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아침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마흔 번째 이야기 -  31년 걸려 이긴 재판

31년이나 걸린 오랜 재판이었다. 서울중앙교회에 관한 이야기이다. 정당한 거래를 통해서 매입한 건물을 매입했으나 소유권을 주장하는 이들이 계속 나타나 재판은 거듭되고 재판의 결과는 승소와 패소를 저울추처럼 혹은 시소처럼 교차되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의 손을 들어주셨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 (시 118: 6-9)


연합회의 오랜 숙제

 

우리 연합회가 가장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하고 있던 문제는 바로 서울 중앙교회 재판 문제였다. 이 재판은 1953년 내가 신학교 졸업할 무렵부터 시작해서 내가 연합회장이 된 후에야 해결되었으니 정말 유명한 재판이었다.

처음 시초는 우리 중앙교회의 어떤 장로가 정부와 교섭해서 주인 없는 집을 하나 얻었는데 얼마 후 시천교 책임자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실은 자기 교단 것인데 내놓든지 아니면 사라고 했다. 그리하여 우리 교단에서 얼마간의 돈을 주고 정식으로 그것은 매입했다. 그런데 얼마 후에는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 당신들과 거래한 사람은 진짜 책임자가 아니고 우리가 책임자니우리에게 돈은 내라고 했다. 이런 모양으로 재판을 하는데 하나를 이기면 또 딴 무리가 나타나고 또 이기면 또 딴 무리가 나타나서 우리를 괴롭혔다. 이런 모양으로 수십 년이 흘러가며 우리 교단은 그 재판비를 대느라고 지회에서 막대한 빚을 내야만 했다.

 

갑자기 쓰러져 죽은 증인

 

내가 연합회장이던 1978년경에는 더 이상 이 문제로 괴롭히는 무리가 없었는데 갑자기 어떤 무리가 재판을 걸어 왔다. 이 무리들은 우리가 재판을 할 때 언제나 우리의 증인 노릇한 사람을 매수해서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아무 준비도 못하고 당하고 말았다. 우리를 고소했던 사람이 어느 날 길을 걸어가다 갑자기 쓰러져서 죽고 말았다. 그러나 그 무리들은 제2심에서도 우리 증인을 악용해서 우리를 대항했다. 이제 우리에게는 또 다른 증인이 필요했다. 그런데 또 하나이 증인이 될 사람은 우리에게 금전을 요구할 듯했다. 그러나 우리가 그에게 돈을 주면 그는 상대편에게 말해서 더 많이 요구하고 우리는 그들의 음모에 걸려서 꼼짝할 수도 없이 될 것이 뻔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연합회 행정위원회를 열고 금식 기도를 했다. 모든 행정위원이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자기가 평생 기도의 응답을 받은 것 중에서 가장 감명적이었던 것을 간증했다. 정말 엄숙한 시간이 흘러갔다. 우리의 마음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셨다. 바로 재판하기 전 그 증인은 우리의 설득에 감동을 받고 아무 요구 조건 없이 우리를 위해 증인이 되어 주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제2심에서 승소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또 다시 대법원에 상소하였다. 우리는 또 다시 하나님께 특별 기도를 드렸다.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셨다. 우리를 괴롭히던 사건 브로커들이 그 때 마침 실시된 단속에 걸려서 영창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들 편의 변호가 별로 신통치 못하게 되고 드디어 우리는 마지막 승리를 거두었다. 그 후 얼마 안 가서 그 변호사도 죽고 말았다. 이리하여 재판이 끝이 났다. 이 최종 판결이 난 후부터 다시 5년간 항소하는 사람이 없어야 하는데 그 5년간의 시효가 지나 완전한 해결을 본 것은 1984년도였다.


시천교 책임자가 안식일교회 집사로 변신

 

정말 이처럼 어려운 재판에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셨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 사건과 관계했던 몇 분의 수고에 감사를 드린다. 중앙교회 김병목 장로님, 연합회 재단에서 오랫동안 수고하면서 이 문제로 많은 고생을 하신 신종균 목사님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를 지으신 이보던 장로님께도 감사드린다.   

특히 이 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던 시천교 측 책임자는 이 장로님의 성실함과 친절에 감동되어 온 가족이 교회에 나오게 되고 그 후 그의 부인은 우리 서울 병원교회의 집사가 되었다. (1992. 6. 3)


“내 잔이 넘치나이다.” (유형환 회고록, 201쪽 / 1993년 4월 6일 발행)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