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민 교수의 "진화의 거짓말"

 

제 9 장

이교 세상에서의 복음 전도

우리 사회에서는 전쟁 - 아주 실제적인 전투-이 진행중이다. 이 전투는 기독교 대 인본주의이지만 근본적인 수준에서는 실제로 창조론 대 진화론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이 모두에 동의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적이 인본주의자나 진화론자가 아니라 그들을 속이고 있는 암흑의 세력이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인본주의자와 진화론자들에게 자비를 보이고 그들이 우리에게서- 우리의 말하고 쓰고 행하는 모두에서 - 성령의 열매를 볼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전투의 근본적 속성을 이해하는 것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이유를 풀어주는 열쇠가 되며, 사회에서 증가하고 있는 반 기독교적인 색채와 싸울 수 있는 접근 방식을 열어주는 열쇠가 된다.

얼마 전 만해도 성서적 창조가 우리 사회의 기반이었다. 창조는 대학과 학교 시스템에서 가르쳐졌다. 사람들은 자녀들이 기독교적 절대 윤리를 배우도록 자녀들을 주일학교나 비슷한 장소에 자동적으로 보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도 대개 성경에 기초한 법을 존경했고 순종했다. 모든 장소에서 성적 탈선은 금지되었다. 대부분의 경우에 낙태는 살인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챨스 다윈이 진화론을 대중화시켰다. (창조의 참된 기록을 반대하는 진화론적 견해는 항상 있어왔다. 다윈은 진화론의 개념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단지 진화론의 특정 설을 대중화시켰다.) 진화론은 과학으로 진척되었지만, 과학이 아니다 - 진화론은 과거에 대한 신앙이다. 교회는 이 상황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무방비 상태로 잡히게 되었다. 과학의 참된 속성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다윈의 진화론이 과학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기원에 관한 이 견해는 우리 사회를 침투하기 시작했다.

무신론적 진화론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신앙이다. 우리는 우연의 산물이다. 누구도 우리를 소유하지 않으며 우리는 스스로를 소유한다. 인간은 악한 피조물이어서 빛보다 어둠을 사랑한다고 성경이 말하듯이 비기독교인들은 이런 견해를 쉽게 수용한다(요 3:19).

전 장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현사회에서 보고 있는 충돌은 창조적 기반(따라서 절대 윤리)을 가진 기독교라는 종교와 진화론적 기반과 “아무거나 상관없다‘라고 말하는 상대적 도덕을 가진 인본주의라는 종교 사이의 충돌이다.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만 한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이름으로 인해 영광을 받으셨다는 것을 확증하는 하나님의 모든 권고하심을 가르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무엇이 복음인가? 많은 사람들은 복음의 완전한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복음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1. 근본적 가르침: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조주시며 인간을 만드셨다. 인간은 하나님께 반역했으며 따라서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죄의 저주를 내리셨다.

2. 복음의 능력과 복음의 중심 사상 : 예수 그리스도, 창조주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와 똑같이 죽음의 저주를 견디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심을 받았다(따라서 죽음을 정복하셨다.). 죄(반역)를 회개하며 예수께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에덴 동산에서 상실된 하나님과의 완전한 사랑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3. 복음의 소망 : 모든 창조물은 죄의 결과로 고통받고 있으며 천천히 쇠퇴해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과 화해의 역사를 마치시기 위해 오시면 만물이 회복될 것이다(골 1, 벧후 3).

많은 사람들이 고린도전서 15장을 복음을 정의하고 있는 구절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 장이 단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사실만을 이야기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고린도전서 15장 12-14절에서 바울은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다시 말하면, 바울은 부활을 믿고 있지 않는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바울이 취한 전략을 이제 살펴보자. 21절에서 바울은 창세기로 돌아가서 죄의 기원에 대해 설명한다. “사람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바울은 왜 예수님께서 오셨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셨는 가에 대한 근본적 이유를 설정하고 있다. 복음이 위에 나열된 다른 요소들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측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므로 창조주로서의 그리스도와 죄와 사망의 등장에 관한 기별 없이 복음을 전하는 일은 기초 없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심, 부활에 대한 기별 없이 복음을 전하는 일은 능력 없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도래할 왕국에 관한 기별 없이 복음을 전하는 일은 소망 없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 모든 측면들이 복음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복음 기별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이 모든 측면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복음전도의 방법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으심, 회개의 필요성,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일을 전하고 나머지는 성령께 맡기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초기 교회의 전도자들이 발견한 사람들에 맞게 서로 다른 제시 방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대단히 명백하며, 사도행전과 복음서에는 많은 예가 있다:

요 4장 - 예수님께서는 우물에서 “생수”의 방법을 사용하셨다.

행 2장 - 베드로는 오순절의 상황에 대한 설명을 출발점으로 사용했다.

행 3장 - 베드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절름발이를 치료했다.

행 7장 - 스데반은 산헤드린에서 역사적 교훈을 제시했다.

행 13장 - 바울은 회당에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전했다.

행 14,17장 -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전했다.

주님께서는 우리 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필요한 모든 방법들이 가용하도록 창조과학 사업을 세계적으로 일으키셨다. 주님께서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해야만 하는, 경이적일만큼 강력한 도구 - 창조과학을 통한 복음전도 - 를 주셨다. 우리는 교회가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인 주원인이 복음을 올바르게 전하지 못한 것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믿는다. 교회는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기별을 선포하고 있지만 전처럼 효과적이지 못하다. 우리는 신약에서(고전 1:23) 십자가의 가르침이 이방인(그리스인)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 유대인에게는 거침돌이 될 뿐이라는 사실을 읽게 된다. 우리는 신약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사도행전 14장과 17장에는 그리스인에 대한 두 가지 특별한 접근 방식이 제시되어있다. 유대인에게 사용되었던 방법과는 다른 방법이었다. 바울은 그리스인에게 갔을 때,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대해 전하는 일로 시작하지 않았다. 그는 창조주이신 참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시작했으며 거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나머지 복음으로 나아갔다. 그리스인들은 진화론의 한 종류를 믿었으며 그들의 눈에는 자신들 위에 권위를 가진 창조주 하나님은 없었다.

기원에 관해서는 두 종류의 견해만이 있을 뿐이다: 진화론적 아니면 창조론적 견해. 만물을 창조하신 무한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유일한 대안은 일종의 진화론을 적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바울이 창조의 기반 위에서 그리스인에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던 이유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할 수 있다.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일종의 진화를 믿었던 그리스인들은 그릇된 기반을 가지고 있었으며, 세계에 대한 그릇된 사고의 틀을 가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십자가를 전하는 일은 완전히 어리석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전하기 전에 복음의 나머지를 쌓을 수 있는 기반을 세워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창조를 기반으로 세웠고 거기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별을 전했다.

유대인들에게 접근할 때면, 창조의 기별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대한 가르침이 먼저였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었기 때문에 이미 올바른 기반을 가지고 있었으며, 따라서 올바른 사고의 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예수가 누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거절했다.

현대 사회가 외형적으로 유대인적이라기 보다는 전반적으로 그리스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현대 교회는 지금 이해해야 한다. 사실, 현대 교회 자체도 전반적으로 유대인적이라기보다는 그리스적이다. 과거에는 창조적 기반이 사회에 분명했고 사람들이 그리스도교 교리에 대해 덜 무지했던 것에 비해, 이십 세기 후반의 인간은 그에 대해 별로 알지 못한다. 오늘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일에 진화론이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해야만 한다. 기독교가 그릇되다는 사실을 진화론이 증명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독교의 주장을 듣지 않으려 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로부터 우리는 많은 편지를 받고 있다.

우리는 성경에 대해 알지 못하는 교육 체계를 거치는 학생 세대 전체가 있다는 사실을 파악해야 한다. 이들은 창조나, 노아홍수, 또는 십자가의 기별에 대해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서구 사회에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지 않은, 문자 그대로 수백 만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지만,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호주 브리스베인에 있는 창조과학 재단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을 때, 우리는 내 비서 중 한 명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서 꽃가게에 꽃 한 다발을 보내주도록 전화했다. 전화의 반대편에 있는 어린 소녀는 아주 명확한 영어로 꽃과 함께 배달될 카드에 무엇을 쓸 지 세 번이나 들었다: 요한복음 14장 27절. 카드가 도착했을 때, 그 소녀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적었었다. “요한 14 생일 27.” 이 어린 여성은 성경이나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없었고 따라서 그 요청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몰랐던 것이다. 내 비서는 그 메시지를 손쉽게 추론할 수 있었고( 그녀는 그 구절을 외우고 있었다) 그 이상한 표시에 다소 즐거워했다. 이 일은 우습긴 하지만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되어가고 있는 바에 대한 슬픈 반영이다.

효과적으로 그리스도의 기별을 선포할 수 있게되기 전에 나머지 복음이 세워질 수 있는 창조의 기반을 확립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많은 경우에 있어서 점점 분명해 지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단호해 지고자 한다. 십자가의 교리는 비그리스도인에게는 불합리하고 무력하게 간주되지만 인간에게서 나온 어느 것보다도 강한 힘과 지혜를 가지고 있다. 이 교리를 전하는 일은 구원의 위대한 수단이 된다. 다른 모든 가르침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이 교리에 대해서는 예비적이거나 종속된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교리는 신성한 힘이 결여된 무엇으로도 성취할 수 없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창조의 근본적 기반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 나는 십자가 기별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이고자 하는 것은 복음 기별을 특정한 사람들에게 제시할 때 필요한 특별한 접근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붙들고 있는 믿음은 우리가 십자가의 기별을 전할 때 듣는 일에조차 장애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모임에서 널리 퍼져 있는 방법으로서 불신자들에게 신약과 시편, 잠언을 수없이 건네주는 일을 재고해봐야 할 것이다. 그들이 신약뿐만 아니라 창세기 1장에서 11장으로 향해진다면 바울이 사도행전 14장과 17장에서 사용한 것과 같은 의미에서 복음을 제시하는 일에 대한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11장을 읽는 사람들의 삶에 훨씬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즉 하나님의 말씀 전부를 진실되고 틀림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에 더 많은 준비가 될 것이다.

이슬람 국가에서도 진화론이 장애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슬람교가 창조에 기반한 종교이지만 이집트의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기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이슬람교를 완전히 버리고 있다고 내게 말한 어느 이집트 그리스도인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창조에 기반한 다른 종교가 진화론과 관련된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로왔다. 이 사실은 진화론이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데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더욱 분명히 해줄 것이다.

나는 공립 학교 체계에서 이런 문제를 보아오고 있다. 학생들은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선생님, 성경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했다고 말하는 데, 성경이 사실이라는 어떻게 믿으십니까? 저희는 그 사실이 그릇되다는 것을 과학이 증명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나는 진화론이 오늘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일에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가 된다고 믿는다. 그러한 장애물이 제거된 뒤 많은 사람들(한 때 기독교를 고려하려 하지도 않았던)이 기독교의 기별을 들으러 오고 있다.

한 예로, 어느 고등학생은 이렇게 썼다. “저는 창조과학회가 제 고등학교를 방문한 일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정보는 현대적이었고 적절했으며 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세미나가 끝나자 다양한 학생들이 들었던 것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분명히 그들은 어떻게 만물이 시작되었는가에 대해 학교에서 들었던 많은 이야기보다 연설자가 더 이치에 닿는다고 느꼈습니다. 창조과학회의 방문이 없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진화론을 사실로 간주할 것입니다. 진화론을 믿었던 많은 학생들이 창조과학회 덕분에 이제 창세기의 설명을 믿고 있습니다. 창조 과학은 위대한 전도 분야이며 학교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과학회가 가져온 기별에 계속해서 충실하며, 창조과학회가 행한 위대한 일을 연장하는 것은 이제 저와 같은 개인에 달려 있습니다.”

이 학생은 또한 그 방문의 결과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전에 비웃었던 학생들이 이제 창조주에 대해 더 아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창조과학 복음 사업을 하는 동안 이러한 고백을 대단히 많이 들어오고 있다.

창조과학을 통한 복음 전도의 방법을 취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은 진리를 선포하는 비효율적인 방법의 결과로 고통받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창조과학 사업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창조과학은 기독교가 의지하고 있는 기반을 다루고 있다 - 우리의 사회로부터 상당히 제거되어져 버린 기반.

이 기별이 호주와 미국, 세계의 여러 곳에서 전해지는 동안 우리는 이러한 생각과 출판물들을 가져다가 창조 분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사람들을 보아오고 있다. 이 주제와 직면하면 전에는 그리스도에 관한 주제가 제기되면 비웃었을 사람들이 복음에 마음문을 여는 것을 보게된다. 창조과학을 통한 복음전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효과를 보고 있다.

새로운 개심자들이 교회에 들어오면 창세기에 관한 성경 연구로 이끌어야 한다. 그들은 기독교가 정확히 무엇이라는 사실을 배우게 될 것이며 모든 기독교 교리를 위한 기반을 배울 것이다. 아직도 전도할만한 창조의 기반이 남아있기 때문에 오늘날 사회에서 단순히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대해 전하는 것만으로도 결과는 얻어진다. 하지만 그렇게 남아있는 기반은 아주 신속하게 사라지고 있으며 따라서 오늘날에는 과거보다 반응이 훨씬 적다. 이제 깨어서 고대의 그리스인과 같이 되어버린 사회를 복음화 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제공해 주신 도구들을 사용할 때다. 지금은 기독교의 기반을 회복시킬 때다.

한 격앙된 젊은 대학생이 우리에게 보낸 편지에 역동하는 창조과학 복음전도의 좋은 예가 요약되어 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실제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계시는 여러분의 사업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한 가지 고백을 나누고 싶고, 이 고백이 진화론과의 싸움에서 여러분에게 용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 아버지는 65년동안 무신론자이셨고 항상 무신론자이셨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하나님에 대한 누군가의 믿음을 전반적으로 뭉게뜨리는 일에 빠르셨고, 특별히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다고 주장할 때 그러했습니다. 아버지는 성경이 비논리적이며 단순한 지성을 가진 사람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셨지요. 아버지는 ‘어떻게 이 책인 진실을 담을 수 있겠니?’라고 물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진화론이 지구의 형성을 설명하는 유일한 과학적 길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런 영적 공격을 느끼시고 제 독실한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의 마음이 진리를 향해 열리고 그러한 기만이 깨어지기를 20년 동안 기도하셨습니다. 2년 전, 제가 열 여덟 살로 그리스도인이된 지 3년이 됐을 때, 저는 창조 과학 세미나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창조에 관한 과학적 진리를 제시하는 일에 제가 얼마나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는 말로 할 수 없습니다. 그 일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제 믿음은 점점 더 강하게 되었으며 저는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설명하기 위해 과학적 견해를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습니다.

“세미나의 책 가판대에서 저는 몇 권의 책과 잡지를 샀습니다. ”뼈의 논쟁“은 특별했습니다. 저는 그런 잡지를 읽는 일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아버지께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 아버지는 회의적으로 잡지를 가져다가 읽기 시작했습니다. 3일 후에, 저는 아버지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놀랍게도 아버지는 그 잡지 때문에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기회에 저는 제가 산 다른 책들을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몇 주 후에 아버지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화론에 그렇게 많은 구멍이 있는 줄은 몰랐구나. 세상을 창조하신 전능한 존재가 있음이 틀림없다.“ 새로운 하루가 올 때마다 예수님께서는 창조와, 아버지 삶에 대한 예수님의 소유권 주장에 대해 아버지 마음속에 조각조각 퍼즐을 맞추시기 시작했습니다. 몇 주 후 한 전도자가 저희 교회에 오셨고 그 날 밤에 아버지께서는 교회에 가시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전도자는 창조론 대 진화론에 대해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은 완벽했습니다! 그날 밤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 구주로 마음에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단순히 아버지의 마음에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이해시킴으로써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잃어버린 영혼을 데려다가 생명의 길에 놓으실 수 있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람들에게 창조에 대해 가르치는 일로 인해 창조과학에 감사합니다. 저는 사단에 대한 싸움에서 여러분에게 용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 노력의 결과로 놀라운 일들을 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단지 진화론의 장벽을 파괴하라고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복음의 기반을 회복시키는 일을 돕기를 원하신다. 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창조과학 복음전도라는 도구를 취한다면 우리는 매일 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 나라를 더욱 이교적으로 만들고 있는 인본주의 철학의 조수가 저지되는 것을 보게될 것이다.

호주의 기독교 신문인 ‘새생명’의 1982년 4월 15일 목요일자에 루마니아의 가장 큰 침례교회 목사였으며 지금은 미국에서 망명 중인 조셉 톤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서부 유럽에서 기독교를 파괴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하나는 진화론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 신학입니다. . . 자유 신학은 성경과 우리 신앙에 적용된 진화론입니다.”

제임스 헤플리와 마티 헤플리가 지은 “그들의 피로 : 20세기 그리스도인 순교자”(모트 미디어 pp49,50)에 나오는 평도 주목할 만하다: “서방에서 온 새로운 철학과 신학들 역시 기독교에 대한 중국인의 확신을 좀먹는 일을 도왔다. 주요 개신교단에서 온 소위 선교사들의 새 경향은 진화론과 성경에 대한 비초자연적 견해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감리교회, 장로교회, 회중교회, 북부 침례교회 학교들이 특별히 큰 타격을 입었다. 영국에서 온 버트란드 럿셀은 무신론과 사회주의를 외쳤다. 그러한 선생들이 가지고 온 해악적인 책들은 정통 기독교를 더욱 손상시켰다. 그리하여 정통 복음주의 선교사의 가르침을 받았던 중국 지식 계급은 마르크스주의의 도래에 대해 더 온건하게 되었다(저자의 강조). 진화론은 오늘날 교회와 사회를 파괴시키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은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씨 뿌리는 일과 거두는 일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생각해 보자(마 13:3-23). 씨앗은 돌밭과 가시떨기에 떨어지면 자랄 수가 없다. 씨앗은 준비된 땅에 떨어질 때만 자랐다. 우리는 씨를 뿌린다. 즉 복음을 전한다. 그 복음은 진화론적 철학의 돌밭과 가시떨기에 떨어지고 있다. 복음은 준비된 땅을 필요로 한다. 창조과학 복음전도는 땅을 준비시킴으로써 좋은 씨앗이 뿌려져 큰 수확을 거둘 수 있게 해준다. 우리 교회가 사회에서 창조론을 위해 굳게 선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생각해 보라! 창조과학 복음전도는 신앙 부흥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는 참된 신앙 부흥이 단순히 교묘한 인간의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꾀해질 수 있다고 제안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 부흥은 본질적으로 성령을 부으시는 하나님의 독립적인 역사하심이시다. 하지만 교회의 역사는 이 분야에서 하나님의 감동하심이 하나님의 백성의 신실한 기도와, 합당한 존귀를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에 돌리면서 복음을 신실하게 전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비춰주고 있다. 계시록 14:7절에서 천사가 외치는 “영원한 복음”의 본질에 주목해 보자: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과 위대한 창조주, 재판장, 구속주로서의 하나님께 대한 합당한 경배를 부정하기 위해 세워진 종교(진화론)를 포용하고 타협하면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하나님께서 성령을 넘치도록 부어주시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창조 과학 사업의 결과로 전에는 복음을 듣지 않으려 했던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이 증명된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창조와 구속의 기별을 듣고 삶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바쳤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 대한 자신들의 신앙이 회복되었노라고 고백했다. 그들은 성경이 신뢰할만한 책인가에 관한 의구심 없이 기독교의 사실들을 이웃과 친구들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본이 되는 창세기를 이해해야만 한다는 진리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 특별한 주제에 관해 내가 전하는 것을 들은 뒤,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께서 회중에게 전에는 자신이 인본주의 철학과 싸우기 위해 목회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는 소위 “잡초의 끄트머리를 자르고 있었다.” 잡초는 다시 계속 자라올라 왔고 전보다 크고 건강해졌다. 창조과학 복음전도에 관한 기별을 들은 뒤, 그는 자신의 일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목사님께서는 역병의 뿌리를 비롯한 모든 것을 제해야만 했다. 창조과학 사업은 밭을 가는 사업이다: 땅을 갈아 업고, 진화론의 장벽을 제거하고(잡초를 제거하고), 씨앗이 심어질 땅을 준비시키는 일.

다음은 창조과학 사업에 몸담는 동안 내 책상 위를 거쳐온 수많은 편지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이 편지들을 읽으면서 이 책이 상술하고 있는 기별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 보라. 편지들 스스로가 증언해주고 있다.

“그냥 그런 좋은 일을 계속 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창조 과학을 제게 가져다주신 일을 어떻게 감사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날 이후로 당신께서 제 앞에서 커다란 커튼을 벗겨버린 듯한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G씨

“창조과학 세미나 덕분에 저를 따라 뜻을 세우게 된 한 형제를 격려하는 일에 사려깊은 충고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제 당신의 방문 이후 몇 달 동안 일관적으로 성장이 점점 가속되는 경험을 하고 있는 다른 형제를 지켜보면서 주님 안에서의 우애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기쁘게 말씀드립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갖지 못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갖지 못하고 있는 사회와 우리는 직면하고 있으며 이러한 20세기에 그렇게 중요하고 적절한 기별은 쉽게 들어볼 수가 없습니다. 현대 철학은 ”오늘을 위해 살자“인 것 같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전체 삶이 얼마나 연약하며 삶이 이 세대가 배척하는 듯한 하나님께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문제의 전부는 우리가 과거와 인간이 살았던 방식과 그들 생활방식의 결과로부터 배우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P씨

“당신의 자료를 읽고 테잎을 듣는 일이 제게 얼마나 즐겁고 유익했는지 아시게 되길 바랍니다. 그 일은 성경에 대한 이해, 특별히 창세기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하나님께 대한 제 믿음을 많이 성장시켜 주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창조 대 진화의 공부를 통해 하나의 여성 그룹을 막 지도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관심과 반응에 대단히 고무되고 있습니다. 저는 지붕 꼭대기에서 제가 새로 발견한 지식을 외치지 않고 얌전히 있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고백해야만 하겠습니다.” L 부인.

“지역 교회에서 열린 창조과학 사람들의 아침식사 이후에 저의 나이 많은 이웃이 기독교에 매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몇 번의 긴 이야기와 예배, 토론 뒤에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분은 작년에 침례를 받으셨고 이제 활발하게 탐구하는 교인입니다. 성경을 읽으려는 그 분의 갈망에 제가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 분의 얼굴은 이제 빛나는 듯이 보입니다. 그 분은 완전히 변화되셨지요.” P씨.

“제 고백을 당신과 얼마간 나누기 원합니다. 거의 일 년 전에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 구주로 의지하게 되었으며, 이는 부분적으로는 창조과학사업의 결과였습니다. 그 결과로 주님께서는 저를 세속적이고 진화론적이며 인본주의적 상태의 교육 기관에서 그리스도인 학교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당신의 사업에 대해 개인적으로 감사드립니다.” H 씨.

“한 때 유신론적 진화론자였던 사람으로서, 저는 이제 창조에 대한 창세기 기록의 문자적이며 역사적인 정확성을 뒷받침하는 창조과학의 자료 덕분에 기원에 관한 진화론의 이론이 그릇된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D씨.

“여덟살 난 제 아들 브랜든은 그의 삶을 구세주 예수님께 바쳤습니다. 저는 그가 자신의 행동의 깊이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 경험이 그에게 매우 감동적이었고 그가 매우 진실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를 더 많이 교육하는 일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제가 구입할 수 있었던 서적에 대해 당신 기관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자료는 제 믿음을 증가시켰고 저는 그 일이 제 아들의 영적 성장을 유도했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여러분께 어떻게 감사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N씨.

“제게 당신의 출판물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제가 수학을 개인교습하고 있는, 전기공학을 공부하는 제 친구에게 그 출판물 안의 많은 발견들을 설명해 주었고 자료를 빌려주었습니다. 그 역시 출판물들이 매우 재미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일은 복음에 대해 그의 마음문을 열어 주었으며 그는 제게 성경과 다른 서적을 읽기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도와주기가 너무 기쁠 따름이었습니다. 그는 주 예수님께 헌신할 작정입니다. 당신의 출판물을 통해 이 모든 일이 일어났습니다.” J씨.

“창조의 적합성 - 그리스도인에게 향한 기별 - 에 대해 당신이 침례교회에서 말씀하셨을 때, 청중 안에는 수년동안 우리가 기도하고 증언했던 완고한 무신론자가 있었습니다. 당신이 떠나신 그 날밤 그는 주님께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업을 정말 사용하고 계십니다.” W씨.

“생리학을 가르치는 대학 강사로서 저는 한 때 열렬한 진화론자였습니다. 저는 그 이론을 사랑했고 사실로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특별 창조는 신앙이며 마찬가지로 진화론도 신앙입니다. 이 신앙들은 과거에 일어난 무엇에 관한 것; 되풀이 될 수 없으며 따라서 실제로 증명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자로서, 우리는 각 대안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고려 - 즉 어떤 모델 혹은 신앙이 관찰된 사실들과 가장 잘 들어맞는지 열린 마음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 되자 전적으로 놀라운 새 삶이 제게 열렸습니다. 그 때 저는 진화론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지만 과학적 증거가 그 변화를 정당화시킨다고 확신할 수 있기 전에는 진화론자에서 창조론자로 바꾸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회가 일반적으로 진화론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진화에 반대하고 창조를 지지하는 과학적 사실을 제시하는 서적은 널리 퍼져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서적을 발견했을 때, 저는 과학의 모든 지류에서 온 증거가 진화론의 어떤 이론보다도 창조와 대변동의 세계적인 홍수에 대한 성서의 설명을 아주 명백하게 뒷받침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나라와 다른 나라들에서 탁월한 자질을 갖춘 과학자들이 점점 더 많이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M박사.

나는 많은 편지 외에도 전 세계에 걸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창조과학 연설가들 때문에 일어난 많은 사건들에 대한 증언을 제공할 수 있다. 그 사건들의 일부가 아래에 나열되어 있다.

한 청년이 창조과학 재단에서 이끌고 있는 세미나에 다섯 명의 비그리스도인을 데려왔다고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이주 후에 그들 모두는 삶을 주님께 바쳤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당신께로 데려오도록 사용하신 방법이 창조 과학 세미나였다고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어느 교회에서 한 부인이 와서 작년에 그 교회에서 우리가 추천한 자료를 샀노라고 말했다. 그 자료를 집으로 가져가서 남편에게 주자, 교회를 한 번도 나가지 않았던 남편은 자료를 읽더니 그 뒤로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한 남자가 우리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저는 이 교회를 55년 동안 다녔지만 한 번도 이와 같은 기별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기별이란 것은 성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창조의 적합성과, 창조의 법령들, 좋았던 지구에 대한 모든 일, 타락, 인류의 구원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필요성이었다.

미국에서는 창조과학 사업에 관한 유사한 반응이 수십 년 동안 되풀이되고 있다. 또한, 창조과학 연구협회는 삶이 변화된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편지를 받고 있다.

창조과학 복음전도는 성공적이다. 실제로 대단히 성공적이어서 창조과학 사업은 세계적으로 매우 신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의 창조과학 연구협회나 호주의 창조과학 재단과 같은 사업들은 그들의 봉사에 대한 요구가 계속 증가되는데 따른 작업량의 증가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삶이 변화되어 가고 있다. 사람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알게되고 있다. 창조의 기반이 조금씩 회복되어가고 있다.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마지막 세상에서 이렇게 성장하고 있는 흥미진진하며 중요한 사업의 일부가 되어보시지는 않으시렵니까?

우리는 시편기자와 함께 시편 119편에 있는 시편기자의 언어로 외칠 수밖에 없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11절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97절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99절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104절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05절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 130절

“주의 말씀이 심히 정미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140절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 142절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143절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은 진리니이다.”

151절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가 영원하리이다.” 16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