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문기 (1)

기간: 2009. 11.10~19

장소: 한국

행사: Lay Congress

참여: 29

지회 평신도대회에 몽골 청년들 약 30명(한국합류포함)을 인솔해가며 경험했던 것을 기억에 담고
그 기간동안에 사랑과 정을 담아 주신 분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자 한국방문 후에 두서 없는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5년마다 열리는 지회 평신도 대회에 몽골 청년들을 인솔해서 내가 나갈 것이라고는 생각해 적은 없었다.

곰곰히 생각하다가 이들의 한국 방문을 도와 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다보니 그들을 도우는 입장에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회 선교부와 메일을 주고 받으며 그들이 요청하는 내용들을 담아 보내는 일을 하게 되었다.

1달여 동안에 지회에서 몽골 대표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자료들을 담아 보내어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MMF에서 공식 대표자의 자격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비용이었다. 하나님께서 여러가지의 방법으로 비용을 사용할 있는 길을 열어 주시었다.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인가!

출국하는 30명을 인솔해서 울란바트로 공항에 이르게 되었다.

역시 어디에 가든지 문제가 있는 , 게르메가 시간에 도착하지 않아 발을 동동그러야 했다.

게다가 출국 심사를 하는 중에 볼도(15) 미성년자라 부모의 동의 사인을 받아야 출국할 있단다.

이륙시간은 30 남았는데, 어떻게 시내에서 공항까지 오게 하는가!

이런 저런 사정으로 호소를 하였지만 그저 돌아오는 답은 의자에 앉아 있으란다.

' 같으면 앉아 있을 있는가!'

모든 일행은 시간을 벌기 위해 심사를 마치고 기내로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나와 볼도만 남았다.

그리고 부모와 통화를 하면서 아버지가 황급히 오고 있다는 전갈만 받았다.

전화로 확인도 안된다.

옆에 있는 대한항공 직원도 우리를 도와 관계자들을 설득하였다.

가까스로 긴장과 초조에 쌓인 볼도가 기도를 요청한다. 그래서 함께 기도하였다.

얼마후에 아버지로 보이는 분이 다가왔다. 얼마나 긴장하며 달려 왔을까!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일 것이다.

싸인을 받고 기내로 달려 들어갔다.

기내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일행들이 박수하며 우리를 맞이한다.

상냥한 대한한공 스튜어디스들을 달만에 다시 보게 된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이 설레인다.

하지만 두고 가는 아이들과 아내가 있기에 이제는 밸런스가 양쪽으로 나뉘어진다.

3시간의 비행끝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이제는 역으로 우리는 내국인이라 쉽게 통과 되었다. 마치 구원 받은 사람들처럼..

그러나 몽골인들은 매우 엄격하게 심사하지만 관계자들은 친절과 예를 다하며 대하여 줌이 몽골과 다름이다.

일사불란하게 짐을 찾고 출국 기념 단체촬영을 하였다.

그리고 준비된 버스 차량으로 숙소로 이동하였다.

이동하는 중에 양옆으로 즐비한 고층건물들과 길에도 질서있게 달리는 차량들과 네온사인등

그전에 한국에 있을때에 느끼지 못했던 한국의 아름다움이 가슴에 뭉클하게 다가온다.

시조사 연수원 , 영어학원 게스트룸에서 1박을 하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