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지 못하고 예측하지 못했던 선교지의 열매 (2)

신선한 능력 (by Jim Cymbala, ZPC, Jan. 1, 2001)


  어느 날 스웨덴 종교잡지 하나가 그녀의 메일박스에 배달되었다. 그녀는 이 잡지를 누가 보냈는지 알 길이 없었고 물론 스웨덴 말로 된 잡지를 읽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잡지를 뒤적거리다가 갑자기 사진 하나를 보더니 새로운 흥미가 솟구쳤다. 원시적인 배경에 하얀 십자가가 세워진 한 무덤이 있었는데 그 십자가에는 스비아 플러드라는 이름이 새겨져있었다.

  악기는 자동차로 달려가서 곧장 교직원 중에 이 기사를 통역해 줄 수 있는 교수를 찾아갔다. “어떤 내용인가요?” 그녀는 다그치듯 물었다. 

  그 교수는 기사의 내용을 요약해 주었다. 이것은 오래 전에 아프리카 엔돌레라 마을에 머물렀던 선교사들에 관한 이야기인데...백인 아이가 태어났고...젊은 엄마가 죽었고...어린 아프리카 소년이 그리스도께로 인도함을 받았으며...그리고 백인 선교사들이 모두 다 떠난 뒤에 이 소년이 자라서 마침내 추장을 설득하여 허락을 받아 그 마을에 학교를 세웠다는 이야기였다. 이 기사는 이렇게 계속되었다. 이 소년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모든 학생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였고...그 학생들은 그들의 부모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였고...심지어 그 마을의 추장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오늘날 그곳에는 한 마을에 600명의 그리스도인 신자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결과는 데이비드와 스비아 플러드의 희생 때문이었다.

  허스트 부부의 25주년 결혼 기념의 일환으로 그의 대학에서는 선물로 그들에게 스웨덴을 방문할 것을 제안하였다. 거기에서 악기는 그녀의 생부를 찾고 싶었다. 지금은 노인이 된 데이비드 플러드는 재혼을 하여 네 명의 자녀들을 더 낳았고 그는 술로 인생을 달래며 삶을 탕진하였다. 그는 최근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더 비통한 것은 그는 그의 가족에게 하나의 규칙을 만들었는데 “절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지 말라 -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갔기 때문이다”라는 것이었다.

  악기는 그녀의 이복형제들과 정분을 나눈 다음에 그녀의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다른 형제들은 머뭇거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빠가 지금 병상이 심하시긴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 아셔야 할 것은 만일 하나님 이야기를 꺼내면 그는 버럭 화를 내실 것입니다.”

  악기는 그것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허술한 아파트로 찾아가서 술병들이 여기저기에 널려있고 너저분한 침대에 누워있는 73세의 노인에게 다가섰다.

  “아빠?” 그녀는 조심스럽게 아버지를 불렀다.

  그는 돌아누우며 울먹이기 시작하였다. “아이나야 난 너를 그렇게 내버릴 마음은 전혀 없었단다.”

  “아빠, 괜찮아요.” 그녀는 아빠를 부드럽게 그녀의 팔로 감싸면서 말하였다.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셨잖아요.”

  아버지는 이 말을 듣자마자 경직되면서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소리쳤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버렸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 때문에 이렇게 변했다.” 그는 그의 얼굴을 벽 쪽으로 돌려버렸다.

  악기는 아버지의 얼굴을 만지면서 겁내지 않고 계속 이렇게 말하였다.

  “아빠, 제가 말씀 좀 드릴게요. 놀라운 일이 생겼어요. 아빠는 아프리카에 가신 것이 헛일이 아니었어요. 엄마도 허망하게 죽으신 것이 아니었어요. 아빠와 엄마가 주님께로 인도하였던 어린 소년이 마을 사람 모두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였답니다. 아빠와 엄마가 뿌리셨던 하나의 씨앗이 자라고 또 자라났지요. 오늘날 그곳 아프리카 마을에는 600명의 사람들이 주님을 섬기고 있는데 아빠와 엄마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충실하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아빠, 예수님은 아빠를 사랑해요. 그는 아빠를 미워하신 적이 전혀 없답니다.”

  이 노인은 다시 돌아누우며 그의 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몸이 풀어졌으며 그는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날 늦은 오후에 그는 그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원망하면서 살아왔던 하나님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아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음 며칠 동안 이 부녀는 모처럼 따뜻한 순간들을 나누었다. 악기와 그녀의 남편은 곧바로 미국으로 되돌아왔고 - 몇 주 뒤에 데이비드 플러드는 숨을 거두었다.

  몇 년 뒤에 허스트 부부는 영국 런던에서 열린 고급 전도모임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자이레 (전 벨기안 콩고) 국가에서 일어난 보고를 듣게 되었다. 11만 침례 받은 교인들을 대표하는 그 나라 교회의 회장이 그의 나라에 복음이 전파된 사실을 웅변적으로 말하였다. 악기는 보고가 끝난 뒤에 견딜 수가 없어서 그를 찾아가 데이비드와 스비아 플러드에 대하여 들어 본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부인,” 그는 프랑스어로 말하였고 다시 영어로 통역하였다. “저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신 분이 스비아 플러드이십니다. 부인이 태어나기 전에 부인의 부모님께 식품을 배달했던 소년이 바로 접니다. 사실, 지금까지 부인의 어머니의 무덤과 그녀에 대한 기억은 우리 모두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그녀를 껴안으며 오랫동안 흐느꼈다. 그런 뒤에 그는 계속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은 아프리카로 오셔서 보셔야 할 것이 있지요. 당신의 어머니는 우리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악기와 그녀의 남편은 귀빈으로 그 마을을 방문하였고 기쁨이 가득한 마을 사람들에게 휩싸여 환영을 받았다. 악기는 또한 그녀가 원주민 마을에서 선교본부로 요람에 담겨 내려오기 전에 아버지에게 수년 동안 고용되었던 사람도 만났다.

  물론 가장 극적인 순간은 그곳 목사님의 안내를 받아 그녀의 어머니의 무덤의 흰 십자가를 본 것이었다. 악기는 땅 바닥에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 후 그 목사님은 교회에서 요한복음 12장 24절을 낭독하였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리고 그는 다음 시편 126편 5절도 읽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김평안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