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림교회의 초창기에 2대에 걸쳐 세명의 목사가 한국교회를 섬긴 집안의 이제명 목사가 주님 품 안에 잠들었다.

미주한인교회협의회 회장 권오영 목사가 북아태지회장 이재룡 목사에게 전해 온 이메일에 의하면 향년 101세의 이제명 목사가 지난 2월 18일 미국 테네시 주 자택에서 운명하였으며, 3월 30일에 안식일 오후에 아틀란타 있는 조지아 연합교회에서 추모 예배를 드리기로 했으며 지회장의 참석 여부를 물어왔다.

 

이제명 목사(James Lee)는 1910년부터 36년까지 평양 근교 순안 의명학교의 교장과 교사로 봉직했던 이희만 목사(Howard M. Lee) 목사와 어머니 Carrie Scott 사모의 아들로 1912년 9월 21일 평안남도 순안에서 태어났다. 할머니 Lilian Lee도 의명학교 교사로 일했으며, 이모 May Scott은 한국 최초의 여자 교육자로 알려진 May Scott으로 1908년부터 1940년까지 평생을 의명학교 교사로 섬겼다. 그의 작은 아버지 Fredrick Lee 목사 역시 선교사로서 중국에서 1909년부터 1935년까지 섬겨며 중국 교회의 기초를 놓는데 일조를 했다. 이제명 목사의 동생 Daniel Lee (이단열)는 형의 뒤를 이어 1954년부터 1960년까지 삼육신학원장으로 봉직했다.

 

이제명 목사는 1928년부터 1930년까지 중국 상해의 원동 아카데미에 유학했고, 1930년부터 1934년까지 캘리포니아 라시에라 대학, 1935년부터 1937년까지 퍼시픽 유니온 칼리지에서 수학했다. 학업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1938년부터 1940년까지 서울의 시조사에 봉사했고, 1940년부터 21942년까지는 필리핀 웨스트 비사얀 아카데미 교장으로 재직하다가 2차 대전을 맞아 일본군에 의해 체포되어 1942년 4월 20일부터 1945년 2월 23일까지 거의 3년 동안 감옥과 포로수용소에서 갇혀지냈다.

 

1945년과 1946넌에는 미국 워싱턴주 왈라왈라 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1947년 4월에 미군정청 고문이던 원륜상 목사의 도움으로 현재의 삼육대학교 부지를 찾아 삼육대학교의 터전을 마련하게 되었다. 1952년부터 1954년까지 초대 삼육신학원장으로 봉사했으며, 1954년에는 동생 이단열 목사가 2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유가족으로는 사모 Irene Lee (1912년 생), 큰 아들 Elfred (1940), 둘째 David (1941), 셋째 Paul (1951)과 손자녀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