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표제
 이 책은 개인적인 서간(書簡)이므로, 원래는 아무런 표제를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헬라어 사본들은 이 책에 단순히 “빌레몬에게”라는 표제를 붙여 두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바울의 편지서들을 함께 모아서 하나의 전집으로 하게 된 어떤 이름모를 그리스도인이 덧붙인 제목일 것이다.

 2. 저자
 이 편지서는 바울을 저자라고 명확하게 주장하고 있다(몬 1). 이 편지가 단지 개인적인 사정만을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과 어떤 새로운 교훈을 내세우려는 의도가 없다는 사실은 그것이 진짜임을 나타내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오늘날 학자들은 이 간략한 편지서를 확정적으로 바울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에 사실상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3. 역사적 배경
 빌레몬서는 바울이 로마에서 투옥되어 있던 동안에 골로새에 살고 있던 빌레몬이라는 그리스도인에게 보낸 개인적인 서간이다. 이 편지는 골로새와 함께 바울의 친구 두기고에 의하여 동시에 보내졌으며 이것을 기록하게 된 동기는 바울이 회개시킨 사람들 중의 하나가 생사의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골로새의 그리스도인 빌레몬의 종 오네시모는 노예 생활에 불만을 품고, 그의 주인의 돈과 소유물 얼마를 훔쳐 가지고는 도망하였다(몬 18). 마침내 그는 많은 노예들이 하던 것처럼 로마로 가서, 그 도시의 무수한 인파 속에 자신을 숨기고자 하였다. 로마에 있는 동안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났다. 아마도 그는 궁핍해졌던 것 같고 그가 주인의 집에 있을 때에 자주 목격한 바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동정을 얻고자 그들을 찾아가려는 충동을 느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로마에 있는 동안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양심의 가책을 깊이 느낀 나머지 전에 빌레몬의 집에 손님으로 온 적이 있는 바울에게서 영적인 지도를 얻고자 그를 찾아 갔을 것이다.
 그의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오네시모는 따뜻한 영접을 받았고 연로한 사도를 헌신적으로 봉사하도록 격려를 받았다. 그의 양심과 의지는 옛날의 주인에게로 다시 한번 돌아감으로써 지난날의 잘못들을 보상하도록 다시 말해서 의무의 길을 따르도록 그를 고무하였다. 오네시모는 바울의 편지에 대하여 그의 주인이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기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바울의 사자인 두기고와 더불어 길을 출발하였다. 그가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빌레몬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그처럼 부드러운 중보의 탄원을 외면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편지의 정중하고도 은근한 표현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사랑받는 형제”(몬 16)로 용납해 줄 것을 믿는 바울의 신념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바울이 믿었던 대로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바울 당시의 로마 제국에 존재하던 노예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빌레몬서를 온전히 해독할 수 없다. 노예들은 사회 구조의 공인된 한 부분이었으며, 그들의 주인의 가족의 구성원으로 간주되었다. B.C. 146년으로부터 A.D. 235년 사이에 노예와 자유인의 인구 비율은 3대1이었다고 전해진다. 플리니우스는 말하기를 아우구스투스시대에 캐실리우스라는 이름의 자유인은 4116명의 노예들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처럼 많은 부분의 인구를 노예로 데리고 있던 탓으로 지배 계급의 사람들은 그들의 도주와 반란을 방지하기 위한 가혹한 법률들을 제정해야 한다고 느꼈다. 로마의 법률에 의하면 주인은 자기의 노예들에 대하여 생사에 관한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노예가 돈을 벌어서 저축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는 하였으나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주인의 것이었다. 법적으로 노예들은 결혼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으나 그들은 결혼을 하도록 권장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서 태어나는 자녀들이 주인의 재산을 증가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노예는 그의 주인의 마음대로 그의 배우자와 자녀들로부터 헤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노예들은 재판을 해달라고 국가의 사법 기관에 호소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도망한 노예는 아무곳에서도 피신처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고문을 받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코 증인으로 나설 수가 없었으며 대반역죄와 음란죄와 근친상간과 종교적으로 성물을 범하는 일 등과 같은 큰 범죄들을 제외하고는 어떤 죄에 대해서도 그의 주인을 고소할 수가 없었다. 만약 주인이 어떤 범죄로 소송되었을 경우, 그는 자기 대신에 노예가 고문을 당하면서 심문을 받을 수가 있었다. 도주에 대한 형벌은 자주 사형이었고 때로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거나 양어장에 던져져서 칠성장어 떼의 밥이 되기도 하였다.
 어떤 상전들은 보다 더 이해심이 많기도 하였으며, 어떤 노예들에게 맡겨진 어떤 과업들은 상대적으로 즐거운 일도 있었으며 어떤 일들은 고도의 지능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때로는 교사들과 의사들, 심지어는 철학자들까지도 군사적 정복의 결과로 노예가 되는 일이 있었다. 많은 노예들이 그들의 주인들을 위하여 상점이나 공장을 경영하였고 재산을 관리하였다. 그러나 노예들은 그들의 주인의 뜻이라면 그것이 지혜로운 뜻이든 변덕스런 뜻이든 간에 언제나 전적으로 복종해야만 했다. 노예 제도는 비겁, 아첨, 부정직, 뇌물 증여, 부도덕, 및 그 밖의 다른 악덕들을 가르쳐 주는 도장이었다. 왜냐하면 노예는 주인의 요구가 아무리 악한 것일지라도 그것을 무엇보다도 먼저 충족시켜 주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그들의 노예들에게 자유에 대한 모든 희망을 완전히 부인하지는 않았다. 법률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들의 석방 또는 해방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가장 흔히 하던 방법은, 주인이 그의 노예를 관리 앞으로 데리고 와서는 그가 보는 데서 그 노예를 돌려 세운 후, 그 오랫동안 갈망해 오던 “자유롭게 되라”(liber esto)는 말을 선언하고는 막대기로 그를 때리는 방법이었다. 또한 노예 해방은 그 종을 남의 자녀들을 맡아보는 후견인으로 삼는다는 문서를 써 주거나 그 종의 머리에 “필레우스”(pileus)라고 일컫는 자유의 두건을 씌워 주는 것과 같은 방법을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노예 해방이 개인적 소유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법률에 의해서 선언되지 않는 한, 그 노예는 그의 주인의 예속자로 계속 남아 있어야 했으며, 해방이 될 때에 그에게 부과되는 어떤 의무들이라도 이행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로마 제국에서는 자유인이 되면 영향력있는 지위와 심지어는 통치자의 지위까지 오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만약 자유인이 된 사람들이 상속자가 없이 죽을 경우에는, 그들의 재산은 그들의 옛날의 주인에게로 복귀되었다. 그와같은 일의 실례는 유대의 총독 벨릭스의 경우였다.

 4. 주제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재치를 담은 이 조그마한 주옥같은 편지서는 성경 가운데서 참으로 독특한 책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순전히 그 당시의 가정적인 문제, 곧 그리스도인 주인에게서 도망을 갔었지만 회개한 노예 사이의 관계를 취급한 개인적인 서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회 전반을 위한 교훈을 진술하거나 특별한 권면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레몬서가 우리의 성경 가운데 포함된 이유는 그 편지를 연구하고 그것과 바울의 다른 편지서들과의 관계를 연구함으로써 명백히 드러나게 된다. 그것은 바울과 그의 양무리 중의 개인 신자들 사이에 있었을 것으로 믿어지는 상당한 서신 거래 가운데서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단편이다. 그 편지서는 그리스도교의 몇가지 기본 원칙들을 일상 생활에 적용시키고 있다.

 5. 개요
Ⅰ. 인사 1-3

Ⅱ. 빌레몬에 대한 칭찬 4-7
     1. 그의 그리스도인적 사랑과 성실이 교인들을 격려함 4-6
     2. 자신이 개종시킨 사람들의 영적인 성취에 대하여 바울이 감사함 7

Ⅲ. 오네시모를 전심으로 영접해 달라는 호소 8-20
     1. 재치있는 간청 8-10
     2. 오네시모의 유용성 11-13
     3. 바울과 빌레몬의 상호 존경 14
     4. 섭리의 인정 15, 16
     5. 바울의 충분한 중재 역할 17-19상단
     6. 빌레몬의 이중 부채 19하단, 20

Ⅳ.결론과 축도 21-25
     1. 거듭된 당부 21, 22
     2. 문안과 축도 2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