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표제
 초기의 헬라어 사본들에서 이 편지서의 표제는 단순히 “요한의 Ⅰ”인데, 그 의미는 “요한의 첫번째(편지서)”라는 뜻이다. 이 편지서가 요한이 기록한 최초의 목회 서신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그리스도 교회에 보존되어 온 것들 가운데서는 첫번째로 기록된 것이다.
 2. 저자
 요한이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신약의 편지서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그 저자의 신원을 밝힌 것은 없다. 그렇지만 이 첫번째 편지서와 요한복음 사이에는 너무나 큰 유사성이 있어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두 저술의 저자가 동일인임을 받아들이고 있다. 만약 우리가 제4복음이 세베대의 아들인 사도 요한으로 밝혀지는 사랑받는 제자(요 21:20-24)에 의하여 기록되었다는 주장을 지지한다면, 우리는 그가 또한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첫번째 편지서의 저자라고 주장할 수 있는 타당한 근거들을 가지게 된다. 첫번째 편지와 두번째 편지 사이에 그리고 두번째 편지와 세번째 편지 사이에는 매우 큰 유사성이 있어서 이것들을 서로 밀접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어투에 있어서 근거한 평행귀들을 보여주는 것 외에도 이 편지서와 요한복음 사이에는 쉽게 감지할 수 있는 다른 유사점들이 많이 있다. 둘다 아무런 형식적인 편지식의 서론없이 문득 본론으로부터 시작한다. 편지서는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으로 시작하고, 복음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로 시작한다. 문체, 어휘, 어순, 전치사의 사용, 문법적 구조, 그리고 어둠과 빛, 사망과 생명, 미움과 사랑 등과 같은 반대 개념들의 배합 등에는 밀접한 유사성이 있는데, 이것은 명백한 요한의 특성이다. 비록 두 책의 목적과 길이에 있어서의 차이가 커다란 상치점을 이루기는 하지만 두 책의 주된 문제는 너무나 흡사하여, 마치 이 편지서가 그 복음서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 개요의 구실을 하는 듯하다.
 두 책 사이의 차이점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기록의 목적과 시기가 서로 다른 점, 두 책의 저자의 연만한 나이, 그리고 동일한 저자의 붓에 의하여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다른 어떤 저술들에서도 존재하는 자연적인 상이점들 등과 같은 여러가지 근거에서 그러한 차이점들은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 편지서는 한 통의 목회 서신으로서 자연스럽게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한편, 복음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육신에 관한 깊고도 오랜 명상의 결과로 나타난 책이라는 증거가 역연(歷然)하다. 동일한 관찰을 상이한 방법으로 표현한다면 편지서의 목적은 한정되어 있는 반면에, 복음서의 목적은 광범위하다. 그렇더라도 공통된 실(絲)이 두 책을 관통하고 있으며, 이것은 좀 서투른 독자에 의해서도 능히 포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편지서의 저자에 관한 학자들의 견해는 아직도 여전히 분리되어 있다. 사도 요한을 이 책의 저자로 받아들이기를 꺼려하는 이들 가운데 더러는 잠재 의식적으로 의심하기를 일삼는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보수적인 그리스도인은 당당히 선언하기를, 사랑받는 제자 요한이 이 편지서의 저자라는 주장에 대한 적절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3. 역사적 배경
 이 편지서 자체에 저자, 수신인, 기록된 장소, 기록된 시기 등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전혀 없으므로, 이 편지의 역사적 배경에 관한 사항들은 내적 증거에 의하여 추정될 수 밖에 없다. 그와같은 증거는 제4복음의 저자와 연대에 관하여 이미 받아들여진 결론들과 밀접히 연결될 필요가 있다. 본 교회 성경 주석은 요한복음과 이 편지서의 저자가 공히 요한이라는 주장을 지지하고 있으므로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이 두 책 중에 어느 것이 먼저 기록되었느냐? 복음서냐, 아니면 편지서냐? 하는 문제이다. 아무런 확정적인 결론은 내릴 수가 없고, 학자들의 견해도 양편으로 나뉘어져 왔다. 그러나 이 편지서가 요한복음에 포함되어 있는 바와 같은 그리스도교 지식의 배경을 전제하고 또 그러한 배경 위에서 이루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이 점이 결정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진다면, 이 편지서는 요한복음보다도 늦게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말하자면 요한복음에 덧붙여 쓴 하나의 추신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가 그의 기억들과 깊은 명상들을 글로 옮기기 전에, 그의 복음서의 내용의 많은 부분을 생각해 왔고, 또 그의 양무리에게 가르쳐 주었으리라고 짐작하기도 쉬운 일일 것이다. 이러고 보면, 이 편지서가 그 복음서의 기록보다 선행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연구와 다른 많은 기술적인 고려의 결과, 그 두 저술의 상대적인 연대에 관하여 내적 증거로만 어떤 확고한 결론에 도달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편지서는 그의 초심자들을 향하여 “자녀들아”(요일 2:1, 12, 18, 28; 3:7, 18; 4:4; 5:21)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연로한 사람에 의하여 기록된 것은 분명하다. 이 편지의 목적지는 전혀 있지 않지만, 그것이 일단의 잘 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진 것은 명백한 일이며, 그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저자와 개인적으로 친숙한 사이였다. 이 편지는 요한이 그가 봉사한 적이 있는 에베소 또는 적어도 소 아시아에 있는 신자들에게 그의 노년에 써 보낸 것이라는 널리 알려진 전통을 거절함에는 결정적인 이유가 아직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기록 연대는 아마도 1세기의 90년대의 전반부 동안일 것이다.
이 편지가 존재했음에 관한 증거는 2세기의 매우 초기에 나타나고 있다. 여러 명의 사도들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폴리갑은 요한일서 4:3을 그대로 반향하는 말을 하였으며, 유세비우스는 파피아스가 “요한의 첫번째 편지서로부터 증언들을 사용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다. 이레내우스는 자신이 인용하는 몇 귀절들을 요한의 첫번째 및 두번째 편지서에서 따른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무라토리 단편은 그것의 정경 가운데 이 첫번째 편지서와 두번째 편지서를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사도 요한의 저작으로 돌리고 있다. 이와같이 첫번째 편지서는 매우 이르고도 믿을만한 증거를 가지고 있으며, 정경에서 차지하는 자리도 확고하게 정해져 있다.

 4. 주제
 이 편지서의 일차적인 목적은 목회적인 것이다. 요한은 그의 영적 자녀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인 생애를 보다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사랑이 넘치는 마음으로 편지를 쓴다. 이 편지의 골자는 사랑이다. 배경은 단순하지만 그윽히 깊은 영적 권면을 안겨준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8).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7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아들을 보내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10, 11절). 그러나 이러한 고상한 주제들은 이 편지서에 논쟁적이며 동시에 목회적인 목적을 갖게 하는 반대파의 배경과 대조를 이루면서 묘사되어 있다. 이단들이 교회를 괴롭히고 있었고, 거짓 교사들이 내부에서 일어나 믿음을 파괴하려 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요일 2:18, 19). 비록 그들이 교회를 떠나기는 했으나 그들의 영향은 아직도 잔존하여 계속적인 손상을 입히고자 위협하고 있었다. 요한은 이러한 위험을 제거하기 위하여, 교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리들 위에 굳게 서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고 진리를 매우 매력적으로 나타냄으로써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오류에 빠져들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편지를 쓰는 것이다.
 요한이 대항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단은 일종의 원시 영지주의(Proto-Gnosticism)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것은 거짓 그노시스(gnosis)즉 거짓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이 편지서에 나타난 강조점들로 미뤄볼 때, 반대파는 영지주의의 두가지 주요 형태, 곧 가현설(Docetism)과 케린투스설(Cerinthianism)에서 온 것으로서 둘다 그리스도의 본질에 관한 이단을 제시한 사상들이다. 가현설은 성육신의 실재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을 가진 것처럼 나타났을(dokein, appear) 따름이라고 가르쳤다. 두째번 이단은 요한의 동시대인들 중의 한 사람인 케린투스(Cerinthus)에게서 생겨 것인데, 그는 애굽에서 교육을 받은 다음, 소 아시아에서 가르치면서 유대화주의의 교훈들을 퍼뜨렸다. 케린투스는 주장하기를, 예수는 요셉과 마리아의 사이에 자연적으로 출생한 아들이었으며 그가 침례를 받는 순간에 그리스도가 예수의 몸안에 들어갔다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기 직전에 도로 나왔다고 하였다. 이와같은 이단들의 창시자들과 지지자들을 요한은 생생한 표현으로 묘사하기를 “적그리스도”(요일 2:18, 22; 4:3)와 “거짓 선지자”(요일 4:1)라고 하였다. 이러한 오류들을 퇴치하기 위하여 그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동안의 가시적인 인성의 실재, 즉 그분은 참으로 육체로 오셨다는 것과(요일 4:2) 신자들은 거짓 그노시스와는 반대가 되는 이 참 지식(요일 5:20)을 향유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초기의 논쟁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이 매우 광범하게 의심되고 있는 현대를 위하여 깊은 의미를 갖는다. 이 편지에 대한 연구는 독자의 마음을 성육신의 진리로 이끌어 갈 것이며, 온 세상의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 되기 위하여 오신 하나님의 아드님에 대한 높이 들린 비젼을 독자 앞에 제시할 것이다.

 5. 개요
Ⅰ. 서론 1:1-4
     1.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친분을 선언함 1:1-3 상단
     2. 편지를 쓰는 목적 1:3 하단-4
       (1)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사귐을 북돋우기 위하여 1:3 하단
       (2) 기쁨이 충만케 하기 위하여 1:4

Ⅱ.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귐을 위한 요구사항들 1:5-10
     1. 빛 가운데 행하라 1:5-7
     2. 죄를 자백하라 1:8-10

Ⅲ. 무죄한 생애에 대한 권면 2:1-28
     1. 대언자이시며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신 그리스도 2:1, 2
     2. 그의 행하시는 대로 행함 2:3-6
     3. 새 계명 2:7-11
     4. 영적 자녀들에 대한 개인적 호소 2:12-28
       (1) 쓰는 이유 2:12-14
       (2)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2:15-17
       (3) 적 그리스도들과 그들의 이단을 경계하라 2:18-26
       (4) 그의 오심을 위해 준비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 2:27, 28

Ⅳ. 하나님의 아들들과 마귀의 자녀들과의 대조 2:29-3:24
     1. 하나님의 아들들의 의 2:29-3:7
     2.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함 3:8, 9
     3.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마귀에게 속함 3:10-18
     4.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구원을 확증하심 3:19-24

Ⅴ. 진리와 사랑과 믿음은 사귐에 필수적임 4:1-5:12
     1. 진리의 영과 오류의 영 4:1-6
     2.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사랑은 하나님께 속함 4:7-21
     3. 믿음은 승리와 생명을 가져옴 5:1-12

Ⅵ. 결론 5:13-21
     1. 목적의 재천명 5:13
     2. 무죄에 대한 권고 5:14-17
     3. 하나님과 그의 아들을 알라는 마지막 격려 5:1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