의 까다로운 제도를 여전히 따르고 있었으므로, 교회 내에는 자연히 불미스러운 긴장이 감돌게 되었다.
 바울과 그의 측근자들은 모세의 율법들과 의식들을 올바로 평가하고 구속의 경륜 가운데서 그것들이 차지하는 정당한 위치에 그것들을 놓을 수 있기에 필요한 통찰력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바울은 그것들의 일시적인 성질과 그것들이 이미 폐지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골 2:16, 17). 예루살렘에 그 중심을 두고 있던 유대인의 그리스도 교회는 미구에 닥쳐올 재난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절기들을 지켰고, 예나 다름없이 희생제물들을 드렸으며, 의문률에 대하여 여전히 열심이었다(행 15장).
 그들은 하늘 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사업에 관해서는 매우 희박한 개념밖에 갖고 있지 않았으며, 그분의 봉사에 대하여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고, 갈바리산 위의 위대한 희생제물에 비춰볼 때 그들 자신의 제물들은 아무런 가치도 쓸모도 없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율법에 열심있는”(행 21:20) 이 수 많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파괴될 때 일대 위기를 맞이할 것이었다. 이 일은 히브리서가 기록된 직후에 일어났음이 분명하다.
 이 때야말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의 실재들에 대하여 눈을 뜨기에 적절한 기회였다. 그들의 성전이 파괴되면, 그들은 결코 파괴될 수 없는 확실하고도 견고한 어떤 것에 믿음의 닻을 드리워야 할 것이었다. 만일 그들이 마음으로 하늘의 대제사장과 성소를 주목하고 염소와 송아지보다 더 좋은 희생제물을 바라볼 수 있게 되면, 단순한 지상의 건물이 없어질지라도 그들은 낙망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만일 그들에게 그와같은 소망이 없거나, 하늘의 성소에 대한 비젼(vision)이 없으면, 그들이 의지하고 있던 성전이 파괴되는 것을 볼 때 당황하고 난처한 지경에 빠질 것이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그들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장차 있을 로마와의 전쟁 동안에 예루살렘의 신자들이 흩어져서 살게 될 모든 지역의 이방인 교회들을 위해서도 이와같은 것들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히브리서가 나타난 것은 이와같은 위기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그 당시에 필요되던 바로 그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었다. 말하자면 이 책은 성소 문제,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피(히 12:24),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남겨놓은 안식(히 4:9),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는 복된 소망(히 6:19)등에 관하여 밝은 빛을 비추고 있다.

 4. 주제
 히브리서는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의 당신의 택한 백성에게 구속의 경륜을 제시해 주신 방법으로서의 상징들과 십자가 이후로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하시는 봉사의 실재를 비교하고 대조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모형적 제도 아래서 고대 이스라엘이 겪은 체험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훈과 경고로서 제시되어 있다. 모형적 제도와 그 제도 아래서 겪은 이스라엘의 체험들을 통하여, 바울은 하늘에서의 그리스도의 봉사에 대한 더욱 완전한 이해와 인식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5. 개요
Ⅰ. 예수 그리스도의 최고의 지위와 권위 1:1-2:18
     1. 아버지와 동등하심 1:1-3

     2. 천사들보다 우월하심 1:4-14

     3.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구원을 받아들이는 일의 중요성 2:1-4

     4.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목적 2:5-18
       (1) 고양(高揚)된 인류의 운명 2:5-8
       (2) 성육신의 결과로 가능해진 구원 2:9-18

Ⅱ.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는 “안식” 3:1-4:16
     1. 우리의 사도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신실하심 3:1-6

     2.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일에 실패한 고대 이스라엘 3:7-19
       (1)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라는 호소 3:7-15
       (2) 이스라엘의 실패의 원인이 된 불신 3:16-19

     3.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라는 호소 4:1-16
       (1) “안식”의 약속이 아직도 효력이 있다는 증거 4:1-11
       (2) 그리스도께 나아감으로 이 “안식”을 찾으라는 권면 4:12-16

Ⅲ.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탁월한 신분 5:1-8:13
     1. 아버지에 의하여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신 그리스도 5:1-10
       (1) 대제사장의 기능 5:1-3
       (2) 그리스도의 임명 5:4-6
       (3) 대제사장으로 봉사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준비 5:7-10

     2.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영접하라는 권면 5:11-6:20
       (1) 많은 사람들이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역할을 더디 이해함 5:11-14
       (2) 독자들의 이해력이 자라날 것이라는 확신 6:1-12
       (3) 그리스도교의 소망의 확실성 6:13-20

     3.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 7:1-28
       (1) 멜기세덱의 탁월한 위치 7:1-4
       (2) 아론의 제사장 직분보다 더 우선하고 우월한 멜기세덱의 제사장 직분 7:5-11
       (3) 아론의 제사장 직분은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으로 대치됨 7:12-24
       (4)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의 효능과 영원성 7:25-28

     4. 하늘 성소의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 8:1-5

     5. 그리스도께서 그 아래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시는 새 언약 8:6-13

Ⅳ.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봉사 9:1-10:22
     1. 지상 성소와 그 봉사에 대한 묘사 9:1-7

     2. 지상 성소의 모형적 의미 9:8-14

     3. 새 언약의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 9:15-28
       (1) 피에 의한 옛 언약의 비준 및 그 성소의 봉헌 9:15-22
       (2) 그리스도의 피가 새 언약을 효과있게 함 9:23-28

     4. 그리스도의 희생은 짐승의 희생보다 우월함 10:1-22
       (1) 짐승의 희생의 무효함 10:1-4
       (2) 그리스도의 희생의 효능과 영원성 10:5-18
       (3) 그리스도의 제사장 봉사를 받아들이라는 호소 10:19-22

Ⅴ. 성실과 경건한 생활에 대한 호소 10:23-13:17
     1. 심판날과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하여 10:23-29

     2. 옛날 노독들의 충실한 모본에 비추어서 11:1-12:2

     3. 시련과 박해에도 개의치 않고 12:3-13

     4. 시험에도 개의치 않고 12:14-29

     5. 일상 생활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면서 13:1-17

Ⅵ. 사도로서의 축도와 개인적 인사 13:1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