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580
2009.05.25 09:27:25 (*.145.31.134)
얼마전에 한 국가의 원수였던 노무현 전대통령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인해 아픔속에서 잠들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행복한데.. 누군가는 그렇게 힘들어서 죽음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이 한사람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한사람의 죽음은 한 나라의 왕의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죽음이, 이 대통령이, 이 세대에, 일어났다라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왕이 죽었을때에.. 온 백성들이 베옷을 입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도무지 찾을 수 없고, 단지 안타깝다는 댓글하나로 그 슬픔을 무마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우리들의 사랑은 정말 식었네요...
다시 일어서라는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더라면..
오늘도 그 죽음이 주는 메시지를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2009.05.25 10:05:18 (*.145.31.182)
오늘아침 수업에도 이웃사랑과 영성에 관한 수업이였는데... 오늘 말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이웃사랑의 정의를 수업시간에는 이렇게 내렸다. 그 형제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간에, 자신의 이익에
피해를 줄찌라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을 돌봐주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벧후 1:6-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약 1:27)
우리도 예수님처럼 우리 이웃을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마 18:33)
이웃사랑의 정의를 수업시간에는 이렇게 내렸다. 그 형제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간에, 자신의 이익에
피해를 줄찌라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을 돌봐주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벧후 1:6-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약 1:27)
우리도 예수님처럼 우리 이웃을 사랑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마 18:33)
2009.05.25 11:05:22 (*.145.31.79)
어머니의 비통한 마음을 보시는 예수님...
찾아가시는 예수님...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주시는 예수님...
나의 못난 모습 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
따르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제 속에 살아 있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찾아가시는 예수님...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주시는 예수님...
나의 못난 모습 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
따르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제 속에 살아 있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2009.05.25 11:08:15 (*.129.204.209)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예수께서 부르실 때 그 즉시 일어날 수 있는 청년!!
그리고 그 청년들이 교회에 있을 수 있게 하고 교회에서 봉사하게 하고, 헌신하게 할 수 있는 지도자!!
우리 교회의 미래가 아닐까??
2009.05.25 11:14:37 (*.129.251.206)
몇일 전에 나의 작은 믿음으로 가졌던 잘못된 생각이... 시간이 흘러 하나님의 깊은 뜻이 함께하심을
체험하며 역시 하나님! 나의 예수님임을 고백하게 되었다.
의심을 떨쳐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따를 수 있는 그런 자가 되고 싶다.
체험하며 역시 하나님! 나의 예수님임을 고백하게 되었다.
의심을 떨쳐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따를 수 있는 그런 자가 되고 싶다.
2009.05.25 11:50:41 (*.129.251.166)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의 겉모습만을 보시지 않고 그 내면에 있는 모습을 바라 보심으로
그 슬픔과 고통, 기쁨 등을 바라보시면서 정말 그 사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는 분임을 또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또한 정말 상황에 적절한 말씀으로 위로해 주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봉사와 전도와 사랑을 전하는 모든 일에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한다면 정말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수님의 심장을 닮는 사람이 되길 오늘도 기도한다
그 슬픔과 고통, 기쁨 등을 바라보시면서 정말 그 사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는 분임을 또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또한 정말 상황에 적절한 말씀으로 위로해 주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봉사와 전도와 사랑을 전하는 모든 일에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한다면 정말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수님의 심장을 닮는 사람이 되길 오늘도 기도한다
2009.05.25 13:58:33 (*.128.199.139)
"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과부가 그분이 계신 것을 알지 못하고 울면서 무턱대고 따라올 때에
그분께서 과부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서 부드럽게 *울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곧 과부의 슬픔을 기쁨으로 변화시키실 것이었지만
이러한 자애로운 동정의 말씀을 하지 않을 수 없으셨다."
예수님의 위로는 사람과는 다릅니다.
슬픈자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서 부드럽게 말씀하시는
그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괜스레 눈물이 납니다.
예수님은 자애로운 동정의 말씀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십니다.
*울지마라*라고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미어집니다.
예수님은 아시는 것이지요.
그 어머니가 자식을 가슴에 묻기 위해 얼마나 고통스런 순간을 살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아들의 숨결을 느끼고 싶은 그 간절하고 애통한 심령이 얼마나 마음을 괴롭게 하는지를..
예수님은 다 아시는 것이지요.
그러니, 어찌 예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내 자신이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우리 모두가 얼마나 괴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는지를 그분께서 알아주시니 말입니다.
알아주시고 다시 위로와 희망을 주시는 예수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과부가 그분이 계신 것을 알지 못하고 울면서 무턱대고 따라올 때에
그분께서 과부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서 부드럽게 *울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곧 과부의 슬픔을 기쁨으로 변화시키실 것이었지만
이러한 자애로운 동정의 말씀을 하지 않을 수 없으셨다."
예수님의 위로는 사람과는 다릅니다.
슬픈자의 곁에 가까이 다가가서 부드럽게 말씀하시는
그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괜스레 눈물이 납니다.
예수님은 자애로운 동정의 말씀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십니다.
*울지마라*라고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미어집니다.
예수님은 아시는 것이지요.
그 어머니가 자식을 가슴에 묻기 위해 얼마나 고통스런 순간을 살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아들의 숨결을 느끼고 싶은 그 간절하고 애통한 심령이 얼마나 마음을 괴롭게 하는지를..
예수님은 다 아시는 것이지요.
그러니, 어찌 예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내 자신이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우리 모두가 얼마나 괴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는지를 그분께서 알아주시니 말입니다.
알아주시고 다시 위로와 희망을 주시는 예수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2009.05.25 14:33:09 (*.145.30.219)
관심 갖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람의 필요에 맞는 도움까지 주지 않는다.
단순히 마음으로서만, 생각으로서만 관심을 갖는다.
그런 내 모습을 돌아볼 때.. 아직 나는 멀었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 그에 따른 관심을 갖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겠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람의 필요에 맞는 도움까지 주지 않는다.
단순히 마음으로서만, 생각으로서만 관심을 갖는다.
그런 내 모습을 돌아볼 때.. 아직 나는 멀었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 그에 따른 관심을 갖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겠다.
2009.05.25 14:55:44 (*.145.31.52)
2008208205
침례 요한이 자기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여쭈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그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라 하셨다.
침례 요한이 이해해야 할 메시야, 그리고 그분의 왕국은 이런 것이었다.
병자들을 고치는 것.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생명을 나누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오실 그 이'를 다른 이들과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이었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께서 세우실 나라를 이해하고 있는가?
그 나라에 살게 될 백성들의 품성은 어떠해야 할지 이해하고 있는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주님께서는 우리에게서 하늘 왕국 백성 다운 모습을 기대하신다.
나는 병자들을 돌보시고 치유하신 주님의 모본을 따라가고 있는가?
침례 요한이 자기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여쭈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그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라 하셨다.
침례 요한이 이해해야 할 메시야, 그리고 그분의 왕국은 이런 것이었다.
병자들을 고치는 것.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생명을 나누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오실 그 이'를 다른 이들과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이었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께서 세우실 나라를 이해하고 있는가?
그 나라에 살게 될 백성들의 품성은 어떠해야 할지 이해하고 있는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주님께서는 우리에게서 하늘 왕국 백성 다운 모습을 기대하신다.
나는 병자들을 돌보시고 치유하신 주님의 모본을 따라가고 있는가?
2009.05.25 15:00:26 (*.94.252.115)
누군가가 아픔을 겪고있을때 우리는 그들을 위하여 방관자인가?
아니면 예수님처럼 그들의 아픔속에서 그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는 자인가를 한번쯤 자문해봅니다.
예수님은 어떤 상황에서 그들을 향하여 정죄의 말씀은 전혀 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필요 또는 도움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는 모습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할것이다.
아픔을 겪고있는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나누는 그러한 시간이 되었으면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아니면 예수님처럼 그들의 아픔속에서 그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는 자인가를 한번쯤 자문해봅니다.
예수님은 어떤 상황에서 그들을 향하여 정죄의 말씀은 전혀 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필요 또는 도움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는 모습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할것이다.
아픔을 겪고있는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나누는 그러한 시간이 되었으면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2009.05.25 16:10:59 (*.145.31.64)
무덤덤한 눈과 무관심하게 지나친 적이 얼마나 많던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고 전한다는 허울만 쓰고 있지는 않는지.....
내 마음에 꽉 차있는 "나만" 생각하는 마음.. 정말 깨지기 힘든것이구나....
주여!! 주께 자복하오니 내 자아의 이기심을 송두리째 뿌리뽑아주소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고 전한다는 허울만 쓰고 있지는 않는지.....
내 마음에 꽉 차있는 "나만" 생각하는 마음.. 정말 깨지기 힘든것이구나....
주여!! 주께 자복하오니 내 자아의 이기심을 송두리째 뿌리뽑아주소서...
2009.05.25 16:13:54 (*.128.199.129)
왜 요한은 자신이 그토록 확신했던 예수님께 다시한번 물어보았을까? 예수님을 믿지 못했을까? 자신을 구원해 주실줄 알았는데 도와주시지 않으니까 의심 한 것일까?
그의 평생의 사역이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이었는데 자신의 고난을 통해서 의심하는 요한의 모습...
지금까지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다시한번 생각해보니 확신하고 싶었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 사랑해? 라고 물어보는 것 과 같은 것일 것이다.
내가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내가 믿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 의지하고 싶고 다시 한번 믿음을 확인 해보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 요한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말로 하지 않으시고 행동으로 보여주신다.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리 말을 잘해도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 사랑이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요한을 사랑하셨고 요한도 예수님께 다시한 번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 물어봤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나 또한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의 평생의 사역이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이었는데 자신의 고난을 통해서 의심하는 요한의 모습...
지금까지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다시한번 생각해보니 확신하고 싶었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 사랑해? 라고 물어보는 것 과 같은 것일 것이다.
내가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내가 믿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 의지하고 싶고 다시 한번 믿음을 확인 해보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 요한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말로 하지 않으시고 행동으로 보여주신다.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리 말을 잘해도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 사랑이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요한을 사랑하셨고 요한도 예수님께 다시한 번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 물어봤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나 또한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2009.05.26 10:44:46 (*.145.31.181)
생각하게해주는 많은 구절들이 있지만 특별히 침례요한에 대해 보게되었다.
비록 침례요한이 잠시 흔들리고 의심하는 마음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의 전 생애를 걸친 자아를 부정하는 삶은
내가 반드시 본받고 싶은 부분이다.
자아를 비울때에만 하늘의 빛을 받을수 있고 우리를 그리스도께 복종시킬때에만 하나님의 품성과 사랑을 깨닫고
더 나아가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가 진실되어지고 그들을 향한 사랑이 깊어지게 될거라 생각한다.
비록 침례요한이 잠시 흔들리고 의심하는 마음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의 전 생애를 걸친 자아를 부정하는 삶은
내가 반드시 본받고 싶은 부분이다.
자아를 비울때에만 하늘의 빛을 받을수 있고 우리를 그리스도께 복종시킬때에만 하나님의 품성과 사랑을 깨닫고
더 나아가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가 진실되어지고 그들을 향한 사랑이 깊어지게 될거라 생각한다.
2009.05.27 22:55:46 (*.129.251.166)
사랑이란 크고 특별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작은 관심, 작은 친절, 작은 미소, 기분 좋은 단 마디..
사실은 일상의 이런 작은 움직임들이 사랑을 표현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 같다.
모두의 아픔을 아시는 주님..
그리고 나의 아픔도 아시는 주님..
그런 사랑의 주님이 계셔서 행복하다.....
작은 관심, 작은 친절, 작은 미소, 기분 좋은 단 마디..
사실은 일상의 이런 작은 움직임들이 사랑을 표현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 같다.
모두의 아픔을 아시는 주님..
그리고 나의 아픔도 아시는 주님..
그런 사랑의 주님이 계셔서 행복하다.....
2009.06.01 20:22:06 (*.240.61.92)
요한은 그가 감옥에 갖혔을때, 그리스도께서 메시아인가 의심했다.
그가 당한 어려움으로 인하여, 흔들렸다. 자신에게 나아오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포했던 침례요한이었지만,
그런 그역시도 흔들렸다. 그때 그에게 들려주신 그리스도의 대답은 말씀이었다. 구양의 예언을 상기시켜주며, 그에게 그 예언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신다.
내가 흔들릴때, 말씀은 나를 세워줄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나를 세우고, 다시금 나의 시선을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게 한다.
그가 당한 어려움으로 인하여, 흔들렸다. 자신에게 나아오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포했던 침례요한이었지만,
그런 그역시도 흔들렸다. 그때 그에게 들려주신 그리스도의 대답은 말씀이었다. 구양의 예언을 상기시켜주며, 그에게 그 예언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신다.
내가 흔들릴때, 말씀은 나를 세워줄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나를 세우고, 다시금 나의 시선을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게 한다.
2009.06.08 14:48:36 (*.145.31.144)
박병우
뜻밖의 상황에서 반전시키시는 예수님...
과부는 자신의 아들이 살아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아픔을 느끼시는 하나님은 그녀의 아픔을 아셨다.
오늘 나도 그분의 동정심과 사랑과 능력을 닮아 주변의 아픈 이들을 위로하고 싶다.
뜻밖의 상황에서 반전시키시는 예수님...
과부는 자신의 아들이 살아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아픔을 느끼시는 하나님은 그녀의 아픔을 아셨다.
오늘 나도 그분의 동정심과 사랑과 능력을 닮아 주변의 아픈 이들을 위로하고 싶다.
2009.06.08 15:07:16 (*.94.227.221)
일어나라고 부르실때 일어나는 청년....
죽음을 이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금 나를 이끄시고, 나를 세우시는 예수님께 감사드린다.
죽음을 이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금 나를 이끄시고, 나를 세우시는 예수님께 감사드린다.
2009.06.08 15:47:26 (*.145.30.221)
우리는 믿고, 기도한다...
그런데 정말 믿는게 가끔 힘들 때가 있다...
그런데 믿기 힘든것도 믿는 훈련이 필요하다.
내 자신도 그런 훈련을 해야하고,,,
내가 있는 교회에서도 청년들에게 조금씩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몸을 물에 맡겨야 뜬다"는 것을 체험해 가야 한다.
그런데 정말 믿는게 가끔 힘들 때가 있다...
그런데 믿기 힘든것도 믿는 훈련이 필요하다.
내 자신도 그런 훈련을 해야하고,,,
내가 있는 교회에서도 청년들에게 조금씩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몸을 물에 맡겨야 뜬다"는 것을 체험해 가야 한다.
2009.06.08 21:31:35 (*.145.31.218)
윤주연
죽음,,
죽음을 당한 가족들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어떤 위로의 말도, 재물도, 그 무엇도,,,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당한 사람들에게 무엇으로 위로하셨을까?
성경에는 분명히 죽음엔 다시 삶으로 위로하심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우리를 살리시는 주님 오늘 깊이 묵상합니다.
죽음,,
죽음을 당한 가족들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어떤 위로의 말도, 재물도, 그 무엇도,,,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당한 사람들에게 무엇으로 위로하셨을까?
성경에는 분명히 죽음엔 다시 삶으로 위로하심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우리를 살리시는 주님 오늘 깊이 묵상합니다.
2009.06.09 01:23:02 (*.68.214.250)
소외된 계층을 돌아보는것은 일회성이나 잠시 잠깐이면 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적인 친구가 되기는 너무나 어렵다. 줘야만 하고 그리고 다시 줘야만 한다. 상대적 박탈감과 상대적 소외감...그런이들의 마음들을 어루만지셨던 예수님 그리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신 예수님..또한 극한 상황에서 목숨까지 살리신 예수님...현시대에서 꼭 필요한 정신이고 사람이다.
2009.06.09 11:48:20 (*.145.31.205)
침례요한의 제자들 무엇을 원한 것일까.. 마치 12제자들처럼.. 그르들 어떤 사람을 위하여 그곳까지 갔을까..
예수님께서는 다른 말을 하지 않으시고.. 봉사하고 겸손하고 욕심을 버리고 인내하는 법을 하게하셧다.
봉사와 사역과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은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겸손의 왕 당신은 인내의 왕이오 최고의 리더입니다..
라는 고백을 그들은 가져야 할 것이었고,. 그것을 알았다면 제2의 요한이되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말을 하지 않으시고.. 봉사하고 겸손하고 욕심을 버리고 인내하는 법을 하게하셧다.
봉사와 사역과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은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겸손의 왕 당신은 인내의 왕이오 최고의 리더입니다..
라는 고백을 그들은 가져야 할 것이었고,. 그것을 알았다면 제2의 요한이되었을 것이다.
2009.06.12 14:46:11 (*.145.31.126)
하나님의 사역..........남을 돕는 봉사...........그러나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손에 쥘 수있게 해야만 하는 나의 사역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이일을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이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의심의 마음은 나를 너무나도 힘들게 한다.
현실적인 문제들...........나에게 주어진 청년들의 영적인 부흥에 더욱 마음을 쏟을 것인가? 아니면, 청년회의 숫적 부흥에 더욱 마음을 쏟을 것인가? 나는 마음을 쏟는대로 이룰수 있음을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쳥년들의 개인의 영적부흥을 통한 양적 부흥이 아닐까 싶다. 즉 질적부흥과 양적부흥을 함께 경험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자꾸 믿음과 현실사이에서 혼돈이 있다. 주님 나에게 믿음을 주소서
현실적인 문제들...........나에게 주어진 청년들의 영적인 부흥에 더욱 마음을 쏟을 것인가? 아니면, 청년회의 숫적 부흥에 더욱 마음을 쏟을 것인가? 나는 마음을 쏟는대로 이룰수 있음을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쳥년들의 개인의 영적부흥을 통한 양적 부흥이 아닐까 싶다. 즉 질적부흥과 양적부흥을 함께 경험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자꾸 믿음과 현실사이에서 혼돈이 있다. 주님 나에게 믿음을 주소서
2009.06.15 17:04:37 (*.145.31.225)
예수님께서 과부의 울음을 동정하셔서 묻거나 구하지도 않았는데 그 아들을 살려 주시네요??
그리고 그 죽은 자가 귓전에 들리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서는 장면은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신학하는 입장에서 비판과 과학과 사고로 판단해서 부활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일이 없도록 간구해야 함과
요한의 꺾인 믿음을 세워주시는 예수님을 통해 실패하고 타락한 벗에게 대했던 저의 행동들이 떠오르네요~
예수님을 닮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죽은 자가 귓전에 들리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서는 장면은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신학하는 입장에서 비판과 과학과 사고로 판단해서 부활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일이 없도록 간구해야 함과
요한의 꺾인 믿음을 세워주시는 예수님을 통해 실패하고 타락한 벗에게 대했던 저의 행동들이 떠오르네요~
예수님을 닮고 싶습니다.
그리고 거리나 어디에서든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내 잣대로 도움을 줘도 되는지 안 되는지를 재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두 경우 모두 별로 도와 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핑계를 찾은 것일 것이다.
예수님은 어떠하셨는가?
예수님은 홀로 계실 때든지 거리에서 든지 군중 앞 에서든지 다른사람의 시선과 핑계를 찾지 않으시고 기쁨과 사랑으로 그들을 도우셨다.
우리는 바로 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하겠다.
오늘 남을 도우는 손이 본능으로 나올 수 있게 기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