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아침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마흔 여섯 번째 이야기 -  중국의 문화 혁명 기간 중에도 300여명의 출석교회 존재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 기독교도로 살아남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66년에 시작되어 20년간 중국대륙을 휩쓴 1,300만명의 홍위병들의 무차별한 난동 속에서 살아남은 안식일교인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문화혁명 당시에 300여명이 매 안식일 집회를 이어갔던 교회가 있었다.



88세의 목사님에게 들은 이야기

중국 남부의 한 교회를 방문한 어느 안식일 오후에 88세된 진 목사님을 만났다. 성경과 예언의 신의 원칙을 따라 살아온 그의 얼굴은 세월의 연륜을 숨긴 듯 주름 하나 검버섯 하나 없었다. 통역을 통해서 중국의 안식일교인들이 어떻게 문화혁명을 견뎠는가를 여쭈어 보았다. 10대의 어린 홍위병들에게 짐승처럼 끌려다니면서도 신앙을 포기할 것을 거절하고 매를 맞고 발길질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은 장로님의 이야기와 거리에서 아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목사님을 알아보고 "목사님!"이라고 부를 때의 난감함을 들려주셨다. 진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다가 전혀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들었다. 1975년, 중국의 문화혁명이 끝나기 한 해 전에 있었던 실화였다.

공안국장의 아들

중국의 OO성 한 도시에 탁월한 공안국장이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한 아들이 있었는데 이 아들이 아버지를 상당히 난처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온갖 못된 짓을 혼자 다하고 돌아다녔다. 절도와 강도짓은 일상적인 일이었고 여인들에 대한 폭행이 다반사였다. 시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있는 공안국장의 아들을 누구도 제지하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바로 잡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허사였다. 마침내 아버지는 아들을 체포하여 감옥에 집어놓고 아들이 교화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결과는 항상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의 입장은 점점 더 난처해졌다.

그러던 아들이 언제부턴가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다. 이전의 아들이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청년으로 변해갔다. 아들에게 이유를 물었지만 아들은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다.

불법집회에서 체포된 아들

어느 날 공안국장은 불법으로 모이는 집회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참석 인원이 300여명을 헤아리는 커다란 불법 집회를 정기적으로 갖다니 무모한 일이었다. 공안국장은 어느 토요일에 공안원들을 동원하여 집회 장소를 포위하고,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체포했다. 300명 가운데 대부분의 사람들을 놓치고 40여명을 체포했다. 불법집회 참석자 체포를 진두지휘하던 공안국장은 체포된 불법집회 참석자들 가운데서 자기 아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아들에게 왜 이런 불법집회에 참석했는가 물었다. 아들은 말하기를 "아버지께서 제가 어떻게 변했는가를 물어보셨는데, 제가 바로 이 집회에 참석하면서부터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아버지 이 집회는 불법집회가 아닙니다. 여기서는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국가의 정책이나 지도자들을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참석하는 사람들이 제가 변한 것처럼 착하고 훌륭한 시민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누가 자신의 아들을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켰는가 항상 궁금해왔었다. 이제 대답을 찾은 것이다. 굳이 체제를 비판하는 모임이 아니라면, 더욱이 사람을 변화시켜 못된 아들을 훌륭한 시민으로 만든 집회라면 이런 집회에 모이는 사람들을 체포할 이유도 없었고 집회를 해산시킬 필요도 없었다. 마침내 이 도시에서는 매주 토요일에 모이는 이상한 집회를 공안국의 보호 아래 지속할 수 있었다. 중국의 문화혁명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75년의 일이다.

하나님은 항상 살아서 당신의 백성들을 기이한 방법으로 보호하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