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표제
 에스더서는 그 이름을 이야기의 여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녀의 히브리 본명은 하닷사(에 2:7)였는데, 아마 그녀가 메데 파사의 왕인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486-465 B.C.)에게 결혼할 때쯤 에스더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의 히브리 이름인 하닷사는 “도금양”을 뜻하고 에스더는 분명히 “별”을 뜻하는 페르시아 이름이다. 자신의 사촌인 하닷사를 딸로 입양시킨 모르드개는 그녀에게 국적을 알리지 말라고 명할 때(에 2:10) 그녀에게 에스더라는 페르시아 이름을 주었을 것이다.
 에스더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한 젊고 용감하며,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성을 통하여, 그녀의 백성들이 몰살을 당하려는 위기의 때에 그들을 구해냈는지를 보여 주는 극적인 이야기이다. 룻의 이야기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큰 계획에서 여성의 역할의 중요함을 우리는 본다. 룻은 이방인이었는데, 스스로를 이스라엘인으로 삼기로 결정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결정한 반면, 에스더는 유대인인데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아 당대의 위대한 제국의 왕비가 되었다. 그녀는 진실을 이해하고, 그녀의 양부로부터 주어진 다음과 같은 질문의 긴박성을 깨달았다.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 4:14).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그녀는 용감하게 스스로의 생명을 무릅쓰고, 알려진 모든 세상에 퍼져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생명을 구하러 나아갔다. 에스더의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섭리가 가장 약하디 약한 사람에게 주는 기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아마 우리도 “이 때를 위하여 왕의 위에 앉게” 될지 모르겠다.

 2. 저자
 에스더서의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유대인들의 국가적 위기에 그 백성의 복리를 지극히 염려한 저자의 심려는 그가 유대인 중의 하나임을 보여준다. 모르드개를 베냐민 자손으로 소개한 것(에 2:5)으로 보아 그도 역시 베냐민 지파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유대인들이 “나라 각 도…에 흩어져”(에 3:8) 있다는 것만이 언급되었을 뿐, 예루살렘과 유다의 유대인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저자는 전자의 유대인들에게만 관심이 있었고, 따라서 그들 중의 하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많은 페르시아 용어들은 페르시아의 사건들과 관습들에 대한 익숙한 지식과 함께 저자가 제국의 변방 도중의 한 곳에서 산 것이 아니라 페르시아 내에 거주했던 것이 정확함을 나타낸다. 최근의 수사(수산)에 대한 발굴은 저자가 궁전과 페르시아 궁정 관습과 규례들에 대하여 익숙하게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고고학적 발견에 인상을 받은 여러 학자들이 이 책의 저자가 당시, 또는 조금 후에 적어도 소관리로서 페르시아 궁정에 배속되었거나 또는 그가 누군가 궁정 관리였던 사람에게 직접적 정보를 얻었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닥사스다 Ⅰ세 제7년(457 B.C.)에 예루살렘 귀환을 지도했던 에스라가 저자일 수도 있다. 에스라는 유대법에 능통한 권위자였고(스 7:1-14), 왕실 서기로 일했음직하며, 아마 왕의 법률 고문이었을 것이다. 어떠한 상황하에서라도 아닥사스다가 그에게 큰 신뢰를 두었음에 틀림없다(스 7:25-28). 하만에 의한 위기는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약 16-17년 전인 B.C. 474-473년에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므로 에스라가 이 이야기를 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내용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타당하다. 열렬한 애국자요, 헌신적 제사장이며, 경건한 개혁자이고, “익숙한 학사”이며(스 7:6), 능력있는 행정자로서 에스라는 그가 젊은 사람일때 닥친 이 위기에 심각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분명히 그는 에스더서를 쓸만한 자격이 있었다. 또 한편 느헤미야가 저자일 수도 있다.
 에스더서의 후기(10장)에 의하면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는 이 책을 쓸 때 이미 죽은 것으로 추론되는데, 왜냐하면 “왕의 능력의 모든 행적이 …메대와 바사 열왕의 일기에 기록” 되었다는 것으로 보아서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에스더서는 아하수에로가 그의 조신(朝臣) 아다바누스에 의해 암살당한 B.C. 465년 이후에 쓰여졌다. 또한 페르시아 제국이 계속 세계를 지배하는 것처럼 되어 있다. 따라서 에스더서는 B.C. 331년의 페르시아의 멸망 이전에 쓰여졌을 것이다. 고고학에 의해 확인된 많은 대화의 자세한 세부 내용은 어쨌든 이 기록이 사건이 발생한지 얼마 안되서 이루어졌으며, 아마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 중 한 사람 이상과 개인적 친분이 깊은 어떤 사람에 의해 씌어졌음을 보여 준다.
 어떤 이들은 모르드개가 저자일 것이라고 제시해 왔다. 그가 왕국의 재상으로 승진되기 이전에 궁정의 소관리직에 있었다고 알려진 사실은 저자가 궁전과 궁정 관습과 규례들을 분명히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적절하게 설명해 준다. 더군다나 모르드개는 각종 조서가 적용되는 공문서에 대하여 익숙하게 알고 있고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으로 성경에 언급된 유일한 사람이다. 명백히 모르드개가 에스더를 썼을 수도 있다. 지금 베를린 박물관에 있는 한 설형 문자판은 마두카(모르드개의 바벨론 음역)라는 이름의 높은 정부 관료가 ‘시피르(Sipir)’라는 명칭으로 크세르크세스 당시에 수산궁에서 영향력있는 고문으로 활약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이름으로 크세르크세스 하의 수사에서 이 직함을 가졌던 어떤 다른 사람도 성경이나 다른 자료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아하수에로의 명령으로 왕명과 어인을 가지고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제국의 모든 곳에 공식 조서를 보내어, 왕의 명령의 수정을 설명하고 유대인들로 하여금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에 8:9-14; 9:31, 32). 어떤 이들은 생각하기를 에스더라고 지금 알려진 것은 에스더와 모르드개에 의하여 유대인에게 보내어진 기별에 포함되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근거 자료를 거의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모르드개가 에스더서에 나오는 특정 문서에 더하여 에스더서를 썼을 것이라는 사실은 전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그가 3인칭으로 책 전체에 언급되어 있는 사실은 그가 저자일지 아닐지에 대하여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말하여지고 살펴 본 후에도 에스더서의 저자는 미상으로 남아 있다. 명백하게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이란 저자는 책에 묘사되어 있는 사건이 일어난 때쯤 수산에 살았던 어떤 유대인일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3. 역사적 배경
 다리오Ⅰ세(히스타스프스, 또는 “대왕”)가 죽은 B.C. 486년에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가 왕위를 물려받고, B.C. 465년 죽을 때까지 나라를 다스렸다. 그 또한 아들 아닥사스다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러므로 성경의 아하수에로는 역사상의 크세르크세스이다. 아하수에로라는 이름은 바벨론의 아흐시야르수(Achshiyarshu)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아하수에로(Achashwerosh)의 라틴어 음역이다. 70인역의 역자들은 아하수에로와 아닥사스다를 혼동했다. 에스라서와 에스더서의 아하수에로는 메대의 다리오의 아버지인 다니엘 9:1의 아하수에로가 아니다.
 다리오 히스타스프스의 통치 말년과 그의 아들이며 계승자인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의 치세 초기 동안 페르시아 제국은 최전성기에 달하였었다. 에스더 1:1에 의하면 아하수에로의 영토는 서북쪽으로 인도의 국경까지에서 서쪽으로 에디오피아 북쪽 국경까지 확장되었다.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길이는 4,827㎞이요, 그 폭은 805㎞~2,400㎞로 추정된다. 그 영역은 약 322만㎢이었다. 수산은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중의 하나였는데, 그 영예를 엑바타나와 퍼시폴리스와 나누었다. 페르시아인은 인도 유로피안족의 한 지파인데, 그 종족 중에서는 세계를 다스린 사실상 첫번째 종족이다.
 성경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페르시아의 초대 왕 고레스의 치세(553-530 B.C.)동안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유대인으로 하여금 536년에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게 하고, 성전을 재건하게(스 5:13)하는 그의 치세 첫 해에 내린 조서였다. 이 조서에 의하여 스룹바벨은 약 5만명의 유대인을 유다 땅으로 인도하여 성전 재건을 시작했다(스 1:5, 6; 3:1-10).
 그러나 어느 때에 각종 문제와 일어나는 실망으로 말미암아 사업은 중단되게 되었다(스 4:1-5, 24; 학 1:1-4). 유대인에 관한한 고레스의 아들이며 계승자인 캄비세스의 치세(530-522 B.C.)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데, 이는 그가 유대인의 복리를 위해 별로 관심을 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리오 히스타스프스(522-486 B.C.)가 보좌에 앉은 직후부터 그는 고레스의 원래 조서를 확인시켰으니 그 자신이 조서를 하나 내리고(스 4:24; 6:1) 그것에 의해 B.C. 515년 스룹바벨 성전이 완성되는 결과를 가져왔다(스 6:1, 15).
5세기 초기에 소아시아의 서쪽 해안에서 페르시아의 지배에서 벗어나려 투쟁하면서 살고 있는 헬라를 아테네가 도와 주었다. 다리오는 이러한 도전을 그의 군대를 헬라로 데리고 가서 아테네인들을 징벌함으로 맞이하였다. 보잘 것 없는 군대로 아테네인들은 페르시아의 대군을 마라톤 해안에서 맞이하여 결정적인 공략으로 침략자를 물리쳐서 다리오로 하여금 아시아로부터 즉각 물러설 수 밖에 없게 하였다(490 B.C.). 헬라로 다시 쳐들어 가려 하였으나 준비 도중에 다리오는 죽고 말았다(486 B.C.). 그의 아들이며 후계자인 크세르크세스 Ⅰ세, 또는 아하수에로(486-465 B.C.)로 다시 왔으나 다만 살라미스에서 큰 패배를 당했을 뿐이다(480 B.C.). 그런 까닭에 크세르크세스는 영구히 아시아로 돌아와서, 그의 장군 마도니어스를 책임자로 남겨 놓았다. 그 다음 해에 마도니어스는 플라태아에서 패배하여 결과적으로 페르시아 군대는 유럽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크세르크세스 3년의 거대한 잔치는 그가 수산을 떠나 헬라로, 참패로 끝난 원정을 떠나기 직전에 행하여진 듯하다. 그가 떠난 B.C. 482-481년 전에 “아리따운 처녀를 대 도성 수산으로 모으라” (에 2:3)는 명령을 내렸음이 틀림없다. 이 명령을 완전히 수행하기까지는 분명히 여러 달이 걸렸을 것이다. 크세르크세스가 수사로 돌아온 직후, 아마도 에스더가 그의 앞으로 인도되었고, 왕비가 되었을 것이다.
 소 아시아의 서쪽 해안에서 아테네 함대에 의해 계속 반격을 당하는 한편, 광대한 제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반역을 당했던 그 후의 몇년 동안 아마도 왕의 마음은 유대인을 멸절시키자는 하만의 계획이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조성되었을 것이다. 이 계획은 만일 실행되었더라면, 고레스와 다리오의 치세 동안 보여 주었던 유대인에 대한 페르시아 왕조의 친절하고 너그럽기 조차 했던 정책으로부터 갑작스런 변화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용감한 에스더를 통한 유대인의 극적인 구출은 왕의 총애를 유대인이 다시 받게 했으며 몇년 후에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사역을 위한 길을 예비하게 하였고, 특별히 크세르크세스의 아들이며 계승자인 아닥사스다 Ⅰ세(465-423 B.C.)의 역사적인 조서(457 B.C.)를 위한 준비가 되었다.
에스더에 의해 주어진 역사적인 순서는 다음과 같다.

사건성구년. 월. 일.날짜(B.C.)
큰 잔치 1:3 3 ― ― 483. 4. 14 ~ 482. 4. 2
에스더가 불리워 감 2:12 6 10 ? 479. 1. 2 ~ 479. 1. 30
에스더 왕비가 됨 2:16 7 10 ― 479. 12. 22 ~ 478. 1. 20
하만이 제비뽑음 3:7 12 1 ― 474. 4. 5 ~ 474. 5. 3
하만의 조서 3:12 12 1 13 474. 4. 17
모르드개의 조서 8:9 12 3 23 474. 6. 25
부림일 3:13 12 12 13 473. 3. 8
  8:12
 9:1, 17-19


 4. 주제
 바벨론 포로 기간은 유대인의 나라로서의 생애에 뚜렷한 금을 그었다. 그때에 유대 역사의 흐름은 사라지고 지하로 들어갔으며, 그것이 다시 나타났을 때, 전체의 특징은 바뀌었다. 유대인은 하나의 종족이요, 교회인만큼 더 이상 하나의 국가는 아니었다.
 성경에는 흔히 역사라고 정의되는 것에 의하면, 포로 시기나 포로 후의 기간에 대해서도 역사라 할만한 것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 다만 그 시대의 정신이 다니엘서와 에스더서의 이야기를 통해 자랑스럽게 남아 있을 뿐이다. 에스더서는 고대로부터 매년의 5대 절기 때마다 모든 회당에 읽혀진 다섯 두루마리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매년의 반복적 낭독이 에스더서를 히브리 정경의 하나로 놓아지게 한 것같다. 다섯 두루마리의 순서는 솔로몬의 아가, 룻기, 예레미야애가, 전도서, 에스더이다. 에스더가 다섯번째에 오는 이유는 연중 다섯번째 절기인 부림절(에 3:7; 9:26)에 읽혀지기 때문이다.
 에스더의 문체를 살펴보면, 이것은 하나의 전원시(田園詩)이면서 동시에 서사시이다. 그것은 멸절을 위협하는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행운을 묘사하고 있다. 구원의 통로는 한 유대 여성으로 사촌이며 동시에 양부인 모르드개와의 평범한 생애에서 전세계적 제국의 왕비가 되었던 여성이다. 이야기에 의하면 에스더는 명확한 판단력과 놀랄만한 자기 제어, 그리고 아름다운 자아 희생의 여성으로 묘사되어 있다. 모르드개의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 4:14)는 질문은 이 젊은 왕비로 하여금 영웅적 행위의 절정에 이르도록 하였다. 엄숙한 위엄으로 그녀의 정신은 그 시간의 요구에 다음과 같은 용감하고 감격적인 답변으로 대답하도록 고양되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위기의 순간에 그녀에게 왕의 홀이 주어져 있는데, 그녀는 즉시 악인의 편에 서지 아니하고 오히려 놀랄만한 자제와 신중한 처리로 왕과 하만을 인도하여 그녀의 목적을 위해 가장 훌륭한 편으로 상황을 변화시켰다. 하만의 정체가 탄로되고 죽음으로 이르게 되는 그 이야기만큼 더 극적으로 놀라운 사건 전개는 소설도 묘사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부림절 제비뽑는 절기에 유대인들은 계속 하만의 악한 계획에 대한 하나님의 처분을 기념한다. 하마터면 “제비뽑은” 의도가 성공하였을 뻔했다(에 3:7).
 에스더의 종교적 성격과 도덕적 교훈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하나님의 이름이 전(全) 책에 한번도 나오지 않지만, 그분의 섭리는 전체에 걸쳐 나타난다. 어떠한 불신자도 이 책을 썼을 가능성이 없다. 어떠한 신자도 이 책을 읽으면서 믿음이 강해지지 않을 수 없다. 저자에 의해 하나님께 대한 살아있는 믿음의 결과로 구원이 제시되어 있다.
 (2) 에스더는 유대인의 국가적 절기 중의 중요한 절기, 부림절-지금도 매년 기쁘게 지켜지는 절기의 기원을 설명해 준다.
 (3) 한 중요한 도덕적 교훈이 이야기에 가득차 있다. 하만의 짧은 영화의 날이 쓰러짐을 통하여 땅의 권세와 부귀의 덧없음이 뚜렷하게 증거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그분을 의지하는 자를 높이신다.
 (4) 하나님의 섭리가 인상깊게 제시되었다.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의 노력과 연합하였다. 사용된 도구는 인간이었지만 구원 자체는 하나님의 것이다.

 5. 개요
Ⅰ. 에스더가 페르시아의 왕비가 되다 1:1-2:20
     1. 180일 동안의 공식 잔치 1:1-4
     2. 7일 동안의 궁중 잔치 1:5-9
     3. 아하수에로 앞에 나타남을 거절한 와스디 1:10-12
     4. 와스디가 왕비에서 물러남 1:13-22
     5. 새 왕비의 물색 2:1-4
     6. 에스더가 궁정으로 불려감 2:5-11
     7. 에스더가 왕비로 뽑힘 2:12-20

Ⅱ. 유대인을 멸절시키려는 하만의 음모 2:21-3:15
     1. 궁정 관리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의 생명을 구함 2:21-23
     2. 하만의 승진, 모르드개에 대한 하만의 원한 3:1-5
     3. 모르드개의 민족에게 복수하려는 하만의 음모 3:6-11
     4. 유대인을 멸절하라는 하만의 조서 3:12-15

Ⅲ. 에스더가 그의 백성을 위해 싸우다 4:1-5:8
     1. 하만의 조서에 당황하여 유대인들 금식함 4:1-3
     2.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제안함 4:4-14
     3. 에스더 도전을 받아들임 4:15-17
     4. 에스더가 왕과 하만을 잔치에서 즐겁게 함 5:1-8

Ⅳ. 하만의 몰락 5:9-7:10
     1. 모르드개를 목달려는 하만의 음모 5:9-14
     2. 아하수에로가 모르드개의 충실한 봉사를 기억함 6:1-3
     3. 하만이 모르드개에게 영예를 돌릴 수 밖에 없게 됨 6:4-11
     4. 하만이 자기의 음모의 실패를 고하다 6:12-14
     5.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앞에서 하만을 추궁함 7:1-8
     6. 하만의 사형 집행 7:9, 10

Ⅴ. 유대인의 원수에 대한 승리 8:1-10:3
     1. 하만의 조서의 취소 8:1-14
     2. 모르드개가 나아가고 그의 백성이 총애를 회복함 8:15-17
     3. 유대인의 구원과 기쁨 9:1-19
     4. 부림절의 선포 9:20-32
     5. 모르드개가 페르시아의 재상이 됨 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