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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8일 안식일 - 혁명적인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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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본문에서 선언하는 메시아의 사명은 가히 혁명적입니다. 마태는 복음서 첫 절에서부터 예수를 메시아요 다윗의 아들이라고 명백하게 밝힙니다. 유대인에게 두 가지 칭호 모두는 정치적인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임금에 관한 이상에서 둘은 하나로 결합합니다. 다윗은 유명한 정복의 전사였습니다. 그리고 1세기 유대인들은 메시아이자 임금인 존재가 다윗과 같은 일을 실현하기 기대했습니다. 메시아, 다시 말해 그리스도가 민족의 구원자가 되길 기대했습니다.
예를 들어 ‘솔로몬 시편’(신구약 중간기에 기록됨.)을 보면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의 후손이 백성 사이에서 일어나 왕이 되어 원수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계보를 이은 이 왕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여받습니다. “철 막대로 그들의 모든 소유를 조각내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로 불경한 나라들을 멸망시키리라”(솔로몬 시편 17: 24).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세 번 큰 압박을 당했습니다. 이집트, 바벨론 그리고 그 당시에는 로마가 그들을 억눌렀습니다. 처음 두 번은 정치적으로 답을 찾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세 번째도 똑같이 해결되기를 기대했습니다. 자기 민족도 구원하지 못하는 메시아를 진짜 메시아로 볼 수는 없었습니다. 메시아에 대한 유대인이 품은 희망은 압박자로부터 그들에게 자유를 가져다줄 다윗의 자손인 왕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이 지닌 혁명적일 정도로 중요한 사항은 이런 맥락에서 살펴야 합니다. 영감적인 문장 하나로 마태는 유대인이 지닌 메시아 개념을 뒤집어엎어 버립니다. 그리스도가 로마의 과중한 짐에서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에서 구원한다고 그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의 자손 예수가 백성을 원수에게서 구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 당시에 정말 최악의 실망으로 다가왔습니다.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에게 가장 어려운 임무 중 하나는 정복자형 왕의 모델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메시아 왕국의 참된 본질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마음속을 들여다보아도 아마 당시의 유대인들과 형편이 비슷할 것입니다. 마음을 유혹하는 죄를 버리는 일보다 눈엣가시 같은 사람이 사라지는 일이 훨씬 더 기분 좋지 않습니까?(가령 “주님, 저 사람들 따끔한 맛 좀 보게 해 주세요. 행한 만큼 당하게 해 주세요.”). 그러나 예수는 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마태복음 1장 21절은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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