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1일 화요일


시에나의 고문 박물관

아침 일찍 로마를 출발했다. 세 시간 이상을 달려서 시에나(Siena)에 도착했다. 시에나에 도착하여 교황 비오 6세가 로마에서 체포되어 프랑스로 끌려가면서 머물던 곳을 방문했다.

이어서 종교재판 고문박물관을 방문했다. 종교재판 당시 고문에 사용하던 기구들이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고문방법이 잔인했고, 묘사한 삽화가 사실적이었다. 너무나 끔찍했다.


데오도릭 황제의 무덤과 동고트의 멸망

오후에 다시 세 시간 정도를 달려서 라벤나로 이동했다. 라벤나는 서로마가 열 개의 나라로 나뉘어진 다음에 세 나라를 뿌리째 뽑아버린다는 예언 가운데 마지막으로 멸망당한 동고트의 멸망을 보여주는 곳이다. 동고트왕 데오도릭의 무덤을 보았다. 천정을 덮은 거대한 돌은 하나의 돌이었다. 그 엄청난 무게를 1,000년 이상을 버티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402년 호노리우스 황제가 서로마 제국의 수도로 정한 라벤나는 역사와 예술로 빛나는 도시이다.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오도아케르가 통치하던 헤룰리에 의해 퇴위한 476년을 로마 제국의 마지막 연대로 보고 있다. 오도아케르는 라벤나에서 왕으로서 493년까지 이태리를 다스렸지만 3년 동안 라벤나를 포위한 동고트의 데오도릭에 의해 오도아케르는 처참하게 패배했다.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아리안 주의 신앙을 신봉하던 헤룰리의 멸망은 교황의 영향력에 의해서였다. 이로써 다니엘서 7장에 언급된 세뿔 가운데 첫 번째 뿔이 뽑혔다. 동고트는 라벤나를 기념비적인 건축물들로 화려하게 가꾸었다. 527년 동로마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즉위했을 때 그의 꿈은 로마 제국의 영광을 회복시켜 정치적 종교적 연합을 이루는 일이었다. 정치는 유스티니아누스의 지도력 안에 통일되었으며, 종교는 교황 아래 하나가 되었다. 이 목적을 성취시키기 위해 유스티니아누스는 단성론의 아리안주의 신앙을 가진 이단을 제국 안에서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그 대상이 반달과 동고트였다. 먼저 벨리사리우스 장군을 북아프리카의 반달로 보내 534년에 반달을 제거했다. 그 다음에 동고트의 영향 안에 있는 이태리를 해방시키도록 명령을 내렸다. 538년, 동고트는 로마에서 결정적으로 패했다. 이어서 라벤나로 진격하여 교황권을 확고하게 세웠다. 이로써 반세기의 짧은 기간 동안 다니엘서 7장에 언급된 작은 뿔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세 뿔들이 모두 제거되었다. 이런 사실들을 보여주는 유일한 대쟁투의 유적지가 라벤나에 있는 데오도릭 황제의 무덤과 침례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