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의 종말 사상


제 11장 야곱의 행적에 나타난 종말 사상

3) 에서를 만나는 과정에서


  “야곱이 눈을 들어보니 에서가 사백 인을 거느리고 오는지라. 그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여종과 그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 형 에서에게 가까이 하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맞추고 피차 우니라.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이니이다. 때에 여종들이 그 자식으로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레아도 그 자식으로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로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에서가 또 가로되 나의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가로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에서가 가로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야곱이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형님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청컨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나의 소유도 족하오니 청컨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에서가 가로되 우리가 떠나가자 내가 너의 앞잡이가 되리라.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유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렸은즉 하루만 과히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청컨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짐승과 자식의 행보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에서가 가로되 내가 내 종자 수인을 네게 머물리라 야곱이 가로되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매 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회정하고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은 고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창 33:1-17).

  야곱은 형 에서가 400인을 데리고 자신을 공격하러 오는 소식을 듣고 그 마음이 녹았으나 그는 하나님 앞에 씨름하는 기도로 용서의 확증을 받은 다음, 에서를 만나서 극적인 화해를 이루는 장면이 바로 위의 말씀이다. 20년을 기다리며 복수의 마음을 갈았던 형 에서와 이렇게 사랑의 만남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야곱의 환난의 끝 무렵에 악인들이 성도들을 총공격하려 할 때에 하나님이 친히 개입하셔서 그들의 무기가 무력하여지고 성도들이 온전하게 구원받는 사건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홍보석으로 네 성첩을 지으며 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 네 지경을 다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 너는 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 아니할 것이며 공포 그것도 너를 가까이 못할 것이라. 그들이 모일지라도 나로 말미암지 아니한 것이니 누구든지 모여 너를 치는 자는 너를 인하여 패망하리라. 숯불을 불어서 자기가 쓸 만한 기계를 제조하는 장인도 내가 창조하였고 파괴하며 진멸하는 자도 내가 창조하였은즉 무릇 너를 치려고 제조된 기계가 날카롭지 못할 것이라 무릇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의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54:11-17).

  야곱의 전 사적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노정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이상의 몇 장면은 종말적 사건을 여실히 표상하고 있다. 결국은 그리스도 안에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은 구원을 얻고 성경의 모든 약속이 그에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누릴 것이다. 종말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실질적 소망이다. 종말론을 공부하는 것은 실질적인 소망을 공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말은 결코 근심할 일이 아니요 기쁨으로 맞을 일이다.

  그러므로 심판의 소식이 그리스도인에게는 소망의 기별이며 기쁨의 기별이다. 나그네의 여정이 끝난다는 기쁜 소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야곱의 환난이라고 부르는 그 환난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이르지 않은 미래의 사건이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할 것은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데 실패할까 하는 일이다. 날마다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일에 성공해야 한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씻어주기 위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신다. 그리고 승리이신 주안에 있으면 그 공격의 무기가 지푸라기처럼 힘을 잃을 것이다. 야곱은 그렇게 그 환난을 성공적으로 통과하지 않았는가?

 

    1) 라반과 헤어지는 과정

    2) 얍복강가에서

    3) 에서를 만나는 과정에서

    4) 열두 아들을 축복하는 말씀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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