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아침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두번째 이야기 - 비누 속에 숨긴 성경

990828 안식일 이야기


내가 앤드루스 대학교에서 만난 로버트 왕 목사는 내가 살던 바로 아래층에서 아내와 키가 큰 미모의 딸과 함께 살았다. 만날 때마다 "니 하오 마?"라고 인사하던 그에게서 15년이라는 긴 세월을 감옥과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보낸 수감자의 암울한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권정행).

왕 목사가 갇혀 있던 감방은 가로 2.7m, 세로 2.1m의 아주 작은 방이었다. 이 방을 더욱 작게 만든 것은 네 명의 다른 수감들이었다. 침대는 말할 것도 없고 의자나 책상도 없는 좁은 공간이었다. 다만 나무 평상 위에 모택동 어록이 이 방에 있는 물건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것도 지난 4년간의 독방 생활에 비하면 훨씬 나은 편이었다.

문화혁명은 중국의 일반인들에게도 견디기 힘든 기간이었지만 기독교도들에게는 매일 생명의 위협 속에 나날을 보내야 했다.  게다가 왕 목사는 토요일에는 어떤 작업도 거부하는 재림교회의 목사였으니 그의 고통은 넉넉히 상상할 수 있을만 하다.

반동분자로 몰리는 그는 재판을 받기 전 4년을 미결수로 보내야 했다. 왕 목사는 재판을 받은 후 상해에서 또 다시 4년간의 복역을 해야 했다.

상해에서는 그래도 좋았다. 한 달에 한 번씩 비록 8분 동안이긴 했지만 가족과의 면회가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더욱 좋았던 것은 가족이 면회오기 전에 그들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면회를 올 때에 어떤 물건을 준비해 올 수 있는지 예를 들어 비누라던가 치약을 부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음식을 보내달라거나 글자 수를 세어 100자가 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무엇을 갖다 주었으면 좋겠다고 쓸까?" 4년만에 처음으로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그것도 100자 이내로 써야만 하는 편지에 무엇을 써야 하나 망설이던 그에게 선택의 여지를 없앤 한가지가 떠올랐다. 성경이었다. 지난 4년 동안 한 번도 읽을 수 없었던 그리운 성경.

그는 성경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편지는 발송되기 전에 세심한 검열을 받아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 성경을 가져오라고 쓸 수 있을까? 성경책을 갖고 오라는 이야기를 검열을 피하며, 가족들에게도 피해가 되지 않는 방법이 무엇일까?

바로 그때였다. 윗층에서 "188번, 188번!"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188번은 윗 층에 있는 수감자의 수감번호였다. 교도소 안에서는 인격을 지닌 다정스러운 이름이 모두 인간을 비인간화 한 수감자 번호만이 있을 뿐이었다. 188번이라는 번호를 듣는 순간 찬미가 188장이 머리와 떠올랐다. 찬미가 188장은 그가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찬미였다.

샛별과 같은 성경 주옵소서 길 잃은 자의 기쁨되도다.
죄 대속하러 구주 오셨으니 이 빛을 가릴 구름 없겠네
빛 되는 성경 내게 주옵소서 이 빛은 나의 인도자로다.
이 어둔 세상 살아가는 동안 이 성경 내게 교훈되도다.

맘 상할 때에 성경주옵소서 근심과 죄로 맘이 슬프나
이 귀한 말씀 내게 주시어서 임박한 재림 전케 합소서
길 인도하는 성경주옵소서 이 땅에 위험 풍파 많으나
이 등불 비춰 어둠 물리치며 평안하기 가게 하시옵소서

그는 얼른 엎드려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여보, 188면 짜리 공책을 가져오시오." 그리고는 '188'이란 숫자 밑에 밑줄을 긋고 나서 무릎을 꿇었다.

검열관은 한참 들여다 보다가, "됐어!"라고 소리쳤다.

드디어 면회일이 다가왔다. 8분 동안의 면회 시간은 참으로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시간을 묶어둘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4년만에 처음으로 만나는 8분 동안의 만남. 8분이 되자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호각 소리 속에 면회객들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면회실을 나가면서 그의 아내는, "여보, 비누를 쓰실 때는 반으로 짤라서 사용하세요"라고 했다.

왕 목사는 그 의미를 눈치 채고 미소를 지었다. 면회객들이 돌아간 다음 간수는 그들이 갖고 온 물건들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교도소 복도에는 수감자들이 목에다 물건을 매달아 걸고는 행진을 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사탕 봉지를, 어떤 이들은 치약 튜브 속에 돼지기름을 목에 걸고 있었다. 모두 금지된 물품들을 밀반입하여 수모 섞인 벌을 받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비누 속에 감춰온 바늘까지 발각되어 벌을 받는 이도 있었다.

동료 수감자들이 모두 잠든 후, 그는 빨랫감 틈에 넣어둔 커다란 빨래 비누를 꺼냈다. 그 속에는 비닐 종이에 싼 작은 신약 성경이 들어 있었다.

간수들이 24시간 밀착 감시를 하고 있었지만 그는 6개월 동안 이 성경을 통해서 그의 믿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4년만에 읽은 성경은 그의 나머지 수감 생활에 큰 활력소가 되었다. (Signs of the Times, March 1992,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