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를 숨겨 준 사람> 부제 : 경운기와 자반고등어

1월의 매서운 밤바람과 내리는 눈발이 차가웠지만 산책삼아 마을을
한바퀴 돌아보는 중이었다.
눈보라가 치는 탓에 일찍 문을 닫아 불이 꺼진 가게들 앞을
서성이던 웬 노인 한분이 반가운 듯 다가왔다.

  『혹시 이 마을에 사는 염 순명이란 사람네 집을 아시오?』

노인이 찾는 염순명이란 사람은 약간 모자라는 탓에
나이 서른일곱을  넘기고 있었지만 아직 혼인을 못하였으며,
노환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사람이었다.
다 낡아가는 경운기를 끌고 다니면서 동네일을 해주고 얻는
몇푼 안되는 돈으로 겨우겨우 살아가는 딱한 처지다.
그나마 일을 끝내자마자 일해준 집에 돈을 달라고
성화를 대는 통에 저마다 일맡기기를 꺼리고 있어
어떤때는 때거리가 없어 밀가루 수제비로 몇날을 견디기도 한다.

그의 단순한 머리로서는 돈을 빨리 받아야만 쌀도 사고
생선도 사야하는 급박한 상황인데 왜 일을 시킨 사람이
돈을 즉시 주지않나 하는 것이지만,  일을 시킨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특히 농촌의 품삯 주기란 것이 통상 한달은 보통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봄에 일한 것을 가을추수를 마치고서야
주는 것이 다반사인지라 염순명의 생각과는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거기다가 생각이 모자라는 그는 크고 작은 경운기 사고도
수없이 많이 내어 그의 요란한 경운기소리가 나면
동네 사람들이 겁을 내어 미리 피하기 일쑤다.
그리고 오래된 경운기를 손도 안보고 몰고 다니는
탓에 고장도 자주 난다. 물론 수리센타에서도 수리비를 안주니
고쳐주려고 들지 않아 오랫동안 경운기가 집밖에 마냥 서 있기도 한다.

그래도 그는 소문 안 난 효자다.
병든 어머니를 누구보다 정성껏 모신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면서도 동네 잔치같은 것이
열리면 어떻게든 찾아가서 자신은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남이 뭐라든지 음식을 싸서 들고와서는 어머니에게 맛을 보인다.
돈이 없어 아예 기름 보일러를 들여놓지 못했던 탓에
어깨가 부서져라 삼복에도 쉴사이 없이 나무를 한다.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하여 가끔씩 집에 들러보면 그는
'어머니 관절염에는 방 뜨뜻한게 최고라는데요'
하면서 덜떨어진 웃음을 머금은 채 열심히 군불을 때고 있다.
군불을 아궁이 가득 지핀 다음에는 아랫목에 앉아 있는
어머니의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 주느라 밤마실도 거의 안나간다.
동네 사람들은 손버릇 나쁜 그를 싫어하고 미워하지만
기실 속내를 알고 보면 그렇게 대놓고 미워할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나이많은 노인이,
그것도 이렇게 폭설이 내리는 한밤중에 그런 염순명을 찾는지라
그가 또 무슨 잘못이나 저지르지 않았나 걱정스런
얼굴로 잠시 대답을 못하고 서 있었다.

  『오늘 아침 부산에서 아침 열시 차를 타고
서울과 원주를 거쳐 홍천에 들렀다가 다시
여기 가평까지 왔습니다.
그러니까 꼬박 11시간 동안을 찻속에 있었습니다.』

묻지도 않은 말을 다소 장황하게 늘어놓는 노인의 몸은
겨울밤의 추위에 떨고 있었지만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은
무척 상기되어 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소년처럼 들떠 있었다.
실은 오래전(46년전)에 염순명의 선친에게 은혜를 입은 바 있는데
그 일이 있고 나서 그동안 살기에 바빠서 찾아보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찾아 오게 되었노라고 했다.
은혜갚음을 위해 은인을 찾아 왔다는 노인의 말을 듣노라니
추워오던 마음이 단번에 따스해져 왔다.

   『계십니까?』
염순명이 아껴 기르는 개가 대문밖을 향해 컹컹 왕성한 짖어댔다.
겨울밤, 어둠의 한자락을 찢듯이 잠시동안 요란하던 개짖는 소리 끝에
개주인인 염순명의 얼굴이 대문 틈으로 보였다.
여지없이 염순명은 부엌에서 시름없이 군불을 때고 있었다.
그런 염순명을 따라 쇠락한 대문을 들어서고
남루한 안방 미닫이 홑문을 지나 뒤따라 들어오는
노인의 얼굴은 말할 수 없는 설레임과 안스러움과 궁금함이 뒤섞이는,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는 듯 보였다.

  『염씨 어른의 안어른이 맞습니까?』
다짜고짜 염순명의 팔순 가까워오는 노모를 껴안고
눈물을 글썽이는 노인은 감격에 겨워 있었다.  
한밤중에 자다가 포옹을 당한 노파는 어리둥절하다가,
  『제가 상용이 올습니다. 윤상용이...  6·25때 국군포로가 되어
포승에 묶인 채 북으로 끌려가다가 홍천 잣나무 숲속을 지날 때
요행히 탈출하여 사흘동안 겨울산을 헤매다가 외따로 떨어진
염씨어른네 집에 살려달라고 뛰어들었던 그때 그 사람입니다.
제가 몹쓸 놈입니다. 이렇게 너무 늦은 세월에 찾아와서...
염씨 어르신도 돌아가시고...』
하며 다음말을 잊지 못하는 노인의 말에 염순명의 어머니는 눈을 끔벅이다가

'아하 그때 그 젊은 군인이로군요 그게 언제적 일인데..
그리고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어려울때는 서로 도우는게 인지상정인걸요...
나는 벌써 까맣게 잊어먹고 꿈에도 생각 안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천리길을 찾아오시다니요...'
하며 노인을 따라 양볼위로 금새 더운
눈물을 주르르 흘리기 시작했다.

   『저를 집근처 토굴에 숨겨주시고 나서 이틀후에
염씨 어른댁은 바로 인민군 중대본부로 징발되어
수많은 인민군들이 득시글거렸는데,
두 내외분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그들의 눈을 피해 두달 동안을 하루도 빠짐없이 음식을
날라 주셨습니다.
어떤 세상으로 변할지 모를 오리무중의 불분명한 시절이었는데....
그런 아주머니의 그때 그 고왔던 얼굴은 아직도 그냥 양볼에 남아 있습니다그려...』

    옛날에야 아릿따웠든 어쨌든 지금은 아무리 보아도
병들고 주름진 위에 검버섯마저 피어 젊은 시절의 그 모습은
짐작할 수도 없건만 노인은 눈물을 연신 흘리면서도 아쉬운 듯,
늙어버린 누님을 대하듯, 노파의 두뺨을 자꾸만 어루만지고 있었다.

『전에 사시던 홍천서면에 들러 봤더니 집터도 다 허물어지고 없더군요.
이장에게 물었더니 여기 가평으로 이사를 하셨고,
어르신도 십여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죄스런 마음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제 나이도 어언 칠십입니다.
철도청의 선로잡역부로 삼십여년을 몸담고 있다가
제 안사람이 몹쓸 병에 걸리는 바람에 퇴직하여 받은 돈을
치료비로 죄다 없애버리고 저도 실은 지금 형편은 그리 좋지 못합니다.
그러나 늘 가족들에게 홍천 염씨어른을 찾아뵈어야지
하는 말을 노래하듯 했습니다.
진작 제처와 같이 와서 살아계실 때 어른을 뵈었으면 한이 되지 않으련만...』

  노인과 어머니가 해묵은 회포를 끝없이 풀고 있는 동안
염순명은 졸린 눈을  마냥 껌벅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윗목에 그대로 쓰러져 코를 골기 시작했다.
사십 가까워오는 아들의 코고는 소리가 무어 그리 흡족하고 좋은지
노모는 먼 세월을 건너온 지난날의 귀한 손님을 대하는 사이에도
아들의 자는 모습을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던
흐릿한 눈을 돌려 가끔씩 쳐다보며 만족한 미소를 띠곤 했다.

밤은 점점 더 고즈넉히 깊어가고 눈보라는 쉴새 없었다.
그러나 두 노인의 정겨운 대화는 끝이 없었다.
몰려오는 졸음을 억지로 쫓으려고 애쓰는 방안은
제대로 짝이 맞지 않아 허술한 문틈사이로 들어오는
매운 바람에도 불구하고 더없이 화락하기만 하였다.
그렇게 아름다운 만남은 결국 새벽 두어시가 되어서야 일단 끝이 났다.
굳이 여관에 들겠다는 노인을 집에 모셔다
자리를 봐드리고 건넌방에서 늦은 잠을 청했다.

  이튿날 아침이 되어 노인이 다시 염순명의 노모를 만나
그녀가 한사코 받지 않으려는 돈이 들었음직한 흰봉투를
어렵사리 건네고 아쉬운 작별을 하며 돌아간지 얼마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수리센타에 맡겼다가 수리비(이번에는 큰 구덩이에 빠져 수리비가
백만원 가까이 된다고 들었다.)를 가져오지 않으면 경운기를 줄 수
없노라는 주인의 말에 모자라는 머리를 가진 염순명이
수리센타 앞에 서서 경운기를 찾으려고 종일 울먹이기도 여러번 하고,
아들의 딱한 모습을 보다못한 어머니가 다시 아픈 다리를
이끌고 찾아가 석달후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리비를 주겠노라고
사정을 해도 여러번 수리비를 받지 못한 농기구 수리센타 주인이
내어주지 않아 벌써 이십여일이 넘도록 찾아오지 못했던
염순명의 경운기 내달리는 콰르릉 소리가 어느때보다
요란하게 골목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아마도 그날 염순명은, 갑자기 찾은 경운기로 어딘가에 가서
아직은 그를 미워하지 않는 인정많은 동네사람을 만나
어머니의 어두운 눈에 좋은 비린 자반 고등어 두손을 사고도
남을 돈 이만원쯤은 너끈히 벌었으리라...

  1998년 어느 겨울
홍원근 olo-2l7o-7oo4

끌려가는 국군포로들.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