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아침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서른 두 번째 이야기 -  3,000명이 옴에 걸렸는데

어떤 건강 강연회에 다녀온 이웃 집 주부가 다소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 연사로 나온 의사가 1960년대초에 부산에서 군의관으로 일할 때 부대원 3,000명 대부분이 옴에 걸렸는데 옴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 조사해보니 대부분이 안식일교회 청년들이었다는 것이다. 안식일교인들의 식생활 때문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오랫 동안 그 이야기의 진상을 알고싶었었다. 



논산 훈련소 영창에서

1961년 1월 9일, 삼육대학교 신학과에 재학 중이던 하평장 청년은 논산 제 2훈련소 28연대에 훈련병으로 입소했다. 그러나 안식일의 훈련과 집총을 거부하는 양심적인 반전론자인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훈련소 영창이었다. 1월의 영창은 춥고, 영창 내무반의 마루에는 구멍이 듬성듬성 나 있어서 매섭도록 차가운 겨울 바람이 마루에 뚫어진 구멍에서 올라왔다.

영창 내무반이 지어진 이래 한 번도 닦아본 적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무튀튀한 마루 바닥에 앉아서 하평장은 생각했다. 이곳에 들어온 다른 사람들은 재수가 없어서 들어왔다고 생각할 텐 데, 이곳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다른 사람들에게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알려 줄 수 있을까?

생각에 잠겨있던 하평장 청년은 화장실에 다녀오는 시간을 이용하여 걸래 조각 몇 개를 정성스럽게 빨아서 마루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걸래를 다시 빨아서 닦고 또 다시 닦기를 여러 차례,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마루 바닥이 깨끗해지면서, 바닥에 누군가가 못으로 조각해 놓은 듯한 글씨를 발견했다.

"No Cross, No Crown"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에 복받쳐 올랐다. 먼저 이곳을 거쳐간 신앙의 선배들이 기록해 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감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영원한 새벽이 다가온다. 형제여! 유혹에 지지 말아라!"

그는 다른 글씨를 찾기 위해 더 부지런히 걸레질을 했다. 어느새 그의 몸에는 열이 나기 시작하고, 가슴은 뜨거워졌다.


부산 육군 형무소에서

4년형을 언도받은 하평장 청년은 부산에 있는 육군 형무소로 이감되어 장기수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틈나는대로 재소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안식일이면 그들을 모아 예배를 인도했다. 안식일 예배에 참가하는 수감자들의 숫자가 늘어나자 형무소의 군종참모는 이들을 이대로 방치하면 군대 내에 "안식교"가 많이 늘어나게 되고, "안식교"가 늘어나면 국방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 하며, "안식교도"들을 특별 감호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하평장은 형무소 안에서도 죄질이 나쁜 사람들이 갇히는 특방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나 5.16 혁명이 일어나며 폭력배들이 형무소에 들어오면서 특방이 모자라 그들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부산 형무소에 갑자기 옴이 퍼지기 시작했다. 옴이라는 피부병은 잘 낫지도 않고 급속히 빠른 속도로 퍼지는데다가 한 번 걸리면 온 몸이 가려워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피부병이다. 처음에는 옴에 걸린 사람들만을 격리 수용하다가 마침내 재소자 거의 전원에게 옴이 퍼지자 형무소에서는 옴이 걸리지 않은 사람들만을 모아 격리 수용했다. 재소자 3,000명 가운데 옴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50명밖에 안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50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3명이 안식일 준수로 형무소에 들어오게 된 안식일교회 청년들이었다. 24명의 안식일 교회 청년들 가운데 23명은 옴에 걸리지 않았다. 옴에 걸린 유일한 안식일 교회 청년인 김OO은 평소에 동료 수인들 가운데 "돌 안식교"라는 별명으로 통하던 사람이었다. 안식일교회에서 가르치는 식생활 방법을 따른 사람들 가운데는 한 사람도 옴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레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하신 출애굽기 15:26절의 약속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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