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민 교수의 "진화의 거짓말"

 

제 11 장

창조, 홍수, 다가올 불

베드로 후서 3장에는 지구 역사의 마지막 날에 대한 예언이 있으며, 그 예언은 창조와 진화론의 전체적인 문제와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

벧후 3:3-7 :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만물이. . . 그냥 있다 하니”

마지막 날에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라는 성경의 경고에 주목하라.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진화론자들은 지구가 수백 만년 동안 존재하고 있으며 생명이 지구에서 수백 만년 전에 진화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같은 믿음을 고수한다. 지질학자들은 우리가 현세에서 작동하는 것을 보고있는 과정들이 본질적으로 수백 만년동안 같은 속도로 이어져 왔으며 미래에도 수백 만년 동안 진행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질학에서 이런 믿음을 위해 사용되는 기술 용어는 “균일설”이다. 예를 들어, 아리조나 턱슨의 사막 박물관은 지난 수백 만년동안 일어났다고 추정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전시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오리라고 믿는 수백 만년동안 아리조나에 일어날 것이라고 많은 과학자들이 믿는 바도 전시해 놓았다!

진화론자들은 무신론적이든, 유신론적이든 “현재는 과거에 대한 열쇠다.”라는 경구를 사용한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과거를 이해하는 방법은 현재에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은 화석이 오늘날 세상에서 드물게 형성되기 때문에, 지구 표면의 대부분을 덮고 있는 수십 억의 화석을 포함하는 방대한 암석층의 형성에 수백 만년이 걸렸음이 틀림없다고 말한다. 진화론자들은 오늘날 돌연변이( 유전자의 우발적 변화)의 발생이 관찰되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시간의 여명기 이후로 일어나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돌연변이는 가정에 불과한 진화론적 진보에 관련된 메커니즘의 하나이다. 한편, 성경은 죄가 없었던 때가 있었으며 따라서 인간이나 동물의 죽음, 질병, 잘못도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돌연변이는 우리 유전자에 일어나는 잘못이며 사실상 모두 해롭다. 진화론을 믿는 사람은 오늘날 우리가 보고있는 것이 수백 만년동안 계속되는 같은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 진화가 오늘날 일어나고 있다고 가정해야만 한다. 따라서, 진화론을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인간이 오늘날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고 믿어야만 일관적이 된다.

어떻게 과거에 일어났다고 생각되는 사건의 세부 항목을 확실하게 수립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방법은 그 곳에 있었던 증인들을 발견하거나 증인들이 적은 기록을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질학적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정확하고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당시 그곳에 있었던 누군가(증인)가 있어서 지질학적 진행 과정이 항상 동일했거나 또는 어떤 때는 지질학적 진행 과정이 달랐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성경은 모든 것을 아실 뿐만 아니라 시간의 외부에 계시기 때문에 항상 계시는 분(하나님)의 기록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시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사람을 감동시키심으로써 자신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으며 그 말씀은 단순히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다(살전 2:13, 벧후 1:20-21). 창세기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기록이라고 주장하며 창조의 사건들과 더불어 우리의 현재 환경과 큰 관계를 가지고 있는 지구 초기 역사의 다른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는 과거에 대한 열쇠가 아니다. 오히려 계시야말로 과거에 대한 열쇠이다.

창세기에 있는 계시는 창조와 노아홍수, 바벨탑과 같은 사건들을 이야기해준다. 이들은 오늘날과 같은 지구의 지질, 지리, 생태 등등을 형성한 사건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 역시 현재에 대한 열쇠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세상에 죄가 들어온 일은 왜 사망이 있으며 왜 우리 유전자에 실수가 일어나는지 설명해 준다. 노아 홍수에 의한 세계적인 참화는 화석 기록을 설명하는 일을 도와준다. 바벨탑에서의 사건은 세계적으로 다양한 국가와 문화의 기원을 이해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

오늘날 진화론자들은 성경의 기록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그들은 “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이라는 믿음을 믿는다. 베드로 후서 3장의 예언은 우리 눈앞에서 성취되고 있다.

“부러 잊으려. . . ”

이 예언의 다음 부분은 사람이 고의로 세 가지 사실을 거절할 것이라고 말해준다. 부러 잊으려한다는 강조, 또는 어떤 번역에서처럼, “고의적 무시”에 대한 강조에 주목하라. 따라서, 이는 인간 쪽에서 믿지 않으려는 고의적 행동이다:

(a) 하나님께서는 처음에 물로 덮여있던 세계를 창조하셨다(즉, 태초에는 진화론자들이 가르치는 것처럼 녹아있는 덩어리가 아니라 표면이 차가웠다.)

(b)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시대에 세상을 세계적이며 대격변적인 홍수로 한 번 심판하셨다.

(c)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다시 심판하실 것이며, 다음에는 불로하실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이런 말을 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세계적이며 격변적인 홍수를 보내셨다는 증거가 그렇게 많다면 분명히 모든 과학자들이 믿지 않겠어?” 해답은 베드로 후서 3장에 주어졌다. 문제는 단순히 사람들을 확신시킬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확신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우리는 로마서 1장 20절에서 하나님께서 창조주시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확신시킬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기 때문에 믿지 않으면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읽게 된다. 게다가, 로마서 1장 18절은 사람이 “불의로 진리를 막는다”고 말한다. 문제는 성경이 진리라는 사실을 확신시킬 만한 증거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성경을 믿으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성경의 하나님을 믿으면, 사람들은 그 분의 권위를 인정해야 하고 그 분께서 기초하신 법에 순종해야만 한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같은 문제로 고통받는다 -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저지른 죄 - 우리가 모두 물려받은 “질병”. 아담의 죄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반역이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모든 곳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반역하고 있으며 따라서 성경이 진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스스로의 죄많고 반역적인 속성과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정화를 통해 다시 태어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의 인정이 될 것이다.

창조와 진화 문제의 토론을 지켜보면 이렇게 “부러 잊으려하는 것”을 쉽게 행동으로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진화론자들은 창조론자들이 내놓는 풍부한 자료와 증거, 정보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보통 창조론자의 신뢰성을 무너뜨리려고 노력함으로써 창조론자들을 공격하려 든다. 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이라 불리는 종교적 믿음에 완전히 헌신하고 있기 때문에 창조를 환기시키거나 진화론을 반박하는 자료, 논리적 추론, 증거에는 관심이 없다.

오늘날 현대 지질학은 성경에 묘사된 것과 같은 세계적 홍수가 결코 없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지구의 표면에 걸쳐있는 퇴적암층의 방대한 화석 기록이 수백 만년간의 지질학적 과정으로 설명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은 화석을 가지고 있는 암석층들이 노아홍수와 일치하는 엄청난 대변동적 과정에 의해 생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왔다. 하지만 진화론자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기를 부인하며, 이는 그렇게 하는 것이 성경이 옳다는 사실과 따라서 진화론적 철학 전체가 부인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진화론적 개념을 뒷받침하는 것이 아니라 노아 홍수와 관련해 성경이 말하는 바에 기초한 지질학적 모델에 들어맞는 사실들을 “부러 잊으려”한다. 우리 눈앞에서 예언이 또다시 성취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과학 문헌들과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이 세계가 수백 만년동안 계속해서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아리조나주 턱슨에 있는 사막 박물관의 예가 여기서도 적절하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 박물관의 한 전시물은 과학자들이 앞으로 몇백 만년정도에 걸쳐 일어나리라고 믿는 바를 나타내려 하고 있다. 사람들은 종종 그 전시물을 보면서 이렇게 질문한다: “앞으로 수백 만년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어떻게 알지요?” 대답은 이렇다: “과거 수백 만년 전에 일어났던 일을 이해하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그들은 알지 못한다 - 단지 추측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으며 노아홍수가 실제 사건이고, 따라서 성경이 진리라는 사실에 과학자들이 동의한다면 그들은 꽤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24:37-39에서 노아홍수를 하나님께서 지구를 심판하셨고 다시 심판하실 것이라는 경고로 사용하셨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하나님께서 재판장으로 다시 오신다는 사실에 동의해야만 할 것이다.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물이 아닌 불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이다. 하나님께 반역하는 죄된 인간은 자신이 어느 날 창조의 하나님 앞에 서서 자신의 삶에 대해 해명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창조와 노아홍수를 부인하고, 스스로의 믿음을 뒷받침한다고 생각되는 “과학적” 증거를 주장하면 다가올 심판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은 편해진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홍수를 보내셨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불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결론

지구와 해, 달, 별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사실의 기념물로 서있다. 화석 기록은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셨다는 사실의 거대한 기념물이다. 하나님께서 심판에 관한 당신의 말씀을 과거에 지키셨기 때문에 미래에도 심판에 관한 당신의 말씀을 지키시리라는 사실에 대해 이 모든 것들은 각 남자와 여자, 아이들에게 경고가 될 것이다.

베드로 후서 3장은 마지막 날에 관한 예언을 담고 있다 : 우리 눈앞에서 성취되고 있는 예언. 그러므로 우리의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에 더 힘있고 담대해지자.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베드로 후서 3:11-12)

적극적인 창조반대론자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창조론자들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창조론자들이 학교에서 창조론적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 똑같은 시간을 얻는 것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늘 같은 시간을 얻으면, 내일은 세계를 얻는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옳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주시라는 사실을 세계에 확신시키려 한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인본주의 성명서에 서명한 사람이다 -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주가 아니라고 세계를 확신시키려 한다.

우리는 아이작 아시모프와 같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주시라는 사실을 확신시키려 한다. 왜? 선한 싸움을 원하기 때문에? 투쟁을 좋아하기 때문에? 아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분과 분리된 채 영원히 지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주신 구원을 받아들이는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