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이 아빠에게 다가온 기적같은 일>
 
    - 우리시대의 심청이
 
오늘(2003.8.3)은 정말 후덥지근 하였습니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휴가철....
서울에서 가까우면서도 경기도에서 가장 맑고 깨끗하기로 정평이 난
가평군 북면 계곡은 사람들로 북적대었습니다.
일요일 오후 두시....

 
가평군 장애인 재활작업장....


(열번 백번 생각해도 가장 멋있는 자격증인 이발사 자격증...
그 작은 기술로 장애우들에게 이발을 해주는 일...
이발을 하는동안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때면 가슴이 기쁨으로 샘솟지요.
다른곳도 갔었지만 장애인 재활작업장도 수시로 찾아가서
장애우들에게 이발을 해주곤 했었습니다.)


재활작업장 바로 아래 과수원 나뭇가지에서
매미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습니다.
 

몸이 불편한 장애우들의 어려운 손길이 닿았을 제품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는
재활작업장안은 오늘따라 퍽 쓸쓸하였습니다.
지금의 어려운 경제사정이 여기에도 예외없이 영향을 끼친 모양입니다.
제법 많은 장애우들이 활기롭게 일을 하던 작업장은
휠체어에 탄 두분의 장애우들 뿐, 한적하였습니다.


아니, 한사람 더 있었습니다.  단발머리를 한 여중생이......
그 여학생은 멀리 경남 거창에서 온, 다리가 불편한 유무연 장애우의
따님(유 다정)이었습니다.


방학을 맞아 아버지가 계신 곳까지 와서
아버지가 하는 일을 도와주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여름캠프다 가족들간의 여행이다하여
놀러 다니기 바쁜 그런 때인데도 불구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아버지를 돕고 있는 정말 효성스런 학생이었습니다.
 

그렇게 종일 일을 해봐야 얼마되지도 않는 품삯일 겁니다.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싱긋 웃는 그 여학생의 두 눈망울이 얼마나 해맑고 순수하던지요.
아버지를 돕는 그 작은 두 손이 얼마나 장하고 아름답게 보이던지요......
가만히 있어도 이마위로 줄줄 흐르는 땀방울에 섞여
감동의 눈물이 함께 흘러내렸습니다.
 

그 아름다운 현장에서 되돌아 나오기 싫어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힘든 발걸음을 걸어나오면서 어린 그 여학생(심청이가 살아온 듯 한)에게
보이지 않는 마음의 큰절을 하였습니다.



(척추에 원인모를 희귀병이 나서 휠체어에 앉아 생활하는
다정이 아버지의 완쾌를 간절히, 정말 간절히 빌고 또 빌었습니다.)


  글쓴날 2003.8.3 저녁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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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원근 형제님께(다정이 아빠의 첫번째 편지)


방학을 맞은 딸이 방학내내 제 곁에서 나를 돌보아주다가
어제 제 어미가 있는 고향 거창으로 떠나갔습니다.


딸아이가 가버리고 나니 허전하고 쓸쓸하고, 마음 한구석이 텅 빈것 같습니다.
딸아이가 방에 있는것 같고 "아빠"하며 웃으며 뛰어 나오는 것만 같습니다.


아아....
나이 들어갈수록 혼자 있는 외로움은 그 깊이를 더 하는것 같습니다.
제 딸은 나의 전부입니다.
제 딸이 제 아내의 뱃속에서 5개월 정도 됐을때
갑자기 제가 몹쓸 병에 걸려 이렇게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한번도 업어주지 못했고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했습니다.
남들이 흔히 하는 목마도 못태워 주었고,
운동회때 손잡고 같이 한번 뛰지도 못했습니다.


그래도 딸아이는  못났지만 저를 무척 따랐습니다.
친구들에게 당당하게 아빠를 소개하고 자랑도 하며
지금까지도 아빠가 이 세상에서 최고인줄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제까지 애비로서의 아무런 노릇도 못했고
딸에게 상처만 심어주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사실 수년전에 이혼을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되고나니 아무런 경제적인 보탬이 되지 않았지요.
너무 심한 가난이 이유였습니다.
그때 딸애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
사랑하는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곁을 떠난다는 것이 꼭 죽는것만 같았습니다.
아무런 대책없이 나도 모르게 종일 눈물만 나왔습니다.
 

딸이 눈치를 챘는지,
 "아빠 어디 가?"
하며 묻길래,
목메임을 억지로 참고,
"으응?.... 아빠 돈벌러 좀 멀리 가..."
했더니,
여기서 돈벌면 안되느냐고 되물었지요.
여기는 장애인을 쓰는 데가 없어서
장애인이 필요한 곳으로 가야 된다고 했지요.
 

이튿날이었습니다.


그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인 딸아이는 온 동네를 다니며
"우리 아빠 취직 좀 시켜주세요. 제발요...."
하며 공장이건 가게건 눈에 보이는 대로 찾아 다니며
울며불며 사정을 하였다고 합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그런 사실을 듣고
제 눈에서는 말로만 듣던  피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방학이 끝나 어제 떠나간 사랑하는 딸아이가 금방이라도 웃으며
저 문으로 뛰어 나올것만 같습니다.
 딸아이가 칼로 가슴을 저미듯,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    가평군 장애인재활작업장에서-
  2003년 8월20일     
못난 사람 유무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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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원근 형제님께(다정이 아빠의 두번째 편지)


새해복 많이 받으시고요.
지난 여름에 제글을 방송국 사이트에 올려주셔서 덕분에 인간극장을 촬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로서 20일간의 마지막 촬영을 마쳤습니다
촬영을 하면서 담담 PD가 제 병에 대해서 진찰을 받아보자고 하여
(촬영 일정에 잡아 놨다고 하네요)할 수 없이 국립의료원에 별 기대도 없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정말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수술하면 좋아질 수 있다는 천만뜻밖의 말을....
너무 놀랐지요.
촬영이 끝난 후에 수술을 할 예정입니다.
인간극장에 출연하는 바람에 제 병을 다시 진단받게 되었군요.
지금 기대감에 많이 가슴이 많이 떨립니다.


미리 연락드려야 하는데 갑작스럽게 촬영하는 바람에 일정에 쫒기다보니
소식을 늦게 전해드렸습니다.
죄송하고요.
고맙습니다. 
 

방송은 2004년2월 16일(월)부터 20일(금)까지
KBS 2 TV 매일밤 8시40분 부터 9시10분까지이고
방송 제목은 '다정이의 겨울' 입니다.  
 

2004.1. 20 유무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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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정이 아빠에게 생긴 기적
 

다정이 아빠는 그후 2004년 4월 1일 목요일 서울 청담동 우리들 병원에서
다섯시간에 걸친 수술을 성공리에 받았습니다.
그리고 수술후 일주일이 지난 4월7일 16년동안
자력으로 되지 않던 소변을 자신의 힘으로 보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기쁜지요.
그 반가운 소리를 듣고 너무나 기뻐 펄쩍 뛰었습니다.
 

그동안은 호스로 소변을 보아 왔습니다.
그 고통과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하는데....
아아!! 
 

바늘로 찌르듯 쑤시던 하반신의 저림 현상도 깨끗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16년 동안 하반신의 감각이 제대로 돌지 않던 다정이 아빠는
하반신 감각이 되살아나서 너무나 좋아 합니다.
그야말로 잃어버렸던 하반신을 되찾았다며 웃다가 울다가.....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쓰지 못하여 완전히 돌아올 지는 미지수 입니다.
그래도 다정이 아빠는 비록 힘은 없지만 감각만이라도 돌아오고
우선은 저리지 않아서 너무 좋다며 그 사실만으로라도 새로운 삶을
사는 것 같다고 뛸듯이 좋아합니다.


얼마나  감사한 마음이 드는지 모릅니다.
 

걱정해 주신 모든 이들에게도 이 기쁜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2004.4.8


* 다정이 아빠에게 제가 해 준건,
  이발 몇번 해주고 잠깐 시간을 내어 다정이 아빠의 딱한 사정을
  방송국 싸이트에 올려준 그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커다란 기쁨이 돌아왔었지요.

 
장애우나 불우한 이웃들에게 작은 손이라도 내밀면
  그 작은 손길이 장애우들에게는 뜻밖의 큰 힘으로 작용한다는 걸
  느꼈던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