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다섯 번째 이야기 -  전신주 밑에 감춘 성경, 성경을 먹으면 오래 오래 배고프지 않나요?

6.25 사변이 끝난 후 3년이 지난 1956년, 교회의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북한을 떠난 그 때 홀로 남아 교회를 지키고 있던 북선대회 총무부장(서기) 김겸목 장로(뉴욕 김심목 장로의 형)는 32세된 젊은 부인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침례를 주었다. 교회에 대한 핍박이 거세지면서 김겸목 장로와 그의 아내는 모아둔 십일조를 지키다가 순교를 당하고, 이 여인은 함경북도 북쪽 중국과의 경계 도시로 강제 이주되었다. 030118


전신주 밑에 감춘 성경

올해 79세의 이하양 할머니는 낡은 성경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1936년에 출판된 이 성경은 이 할머니의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순간 순간을 지켜준 수호 천사였다.

이 여인은 정든 평양에서 신앙을 이유로 쫓겨나 낯선 타향 두만강변 근처의 도시로 왔다. 일찍이 일본에서 음악을 전공한 남편은 죽고 남편이 남겨놓은 다섯 자녀들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힘들 게 살아가는 그에게 유일한 낙이 있다면 대학에 다닐 때 친구로부터 받은 성경을 꺼내서 읽는 것이었다. 생애의 가장 커다란 보물인 성경을 항상 띠를 묶어서 앞 배 위에 안고 다녔다. 검문이 심할 때면 좋이에 싸서 항아리에 담아 며칠씩 땅 속에 묻어두었다가 다시 꺼내 읽던 성경이었다.

1965년 어느 날이었다. 이웃에 사는 관리 한 분이 그동안의 친분 때문에 중요한 정보를 흘려주었다. 며칠 있으면 가택 수색이 있을 테니 집 안에 혹시 난처한 물건이 있으면 숨기라는 것이었다.
"나 같은 사람에게 뭐 숨길 것이 있갔시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배 위에 감고 있는 성경이 걱정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야음을 틈타서 집 마당 가운데 있는 전신주 밑에 자그마한 구덩이를 파고 성경을 잘 싸서 그 속에 묻었다. 안심이 되었다. 여기까지 성경을 갖고 온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른다. 일제시대부터 읽던 "고대사화"(부조와 선지자)와 "대쟁투 상/하권"이 있긴 하지만 어찌 성경에 비기겠는가?

날씨가 무더운 날, 마루에서 잠깐 쉬고 있는데 난데 없이 장정들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들이닥쳤다. 왠일인가 물으니 당에서 이 집 한 가운데로 지나고 있는 전신주를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명하여 전신주를 옮기러 왔다고 했다.
전신주를 옮기러 왔다니! 갑자기 하늘이 내려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신주 아래를 파기만 하면 당장 성경이 발견될 텐데...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다.
다른 곳에서 피곤하게 일하다가 전신주를 옮기러 이 집으로 들어온 인부들은 잠시 마루턱에 앉아서 쉬어야겠다고했다.
그들이 마루에 걸터 앉아서 쉬고 있는 동안에도 기도는 그치지 않았다.
"하나님, 성경도 성경이지만 성경이 발견되면 우리는 죽습네다. 제발 살려주세요."
바로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지면서 먹장 구름이 몰려와 장대같은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인부들은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일찍 들어가 쉬고 싶은 데 잘 되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무래도 오늘은 못하겠구만, 내일 와서 옮깁세다."
집을 나선 인부들이 시야에서 멀어지기를 기다려 얼른 전신주 밑을 파서 성경책을 꺼내 뒷 뜰에 황급히 묻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역사하신 것이다. 그는 지금도 그 성경을 가슴에 품고 있다.

성경을 먹으면 오래 오래 배고프지 않나요?

며칠이 지나서 땅을 파고 성경을 꺼냈다. 급히 서둘러 성경을 감추느라 제대로 싸지 못해서 안타깝게도 성경의 한 부분이 떡처럼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서로 달라붙은 부분은 마침내 성경에서 떨어져 나갔지만 너무나 소중한 성경의 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 부분을 따로 보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 부분을 태우기로 했다.
떨어져 나간 성경의 한 부분을 태우는 자리에 다섯 명의 자녀들이 둘러 앉았다. 마침내 아깝고 귀한 성경의 한 부분이 불에 태워지기 시작했다. 비록 재가 되긴 했지만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어머니 는 아이들에게 이 재를 먹자고 제안했다. 불탄 재를 먹기 전에 한 아이씩 돌아가면서 기도를 드렸다. 막내 아들의 차례가 되었다. 막내는,
"하나님 아버지 이거 먹으면 오래 오래 배고프지 않나요?" 그의 기도는 계속 되었다. "하나님, 우리 어머니 하루 속히 안식일 지킬 날 오게 해주세요." 한 마디 한 마디가 어머니의 가슴을 저미는 기도였다. 기도를 마치고 식구들은 그 성경이 타고 남은 재를 조금씩 나누어 입에 넣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생애 속에서 육신이 되어 나타나기를 고대하면서....
당시 일곱 살이던 막내 아들은 서른 네 살이 되던 92년 8월 7일, 복음을 전하다가 반동이라는 누명으로 사형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