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도로, 작은 꽃집에 눈여겨 봐놨던 묘목 몇 그루가 있었다.

노란 꽃을 맺고 365일 하고도 183일만에 엄청난 그늘을 만들어 낸다는 이름 모를 작은 나무모.

 

그늘 하나 없는 광야 한복판.

 

척박한 토양 밑으로

단단히 뿌리를 내리면

위로 위로 힘차게 솟구쳐 올라가겠지.

 

한국돈 삼만원에 묘목 일곱 그루를 사들고 에쉬케쉬 광야로 출발했다.

 

며칠 간 아루샤엔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인터넷 뉴스란에 뜬 한국 강원도 지역의 폭설만큼이나

이곳 폭우의 위협도 만만치 않았다.

 

사방이 캄캄해지고 순간적인 고요가 몰려드는가 싶으면

어김없이 휘몰아치는 대풍, 그리고 요동치는 하늘의 먹구름.

거대한 물줄기가 요란한 춤사위 한 판을 벌이고 지나가면

쓸려간 잔해들이 나뒹구는 조용한 땅이여.

 

덕분에 우리집 붉은 꽃나무에서도

큰 가지 하나가 댕강 부러져 나갔다. 

 

에쉬케쉬에선 전화기 화면에 "No Service"가 뜬다.

거긴 비가 많이 왔는지? 물어볼 도리도 없다.

 

게다가 이번주는 바라바이크의 이웃 하자베, 인류 최후의 부시맨들을 위한

개척 후, 첫 전도회가 열리고 있다.

 

가자, 가자, 어서 가자.

 

멀리감치 지평선 위로 에쉬케쉬 교회 양철지붕이 가물거린다.

 

차가운 땅 위에 머리를 뉘이고

부족들과 둥글게 둘러 앉아 밥을 먹었던 땅, 에쉬케쉬.

마음 깊숙이 잔잔한 애정이 흐르는 곳이다.  

 

어라, 그런데 길이...

길이 도통 좋지가 않다.

움푹움푹 패인 진흙탕.

비 덕분에 온 땅에 번져버린 작은 풀들 아래 가려진 무시무시한 늪들.

 

가느다란 덤불 숲에서

땅 밑으로 꺼져버릴 것 같은 길들을 피하는 동안

갸우뚱, 차와 함께 자빠질 것만 같다.

 

아뿔사, 결국 차가  옴팍 빠지고 말았다.

2톤이 넘는 거대한 몸통은 완전히 깊은 늪에 빠져 헤어나올 줄을 몰랐다.

 

삽으로 주변 물흙들을 아무리 들어올려도

다시금 털썩 털썩 내려 앉는 흙들이 정말이지 야속하다.

 

겨우 차를 빼내고 시계를 보니 이미 에쉬케쉬를 들어온지 4시간 경과.

 

교회를 코 앞에 두고 차를 돌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룻길을 갔다 다시 하룻길 걸려 돌아온 아루샤.

 

전기마저 나가있다.

 

깜깜한 밤, 3G를 켰더니들어온 카톡 문자 한 통.

"내일 아침, 11시 5분 비행기로 킬리만자로 공항에 도착합니다."

 

선교지 가느라 집 안엔 감자 한 알도 없는 상황.

손님 네 명이 집으로 오신단다.

 

문득 자아를 버린다는 건

내 안의 모든 선들을 허물어 버리는 것.

 

내 안의 모든 경계선과 한계선과 상한선들을 모조리 무너뜨려 버리는 것.

 

나는 이것을 꼭 해야만하고

나는 그곳에 꼭 가야만 하고

오늘 내로 이 일은 꼭 끝내야만 하고

내일은 이 사람을 꼭 만나야만 하고

이 일은 이런 식으로 준비해야 되겠는데

하는

 

이건 되고

이건 안되고

이건 여기까지만

이건 도무지...

 

내가 만들어 놓은

내 안의 모든 선들을 모조리 과감하게 치워 던져 버리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 안에 펼쳐 놓으신 모든 것에

마음문을 활짝 열고 받아들이는 것.

 

그 펼쳐진 것이

하룻길을 걸려 간 선교지를 돌아나오는 것일지라도

삽질 한번 못해보고 묘목을 도로 가지고 나오는 것일지라도

땀에 절은 몸으로 전기가 나간 방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일지라도

아무 준비도 안된 상태로 손님을 맞아야 하는 것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

내게 허락하시는 것이라면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내가 아닌 하나님께로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자아를 버리는 것임을

나는 요 며칠간 혹독하게 깨달았다.

 

에이.jpg

- 차를 빼는 동안 바라바이크 부족이 끼는 팔찌를 선물로 받은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