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표제
 거의 예외없이 넷째 복음서는 최초의 기독교 세기로부터 요한에 의한 복음서 곧 요한복음으로 알려져 왔다. “요한”이란 이름은 히브리어 이름 “요하난”(Yochanan) 또는 “여호하난”(Yehochan- an)에서 음역된 것으로서 그 의미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이다. 성경에는 이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매우 많다(왕하 25:23; 대상 3:15; 26:3; 대하 17:15; 10:6, 28; 느 12:13; 렘 40:8; 눅 1:3; 요 1:42; 행 13:5, 13).
 2. 저자
 이 복음서는 저자가 자기만 아는 어떤 이유들로 인하여 직접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밝히기를 짐짓 피했기 때문에 무명인의 작품으로 되어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맨 먼저 예수를 따른 두 제자 중의 한사람(요 1:37)인 것을 명백히 나타내지 않고, 아주 겸손하게 “그 제자”(요 21:23),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20절),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24절)등으로 간단히 언급하고 있다. 아주 초기부터 기독교 전통은 사랑받는 자 요한을 그의 이름이 붙어있는 복음서의 자료의 출처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기자로 지목하여 왔다.
 요한은 열 두 제자들 가운데서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요 21:20)로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주께 대한 개인적인 충성심과 열렬한 헌신의 불꽃이 그의 동료들의 마음 속에서보다도 더 순수하고 더 밝게 불타오르고 있었던 것같다. 그와 예수의 사이에는 다른 사람들이 알던 것보다 더 친밀한 우정이 계발되고 있었다. 아버지를 완전히 아는 유일한 자로서 그리스도만이 아버지 하나님을 완전히 계시할 수 있었듯이, 요한은 그리스도와 가장 친근한 제자로서 그의 복음서 가운데에 그리스도에 관한 장엄한 진리들을 가장 탁월하게 제시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요한과 그의 형 야고보가 그리스도에게 처음으로 왔을 때, 그들은 “우뢰의 아들들”이란 별명을 받았다. 그들은 오만하고, 자신에 찼고, 야망과 혈기가 충만했으며, 피해를 입을 때에는 격분에 떨었다. 그들은 종종 복수심에 불탔으며, 기회가 있을 때에는 꼭 그것을 갚았다. 이러한 것들은 참으로 심각한 결점들이었다. 그리고 요한이 특별히 쾌활하고 고상한 성격 때문에 제자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예수는 이러한 꺼림칙한 외적인 결점들 밑에 숨겨진 열성있고 진지하고 사랑스런 마음이 있음을 간파하셨다. 으뜸가는 교사이신 주께서는 처음에는 어딘가 우둔해 보이는 생도에게 활동적인 사도의 모습을 내다보셨고, 요한은 멍에를 스스로 지고 그를 따랐다. 그 결과로 그의 전 생애와 성품은 변화되었다.
 요한이 예수에게서 그 전체가 온통 사랑스러운 분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그와 같아지고 싶은 지고(至高)한 열망을 느꼈다. 그는 다른 제자들보다도 더 어렸고, 확고한 신뢰와 젊은이다운 영웅 숭배심으로 예수께 그의 마음을 열었다. 그는 언제나 주님의 측근에 머물렀고, 그분의 완전한 생애가 풍기는 감화에 대하여 전적으로 자신을 맡기고 있었다. 그 결과 그는 다른 어떤 제자들보다도 더 완전하게 그것을 반영하게 되었다. 그는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가장 교육을 잘 받아들이는 정신을 소유하고 있었다. 밝은 의의 태양의 조명 하에서, 그의 결점들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그는 자신을 겸비하게 하였고,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서 나타나는 암시적인 견책과 그의 충고와 책망의 말 가운데서 나타나는 직접적인 견책을 잘 받아들였다. 그가 그의 생애를 구주의 감화 아래 내맡겼을 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그를 변화시켰다.
 요한이 유년 시절을 보낸 지방은 갈릴리 호수의 북쪽 해안에 있는 어촌 벳새다였다. 그의 부친은 당시에 상당한 재산과 지위를 가진 사람이었던 것같고, 그의 모친은 예수와 열 두 제자들이 갈릴리 지방과 팔레스틴의 다른 지역에서 선교 여행을 할 때에 그들의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고 봉사하던 일단의 헌신한 여성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요한은 예수께서 가장 가까운 동료로 삼으시고 그의 생애에 사명을 완수함에 있어서 가장 깊은 체험을 함께 나눈 세 명의 내부 서클(circle) 중의 한 사람이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가 그의 모친을 부탁한 것도 바로 요한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여러 해가 지난 뒤에 그의 모친은 요한을 따라 에베소에 갔고, 요한은 거기서 그 지역의 교회들을 돌보았다고 한다. 요한은 부활의 아침에 제일 먼저 무덤에 간 제자였으며, 주께서 부활하셨다는 영광스런 진리를 확신한 최초의 제자였다(요 20:8). 이 때로부터 그는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셔서, 그 후에 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구주를 선포하는 일에 그의 모든 것을 바쳤으며, “생명의 말씀”(요일 1:1, 2)에 관하여 그가 직접 듣고 보고 체험한 것을 증거하는 일에 그의 여생을 다 바쳤다.

 3. 역사적 배경
 공관복음(共觀福音)이 기록된 지 한 세대가 지나고 복음이 꽤 널리 전파되었을 때, 한편으로 바울과 베드로와 같은 전도의 명장들이 모두 순교의 이슬로 사라진 뒤 그리고 사도들이 타계하고 난 뒤, 오직 홀로 살아 남은 요한만이 새로운 교회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었다.
 예루살렘이 A.D. 70년에 티투스의 휘하의 로마 군대에 의하여 멸망된 뒤 그리고 이미 거짓 교사들이 일어나서 그리스도에 관한 거짓 교리들을 가르치고 그의 신성을 부인하고 성육신의 진리를 부정하는 풍조가 세력을 얻으려하는 중대한 시점에 이르러, 요한은 그리스도의 신성의 직접적인 목격자로서, 그리고 최후로 남은 증인으로서 그분의 영원한 선재(先在)와 신성(神性)을 증거할 필요를 절감하게 된다.
간략한 역사적 배경을 위해서는 마태복음 서론‘역사적 배경’을 참조하라.

 4. 주제
 요한복음이 기록되던 1세기 말에 세가지의 위험이 그리스도 교회의 생명과 순결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것들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경건의 쇠퇴였고, 그 다음은 이교, 특히 성육신의 실재를 부인하고 종교적 방탕을 초래한 영지주의(Gnosticism)였고, 그리고 세번째 위험은 박해였다. 공관복음이 기록된 지 30여 년이 지났을 때, 열 두 제자들 중 홀로 남은 노년의 요한은 교회를 파괴하고자 위협하는 악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시한번 제시하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의 참된 신성과 참된 인성, 완전한 생애, 대속의 죽음, 영광스런 부활, 약속된 재림 등에 관한 위대한 복음의 진리들의 실재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구주에 관한 생생한 모습을 재현함이 필요하게 되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오직 구주의 생애와 봉사가 인간의 이성과 감성 속에 하나의 살아있는 실재로서 간직될 때, 그의 은혜에 변화시키는 능력이 인간의 생활 속에 효력을 갖게 된다. 요한은 이러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그는 솔직히 말해서 말을 더 많이 할 수도 있었으나 복음의 위대한 기본 진리들을 확증하기에 가장 합당한 것들만을 골라서 보도하였다(요 20:30).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을 확신시킨 그것은 곧 다른 사람들도 확신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요일 1:1-3).
 요한복음은 한때 영지주의의 경향을 띠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기독교 영지주의 사상은 본질적으로 선과 악을 각각 정신과 물질로 동일시하여야 한다는 개념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하늘의 빛의 섬광이 그 영혼 속에 거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물질의 세상에서 포로가 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구원이란 물질의 영역에서 도피하여 정신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방법을 아는 지식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영지주의는 눈에 보이는 인간 형태란 하나의 허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의 진정한 성육신을 부인하였다. 신적 그리스도가 예수의 침례시에 인간 예수에게 들어왔다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떠나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의심할 바 없이 요한은 예수의 생애를 서술함으로써 부분적으로나마 이러한 죄와 구원에 대한 그릇된 개념들을 대적하고자 하였다. 이 일이 있기 30여 년전에,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게 당시로서는 새롭고도 교묘한 영지주의 종파에 숨어있던 위험에 대해 기록한 바 있다(골 2:8; 행 20:29, 30). 이제 요한은 교회의 생명 그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활발하고 점점 인기를 끌고 있는 철학을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영감된 훌륭한 판단력으로 요한은 영지주의를 정면으로 공격하기를 피하고 진리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선언하는데에 주력하고 있다. 그가 의도적으로 영지주의자들의 어휘들 가운데 주요 용어인 “지식”(gnosis),“믿음”(pistis),“지혜”(sophia)등과 같은 헬라어 단어들의 사용을 피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오해할 여지가 없는 언어로써 그리스도의 진정한 신성과 성육신의 실재성을 진술함으로써 시작한다. 그가 사건들을 선택할 때에, 그리스도의 생애와 봉사 가운데서 이러한 근본적인 진리들을 가장 명백하게 나타내는 국면들을 제시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몇 개의 현저한 예외들이 있긴 하지만 - 가나에서의 혼인, 수가 방문, 귀인의 아들 치료, 오천명을 먹이심, 그리고 생명의 떡에 대한 설교 등 - 요한은 유대에서 발생하고 유대 민족의 지도자들과 관련된 사건들을 독점적으로 그리고 때로는 상당한 길이로 취급하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이 복음서는 갈릴리 봉사를 광범위하게 다루면서 유대에서의 사건들의 대부분은 비교적 침묵 속으로 흘려 버리는 공관복음서들을 보충하고 있다.
 요한복음은 다른 면에서도 공관복음과 다르다. 그의 복음서의 많은 부분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길고도 논쟁적인 연설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여러 장들은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나눠주신 권고를 담기 위해 할애되어 있다. 반면에 요한은 침례, 변형, 겟세마네에서의 경험과 같은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또한 그는 귀신들린 사람을 고친 예에 대해서도 한번도 말하지 않고 있다. 그가 관심을 기울인 이적들은 신적 권능의 증거들로서 특별히 제시되어 있고 따라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려는 그의 공표된 목적에 기여하고 있다. 그는 공관복음에 보도된 비유들을 하나도 되풀이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의 목적은 그것이 신학적인 것만큼 전기(傳記)적이거나 역사적인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는 역사와 전기도 많이 있다. 공관복음 기자들이 귀납적(歸納的)으로 예수의 메시야직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에 요한은 대담하게 제일 첫 장에서 그것을 선언하고 나서 다음에 그 증거를 나열하고 있다. 다른 중요한 차이점들은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의 연대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만약 우리가 공관복음의 기록들 이외에 아무것도 더 가지지 못했더라면, 아마도 우리는 예수의 봉사 기간이 1년을 과히 넘지 못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을 것이지만 요한복음은 적어도 2년 반을 더 요구하여 전체적으로 만 3년 반의 봉사 기간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은 또한 마지막 유월절과 십자가에 못박히심 사이의 연계성에 있어서도 차이점이 있다.
 이 복음서의 관건이 되는 단어는 “말씀” 곧 헬라어로 “로고스”(Logos, 요 1:1)인데 그러나 그것은 단지 서두의 장에서만 전문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있다. 하나의 전문적인 용어로서의 로고스는 스토아 학파에서 유래 된 것처럼 보이는데, 스토아 학파는 로고스를 우주를 통합하는 힘으로서의 신성한 지혜를 가리키는 데에 사용하였다. 유대인 철학자 필론(Philo)은 그의 구약 주석에서 “로고스”를 1300번이나 사용하였다. 요한이 “로고스”란 용어를 바로 이런 철학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고 가끔 주장되기도 했다. 그러나 요한의 “로고스”는 엄격하게 기독교적이다. 그는 예수를 구원을 가능케 한 지혜와 신성한 하나님의 성품과 의지 그리고 인간의 생애를 변화시키는 일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신성한 권능 등의 성육신적 표현으로 제시하고 있다. 요한은 그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에 관하여 말할 때에, “나를 보내신 자” 또는 이와 비슷한 말로써 말씀하신 것을 인용하는 26번의 경우에서나 혹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그리스도의 사명을 지칭하는 동의어 동사(헬. apostello)의 사용 등을 통하여 예수께서 아버지의 마음과 뜻과 성품의 산 표현으로서 오신 사실을 거듭거듭 언급하고 있다. 그는 인류의 구주를 만물의 창조자, 빛과 생명의 근원으로서 제시하고 있다. 그는 또한 “믿는다”(pisteuo)라는 단어와 그와 유사한 단어를 100번 이상 사용함으로써 예수에 관한 진리를 믿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요한에 의한 복음서” 곧 “요한복음”으로서 그 개념들이 참으로 새롭고 분명히 기독교적인 것은, 이 복음의 총 879절 가운데 427절이 직접 인용 또는 암시를 통하여 구약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5. 개요
Ⅰ. 서언: 성육신되신 하나님의 말씀 1:1-18

Ⅱ. 초기 봉사, 침례에서 유월절까지(A.D. 27-28) 1:19-2:12

Ⅲ. 유대 봉사, 유월절에서 유월절까지(A.D. 28-29) 2:13-5:47
     1. 첫번째 유월절 2:13-3:21
     2. 유대에서의 봉사 3:22-36
     3. 유대에서 잠시 물러나심 4:1-54
     4. 두번째 유월절 5:1-47

Ⅳ. 갈릴리 봉사, 유월절에서 유월절까지(A.D. 29-30) 6:1-7:1

Ⅴ. 봉사,유월절에서 유월절까지(A.D. 30-31) 7:2-11:57
     1. 장막절 A.D. 30년 7:2-10:21
     2. 수전절 A.D. 30-31년, 겨울 10:22-42
     3. 나사로를 살림 11:1-57

Ⅵ. 예루살렘에서의 마지막 봉사, 유월절(A.D. 31) 12:1-19:42
     1. 수난 주간 전의 사건들 12:1-11
     2. 유대 지도자들에 의하여 배척받음 12:12-50
     3. 최후의 만찬 13:1-30
     4. 작별의 권면 13:31-16:33
     5. 예수의 중보 기도 17:1-26
     6. 겟세마네 18:1-12
     7. 심문 18:13-19:16
     8. 십자가에서 못박힘과 장사 19:17-42

Ⅶ. 부활과 그 후의 나타나심 20:1-29; 21:1-23

Ⅷ. 결어 20:30, 31; 21:2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