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흔 세 번째 이야기 -  진흙 속에 묻힌 진주

 

진흙 속에 묻힌 진주

  이유라는 이진원 목사의 장남인 이호상 목사의 첫딸로 태어났다. 이유라의 동생 역시 목사가 되어 3대가 목사인 집안이다. 이유라는 네 살 때부터 교회에 특창을 맡은 사람이 없으면 아버지가 항상 특창을 시켰다. 그러는 가운데 음악에 대해 관심과 재능을 보이며 대학에서는 바이올린을 전공했고, 동덕여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피아노는 전공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아노를 치는 경우가 있을 때는 전공자들을 당황하게 할 정도의 발군의 실력을 지녔다. 1996년, 동덕여대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날 때에는 학위를 마치고 돌아오면 대학에서 가르치도록 담당 교수로부터 권유를 받기도 했었다. 

  사건은 독일의 슈만, 그리이그, 리스트 등을 배출한 라이프찌히 국립음악대학에서 바이올린 석사 과정을 이수하는 동안에 일어났다. 매일 기숙사에서 혼자 아침 예배를 드릴 때마다 찬미를 부르는 것을 옆에서 듣던 선배 방원이 “네가 노래를 부르면 꼭 성악을 전공하는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고 항상 이야기했다.

  어느 날 라이프찌히 오페라 하우스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오페라 가수가 음대대학원학생들을 식사에 초대했다. 그런데 기숙사 방원인 선배 언니가 갑자기, “유라가 노래를 잘해요. 한 번 시켜 보세요.”라고 했다.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노래를 불렀다. 바이올리니스트가 노래를 조금 못한다고 해서 흉이 되거나 손해 볼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마음 놓고 노래를 불렀다. 그 오페라 가수는 이유라의 노래를 듣자마자 “진흙 속에 묻혀있는 진주야, 갈고 닦으면 정말 훌륭한 성악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유라는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었던 이야기를 바이올린 지도교수인 Baldini 교수에게 이야기했더니 노래를 불러보라고 시켰다. 발디니 교수는 성악과에서 가르치는 Forner교수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그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포르너 교수는 성악과 제자 한 사람을 붙여주며 2주일의 시간을 줄 테니 그동안 레슨을 받고 와서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다. 이유라는 흥분으로 가슴이 뛰었다. 2주일을 기다릴 것도 없이 1주일 만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들은 포르너 교수는 이유라에게 성악과 입학시험을 볼 것을 권유했다. 성악과 전공학생 8명을 뽑는 시험에 전 세계에서 280명의 학생들이 몰렸다. 이유라는 그 여덟 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1998년의 일이었다. 이유라는 바이올린과 동시에 성악을 전공하는 유일한 학생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이유라가 쌍둥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이유라와 똑같이 생긴 학생이 성악과 학생이 필수과목으로 들어야 하는 합창대에서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도 이 쌍동이 음악가가 한 자리에 있는 것을 본 사람이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재능이 있다 할지라도 이제까지 바이올린을 전공하던 학생에게 성악이 쉽지만은 않았다. 오페라 가수가 되려면 적어도 5개국의 언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영어는 기본이고 독일어와 프랑스어, 이태리와 스페인어를 해야 한다.

  바이올린과 성악을 동시에 전공하며 5개국어를 배웠다. 오페라에서는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페라 극장은 작으면 500석이고 규모가 크면 2,000석이다. 오페라에는 노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사도 있다. 그 대사가 마이크 없이 2,000명에게 정확하게 전달되려면 외국어를 해도 입안에서 우물거려서도 안되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서툴러서도 안된다. 작은 실수라도 발견되면 한 순간에 다른 공연자에게 밀려날 수 밖에 없다. 지금은 독일인조차 이유라를 독일에서 태어난 음악도로 착각할 정도의 독일어실력을 갖게 되었다. 바이올린과 성악석사 과정을 마쳤을 때는 목회자인 부모님들의 부담이 많이 커져 있을 때였다. 그러나 자그마한 성취에서 멈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계속해서 박사과정을 해야 했다. 2003년 이유라가 성악석사 과정을 수석으로 마쳤을 때, 라이프찌히 대학 성악 박사과정에 자리가 하나 생겼다. 그 한명의 자리에 선택받기 위해 전 세계에서 300명의 학생들이 몰렸다. 물론 어려서부터 성악 한 우물만 파온 경쟁자들이다. 시험은 휴일도 없이 여러 날 진행되었다. 300명 모든 응시자들의 노래를 일일이 하나씩 다 듣고 한 사람을 뽑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최종적인 합격자 한 사람이 바로 이유라였다.

  박사 과정에 합격은 되었지만 경제적인 부담이 엄습해왔다. 목회자의 넉넉하지 않은 수입으로 이제까지 뒷바라지해 온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다. 바로 그때 오페라 극장에서 단원을 모집하는 에이전트가 오디션에 한 번 참여할 것을 제안해 왔다. 아무리 실력이 탁월해도 학생으로서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박사 과정을 마친 연주자들이 20번 이상 오디션에 참여하고야 겨우 한 두 명이 전속으로 일하게 된다. 이번에도 이유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다. 첫 번째 오디션에서 합격이 되었다. 이것은 하늘이 준 선물이었다. 2003년 12월의 일이었다. 이유라는 드레스덴에 있는 Landesbuhnen Sachsen 극장에 전속계약이 되었고, 이후에 드레스덴에 있는 세 개의 오페라 극장 중에서 두 개의 오페라 극장에 출연하게 되었다. 공부와 일을 병행하느라 박사과정은 2년 대신 2006년에 3년만에 마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는 특권을 허락하셨다 (Mit Auszeichnung bestanden). 

  낯선 이국에서 유학을 하면서도 기숙사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드렸던 예배와 찬미, 바로 거기에서 오늘의 이유라가 태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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