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6 일일요일

아침 일찍 왈덴스인들이 사는 보비오 펠리체를 출발하여 세 시간 반을 달려서 이태리 국경을 넘어 프랑스의 샤모니(Chamonix)에 도착했다. 국경을 넘을 때는 11 km가 넘는(11611m) 긴 터널을 통과해야 했다. 샤모니는 알프스 산맥 최고봉인 몽블랑을 등반하는 이들이 거점기지로 들르는 곳이다. 로마에서는 4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로 더웠었는데 왈덴스인들의 마을에는 20도로 온도가 내려 앉았다. 샤모니의 온도는 더 낮아 지내기 좋았다. 고산지대여서일 것이다. 알프스의 높은 봉우리들이 아름답고 가파른 산에서 흘러내리는 빙하가 보는 이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샤모니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스위스의 제네바에 도착했다. 하루에 세 나라를 넘나들었다. 제네바는 스위스의 불어권 종교개혁의 보루였다. 제네바에서의 종교개혁의 영향은 프랑스와 영국과 네델란드에 미쳤다. 제네바에서의 종교개혁에 영향을 미친 사람은 죤 칼빈(1509-164)이었다. 구약 시대의 신정정치에 감명을 받은 칼빈은 제네바를 모든 교회 사회의 모델로 삼고자 했다. 기독교 윤리에게 있어서 가장 엄격한 도시로 만들고자 했던 칼빈은 춤과 게임을 금지했다. 교황을 죄인이요 성경에서 언급하는 적그리스도로 확신했다.


제네바에서 처음을 찾은 곳은 쌍피에르 성당으로 알려진 칼빈교회였다. 천주교회였던 건물을 제네바시에서 개신교도들에게 넘겨주자 칼빈은 교회건물에서 십자가를 제거하고 교회 안에 스테인드 글라스를 벗겨내고 벽화를 모두 없어버리고 단순하게 만들었다. 천주교회는 백성들이 교육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칼빈은 학교를 만들어 교육을 시켰다. 제네바는 여러 나라에서 종교개혁으로 인해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피난처 역할을 했다.

쌍피에르 성당에 이어서 종교개혁 박물관과 쌍피에르 성당의 지하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을 방문했다. 수세기에 걸쳐서 건물 위에 다시 건물을 지은 건물이기에 맨 아래는 로마시대에 건설되었다. 오래된 침례탕 자리를 보았다. 칼빈이 살던 집 앞을 지나 종교개혁기념광장을 방문했다. 평면 벽에 스위스에서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