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가 저녁내 아팠습니다.

은총이가 겨우 감기에서 나아가는데 이번엔 은하 차례인가 봅니다.

배가 아프다며 고슴도치처럼 몸을 한껏 웅크리더니만 급기야 꺽꺽 토를 쏟았습니다.

쳐놓은 모기장까지 토사물이 묻어 겨우 치우고서는 부대끼는 아이를 재우고 모두 잠이 들었는데

한밤 중엔 열까지 펄펄 끓었습니다.

물수건을 대고 자는 애를 깨워 부르펜을 먹이고 나니 몸이 천근만근입니다.

 

케냐-탄자니아 국경 근처 마사이 부족을 방문하러 가는 이른 아침.

 

차는 덜컹이고 간밤에 아팠던 은하의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 없네요.

 

아이들은 묻습니다.

"엄마, 지금 가는 데는 박쥐 나온데 만큼 멀어요?(Gogoro라는 지역)"

아이들은 선교지를 갈 때마다 전에 가본 장소를 떠올리며 앞으로 얼만큼을 더 견뎌야 할지 계산합니다.

"거기보다 멀어."

"그럼 기모요 사유니(Gimoyo Sayuni, 마사이 노래) 부른 데?"

"아니, 거기 보단 훨씬 더 멀지."

위치 가늠에 실패한 아이들은 휴... 한숨을 쉬며 다시 출렁이는 차에 몸을 맡깁니다.

 

문득 아프리카에 산다는 것이 참 힘들다...는 생각이 스칩니다.

 

온 몸에 뭔가 훓고 지나간 것처럼 불긋불긋, 그 참을 수 없는 가려움에 시달리는 남편.

살면서 얼굴에 나는 뾰록지 하나에도 고민해 본 적이 없다던데

아프리카 태양에 유독 오그라드는 피부 때문인지 

땀띠인지 뭔지 모를 뭔가가 두드러져 올라와 힘에 겨워하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 한국에 도착한 직후엔 신기하게도 사그러 들었다가 탄자니아에 발을 들인 순간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 내내 정비소에 맡겼던 차는 지금도 기름이 뚝뚝 흐르고 있습니다.

흐르는 기름은 그렇다 치고 멀쩡하게 가던 길에 또 갑자기 시동이 꺼집니다.

하도 흔들리는 통에 필터와 연결되었던 접선 부분이 끊어져 잠시 손을 본 후에야 다시 달리기 시작합니다.

 

식구들은 아프고

차는 망가지는

늘 험한 길들을 오르 내려야 하는 사역지들.

 

내가 여기 왜?

왜...

 

차는 어느새 카라오(Karao) 예배소에 도착했습니다.

 

눈으로 보아도 믿기 어려운 장면에 머리 속이 하얘지며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새까만 아이들.

족히 100명도 넘을 듯한 아이들과

귀걸이, 목걸이, 형형색색의 슈카로 한껏 멋을 낸 수십명의 마사이들이

예배당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

 

'한 서른 명? 모일꺼에요.'

지역장 목사님이 분명 그러셨는데...

 

이렇게 깊은 곳에서

소떼를 몰며 살아가는  마사이들이

안식일을 맞아

지붕과 기둥 밖엔 없는 교회 처소에서

"Sesie Lengai!(하나님을 찬양합니다!)

"Amina!(아멘)

소리 높여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 왜?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가...

 

제 안에서 아우성치는 질문에 하나님께서 답을 주셨습니다.

 

여기 사람들이 있기에...

 

답은 무척이나 명료하고도 분명했습니다.

 

예수님은 왜, 굳이 말 먹이통에 누우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셔야 했을까.

 

여기 사람들이 있기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들이 곯아 떨어졌습니다.

 

오후 3시가 넘어 출발했기에 아침에 급히 싸간

건빵과 땅콩잼을 바른 빵, 그리고 귤 2개를 꺼내 먹였더니

마치 수면제라도 먹은 듯 의자에 몸을 구부리고는 금세 잠이 들었습니다.

 

"얘들아, 다왔다. 내리자."

 

눈을 비비며 일어난 은총이가 말합니다.

"난 또 시동이 꺼진 줄 알았네.

집인줄 몰랐어.

휴, 살았다." 

 

시동은 꺼지고

피부는 근지럽고

열은 펄펄 끓어도

 

여기서 사람들과 이렇게 살다보면

어느새 하늘에 갈 날이 오겠지요.

휴. 살았다...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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