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댁>
   환갑 넘은 나이에도 젊은이들 못지 않게 힘이 세기로 유명하고,
 거친 농삿일도 겁내지 않고 남정네들 보다 더 잘하여 오래 장수할 것 같던 하동댁은,
사람들 주변을 늘상 맴돌면서 뭇사람들의 목숨을 넘보고 있던 소리없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는 속수무책이었던지,
골골하던 영감보다 오히려 더 일찍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먼먼 천릿길,
진주 지난 하동 화갯골,
그야말로 인심좋고, 경치좋고, 재첩 많이 나고, 차밭 많고, 지리산 지척에 있고,
바다도 그리 멀지 않아서 좋았다는 처녀시절 친정집 이야기를 자나깨나 쉬지않고
잘도 떠들어 대며 자랑을 하면서도,
밤낮없이 바쁜 살림살이 탓에 시집온 후로 두어번 밖에 다녀오지 못한
고향을 아쉬워하던 힘세고 인정많던 하동댁이 갑자기 죽고 나자,
그녀가 없음을 아쉬워하는 소리는 '왈가당 왈강' 소리가 나는 디딜 방앗간에서부터 먼저 들려왔다.


  "아이고, 하동댁이 없어서 이 많은 보리방아를 어찌 찧을꼬?"
  "늦여름 메밀방아는 어떡하나?"
  "철마다 지내는 제삿상에 놓을 떡방아는 또 어떡하고?..."  


  원채 재빠른 하동댁은 후다닥 집안 일을 마쳐놓고 남들이 떡방아를 찧고 있으면
달려와서 훌렁훌렁 방앗품을 같이 판다.
옆에서 방아 다리를 맞추던 다른 아낙은 도저히 힘센 하동댁의 방아는
못따라 맞추겠다며 댓돌 위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린다.
그러나 하동댁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마당 귀퉁이에 놓여 있는
무거운 서답돌(빨래할 때 빨래판처럼 밑에 받치는 돌)을 머리에 이고
혼자서 방앗공이를 계속 들어 올렸다 놓았다 한다.
그러면 오히려 둘이서 찧을때보다 방앗공이는 더 빨리 올라가고 내려온다.
따라서 방아찧는 소리도 '왈가당, 왈강'에서 '왈강왈강, 왈왈' 로 바뀐다.
방앗머리에 앉아 방아확에 손을 넣어 곡식을 뒤집던 아낙과 댓돌에서 쉬던
두 아낙은 서로 쳐다보며 기가차서 혀를 훼훼 내두르다가, 웃다가 한다.


하동댁은 떡쌀을 빻은 다음 가는 체에
그것을 넣고 칠 때도 오른손에 체를 잡고
쳇바퀴를 왼손바닥에 '타닥탁, 타닥탁' 듣기 좋은 소리로
부딪혀 가며 얼마나 빠르게 치는지 몰랐다.
그리고 키질도 사뿐사뿐 남들보다 더 재빠르게 하건만
곡식 알갱이는 한알도 키밖으로 나오는 법이 없었다.


   하동댁 아쉬운 소리는 콩밭에서도 들렸다.
콩밭을  매던 아낙들이 시퍼런 뱀을 만나면 너나없이 놀라서
밭 주인에게 나중에 꾸중을 듣던 말던 날 살려라 호미도 팽개치고
콩대궁을 짓밟으며 마구 달아난다.
그러나 하동댁이 살아 있을때는 뱀이 나오면 아낙들은 저마다,
 "하동댁아, 여기 뱀이다 뱀."
하였다. 그러면 하동댁은 소매를 팔뚝위까지 걷어 올리고서는,
 "어디? 어디?"
하며 호미를 곧추잡고 앞으로 나선다.
곧 이어 도망가던 얼빠진 뱀은 용감무쌍한 하동댁의 호미 끝에
잡혀 꼼짝 달싹 못하게 된다.


"나 잠시 집에 내려갔다 올께 -"

하동댁은 뱀을 잡아 싸리광주리에 넣고 집으로 들고
내려가다가 뱀이 광주리 위로 나오려 하자 광주리 주둥이를 잡고
휘휘 원을 그리며 광주리를 돌린다.
그러면 뱀은 원심력의 법칙에 의해 광주리 안쪽 끝으로 쏠린 채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싸리광주리 잡은 팔을 쉴 새 없이 돌려가며 집까지 온 하동댁은
광주리 위를 삼베 보자기로 덮은 다음 얼른 새끼줄을 꼬아 동여서
뱀을 못나오게 해 놓는다.
 

이어 광안으로 들어가 술독 위에 멍석, 망태기 등속을 올려 놓고
몰래 숨겨 만든 막걸리를 한 바가지 퍼 마신다.
남들이 보기에 억세보이는 하동댁도 그러나 역시
여자의 몸이라 뱀이 광주리 위로 고개를 쏙쏙 내밀때에는
겁이 나서 소름이 쪽 끼쳤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다시 쌀독 아래를 흐뭇한 표정으로 한참 바라본다.
(쌀독 아래의 이야기는 나중에 나온다)
그런 다음 또 부지런히 콩밭을 향해 달려가 남들이 한고랑 맬 때
족히 두고랑 가까이 매곤 하는 솜씨를 여지없이 발휘하여
다른 아낙들을 또다시 탄복하게 만들었다.


콩이 익은 다음에  멍석을 깔고 도리깨로 콩타작을 할때도
도리깨를 워낙 힘있게 돌려 때리는 통에 도리깨자루에서
'휘지직, 휘직직'하는 기분좋은 소리가 나며 콩깍지는 쩍쩍 잘도 갈라졌다.

(한편, 그날 운없게 하동댁에게 잡혔던 뱀은 읍내 뱀장수와의 약간의 실랑이 끝에 50환에 팔렸다.)

 힘세고 행동이 빠른 하동댁은 아낙네들끼리 산에 봄나물을 하러 가면,
으레 이렇게 서두를 꺼낸다.

 
"어이-, 우리 먼저 담배 한 대 먹고 올라가자 -"
그래놓고는 허리춤에 찬 담배쌈지에서 담배부스러기를
꺼내어 갈잎에 말아 부싯돌을 딱딱쳐서 담뱃불을 붙인 다음
늘어앉은 나물꾼들에게 쭈욱 돌린다.
그 다음에는 소피 보러가는 척 하면서 슬쩍 다래덩쿨 속으로 들어간다.
그런 다음 나물하러 올라 갈 산을 한달음에 뛰어 올라가
어디에 나물이 많고 적고를 죄다 살펴보고 난 다음에
 헐레벌떡 다시 달려 내려온다.
 담배를 피면서 한참 수다를 떨던 아낙들은 한참만에 땀을 뻘뻘 흘리며
다래숲에서 나오는 하동댁을 보며 의아해 한다.
그렇게 억척같이 나물을 하니 하동댁의 나물 보따리는
나물철이 돌아올 때마다 남산만하게 되어 나물이 철철 넘쳤다.

 
하동댁 남편 정영감도 젊어서는 부지런하였다.
 달이 훤하면 앞뒷밭의 김매기는 예사로 하였다.
밭을 매면서 총각이던 정영감은 가끔,
 "허어, 하늘님은 왜 쓸데없이 밤을 만들어서 남 밭도 못매게 하시는고.."
하였다.


그렇게 농사를 짓던 정총각은 오백석지기를 하는 부자삼촌 정선달이
그해 가을 추수를 끝낸 어느날,
이전부터 별러온 팔도 유람을 나서면서 같이 가자는 바람에 얼떨결에 따라 나섰는데,
두사람의 발걸음이  부산, 마산, 남해를 거쳐 하동포구를 지나 여수를 향하다가,
'천하명산 지리산을 안 보고 가면 팔도유람 했다는 소리를 못하느니-'
하는 남들의 소리를 상기한 삼촌이 먼저 지리산쪽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어 정총각도 그 뒤를 따랐다.

  맑디 맑은 섬진강은 느지막히 흘러가고 있었는데,
때마침 잔잔한 바람을 받은 섬진강은 수많은 물이랑을 만들고 있었고,
눈부신 늦가을 햇살은 그 물이랑 위에 내려와 은어 비늘처럼
아름다운 형상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러한 강 풍경에 취해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늦가을이라 물이 차가운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홀로 재첩을 건지는 하동댁을 만나게 되었다.


'저만한 처녀라면 족히 우리 정씨가문 종갓집 맏며느리 감으로 손색이 없겠다'며
무릎을 탁 친 삼촌이 화갯골 주막에 여장을 풀고 며칠동안 현지에서 매파를 놓았는데,
하동댁의 친정어머니가 시집이 너무 멀어서 싫다하며 반대를 하는 통에
자칫 혼인이 되지 않을 뻔 하였으나,
수완좋은 삼촌이 어떻게 하였는지 결국 하동댁을 조카며느리로 삼았던 것이다.


  하동댁은 시집온 첫날은 새댁답게 색동옷 입고 흰 무명 앞치마 두르고
조신한 태도를 보이더니,
그 다음날부터는 한 십년은 족히 시집살이를 해온 것처럼 팔을 걷어 부치고
온갖 집안의 잡다한 일은 물론이거니와 힘든 농삿일을 남편과 똑같이 하는 것이었다.
아니 하동댁은 남편보다 한술 더 떠 달이 없는 그믐날 밤에도
그야말로 눈에 불을 켜고 밭을 매고 거름을 내곤 하였다. 그리하여 이런 말이 만들어졌다.


"밤이 왜 생겼노 -"


무슨 말인고하면 정영감을 만나러 멀리서 찾아온 사람이 도중에
정영감의 함자를 잊어먹어 집을 못찾게 되면,
정영감이 사는 동네 초입에 들어서서 아무나 붙잡고,
  "밭도 못매게 만드는 밤이 왜 생겼노? 라고 하는 내외가 사는 집이 어디요?"
라고 물으면 정영감네 집은 저절로 찾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날 볏짐 지게를 지고 논두렁길을 걸어오던 정영감이
발을 헛디뎌 도랑에 엎어져 허리를 크게 다쳐 자리보전을 하고
드러눕게 된 다음날부터 아예 집안의 모든 일은 전부 하동댁의 몫이 되었다.
하동댁은 오히려 당연한 듯 집안 일을 더 열심히 하였다.


"내가 이렇게 튼튼한 것은 전부 우리 친정동네 앞
섬진강에서 나는 재첩을 많이 먹어 통뼈가 되어서 그렇다오"
하며 늘상 얼굴에는 웃음꽃을 활짝 피워가며 아픈 남편을 잘 보살피며 살았다.
물론 시부모님과 홀로 남은 시조모님을 친정 부모님과
 친정 할머님처럼 지성으로 받들어 모시며 효성을 다하였다.
그리고 이웃과도 참으로 인정있게 지냈다.


 해마다 추수를 마치고 나서는 밤이 이슥할때를 기다려
광속으로 들어가 여러자루에 쌀을 퍼담아 찢어지게 가난한 집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뒷뜰안에 도둑처럼 몰래 몰래 쌀자루를 던져 놓고
누가 볼 새라 날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쌀을 나눠줄 때에는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을 조심스레 깨워 데리고 다니면서,
 "우리가 쌀 줬다는 말을 하면 절대 안된다? "
하며 참다운 이웃사랑을 가르쳤다.



하동댁은 색다른 먹을거리가 있으면 자주 자주 담너머로
이렇게 소리 소리치기도 하였다.
"이봐라. 영일댁, 이거 빨리 받아라. 팔 빠진다."


늦여름 어느날 불볕 더위가 끝나갈 무렵 갑자기 규모가 큰 태풍이 밀어 닥쳤다.
밤새 발빠른 바람이 불고 비가 억수같이 오고 개울물은 덩달아
황톳빛으로 너울거리며 급히 내려 가고 있었다.
소도 떠내려오고, 닭도, 넝쿨호박과 세간들도 분간없이 마구 떠내려 왔는데,


"어이구, 저기 저것이 사람이 아닌가?"
물구경을 하던 동네 사람 하나가 다급히 소리치는 쪽을 보니
누군가가 서까래 뭉치를 결사적으로 붙들고 떠내려 오면서
살려달라고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사람들이 말릴 사이도 없이 하동댁은 주저없이 쳐다만 보아도
현기증이 이는 탁류에 거침없이 뛰어 들었다.


 "아! -"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하동댁은 이미 육순을 넘기고 있었는데,
잠시 자기 나이를 잊은 듯,
사람들의 탄성을 뒤로 하고 처녀적 섬진강에서 익힌
능숙한 헤엄 솜씨로 개울물을 가로 질러가고 있었다.
연이어 잠깐사이 서까래 뭉치를 붙잡았고,
뒤이어 필사적으로 강 가장자리를 향해 얼마쯤 헤엄쳐 오다가
그만 큰 바윗돌에 머리를 부딪고 말았다.


하동댁은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급박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
서까래에 매달려 생사의 기로에 섰던 사람은 황망중에도
용기를 내어 자신을 구하러 온 하동댁의 뒷덜미를 재빨리 꽉 잡고 놓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찌하여 얕은 쪽으로 두 사람이 밀려나오자 강변을 뜀박질하여
두사람을 뒤따라오던 동네 사람들이 달려들어 두 사람을 황급히 끌어 내었다.
그러나 하동댁은 이미 많은 피를 머리에서부터 흘리고 있었고,
그리하여 반넘어 죽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을 헤집고 허
비틀거리면서도 허겁지겁 정영감이 하동댁을 안았을 때 그녀는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 쉬다가,
안간힘을 다하여 남편에게 두서너마디 유언을 하고는 어이없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종친들이 초상집에 모여 화장(火葬)을 하면 양반 법도에 어긋난다고
뻐끔담배 피는 장죽으로 놋잿털이가 부서져라 쩡쩡 두드리며 반대를 했지만,
하동댁의 시신은 그녀의 유언대로 결국 화장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편의 손에 의해 살아 생전에 그렇게 가고 싶어하던 친정땅 하동,
섬진강 푸른 물(여전히 재첩은 물속에 지천이었다)
위를 점점이 흘러가는 한줌 재가 되었다. 


  하동댁을 물위로 띄워보낸 정영감이 처연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그녀의 또다른 유언대로 괭이로 광안의 쌀독 밑을 파보니
한지로 정성스레 싼 보자기 열 한개가 나왔고,
그 보자기들 마다에는 돈이 소복하였다.


그 보자기는 평생을 검소하고 부지런하고 인정많게 살아오던 하동댁이
자식 다섯에게와, 이미 살림을 따로 내어준 다섯 시동생들을 위해 차곡차곡
돈(뱀팔고, 나물 팔고, 디딜방아 찧어 받은 품삯 등 남보다 더 부지런하게 하여 억척같이 모은)을
모아둔 보자기였는데,
또 한편으로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따사로운
마음도 넉넉히 준비되어 있었다.
보자기 속 한지에는 숯검정으로 썼음직한 서투른 언문이 각각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컨 아 그,    두쩨 그...     컨 데러임 그... 읍는 사람덜 그...
 (큰 아들 것, 둘째 아들 것...  큰 시동생 것... 어려운 사람들 것...)

  
   하동댁의 부지런함과 이웃 사랑하는 후덕한 인정은
 다섯 자식들에게 집안 가풍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하동댁을 알고 있고 오래 나이 들도록 살았던 사람들은
그러한 정씨 가문의 자손들이 다들 훌륭히 한몫을 하며 사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집안이 대대로 내려가면서
끝없이 번성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