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에게 종말신앙을 이야기하면 콧방귀를 낀다. 어른들도 거부하는 종말신앙을 젊은이들이 받아들이기 만무하다. 회목사님들도 요새는 종말론에 대해서 함부로 말을 못해요! 교인들 눈치를 보느라 치유 아니면 회복, 축복설교를 해야지, 마지막이 어떻고, 재림이 어떻고 이야기 하면 교인들이 들고 일어납니다.” 

 

과거에는 종말에 일어날 예언집회를 통해서 많은 교단에서 재림교회로 개종을 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주로 건강기별을 통해서 개종을 하고 있다. 종말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기독교의 꽃이다. 이 신앙이 없으면 교회는 방탕해진다. 믿음의 조상들도 항상 종말신앙을 품고 살았다.

종말신앙을 거부하는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종말신앙만큼 과거에 양치기 소년짓을 많이 당한 신앙이 없다.

하도 양치기를 당한 탓에 이제는 크리스찬들까지도 재림의 징조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양치기 소년은 재림교인들에게도 집팔고, 땅팔고, 아이들 학교도 중단하라고 외쳐서 많은 교인들을 시골로 도피하게 만들었다.

 

이런 휴우증때문에 재림교인들에게 종말신앙이란 집팔고, 장사 그만두고 시골로 떠나라는 소리로 들린다. 실상 종말은 땅을 팔지 않아도, 땅을 팔 수 없고, 장사를 해도 장사가 안되고, 물건을 사고, 팔수도 없다. 과거처럼 재림교인들은 세상이 심상치 않다! 마지막 때가 다가온다고 해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나는 작년에 중국에서 두 번이나 일요일 휴업령이 내렸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요즘은 사람들도 놀래지 않고, 나도 놀래지 않았다. 하도 자주 들어서 이제는 가담항설로 취급해 버린다. 내가 놀래지 않았던 것은 일요일 휴업령은 갑자기 몰래 내리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요일 법령은 세상을 뒤집는 큰 사건이며, 모든 기독교 국가에서 전쟁과 같은 투쟁이 일어나는 사건인 동시에 전세계적이다.

 

이런 일이 보편적으로 일어날 때 하나님께서도 땅을 무섭게 흔들어서 우리에게 경고를 알려주신다. 재림교인인 우리가 종말론에 대해서 흔들리기 시작하면 재림신앙까지 흔들리기 시작한다. ‘노아홍수때처럼 방주안에 들어가고 싶어도, 놀림을 받을까봐, 손가락질을 할까봐 재림까지 기피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고 싶으셨던 일이 있었던 것처럼, 인류의 회복을 위해서 재림교회에게 하시고 싶으신 일이 있으시다. 마지막 시대에 이스라엘의 역할은 메시야가 빨리 이 땅에 탄생하시는 것이었고,

재림교회의 역할은 주님이 빨리 오시게 하는 역할이다. 재림교회에 경고의 기별을 주신지도 벌써 200년이 가깝다.


엘렌지 화잇은 1800년 시대에 만일 재림교인이 준비만 되었더라면, 그 시대에 재림이 있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후 세월이 지나 21세기를 맞이하였다.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재림징조는 고사하고  더 살기 좋아졌다. 좋은 차에, 좋은 집, 뿐인가? 좋은 옷에 갖가지 브렌드 상품까지 호강을 해도 보통 호강을 하고 있다. 먹을 것이 넘쳐나고, 한쪽에서는 굶어죽을망정 성경과 예언의 신에 기록된 마지막 때 사정과는 전혀 다르다.


사람들은 더 돈 벌기 위해 바쁘다. 세상은 재림을 비웃기라도 하듯, 최첨단을 뽐내고 있다.

재림은 마치 소설에서 꾸며낸 이야기처럼 생각된다. 저들이 말하는 복천년시대가 온 것일까라는 의문까지 생긴다. 재림교인 자녀들 대부분이 하나님을 안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교회는 사교모임으로 둔갑하고 있고, 각종 이벤트에 유명한 강사에, 우리도 모르게 우리 자신이 변질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껍데기는 분명히 재림교인이 맞는데, 내용물은 아닌 경우가 많다.

사도바울은 내가 여러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이런 상태에서 매 안식일이 되면 엄마가 아이들을 부른다. “애들아! 안식일이야, 교회가자!”

마지못해 따라 가는 아이의 입에서 이런 불평이 쏟아진다. “엄마, 어차피 고등학교가면 교회를 다 떠나는데, 뭣하러 교회가야 돼요? 교회 다니는 아이들, 완전 두 얼굴이예요! 교회 안에서 하고 바깥에서 완전 달라요. 세상친구들이 훨씬 착해요!

 

요새 교회에서 진짜 하나님 믿는 사람봤어요? 진짜로 하나님 믿으면 매장당해요.

목사님들도 어른들도 하나님 안 믿는것 같은데, 엄마는 진짜 하나님을 믿어서 교회가는거야?

그냥 성경은 성경이고, 세상은 세상이잖아요. 성경대로 사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까 그렇게 사신 것이지, 엄마도 목사님도 나도 예수님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다들 그렇게 사는 게 아니예요?”


어떤 사람이 한국 기독교가 타락한 이유를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였다. 일곱가지 답이 나왔다. 한국 교회가 세습했기 때문에 타락한것이 아니고, 이미 타락했기 때문에 결과로 물질만능 사상이 교회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만일 한국 교회가  7가지 독소를 제거 한다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 교회 안에 돈을 너무 많이 쌓아 놓기만 하고,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쓰지 않고, 교회에 가난한 사람과 장애자들이오면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것.

2.  교회건물 짓는데 너무 돈을 많이 쓰고, 교회가 화려하고, 교인들도 화려하고, 파트락도 화려하고.

3. 교인들이 목사를 무당이나 영매로 생각하고 복받기 위해 기도받고, 교회나오고, 가난한 사람을 대접하지 않고 목사님들을 너무 많이 대접하고, 물질로 타락 시킨것.

4. 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는 독선 때문에.

5. 행동이 아닌 말로 믿고, 전도하는것. 교회에서 말하는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싸구려 사랑.

6.  복음을인스턴트싸구려 복음으로 전락 시켜, 앵무새처럼 예수를 믿고, 교회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교회밖에 나가면 무조건 사는것.

7. 예수 믿은지 50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내가족이 건강하고, 먹고, 잘살다가 죽으면 하늘에 간다고 생각하는 것.

 

청소년들이 어떤 시선으로 종말을 바라보고 있는지, 기성세대가 그들에게 다가갈 때가 되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과거는 현재와 단절되고, 미래는 예측할 없으며 그들에게 의미 있는 것은 바로 순간뿐이다. 언뜻 보기에 모든 것은 정상처럼 보이고 사회는 눈부신 발전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모든 것이 원래의 의미를 잃어버린채 급속도로 붕괴되고 있다.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쳥년들...

인간의 존엄성과 문명의 숭고함을 내세우며 허위와 기만을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임박한 종말을 인정하고 진정한 자유와 진실된 정체성을 추구할 것인가.

그들은 끊임없이 자아를 탐색하고, 어딘가에 있을 진실한 가치에 자신을 의지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과거, 미래와 단절되고 신과 단절된체 소외와 고립속에서 방황하는 현대의 정신적 고아들이다. 사이버 공간을 벗어나면 대화할 사람이 없고, 마음을 나눌 친구가 없다. 그들은 화가 나있고(angry) 심장이 박동(beat)하듯이 힘차게 끊임없이 뭔가 뛰고 있지만, 그들은 지금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속에 갇혀있다.

그들이 바로 X 세대, Y 세대, N 세대,  M 세대, C 세대들이다. 우리세대와 다르다. 우리 세대가 겪고 있는 대중속 고독과는 차이가 있다. 각종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둘러싸여 성장한 이른바 디지털 세대들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세대들이다. 화려한 허상의 내면에서는 무엇인가가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인류는 언제라도 인간이 만든 Technology 의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릴것만 같다. 종말신앙에 대한 바른 답이 없으면 내일이 보장되지 못하는 현재의 공부나 직장도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인류가 내딛는 발결음은 종말을 향해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사단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점점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나는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젊은이들이 다가갈 있는 종말론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생각한다. 종말론은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점검하라는 경고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종말론과 우리 어른들이 생각하는 종말론은 다르다. 우리가 과거에  배웠던 예언의 방식은 귀에 들리지도 않는다. 이미 교회와 가정에서 모방할 수있는 좋은 모델 없었고, 그래서 요즘 청소년들은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듯이, 또래집단과의 접촉을 통해서는 생각이나 감정을 자유롭게 교환하고 싶어한다.

유행하는 새로운 신조나 가치관 또는 이념을 따라하고, 부모가 안된다고 해도, 친구가 된다라고 하면 되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자신에 대해서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비판에 민감하게 되고, 자신이 속한 또래집단의 승인과 소속감을 갈망하게 된다. 그래서 또래 집단과의 접촉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래집단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의 표시로 몸치장을 동일하게 하고 같은 언사를 사용한다.

이런 현상을 동조현상이라고 하는데, 청소년들이 가장 닮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바로 연예인들이나 운동선수들이다.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스타는 대부분 상업주의를 앞세운 대중매체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이런 대중매체들과 상업주의 가치관은 그들의 손에 들고 있는 헨드폰과 컴퓨터에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런 왜곡된 가치관을 보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성경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냥 시대 흐름이라고 지나쳐 버린다.

교회는 어른들 중심적인 똑같은 예배와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고, 2세대들은 교회를 다 떠나고, 옛날 옛적 바벨론, 헬라, 로마시대 예언들이  지금도 똑같이 그들의 귀에 짐승의 표바벨론이니, 이것은 먹어도 괜찮고, 저것은 먹지 말아야 되고, 앞에서는 빈틈없이 율법의 잣대질을 재면서도 뒤에서는 바벨론보다 더한 이중적인 행동을 지켜 보았다.

젊어서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이 왜 값진 것인지 보고 자라지 못했다. 빛을 보고 산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해를 보고 산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오래 사는 사람은 그 모든 날을 즐겁게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두운 날들이 더 많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줘야 한다.

그러나 끊임없이 그들에게 들리는 소리는 젊은이여, 젊을 때에, 젊은 날을 즐겨라. 네 마음과 눈이 원하는 길을 따라라. 네 마음의 걱정과 육체의 고통을 없애라. 그러나 혈기왕성한 청춘도 덧없이 지나간다. 모든 것은 공허와 허무로 귀결되어진다. 젊은이들에게는 스펙을 넘어 꿈이 있다. 꿈은 요셉이, 야곱이, 다니엘이 꿈꿨던 이상이다.

그저 스펙경쟁만 하고, 학교성적 올리기 위해 안식일이고, 진리이고 다 팽겨치면서, 성적 일점만 올리면 인생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고, 좋은 대학만 나오면 인생이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성형해서 얼굴만 예뻐지면, 인생의 팔자가 고쳐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무슨짓을 해서든 돈만 벌면 인생의 목적은 달성되었다고 생각한다면 한번쯤 뒤돌아서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많은 시험을 치룬다. 시험을 보기 위해 좋은 참고서를 여러권 사서 달달 외우고,  시험준비를 잘한다 할지라도 교과서에서 나오는 정답과 참고서에서 풀이하는 정답에는 차이가 있다.  인생의 마지막 시험이 있다. 마지막 체점위원이 합격기준을 정할 정답이냐, 오답이냐는 참고서를 기준하는 것이 아니라,  테스트북을 기준으로 한다. 

테스트북이 바로 성경이다. 모든 교과서의 원조가 성경이다. 지금은 말씀을 읽을 때이다. 이제까지 다른 참고서를 가지고 공부를 했다면 지금부터는 테스북으로 공부해 보자.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있다. 하나님은 말씀을 가지고 심판하신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연구를 많이 하고, 훌륭한 책을 썼다할지라도 사람이 책은 하늘대학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요즘 교회에 다니는 삼십대 이하 젊은 세대는 마지막때에 대해서 별로 들어본 적이 없는 세대들이다. 교회가 클수록, 안에 똑똑하고, 유망한 청년들일수록 들을 기회가 없다. 그들에게 종말기별을 전해야 하는가? 그들이 바로 144.000인의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144.000인은 중보자 없이 그것을 증명해야 존재들이다.

그들은 예수님처럼 완전하게 승리할 자들이다. 그들이 바로 짐승과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다. 사단의 참소를 영원히 침묵시키게 존재들은 가장 악한 세대에서 중보자 없이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킬 있는 백성들이다. 그들은 사단이 6천년동안 쏟아부었던 악과 저주와 온갖 타락한 곳에서 사단의 마지막 고소를 우주앞에 침묵하게 줄것이다.

악은 숙성되어야 하고, 세상은 갈데까지 가야하고, 탁락한 자리에서 마지막 대쟁투가 치열하게 벌어질때 그때에 사단이 이런 상황에서 도저히 나올 없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144.000인이 나올 것이다. 그것때문에 하나님께서 죄악적인 세상을 빨리 끝내지 않으시고 날마다 고통가운데서 참으시고 계시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