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문기 (6)

기간: 2009. 11.10~19

장소: 한국

행사: Lay Congress

참여: 29

지회 평신도대회에 몽골 청년들 약 30명(한국합류포함)을 인솔해가며 경험했던 것을 기억에 담고
그 기간동안에 사랑과 정을 담아 주신 분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자 한국방문 후에 두서 없는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관광 삼일째이다.

이날 새벽에 몇명의 아이들과 택시를 타고 새벽기도의 현장으로 찾아 갔다.

 

아침에 먼저 병원을 들리러 가는 중에 훈자식품을 들리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아이들이 엄청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다.

'내 참, 돈이 없는 줄 알았는데, 자기들이 필요한 것은 많이도 산다^^"

이제 어린이 대공원으로 이동하였다.

대공원에서 동물원과 어린이 과학관을 둘러 보았다.

그리고 중식으로 서울 중앙교회를 갔다. 그곳에서 김광춘 전도사님이 맞이하여 준다.

  

한국선교 100주년의 역사를 가진 서울중앙교회를 둘러보며 이제 15년의 복음의 역사를 경험한

몽골의 내일을 위해 기도하였다.

 

그리고 바로 옆의 인사동 거리를 쇼핑하였다.

한 시간을 주었는데...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마지막에 볼또가 없어 찾아 다닌다고 헤메었다.

버스 기사의 입이 많이 나왔다.

그도 그럴것이 350,000원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니니...

 

계속 혼자 한 숨을 쉬어 가며 감정을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

눈에 역력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돈을 더 주겠다고 말 할수는 없는노릇....,

이런 것을 몽골 참여자들은 알리 만무이다.

곧바로 서울타워(남산)로 갔다. 입장료가 7,000원! 움직이면 돈이지만 서울의 광경을 한 눈에 보게 하는 것도 뜻 깊은 경험일 듯하였다. 서울타워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곧바로 연합회 강당으로 향하였다.

이 저녁에는 한.몽 청소년 교류예배가 있는 날이다.

강당을 가득 채운 한국 청소년들과 몽골 청년들이 어울려 함께 예배를 드리었다.

뫼울림에서... 또 다른 여성 중창단 팀들이 특별 찬양을 하였다. 그리고 몽골 청년들도 버스 안에서 준비한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었다.

몽골 선교 현황을 들려 주고 김낙형 목사님께서 말씀을 주시었다.

서로 간의 인사를 나눈 다음에 하루의 일과를 마치었다.

이 날 저녁에 어커가 계속 나를 따라다니며 동생을 보러 가게 해달란다.

 

그 늦은 밤에 혼자 보낼 수는 없고 피곤함을 무릎쓰고 어커와 함께 택시를 타고 창신동을 갔다.

그곳에서 동생을 보고 하루를 지내고 오게 하였다.

택시로 돌아오는 중에 택시 기사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다음날 조별로 50,000원 씩을 주며 각각 가서 쇼핑을 하고 4시까지 오게 하였다.

조별로 기분이 고조된 가운데 각각 나갔다.

나는 마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해서 돕다가 좀 나아지는 것을 보고 조카와 더불어 이들을 돕기 위해 용산으로 갔다.

그곳에서 몇 가지를 사고 점심을 먹은 후에,,, 아이에게 줄 장난감을 고르다가 시간이 다 되어 급히 돌아왔다.

오후 5시부터는 서울 삼육초등학교 체육관에서 한몽 우정의 날 행사를 하였다.

김정곤 목사가 섬세하게 행사를 준비하도록 시켜 놓은 듯 하였다.

청년들이 준비한 저녁식사와 우정의 날 순서에 큰 감동이 되었다.

그리고 각각 준비한 한국 청소년들의 선물에 큰 감동이 또한 되었다.

김정곤 목사와 여러 사업 논의를 하고 마무리를 동중한 청소년들이 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걸어서 연합회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10시경에 견과를 실고 온 김태수 목사와 잠시 경비실에 앉아 대화를 나누다가 묵동 가족의 집으로 향해 가는 차 안에서 또한 대화를 나누었다. 묵동 서울 집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다 되었다.

그 밤에 형수가 준비하여 준 저녁식사를 먹고 조카의 새 살림 새 가정집 방문을 갔다.

 

한국방문 마지막 밤에 급히 친척들의 집을 둘러 보았다.

 

청학동 아파트에 신혼의 단촐한 살림가구와 풋풋한 새 냄새가 배여 있는 조카네 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새벽 1시에 도착하여 5시경에 일어나 딸기를 먹고 나와야만 했다.

조카 며느리가 버섯 전골을 몇 시간동안 준비하여 놓았다고 하는데 우리가 6시에는 떠나야 하기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