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선교사들의 이름이 가장 많이 게시되어 있는 이곳이 좀은 낯설어 보입니다.
마치 고향에 왔는데,
고향집이 없는 것처럼
고향에 왔는데,
어머니의 음성 들리지 않는 것처럼
여느 때 같으면 큰 집에 둘러 앉아 예배를 드리고 담화를 나누고
추석빔으로 한껏 떠들썩할 듯 한텐데
그저 조용하기만 합니다.
설날은 그나마 이 나라도 차강사르라 하여 함께 분주한지라 그런 것을 못느꼈는데
추석은 수확이 없는 이곳에서는 아무 의미없어 보입니다.
그저 겨울을 나기 위해 쉴새없이 황색 풀을 뜯고 있는 짐승들은 고개들 줄 모르고 먹고만 있습니다.
이런 때에 몽골의 한 동역자가 비자문제로 한국을 나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많이 아쉽고
그들이 벌써 그리워지려 하네요.
함께 했던 사역을 뒤로 하고 한 가정씩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이 수고한 사역의 자리에 아름다운 열매로 보상 받았으면 합니다.
또한 빈 자리는 누군가가 메우겠지만
한국인처럼 자기를 드려 희생하고 헌신하는 이들도 그리 흔하지 않을거라 생각이 듭니다.
사명보다 사역의 기쁨이라 생각합니다.
어떤 이의 설교제목이 '사단은 유머를 모른다' 였습니다.
기쁨이 사라지는 사역보다 더 공허한 사명이 있을까요?
예수님처럼,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 너희가 알지 못하는 기쁨 곧 성령 내재의 기쁨,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
하나님을 찾아가는 기쁨이 선교사들의 기쁨이길 기도하여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난 벧엘의 확실한 경험이 우리의 선교지가 되었으면 합니다.
영성은 은밀함의 시간에 비례한다 하였는데
나의 은신처는 어디인가 싶습니다.
대 사명, 대 명제를 놓고 전진하기에
하나님이 낯선 분이 되지 않고
동역자들이 일로 만나 동역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기에 우리를 일컬어 동역자라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어느 새 상하 질서로 좌우균형을 잃어버릴까봐 두렵네요.
혼자 개인적으로 찾아가 조용히 담화를 나눌 수 있는 여유, 또 다른 은밀함을 추구하는 것이
목회자의 또 다른 영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의 영성은 하나님을 찾고 사람을 찾고 만나고 대화를 하는 가운데
그분의 영성이 더욱 돋보인듯 합니다.
프로그램에 이끌려 가는 영성도 싫고
조직이 만든 자리에 이끌리는 영성도 싫고
선교사라는 이름에 묻혀 가는영성도 싫네요.
그저 하나님을 더욱 알고 싶어지고
은밀한 사역을 하고 싶어지네요.
골방으로도 가기도 하고 한 개인을 찾가 가기도 하고 드러나는 곳에서 가려지기도 하고
....,
여기 게시판이 선교사의 활동을 담아야만 하는 장이라 생각이 들어 많이 부담스러웠는데
이렇게 선교사의 넋두리도 할 수 있는 것 같아 많이 편해지려 합니다.
더 많은 넋두리를 추석날 하고 싶지만
업무 중에 넋두리만 할 수 없어
드러난 현장으로 가게 됩니다.
마음을 나누는 은신처라 생각이 들어
글 남기고 갑니다.
한번 쯤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확인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목사님의 추석이 눈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옛날 가난한 내 어린 시절의 추석과 오버랩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혼자 있을 때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비록 묵언의 대화이지만.....
선교사 교육시에 항상 강조한 의사소통(communication),
평상시에는 수평적 의사소통이 활발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주님께서 수직적 의사소통을 위해서 부르시는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몇년째 밟지 못한 그리운 몽골 땅
연례회의에나 가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자 때문에 한국에서나 만날 수 있는 몽골 선교사들의 빈자리가 그때는 더욱 가슴 아리게 느껴지겠군요.
그들이 항상 주님의 가슴에 있듯이 나의 작은 가슴에도 항상 가득 차 있습니다.
강 목사님, 오늘도 선교지에서 맞이하는 하루 주님과 시작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대총회에서도 작별의 인사를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헤어진 것이 항상 마음에 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