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월요일

아침 6시 15분에 짐을 차에 싣고 30분에 식사를 한 후에 7시 15분에 호텔을 나섰다. 호텔은 아름다운 호수가에 있었지만 간밤에 비가 내리고 아침에는 날씨가 흐려 호수 건너편의 몽블랑을 볼 수 없었다.


처음 방문한 곳은 카펠(Kappel)에 있는 츠빙글리가 사망한 곳이었다. 천주교회는 스위스의 종교개혁을 멈추게 하기 위해 갑작스럽게 스위스와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에 군목으로 참여했던 츠빙글리는 1531년 10월 31일 카펠에서 전사했다. 카펠의 외딴 언덕에 비석이 놓여져 있었다.


다음은 취리히에 있는 리마트 운하 옆에 세워진 츠빙글리의 교회(Grossmünster)였다. 츠빙글리 교회는 신성로마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샤를마뉴(Charlemagne) 대제가 건축을 했기 때문에 건물의 남쪽 벽 위에 그리고 지하실에는 그의 상이 있다. 칼빈교회처럼 교회 안의 모든 천주교회의 예술품과 장식품들이 제거되어 있었다. 리마트 운하 쪽으로는 츠빙글리의 문이 있고, 문에는 칼빈의 행적이 부조되어 있다. 칼빈이 설교하는 모습과 그의 설교를 듣고 천주교회에서 사용하던 성상들을 없애는 그림도 새겨져 있었고, 루터와 성만찬에 관한 그들의 이해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도 있었다. 반대쪽에는 성경의 문이 있고 성경의 문에는 10계명과 성부와 성자와 성령과 관련된 성경의 사건들이 부조되어 있다.


츠빙글리 교회를 나와서 교회의 좌측에서 리마트 운하로 대각선으로 만나는 곳에 있는 돌로 새겨진 안내판을 찾았다. 츠빙글리를 추종하는 개신교도들이 재세례파 신자들을 수장시킨 곳이다. 천주교회에 의해 핍박을 당한 종교개혁자들이 개혁에 있어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재세례파신자들을 강제로 물에 빠뜨려 죽인 현장을 보며 마음이 착잡했다. 개신교도들에게 핍박을 받은 재세례파들은 그들 가운데서 안식일 진리를 발견하고 안식일을 지키는 이들을 핍박했다. 로마의 이교세력에 의해 순교자를 낸 천주교회는 종교개혁자들을, 종교개혁자들은 새롭게 진리를 발견하여 한 걸음 더 완성된 진리에 나아가는 이들을 연쇄적으로 박해를 하는 현장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더 많아졌다.


또 다시 국경을 넘어 독일의 국경도시 콘스탄츠에 도착했다. 1414년 교황 23세는 콘스탄츠 종교회의를 소집하여 영국의 개혁자 위클립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의 무덤을 열어 뼈를 꺼내 불태워 시내에 뿌렸다. 같은 회의에서 프라하대학의 총장 허스를 소환했고, 신앙적 뜻을 굽히지 않는 허스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화형에 처해 그의 재를 라인강에 뿌렸다. 1년 후에는 그의 가까운 동료였던 제롬마저 이단으로 규정하고 화형에 처했다. 허스와 제롬이 묵었던 호텔과 두 사람이 화형에 처해졌던 현장을 방문했다. 허스와 제롬은 같은 장소에서 1년을 사이에 두고 화형을 당했다. 두 개혁자가 화형을 당한 곳에 오래 동안 마음이 끌려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