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행 목사의
                    "안식일 아침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서른 여섯 번째 이야기 -  기도로 산을 옮길 수 있는가? 있다. 대통령을 감동시킨 이야기?


믿음의 기도는 산을 옮길 수 있는가? 분명히 산을 옮길 수 있다. 그런 실례가 있는가? 물론 있다. 무(無)에서 시작하여 은혜로 이룬 청암고등학교, 널찍한 고등학교 운동장으로 가로 지르게 될 도로 계획과 주택공사의 토지 수용령,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추상욱 교장의 기도를 들으시고 도로계획을 바꾸셨다. 지금도 서울 노원구 중계동을 아파트 단지를 방문하면 똑바로 나야 할 도로가 무지개 모양으로 휘어진 곳이 있다. 바로 학교 운동장을 피하기 위해서 도로를 돌렸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읽기 전에
이곳을 클릭하여  "권정행 목사의 안식일 아침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1999년 10월 16일 안식일 이야기 "불우 청소년, 비행 청소년의 아버지"를 읽으면 추상욱 장로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눈물과 기도로 세운 청암학교

청암고등학교, 기도와 눈물로 세운 학교이다. 이 학원의 설립자 추상욱 장로의 어머니는 새벽마다 돗자리를 들고 학교가 내려다 보이는 산으로 올라가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기도드렸다.  아무것도 손에 가진 것 없이 가난에 찌든 학생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만 갖고 기도로 학교가 세워지기까지에는 책 한권으로도 모자라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마침내 학교는 세워졌고 추상욱 교장에게는 하늘 아래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학교를 돌보는 틈을 내어 주위에 산재한 비행 청소년을 돕기 시작했고, 이 모습에 감동한 검사 한 명이 마침내 추상욱 장로를 형님으로 부르며 가까이 따르게 되었다.
전두환 대통령 집권 초기, 사회 정화를 위한 명목으로 삼청 교육이라는 것이 생겨났고, 이 때 가까이 지내던 그 검사의 사무실을 들렀을 때 그는 느닷없이 말을 꺼냈다.
"형님, 여기 아주 고약한 친구가 하나 있는데 이거 살려줄까요 아니면 그냥 집어넣어 버릴 까요? 형님 말대로 하겠습니다." 물론 추상같은 법을 다루는 검사가 종교인 교육가의 말대로 집행할 것은 아니겠지만그의 조언이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어떤 사람인데?"
"어떤 스님인데요. 이런 투서가 들어왔습니다."
어떤 절의 주지 승려에 관한 주변 인물로부터의 투서였다.
"아무리 그런 투서가 들어왔어도 종교인이 설마 그렇게까지야 했겠오. 왠만하면 아우님께서 정상을 참작해주시지 그래."
"그래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형님 말씀대로 살려주지요."

학교부지 수용령

1989년 초의 일이었다. 정부가 노원구 상계동 일대를 대대적인 아파트 단지로 개발하면서 청암학교의 땅 3,600평 가운데 2,600평을 수용한다는 결정이 났다. 남은 땅 1,000평 땅도 운동장 중간을 가로질러 도로가 나게 되었다. 현장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책상 위에서 도면만 보고 줄을 그었기 때문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추상욱 교장은 여러 곳을 뛰어다니며 부당성을 주장했다. 남은 땅 1,000평, 그것도 한 가운데로 도로가 지나가면 어떻게 교육이 이루어지겠는가? 시청, 구청, 교육청, 주택공사, 건설부까지 뛰어다니며 입술이 부르트도록 호소해도 대답은 한결같았다. "사정은 딱하지만 국가정책상 어쩔 수 없다." "일일이 그같은 개별 사정을 다 감안하면 도시계획을 집행할 수 없다." "주택난 해소가 더 시급한 국가적 과제이니 양해해달라."
가난한 청소년들의 꿈, 그리고 추 장로의 청춘을 쏟은 학교가 사실상 무너지는 참담한 현실 앞에서 하루하루를 속태우며 살아가는데, 느닷없이 정부에서 추 장로에게 비행청소년 교육에 이바지한 공로로 훈장(국민훈장)을 받게 되었다고 통보해왔다. 그러나 학교가 사라지려는 마당에 훈장도 반갑지 않았다. 그렇다고 훈장을 거부하면 추천한 이들의 입장이 어떻게 되겠는가? 훈장을 팔아(팔 수도 없지만) 학교터를 마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청와대 방문

89년 6월 6일, 전국적으로 가뭄이 들어 신문, 방송에선 연일 물부족을 뉴스로 다루고 있던 날이었다. 학교 직원이 전화가 왔다고 수화기를 건네 주었다.
"누구에요??"
"그냥 추 교장 선생님을 바꾸라고 하는데요...."
주택공사에서 온 전화려니 싶어 시큰둥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바꿨습니다.'
"추상욱 교장선생님이신가요?"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지요?"
"여기 청화댑니다."
"청와대요?"
"네, 내일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 각하를 만날 것이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아침 7시까지 도착하십시오."
"청와대에서 무슨 일로, 왜 대통령께서 날 보자고 하시지요?"
"이번에 추 교장 선생님께서 국민훈장을 수여받게 된 것 모르셨습니까?"
그제서야 학교 문제로 잊고 있었던 훈장이 생각났다. 그러나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직접 수여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6월 7일, 청와대에 들어가는 날은 전날까지도 땅이 갈라질 정도로 가뭄이 심했는데 새벽부터 줄기차게 비가 내렸다.
청와대에 도착, 21명의 수상자들 틈에 끼어 대통령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나와서 주의를 주었다.
"대통령 각하께서 시상식을 마치신 후에 오찬 때 질문을 하실 것입니다. 질문이 나오면 이렇게 답변하십시오." 그는 사전에 준비한 모범 답안을 설명해주었다.

노 대통령은 침묵, 영부인은 눈물이 글썽

시상식이 끝나자 풀 코스의 정찬이 양식으로 차려진 테이블 앞에 앉았다. 헤드 테이블에는 노태우 대통령과 영부인 김옥숙 여사가 자리를 잡았다.
식사가 끝나고 디저트로 음료수와 과일이 나오기 시작하자 대통령이 추상욱 교장에게 말을 걸어왔다.
"추 교장선생님, 그간의 활동을 보고 받았는데 애로가 많으셨군요."
이 질문이 나왔을 때의 모범 답변은 "애로는 많았지만 주변의 보살핌과 국가의 도움으로 극복해낼 수 있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학교를 위해 노심초사하며, 운동장으로 나게 될 도로를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기도드려오던 추상욱 장로는 청와대 관계자들로부터 받은 모범 답안은 잊어 버리고 그의 기도의 제목을 이야기했다.
"지금까지의 애로는 아무것도 아니고 또 그 애로가 허사가 될 지경입니다. 올해 안으로 학교의 문을 닫아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노 대통령은 침묵으로 대했다. 예상의 답변을 빗나간 대답에 대통령이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막상 대답을 그렇게 해놓았지만 대통령이 침묵을 지키니 뒷 말을 이어갈 수도 없었다. "아니 학교 문을 왜 닫게 되는 것입니까?" 그런 질문이 나와야 이유를 설명하고 도움을 구할 수 있을텐데. 어색한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갔다. 설상가상으로 그 때에 한 비서관이 끼어들어 대통령에게 다가가 무엇을 보고하는 모양이었다. 그의 보고가 끝나자 대통령은 추 교장을 잊었는지 다른 수상자에게 말을 걸었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것이었다.

은혜를 잊지 않은 도선사 주지 스님

대통령은 건너 편에 있는 한 스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러나 그 스님은 "애로가 없느냐, 도와줄 일은 없느냐"는 대통령의 질문에 동문서답을 하고 있었다. "각하, 애로가 있습니다마는 제가 아니라 저 쪽에 있는 추상욱 교장선생님입니다. 제가 저분을 오랫 동안 지켜보았는데 아주 성실하고 청소년들을 정말 사랑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가 피땀흘려 겨우 완성한 학교가 주택공사 개발에 밀려 수용당하게 됐습니다." 그 스님은 이제까지 학교가 어떻게 설립되었는가의 눈물어린 모든 과정을 대통령에 말했다. 그 스님은 언젠가 누명을 쓰고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추상욱 장로가 검사에게 한 마디 거들었던 도선사 주시 박현성 스님이었다. 자신의 애로를 불교도인 대통령에게 직접 호소하고 싶은 것도 많이 있었을 텐데, 추 장로가 하고 싶은 말만 골라서 대통령에게 진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대통령은 요지부동, 묵묵부답, 가타부타 대답이 없었다.그 때 대통령의 옆자리에서 스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영부인 김옥숙 여사가 눈물을 글썽이며 대통령의 옆구리를 찌르는 것이 추상욱 장로의 눈에 들어왔다. 뭐라고 답변 좀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채근하는 것 같았다. 그때서야 대통령이 물었다.
"교장 선생님, 학교가 어디 있습니까?"
"중계동에 있습니다. 각하의 모교인 육군사관학교 교정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땅은 몇  평이나 됩니까?"
"3,600평인데 수용당하면 1,000평으로 줄어들고 그나마 운동장 한 가운데로 도로가 나가돼 두 동강이 나게 될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오찬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고, 참석자들은 대통령과 추 장로 사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보상비로 다른 곳에 학교 터를 마련할 수 없습니까?"
"주변의 땅 시세가 100만원인데, 주택공사에서 주는 보상가는 평당 13만원에 불과합니다. 보상가로 옮겨갈 땅을 구할 수 있다면 이렇게 경사스런 자리에서 대통령께 말씀드리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이더니 "비서관에게 추 교장 선생님의 학교 문제를 파악하게 해서 보고를 받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오찬을 끝내고 청와대를 떠날 때, 한 비서관이 와서 추 장로에게 악수를 청하며 격려했다.
"축하합니다."
"축하라니요?"
"아, 각하께서 저 정도 반응을 보이셨는데 모른 체하고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보십시오. 곧 좋은 소식이 갈 것입니다. 저희들도 오늘 이야기를 듣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노원구 중계동을 방문하면, 아파트 단지의 곧게 난 길들이 청암학교 앞에서는 학교 운동장을 두르고 무지개처럼 휘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추상욱 장로의 간절한 기도에 산을 옮기는 하나님께서는 도로의 방향을 바꾸어 놓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