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구호 개발기구인 ADRA 지역 책임자(ADRA Country Director) 양성과정 지원 후, 5일이 지났습니다. 당초 모집 국가였던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는 이미 두 분의 목사님이 내정된 상황. 저희 부부는 ‘우리는 안 되었나봐.’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처음 마음처럼 ‘오직 주님의 뜻을 이루시길 원합니다.’ 기도하며 점차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다만 친정 가족과 은하와 은총이만큼은 ‘아니에요. 우린 분명히 될 거에요. 엄마아빠, 조금만 기다려 봐요’라고 위로해 주었지요. 

지난 세 달 간, 한국에서의 정착 그리고 담양교회에서의 임시사역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10월 초, 살림장만을 하기 위해 들른 경기도 구리 하이마트에서 이런 저런 물건을 살펴보다 매장 내 직원분의 도움을 받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사능교회 집사님이셨습니다. 집사님은 저희의 사정을 듣자마자 모든 물건을 본 가격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셨을 뿐만 아니라 프라이팬 3종 더하기 글래스락 5종 세트, 거기에다 에어 프라이어까지 넉넉하게 챙겨주셨습니다. 정말이지 천사를 만난 것처럼 감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안형운 선생님 가정 역시, 생각지도 못했던 큰 후원금을 보내주시며 살림마련에 도움을 주셨고, 김종식 장로님께서도 광주삼육초등학교로 이어진 은하와 은총이의 교육을 위해 아낌없이 학비를 지원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부모님과 가족들로부터는 앞으로 발이 되어줄 자동차까지 선물로 받게 되었지요. 이 자리를 빌려 선교사 가정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셨던 모든 분들과 가족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10월 19일, 드디어 담양교회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요. 먼지 폴폴 나는 허허벌판, 탄자니아 오지에서 사역하며 가장 그리웠던 건 한국의 맑고 푸른 산천초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저의 마음을 읽으시고는 전국에서 가장 따뜻하고(그래서 눈 구경이 힘든 건 조금 아쉽지만), 가장 아름다운 담양, 아름드리나무들이 드리워진 관방제림과 시원한 대나무 숲, 죽녹원, 그리고 고려시대의 고귀한 유산, 금성산성이 자리 잡은 담양에 첫 보금자리를 마련하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담양교회 최학봉 장로님을 비롯한 모든 성도님들은 임시발령임에도 불구하고, 저희 가족 모두를 따뜻한 사랑과 기도로서 맞아주셨는데요. 주중 매일 저녁, 예배당 문을 활짝 열고 기도회를 가지며 여러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던 일, 매일 새벽, ‘담양교회 새벽묵상’을 통해 ‘성령충만’에 관한 말씀을 나누던 일, 코로나 방역 격상으로 불과 세 안식일 밖에 모이지 못했지만 활기차게 학생회를 하던 일 등은 저희 모두를 한 뼘 더 자라게 했던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특별히 이 연말, 기도노트에 적어 놓았던 담양교회 성도님들의 다양한 기도제목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하나님께서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방법으로 모든 기도에 응답해 가고 계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담양교회를 섬길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신 하나님과 좋으신 담양교회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담양에서 첫 안식일을 맞은 아침,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탄자니아를 잊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계속해서 그립고,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그곳에서 살아계신 나의 하나님을 매순간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선교지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아프리카의 영혼들을 사랑하시고, 온갖 좋은 것들로 채워주셔서 당신의 백성들을 구별하시는지 눈으로, 마음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분의 임재가 가득한 그 곳을 정말이지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담양에서 하나님은 이런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탄자니아에서 네가 만난 하나님이 바로 담양에도 계신다.

아프리카 사람들을 사랑하셨던 하나님은 똑같이 담양 사람들도 사랑하신다.

선교지의 하나님께서 담양이라는 새로운 사역지에서 함께 일하자 부르신다. 

그러니 나도 뒤돌아보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일하리라.“ 

그렇게 한 달 쯤 지났을까요. 은하가 탄자니아에서 가져온 마사이 나무 조각 두 개를 가지고, 자기 방을 나오다 말했습니다. ‘아, 여기 아프리카 집이 아니지!’ 본인 딴에는 탄자니아 집 거실 중앙 벽면을 차지했던 벽난로 위에 나란히 놓으려고 조각을 가지고 나왔는데 아마도 이곳이 한국이라는 사실을 깜빡한 모양이었습니다. ‘엄마, 아프리카는 내 삶 전부였고, 거기가 제 집이에요.’하며 금세 눈물이 고이는 아이를 안고, 저 역시 터져 나오는 눈물을 겨우 참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왓츠앱(Whatsapp)을 통해 가드윈 레쿤다요 탄자니아 연합회장님과영상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은총이가 물었습니다. ‘목사님, 저희가 살던 사택에 지금 누가 살고 있나요?’ 목사님께서 아직 없다고 하자 이번엔 은하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희 사택 계속 비워주세요. 언젠가 돌아 갈 거예요.’ 

지회에서 아드라 지역 책임자 양성과정을 위한 목회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처음 접했을 때, 순간적으로 탄자니아에서의 기쁨과 즐거움의 시간들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아프리카를 떠나기 전날 밤, 마지막으로 올려다본 밤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밝은 별들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연합회에서 준비해주신 송별회를 마치고, 사택으로 올라가며 저희 부부는 두 손을 마주잡고, 지난 시간동안 선교사로 살 수 있어 참으로 행복했노라고 말했습니다. 탄자니아의 아름다운 영혼들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그들의 검은 눈동자가 순순히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모습들을 가까이 지켜볼 수 있어서 행복했고, 옥수수 한 자루에도 ‘오로로로’ 혀를 말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들으며 행복했고, 스러져가는 가옥을 나와 찢어진 타이어 신발을 신고도 허리춤에서 꺼낸 달걀을 헌금으로 기쁘게 드리는 모습을 보며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선교지로 나갈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저희 앞에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했습니다. 

부모님과 상의를 나누고, 호남합회장님이신 박정택 목사님과 통화를 한 후, 한국연합회에 지원서를 넣기로 결정했습니다. 비자 연장이 끝내 불발된 탄자니아를 떠날 때도, 한국 목회를 결심하고 담양교회로 내려올 때도 저희의 마음은 ‘오직 주님의 뜻’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모든 결정에 하나님의 뜻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새로운 도전 앞에서 하나님의 뜻만이 온전히 이루어지길 다시 한 번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어디에 있든지 오직 하나님만 말하고, 오직 예수의 향기만 풍기며, 오직 복음만을 전하는 곳에 있게 하소서.‘ 

12월 5일, 담양교회의 예식담임인 장진영 목사님께서 2021년 직원선출 결의를 위해 저희 교회를 방문하셨는데요. 저는 이 때 ADRA 지원을 눈앞에 두고, 하나님께서 분명한 말씀으로 당신의 뜻을 보여 주시길 바라며 목사님의 설교에 온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출애굽기 14장 29절의 말씀,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를 인용하시며 ‘바다, 그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만 육지를 볼 수 있다, 크고 깊은 물가로 들어갈 때 주님의 크신 은혜를 맛보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찬미가 361장 가사를 띄우셨는데 거기에는 놀랍게도 이런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얕은 물가에서 저 큰 바다 가려다가 찰싹거리는 작은 파도보고 맘이 졸여서 못가네... 너 곧 닻줄을 끌러 깊은 데로 저 한가운데 가보라.’ 모든 말씀이 마치 저에게 주시는 말씀 같았습니다. 설교 후, 361장 찬미를 부르는데 4절에 이런 찬양이 펼쳐졌습니다.‘ 

‘너 곧 가거라.

이제 곧 가거라.

저 큰 은혜 바다 향해

자, 곧 네 노를 저어 깊은 데로 가라

망망한 창파로

언덕을 떠나서 창파에 배 띄워

내 주 예수 은혜의 바다로 네 맘껏 다녀보라.‘

이 찬미를 부르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분명하신 하나님의 음성이 제게 들리는 듯 했습니다. ‘너 곧 가거라.’ ‘주님, 저희를 부르시는 분이 주님이시라면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낯선 삶이 두렵고, 묵직하게 다가오지만 그럼에도 분연히 일어나서 곧, 갈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막상 지원서를 작성하려고 하니 쓸 게 없었습니다. 가진 자격증도 없고, 스킬(Skill)란 역시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보다 못한 지회의 진정화 사무장님께서 일일이 고쳐주셔서 겨우 ‘말이 되는’ 스킬을 적을 넣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선교경험’을 쓰는 란 역시 탄자니아에서 했던 모든 경험조차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기에 ‘내가 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일들 투성이였습니다. (역시, 지회 주민호 목사님께서 ‘최대한 자세하게, 자신감 있게 탄자니아의 경험들을 서술하고, 전달하라’는 특명을 내려주셔야 했습니다). 

매우 수수한 지원서를 제출하고 난 후, ‘하나님, 되면 감사하나, 안 된다 해도 괜찮습니다. 오직 주님의 뜻대로! 가장 적합한 인물을 뽑아주소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동역할 수 있는 사람. 주물주물 주님께서 마음대로 빚어 쓰실 수 있는 사람을 뽑아주소서.’ 하며 함께 면접에 응할 목사님들과 또 탈락할 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저 역시 탈락자 중에 있을 수도 있으니, 그 결과를 받아들이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지요. 

12월 16일 1차 면접 합격. 12월 18일 2차 면접 소식 없음. 그렇게 5일이 지났을까요? ADRA 아시아 총괄 디렉터인 마크 웹스터(Mark Webster)씨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3차 면접에 응할 수 있느냐?’는 내용의 메일이었습니다. 세상에 1차, 2차 모두 엄청 떨리는 마음으로 겨우겨우 마쳤는데 3차라니? 그것도 영어인터뷰를 다시 준비하라고요? 뼛속 깊이 엄청난 부담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이어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2021년, 파키스탄 연합회장님으로 선출되신 이면주 목사님의 전화였습니다. ‘목사님, 축하드립니다. 파키스탄에서 함께 일하게 되어 기쁩니다.’ 

전말은 이랬습니다. 2차 면접 때 탄자니아에서의 사역을 인상 깊게 본 ADRA 아시아 디렉터인 웹스터씨와 또 다른 면접관이었던 타국의 디렉터들이 저희를 적합한 국가로 보내기 위해 탐색하던 중 마침 ADRA 파키스탄 책임자 자리가 1년 반 이상 공석으로 비어 있음을 떠올리게 되었고, 그래서 3차 면접 자리를 따로 마련하여 저희의 의견을 듣고자 했던 것입니다. 

3차 면접은 2차 면접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듯, 정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사역 중에 힘들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니 ‘경험한 사람에게서 우러나오는 질문’이라고 칭찬해주시며 마치 현장에서 대화를 나누듯, 생동감 넘치는 경험담을 들려주셨습니다. 30분으로 예정되어 있던 인터뷰는 장장 1시간 20분간이나 이어졌고, 그날 오후, 주민호 목사님의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차 목사님. 목사님 가정은 3년간의 PMM 양성과정 없이 바로 대총회 선교사(ISE, International Service Employee)로 채용하겠다고 합니다. 1년이 넘도록 적임자를 찾았는데 목사님을 만났다고, 좋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었다고 아드라 아시아 책임자가 저에게 메일을 보냈어요.’

불현듯, 17년 전, 영국 뉴볼드 대학에서 이슬람학(Islamic Studies)을 공부하며 드렸던 기도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공부가 마치면 ‘이맘(무슬림 성직자)과 결혼해서 이슬람 사역을 해야지.’하고 무모한 꿈을 꾸던 저는 ‘하나님, 이 마지막 시대, 중동에서 무슬림들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며 날마다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뒤, 까맣게 그 기도를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전도자로는 이슬람권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없기에 거기에 맞는 옷을 입고 싶어 의학전문대학원 준비를 잠시 했었는데, 이제는 ADRA라는 국제구호개발기구에 속하여 당당히 현지인들을 도우며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직접적인 말씀 선포는 말세가 다가올수록 여러 장애물에 부딪힐 수 있지만, ‘배고픈 자들을 돕고, 헐벗은 자를 입히는’ 구호활동은 세상 끝 날까지도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이 사역에 첫 발을 내딛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8년 반 동안의 탄자니아 사역을 위하여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귀중한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김시영 지회장님, 주민호 목사님, 진정화 사무장님, 그리고 김영숙 사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외, 지회의 많은 지도자분들의 사랑 속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대총회 선교사가 되게 해달라며 3년 넘게 골방에서 기도해 오신 친정 어머니와 황경숙 사모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대총회 선교사로서의 전환에는 어머니와 사모님의 기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엄마, 저 가도 되요?’ 묻자 엄마는 말씀하셨습니다. ‘송화야. 가거라. 넌 바람처럼 살아. 행복하게. 그게 너의 운명이야.’ 눈물을 꾹꾹 삼키면서도 등을 떠밀며 ‘저 큰 은혜의 바다로’ 나가게 하시는 엄마 그리고 아빠께 감사를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곁에 있지 못해서... 그러나 하나님께서 양가 부모님을 무한한 사랑으로 돌보아 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끝으로 지금까지 탄자니아의 모든 사역에 동역해 주셨던 한국과 미국, 캐나다의 후원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선교에 마음을 다해 동참해 주셨던 그 헌신과 사랑 덕분에 이제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2억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파키스탄에서 봉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2월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탄자니아를 위하여 귀한 후원금을 보내주시고 계시는 고승석 장로님, 조정순 집사님, 서동춘 집사님, 정형옥 집사님, 김숙자 집사님, 박윤환 집사님 가정, 이영미 집사님, 손성조 장로님, 강기훈 집사님, 이소연 집사님, 이남숙 집사님, 이숙희 집사님, 이건혜 집사님, 양미희 후원자님, 하태열 장로님께 이 자리를 빌려 마음 깊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올해 12월까지 보내주시는 모든 자금은 탄자니아 선교를 위해 사용됩니다. 

ADRA 파키스탄은 학생들을 위한 장학사업, 어려움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생계지원사업 그리고 청년들을 위한 직업전문훈련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합니다. 탄자니아를 위해 물심양면의 도움을 주셨던 후원자님들과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모든 분들께 간곡히 호소 드립니다. 무슬림의 땅, 파키스탄에도 탄자니아 선교와 같은 여러분들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모쪼록 앞으로도 많은 기도와 격려 부탁드립니다. 

1년이 넘는 코로나 대유행 중에도 희망찬 새해를 허락하실 하나님 안에서 평강과 기쁨을 누리시는 연말 되시길 간절히 기도드리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파키스탄에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차성원, 최송화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