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멀고 힘들었던 여행


한국에서 돌아오자 마자 저희는 길고 힘든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이곳 부템보에서 약 600킬로미터 떨어진 아루와 아리와라를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처음은 아니지요. 처음이 아니어서 더 긴장을 하고 많이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아루의 농업학교 건축, 아리와라의 중학교 건축, 예키아 진료소 오픈을 위한 구체적인 협의를 거쳐 후원금을 집행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많은 힘든 일이 있었지만, 마침내 저희가 부템보에 무사히 돌아왔고 소기의 목적도 잘 이루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길에서 만났던 천사들에 대한 소개를 하겠습니다.

첫 번째 천사는 경찰 서장입니다. 

총 600킬로미터의 여행 중 절반에 해당하는 곳이 부니아인데요, 부템보에서 부니아까지는 비교적 무난하게 잘 갑니다. 대부분 경찰들이 저희를 알기 때문에 별로 힘들게 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부니아 경찰들 장난이 아닙니다.

부니아까지 하룻길을 가서 자고 이튿날은 대회 관계자들과 프로젝트들에 대한 의논을 했습니다. 저희는 30분이면 족할 줄 알았는데 통역에 질문도 많아서 하루를 소비하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더 묵고 화요일 새벽에 아리와라를 향해 길을 떠났는데요, 

부니아를 벗어나는 길에 기다리고 있던 경찰들이 우리 차를 보고 너무나 행복해 하더군요.

늘 모든 서류를 갖추고 있어서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 새로 받은 보험서류에서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멀쩡히 7인승인 차가 4인승으로 표기 되어 있었고, 우리는 모두 6명이어서 법을 위반을 했다구요.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안 되고 ... 약 한 시간을 실랑이 한 끝에 50불을 요구하는 경찰들에게 10불을 주고 겨우 벗어났지요. 

그런데 얼마쯤 가다가 차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퀴를 지지해 주는 부품이 부러져서 방향을 제대로 못 잡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한 채 거기서 기다려야 했고 무붕가는 지나가던 오토바이를 타고 부니아로 돌아갔습니다. 제발 부품이 있어야 될텐데.... 무붕가에서 온 연락은 우리 차에 맞는 것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한국에서 올 때 저희가 사온 것이 있었지만 부템보에 두고 왔기 때문에 지금 당장 쓸 수도 없었구요. 부템보에 남아 있는 무숨바에게 전화해서 얼른 택시 통해서 보내라고 하고 무붕가는 계속해서 알아보고 다녔습니다. 몇 시간이 지났고, 무붕가가 돌아왔습니다. 비슷한 것을 구했는데 길이가 약간 긴 것이었습니다. 아쉬운 대로 차가 갈 수 있게 만들었지만, 아리와라로 가는 것은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부니아로 돌아왔습니다.

또 하루가 늦었지만 멀리 가지 않아서 고장 난 것에 감사하면서 무붕가가 이사오게 될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새벽에 또다시 부니아를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어제와 같은 장소에서 또다시 경찰들이 잡더군요. 어제 돈을 줬으니 보내주라고 했지만, 오늘은 다른 팀이어서 다시 돈을 줘야 된다는 거에요. 정말 화가 머리 끝까지 올랐지만, 애써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부니아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경찰들이 돈을 안주면 부니아에 있는 경찰 사무실로 가서 벌금을 내야 한다고 해서 벌금을 내더라도 경찰서장을 만나 끝장을 보고 가야겠기에... 저희가 과감히 돌아가기로 결정을 하자 경찰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는데 결국은 돌아갔습니다. 그것도 한 시간이나 더 기다려서요. 우리에 대한 편지를 쓴대나...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에 대한 온갖 나쁜 말을 썼더군요. 뒷돈 주기를 거부했고, 경찰들한테 대들었고... 뭐 이런 말들이었요. 

어쨌거나 경찰서까지 갔는데 거긴 아직 문도 열지 않아서 또 기다려야 했습니다. 대회장님께 연락해서 부니아 시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더니 부니아는 시장이 없다나요. 그래도 저희를 도와 주시기 위해 부랴부랴 대회장님이 오셨습니다. 드디어 경찰서장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도와 달라고 했더니 일이 생각보다 쉽게 끝나더군요. 벌금이니 뭐니 하는 얘기들은 거짓말이었고.. 다만 보험증서에 기록된 인원수보다 초과로 탑승하는 것에 대한 문서를 20불을 주고 사는 걸로 일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경찰서장이 전화번호를 주면서 이 후에 경찰들과 문제가 생기면 연락하라고,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6시에 출발했지만 10시에 부니아를 빠져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를 잡았던 경찰들에게 메롱하면서 그곳을 지나갔습니다. 여행하는 내내 부니아로 돌아가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가는 동네마다 경찰들과 싸워야 했을 것인데, 그 때 부터는 무슨 일인지 저희 차를 세우다가 말고 다 보내주었습니다. 


두 번째 천사는 트럭 운전기사였습니다. 

원래의 계획은 새벽에 부니아를 출발하면 저녁에 아리와라까지 도착하리라 생각했는데 경찰들 때문에 너무 늦게 출발을 했기 때문에 부득이 중간에서 자야 했습니다. 더욱이 두 시간쯤을 갔을 땐 갑자기 차의 밧데리에 불이 붙어서 화재가 날 뻔 했던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요. 전선들이 합선이 되었는데 다행히 밧데리는 괜찮았는데,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지나가던 군인 차량을 세워 도움을 요청했더니 군인들이라 바빠서 안 된다고 거절했습니다. 뒤에 오는 트럭에게 부탁을 했더니 마침 내리막 길이니 우리 차를 끌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줄을 단단히 붙들어 매고 끌려가면서 시동을 키려고 여러번 시도를 했지만 실패를 거듭하고 약 1킬로미터 이상을 뛰어서 차를 따라 갔습니다. 결국은 저희가 가지고 있는 점프 선을 연결했더니 간단히 시동이 걸렸습니다. 정말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보통은 이런 때도 많은 돈을 요구를 하는데 이 기사는 돈도 요구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더군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구희망 인류회복” 책을 선물로 주고 각자가 출발을 했는데요. 한 시간쯤 갔을 때 또 난관을 만났습니다. 우리가 건너야 할 다리가 부러져서 공사가 진행 중이었어요. 저희의 도움 요청을 거절하고 바쁘다고 앞서간 군인 차도 거기에 서 있었습니다. 왜 고소한 생각이 들었을까요? 공사가 아무래도 한참 걸릴 것 같아 저희는 얼른 가스버너와 음식들을 내리고 밥과 라면을 끓여서 먹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이 가장 힘든 여행이었지만, 아침에 일찍 나오느라 요기도 제대로 못해 모두가 기진해 있었거든요. 다행히 저희가 식사를 거의 끝낼 쯤에 공사가 마무리 되어 다리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순간순간이 감사했습니다.


세 번째 천사는 한 호텔의 여주인이었습니다.

부니아와 아루의 중간에 도시가 니오카라는 곳인데요, 대회장님의 제안은 이 니오카를 지나서 30킬로 정도를 가면 우리 교회 학교가 있는 ‘탈라’라는 동네에서 자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해가 저물어 갈 때쯤 니오카에 도착했는데 거기 호텔을 보니 너무 형편이 없는데 저희 얼굴을 보더니 값을 무지 비싸게 부르는 것이었어요. 사람들에게 탈라 가는 길을 물어보니 탈라까지 길이 좋으니 갈 수 있다고 하기에 탈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출발하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밤길에는 가급적 다니지 않기 때문에 저희 차의 전조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길은 미끄럽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여행이었습니다. 집사람이 니오카로 돌아가자고 제안했지만 돌아가는 것조차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30킬로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여기서는 비가 안 오고 정상적으로 갔을 때 한 시간 걸립니다. 


약 13킬로미터 정도를 갔을 때 호텔처럼 보이는 새 건물이 길옆에 있어서 랴스웨카에게 물어보라고 보냈더니 호텔이 맞는데 아직 허가가 안 떨어져서 영업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길을 더 가려고 할 때 집사람이 얼른 제안을 했습니다. 6명 모두 함께 자도 좋으니 방이 있으면 좀 내어달라고 하자고... 호텔 여주인이 흔쾌히 저희를 받아 주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들어가니 숯불이 피워져 있는 주방도 내주면서 요리하라고 하는데, 요리도 요리지만 따뜻하게 몸을 녹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가져간 침낭들로 하룻밤을 잘 자고 출발 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했습니다. 아침에 얼마를 주면 되겠냐고 했더니 그냥 도와 준 것이니 안줘도 된다고 하네요. 아니 이런 사람이 콩고에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감사의 표시로 20불을 주고 나왔습니다.


오늘은 당연히 도착하겠지. 하룻길 생각하고 출발한지 3일 만에 아리와라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어제 일로 밧데리가 시원찮아서 중간에 시동을 끌 수가 없었는데... 또 인터쿨러가 작동하지 않아 오르막을 무척 힘겹게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인터쿨러에 연결되어 있는 호스를 떼어 내고 손수건으로 막은 다음 가니까 힘을 좀 받을 수 있었는데, 한 50킬로 달리고 나면 또 내려서 손수건을 고쳐서 막고... 부득이 시동을 꺼야 할 땐 세울 때 내리막이 시작되는 곳에 세워서 밀고.... 정말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여행이었고,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결코 도착할 수 없었던 여행이었습니다.


먼저 아루에 도착해서 농업기술고등학교를 세울 곳을 둘러보았는데, 이곳은 몇녀 전 아드라에서 학교사업을 시작하기로 하고 정부로부터 땅을 제공받고 사업을 시작하다가 무슨일때문인지 사업을 철수하면서 땅을 교회 앞으로 등록을 해 놓은 것입니다. 전체 면적은 약 5헥타르로 우간다 국경과 붙어있으면서 또 옆에는 유엔평화유지군 부대와 담을 마주하고 있어 접근성과 안전성에 있어서 아주 좋은 곳입니다. 또 아드라에서 철골과 지붕을 세곳을 만들어 놓아서 큰 돈을 들이지 않고서도 건축을 마칠 수 있고, 또 아드라에서 만들어 놓은 우물이 있어서 항상 깨끗한 물이 풍성하게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데 지난번에 철골과 지붕만 있던 세 건물 가운데 한 건물에 누군가가 자기 집을 짓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이전에 아드라가 사업을 할 때 매니저였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자칭 우리 교인인데 교회 내에서도 유명한 사기꾼입니다. 이전에 교회 직인까지 훔쳐서 서류를 만들어 장학금으로 아이아스 유학까지 갔다 왔다고 합니다. 물론 뒤늦게 발견이 되어 졸업을 못하고 쫓겨 왔지만요. 그래서 아드라가 사무실을 짓다가 말고 철수를 하자 그 땅을 자기의 이름으로 등록을 하고는 아드라가 짓던 집을 자기가 마무리를 하고는 자기 집으로 만든 사람입니다. 이번에도 이 학교 땅에 자기의 집을 짓고 자기 이름으로 등록을 해서 차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학교 땅을 교회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않으니까 정부가 그 땅을 원래 농사를 짓던 마을 주민들에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허가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기회를 노려 자신이 집을 지어 놓으면 그 땅이 자기 소유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건축을 시작했던 것이지요. 다행히 정부에서 이를 알고는 막았다고 합니다. 아무 사업도 시작하지 못해 이 땅을 정부에 도로 빼앗길 위기에 처했었는데 내부의 적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감사하게도 미주지역의 한 성도의 도움으로 저희가 이곳에 학교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건물이 완성되면 농업과 건축을 가르치는 기술고등학교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건물이 완성된다고 해서 학교를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학교 사업은 교육사업이라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특히 이 학교는 이곳 정부의 요청으로 농업과 건축관련 교육을 시키는 기술고등학교가 될 텐데요, 농업과 건축에 재능이 있는 선교사가 필요합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성도님들 가운데 농업과 건축 어느 곳에라도 기술과 달란트가 있으신 분들이 계시면 저희와 함께 콩고 선교를 위해 일하시도록 모시고자 합니다.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아루 방문을 마치고 3년 동안 문을 닫은 진료소가 있는 예키아로 향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미국서 오신 한의사 권정순 원장님께서 머무시면서 진료소를 다시 열기 위해 멀고 먼 여행을 같이 따라 오셨습니다.

권원장님께서는 우리 교인이 아니시지만 콩고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지난 7월부터 오셔서 무티리 병원과 루캉가 병원 등에서 머무시며 진료를 하시고 간호사들에게 교육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 예키아에 문을 닫은 진료소가 있어서 혼자 남아 그 진료소를 돕고 교육을 해주시기로 하셨던 것입니다. 전기도 없는 시골 촌구석에 혼자남아 생활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당신은 오히려 그런 곳이 좋다고 하시며 흔쾌히 자원해서 지원하셨습니다. 


예키아에서 마지막 목적지인 아리와라로 가야 하는데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아리와라에 도착 못하고 여기서 자야 되려나? 생각했지만 멀지 않은 길이라 가기로 했습니다. 우리를 맞기 위해서 나온 아리와라 지역 교회를 맡고 있는 키리무 목사님(무붕가의 형)과 북쪽 스테이션의 장을 맡고 계신 목사님이 250킬로미터의 길을 마다 않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지역장 목사님께 자리를 양보하고 집사람이 키리무 목사님의 오토바이를 탄 채 아리와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군인을 만났는데 정말 머리끝이 쭈뼛 했습니다. 집사람은 이렇게 해가 질 땐 오토바이를 타는게 아니었는데... 하고 후회했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집사람의 가방에는 그쪽 선교를 후원하기 위해 갖고 있던 돈이 좀 많이 있었거든요. 그래도 지역장 목사님께서 잘 해결하셔서 무사히 빠져 나왔지요.


드디어 도착한 아리와라 숙소에는 화요일부터 식사준비를 하기 위해 모인 여집사님들이 반가이 저희를 맞아 주었습니다. 화요일에 부니아 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닭을 잡았다가 교인들끼리 먹고, 또 수요일에도 닭을 잡았는데 교인들끼리 또 먹고... 농담 삼아 덕분에 잘 드셨네요 했더니 정색을 하면서 이렇게 손님 대신 먹는 닭은 슬픔 가득이라고 하더군요.


아리와라는 로마린다 교회 김치사업부와 영남합회 상주교회의 후원으로 중고등학교를 짓기로 했고 땅을 구입하고 건축을 시작했습니다.(이 학교에 대한 보고는 준공을 하고 다시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라피키 미션의 자체 전도회를 이 아리와라 지역에서 열기로 해서 교인들이 정말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리와라 교회 자체도 너무나 열악하지만, 진리에 대한 황무지인 이곳에 이번 전도회를 통해 두 곳에 분교를 세우려는 계획입니다. 이 두 곳의 분교를 위해서 땅도 구입해야 하고, 전도회를 위해 앰프도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라 기도하면서 후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순간순간 지켜 주시고 길을 주셔서 동북부지역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다시 부템보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오는 길도 만만치는 않았지만, 가는 길에 비해서는 쉬웠지요. 사흘 만에 부템보로 돌아왔으니까요. 당초 가고 오고 1주일을 예상했지만 2주일이 걸렸습니다. 매 굽이마다 지켜 주신 하나님과 기도로 응원해주신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가 내년에는 그 쪽에 좀 더 많은 시간 있게 될 것입니다. 시작된 사업들을 추진하고 관리하는 일들이 필요하고, 또 전도회와 사업들이 주로 이쪽에서 많이 진행될 것입니다. 인구 36만 도시의 아리와라에 교인 40명이 학교와 두 곳의 분교를 위해 헌신하고 있고, 교인 4명밖에 없는 인구 32만 도시 아루에도 이 학교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일이 시급하기 때문입니다. 이곳의 사업들을 위해 더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방문후기 :

이 방문을 마치고 맹장수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수술 이틀 후에 뱃속에서 고름주머니가 발견이 되었습니다. 한국 같으면 호스를 연결해 고름을 빼내겠지만 여기선 그런 현대적 방법이나 도구가 전혀 없기 때문에 봉합했던 복부를 다시 열고 그 부분으로 고름을 빼냈습니다. 또 말라리아 까지 겹쳤구요. 그래서 치료가 더디고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의사가 성급해서 빨리 끝낼 거라고 다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수술을 시도해서 봉합수술만 세 번을 했는데, 다시 벌어졌지만 지금은 거의 말랐고 마지막 단계입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 치료덕분에 저희가 12월 1일부터 계획되어 있던 아리와라 전도회를 부득불 내년으로 미룰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12월 1일 전도회부터 저희와 합류하기로 하셨던 워싱턴 스펜서빌 한인교회의 김준원 장로님께서는 갑자기 췌장에서 얼마전 CT촬영에서는 없던 단단한 물질이 발견이 되어 콩고행을 미루시고 요양을 하시면서 상황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장로님을 위해 여러분의 특별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한의사이신 권정순 원장님께서는 비자 문제로 오래 계실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원래 1년을 계획하고 오셨는데 비자연장을 위해서 여권을 킨샤사 수도로 보내야 하는데, 거기로 가면 여권이 언제 올지 기약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희도 7개월만에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6개월의 비자가 끝나는 대로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하셨습니다. 권정순 원장님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아루 학교 건축을 위해 2월에 저희 하동 큰형이 콩고로 오기로 했습니다. 혹시 약 1개월간 건축봉사를 위해 함께 오실 수 있거나 도움을 주실 분이 계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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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희는 지난 5월부터 인터넷이 끊어져 이 페이지를 들어갈 수 없는 관계로 워싱턴 스펜서빌 한인교회 해외선교부장이신 전동환 집사님을 통해 이 글 올립니다.

따라서 댓글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혹시 저희들에게 주실 메시지가 있으시면 스마트폰으로 확인이 되니 아래 메일이나 카톡으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congoju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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