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선교 보고


1) 나라 소개와 종교 현황


카자흐스탄 나라는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나라로서, 270만 제곱킬로미터의 면적을 가졌으며 세계에서 9번째로 큰 나라이며, 대한민국의 약 27배나 더 큰 나라입니다. 면적이 서유럽 전체와 비슷합니다. 카자흐스탄은 대부분의 지역이 평야이며, 서쪽에는 카스피 해가 위치해 있습니다. 남쪽은 건조 기후에 속해 있으며 동쪽은 산악 지역에 속해 있습니다. 주요도시로는 1998년에 새로 수도가 된 아스타나가 있으며, 이전 수도였던 알마티가 경제의 가장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는 이슬람교가 47%, 러시아 정교회가 44%, 개신교가 2%, 기타 7%등이 되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카작인들의 신앙은 실제적인 삶에서 그다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 채 형식적인 의례와 명목만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이슬람은 공개적인 국가이념으로서 설파되며 모스크의 숫자는 계속 증가해가고 있습니다. 독립 이후, 카작인들이 새로운 지배계층을 형성하면서 이슬람화에 대한 우려가 짙었으나, 카작스탄은 개방적인 시장경제를 추구하며 서구의 자본과 사상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중앙아시아 국가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카작스탄에서도 선교의 문이 열리면서 놀랄만한 기회와 결실이 있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경제 제조업 보다는 수출의 90%이상을 원유와 가스등 천연자원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국 평균 GDP는 1인당 5083달러이지만 천연자원 개발 등으로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인종은 카작인이 50.65%, 러시아인이 32.19%, 우크라이나인이 4.54%, 우즈벡인이 2.26%, 독일인이 2.4%, 타타르인이 1.75%, 벨로루시인이 0.93%, 고려인이 0.5%이며 그 외 타민족이 7.96%를 이루고 있습니다.


2) 한 많은 고려인들의 아픔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는 1937년 연해주에서 강제이주 당한 18만의 고려인동포들이 이주해서 살고 있는 땅입니다. 같은 동포인 고려인들의 애환은 눈물없이 들을 수 없으며, 힘이 없는 나라의 설움과 늘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아픔과 고초는 이 땅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한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는 망향이 베어 있으며 누구도 지울 수 없는 나그네의 설움이 가슴에 새겨져 있습니다.


“1937년에 소련정부는 한국인의 모습이 일본인과 비슷해 일본과의 전쟁에서 구분이 안 되고, 또 일본의 간첩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해서 신한촌과 그 주변지역의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시켰습니다. 강제이주 한인들의 수자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16만 8000여명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도중에 굶고 병들고 해서 5분의 1의 한인들이 처참하게 숨졌습니다. 5명중의 한명이 도중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강제이주로 기차에 실려진 역은 바로 블라디보스크에서 우스리스크로 가는 도중에 있는 라즈돌로예 역이었습니다. 이 역에서 한인들이 강제로 기차에 몸을 실어야만 했는데 그것도 여객 열차가 아니라 화물차였습니다. 정부의 명령에 의해 고려인들은 하루아침에 살던 집을 떠나야 했고, 떠날 때 살림살이조차 챙기지도 못한 채 시베리아의 무서운 찬바람을 맞으며 화물차에 올라야만 했습니다. 당시 고려인들은 사전에 어디로 간다는 통보조차 없이 화장실은 물론 마실 물 한 모금 없는 화물차에 빼곡히 실려 짧게는 30일, 길게는 50여일을 거쳐 이주했습니다.


현지 고려인들에 따르면, 강제이주 된 고려인들은 말과 소를 운반하는 화물열차 1칸에 80명 정도를 탑승시켰는데 물도 없고 화장실도 없었으며, 기차가 서면 기차 밑에다 대소변을 보고 급하면 한쪽에 뚫어있는 구멍에 대고 소변을 보면서 주행했다. 더욱 어린아이들이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하루아침에 강제이주를 당하다보니 먹을 것도 미처 챙기지 못했고, 챙겼다고 해도 기나긴 여정에서 식량이 떨어질 것은 당연했습니다.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게 되자 고려인들은 기차가 서면, 인가에 뛰어 들어가 먹을 것을 구해 먹기도 했고, 이렇게도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 고려인들은 도중에서 굶어 숨졌습니다. 특히 어린이들과 노약자들이 수없이 숨졌고 임신부는 화물차에서 아기를 낳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생사를 넘나들며 도착한 지역은 중앙아시아의 허허벌판 이였는데, 지금은 독립이 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지역입니다. 풀 한포기 나지 않는 사막지대이라 먹을 것이 없는 땅에 내버려진 고려인들은 땅굴을 파 거센 눈보라와 추위를 피하면서, 집을 떠나기 전에 조금씩 챙겨온 식량을 서로 나누어 먹으며 생명을 지탱했습니다. 한편 이주 초기 어린이와 노인 1만여 명이 토질병과 추위에 견디지 못해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집도 없고 가구도, 농기구도 돈도 없이 땅굴을 파고 추운 겨울을 난 이주민들은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민족특유의 악착스러운 의욕으로 황무지를 옥토로 개간하면서 겨우 생명을 연장해서 오늘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3) 전도회보고


작년이어서 올해도 미주협의회 선교부의 도움으로 우시찌카메노고르스크 도시(동 카작스탄)에서 전도회를 개최했습니다. 미국에서 강사로 양일권 목사님(백투에덴선교단)과 엄용호 목사님(후레즈노교회), 정정숙 사모님
(한의사), 카렌 조(오레곤교회 교우님)가 오셨습니다.

전도회 기간은 11월 29일부터 12월 7일까지였습니다. 평신도로 교회를 섬기고 있는 안드리 장로님는 매 년 마다하는 전도회 저녁 집회에 참석하는 인원은 50명가량 된다며, 우리에게 적은 인원 올지라도 실망하지 않기를 당부하며 큰 기대는 하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이루신 놀라운 기적들을 경험하였습니다. 회교권 국가로 개신교 종교집회를 억압하므로 전단지를 뿌리지 않고, 단지 교인들의 준비된 구도자들이 참석했습니다. 5일 동안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진료 봉사하는 동안에 260명 이상의 환자들을 진료하였으며, 건강세미나, 과일식 처방, 침, 뜸, 부항으로 하나님의 치유의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혈압이 227이상이었던 사람이 그 다음날엔 정상으로 돌아오고, 만성두통으로 잠 이루지 못한 사람이 밤새 편안히 잠을 청할 수 있다고 하며, 알러지와 전립선으로 새벽에 화장실을 5번 이상 꼭 가야 하던 것이 2번으로 줄여서 편안하게 잠을 이루수 있었다고 합니다. 새로운 건강기별과 복음의 소식을 듣고 감격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예레나 교회집사는 이 집회에 25명의 구도자를 인도했으며, 매 저녁 집회마다 90명이상 참석하였으며, 회중 중에 50명 이상의 구도자였습니다. 이 결과 18명의 신앙 결심자와 6명의 침례자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모든 영혼들이 하나님의 귀한 사랑과 은혜를 경험한 집회였습니다.


카자흐스탄 재림교회의 현황은 이 나라에 두 합회, 즉 남 합회와 북 합회로 조직되어 있습니다. 지난 11월19일 총회에 다시 남 카자흐스탄 합회장으로 재선된 고려인 4세 알렉 김목사는 고려인 선교와 현지 모스렘 카작인 교회를 개척 세우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필자가 12년 전에 천명선교사 시절에 개척한 따라스 고려인 교회와 올해 합회에서 개척한 딸드구르간 카작인 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넓은 영토에 재림교회는 너무나 연약합니다. 이 나라의 교인 전체의 수는 3,500명 정도가 되며(남 합회 1,500명, 북합회 2,000명) 교인의 수가 계속 감소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왜냐면 교인들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러시아인들과 독일인들이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현재 교회 구성원의 교인들의 신앙은 10년-15년 어린 교회이며 목회자들도 경험이 부족한 젊은 목회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모스렘 사람들은 교회 문을 들어서기를 꺼리지만, 자신의 질병을 치료받고자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함께 인도해오곤 합니다. 모스렘 사람들이 교회를 꺼리고 편견을 갖고 있는 마음을 그리스도인의 진실한 사랑의 봉사와 헌신으로 녹였습니다. 그들의 필요를 채워줄 때 그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귀를 귀울이게 됩니다. 카작인 모스렘은 강경파가 아니며, 또한 자본 경제 발전로 인해 세속화로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열려있는 상태입니다. 카자흐스탄 연합회에서는 모스렘 카작인들을 전도해서 선교사로 훈련해서 다른 나라에 파송하는 계획도 하고 있습니다. 중앙아시아 나라가운데 가장 종교 자유가 보장된 나라가 카자흐스탄입니다. 이 자유가 닫히기 전에 회교권과 고려인 선교에 우리의 복음이 신속하게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이 열려있을 때 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은 전도 집회였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보람되고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전도회 선교자금을 후원해 주신 미주협의회와 시카고 중앙교회 교우님과 김성식 목사님께 지면으로 감사 인사드립니다.

지난 선교사의 생활을 5년을 돌아보면, 선교지에서 하나님의 돌보심과 축복을 더 많이 경험했습니다. 순간 순간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주셨습니다. 북아태지회에서 PMM 선교사를 2009년 카자흐스탄과 2010년 키르기즈스탄에 파송할 계획입니다. 또한 볼티모어 교회 김수명 장로님의 후원으로 카자흐스탄 남합회 선교지를 위해 영어학원 설립하였으며 4개월 동안 운영했던 이교준 목사님(현지합회 채용)이 남 카자흐스탄 합회에 영어학원을 기증하였습니다. 영어학원이 더욱 선교지에 영혼을 구원하며 선교 재정을 돕을 수 있는 기관으로 더욱 발전되기를 확신합니다. 선교사역은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협력해서 마지막 사업인 하나님의 사업을 마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없었다면 오늘까지 이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참으로 많은 후원자들로 통해 선교지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은 혼자 다 이루기보다는 더 나은 선교지의 발전을 위해 길을 닦고 준비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 여겨집니다. 저가 떠날지라도 더 큰 후원자들인 북아태지회 PMM 선교사, 미주협의회에 속해 있는 한인교회와 백투에덴 선교단 등이 있어 마음 든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중한 합회를 통해 열악한 선교지를 돕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신 것 같습니다.

내년 2월이면 다시 동중합합회로 돌아가서 새로운 임지에서 새로운 사역이 준비해야할 시간이 이르러 온 것 같습니다. 선교사로서 마지막의 전도회를 마감하니 감회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내년 2009년, 중앙아시아 선교지에 더욱 활기찬 영혼 구원 사업이 계속될 것입니다. 
백투에덴 선교단과 마운틴 뷰 청년교회가 전도회와 청년 연합 야영회를 도울 있을 예정입니다.
키르기즈스탄 합회 요청으로 마운틴 뷰 청년영어 교회(김기웅 목사님)에서 비쉬켁 교회 연합 전도회(날짜: 7월중 미정)와 청년 연합 야영회(장소: 이스쿨호수, 날짜: 7월중)는 카자흐스탄 남합회와 키르기즈스탄 합회 함께 협력해서 개최할 계획입니다. 또한, 2009년 9월22일 - 10월 6일 카자흐스탄 남합회 지역의 전도회는 세 도시에서 동시 다발이 시작할 것입니다. 전도회 도시와 강사는 따라즈 도시(강사: 양일권 목사님), 그즈라르다 도시(강사 : 김성식 목사님), 세메예(강사: 김계정 목사님) 입니다.

선교지의 복음 사역이 꺼지지 않도록 더 많은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지난 5년 동안 중앙아시아 선교지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동중한 합회와 미주협의회와 기도와
재정으로 후원해주신 교우님께 감사드립니다.

P.S: 우시찌카메노고르스크 전도회 활동 사진을 함께 올립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최 충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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