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민수기 14:1 - 14:19
불신과 반역(1-4)
1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2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3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믿음 있는 자의 용기(5-19)
5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6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7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10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구하는 모세(11-19)
1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12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너로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13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애굽인 중에서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거늘 그리하시면 그들이 듣고 14이 땅 거민에게 고하리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백성 중에 계심을 그들도 들었으니 곧 주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보이시며 주의 구름이 그들 위에 섰으며 주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 가운데서, 밤에는 불 기둥 가운데서 그들 앞에서 행하시는 것이니이다 15이제 주께서 이 백성을 한 사람같이 죽이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열국이 말하여 이르기를 16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이 없는 고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 17이제 구하옵나니 이미 말씀하신 대로 주의 큰 권능을 나타내옵소서 이르시기를 18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과실을 사하나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고 아비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9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같이 사하옵소서
▧ 묵상을 위한 질문
1. 열 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어떠한 반응을 나타냈습니까?
2. 반역하는 백성들 앞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떠한 반응을 나타냈습니까?
▧ 본문해설
불신과 반역(1-4)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불신하는 열 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더 이상 갈렙의 보고를 듣지도 않고 불신하는 정탐꾼들의 보고를 신뢰함으로써 밤새 통곡을 합니다. 모세를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 스스로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불신은 하나님의 언약을 잊게 합니다. 쉽게 반역을 일으킵니다. 불신의 말은 쉽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됩니다. 그러나 진리는 숫자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습니다. 대다수가 옳다고 한다고 그 것이 진리일 수가 없습니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진리 편에 속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공동체 안에서 대다수가 가고 있는 길을 진리인 양 왜곡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믿음 있는 자의 용기(5-10)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백성들의 반역적인 행동 앞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옷을 찢으며, 의분을 토하며 말합니다. 가나안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 땅이며, 그 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땅임을 확신시켰습니다. 열 명의 정탐꾼과 백성들이 잊어버린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한 번 더 상기시켰습니다. 장대한 아낙 자손을 ‘우리의 밥’이라고 까지 선포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눈을 가지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똑같이 보았음에도 불고하고 불신의 눈을 가진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은 가능한 일로 보입니다. 문제는 어떠한 마음의 눈을 갖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마음에 따라서 달리보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눈으로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고, 두려워 떠는 사람들과 달리 담대한 용기를 가지고 전진하자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믿음을 선포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구하는 모세(11-19)
하나님은 분노하셨습니다. 전염병으로 백성들을 멸하시고 모세로 말미암아 강한 나라로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모세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신 하나님께 백성들을 위해 중보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와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백성들의 죄악을 사하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모세의 모습은 전형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심판받아야 할 백성들을 위해서 탄원하는 중보기도를 드립니다. 지금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오늘 나는 누구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 적용
1. 어떠한 상황에 놓일 때, 나는 하나님의 약속을 잊고 반역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는 않는가?
2. 나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을 위해서 얼마나 간절히 중보기도 하고 있는가?
▧ 오늘의 기도
믿음의 눈을 주사 하나님의 약속 위에 굳게 나의 신앙을 세우게 하시고, 연약한 믿음을 가진 자들을 비난하는 대신에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하게 하소서.
신뢰는 타고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신뢰 역시 계발되는 부분이며, 노력하여야만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자기 계발’이라는 말도 역시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며, 그 결과가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하는 힘, 신뢰!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는 이 신뢰를 통하여 성공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조그만 겨자씨가 생명을 바라듯, 겨울에 죽은듯하던 천연계가 봄에 다시 꽃을 피우듯
불가능하게만 보이는것들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면 이루어진다는것을 항상 잊지말아야겠다.
어떤일이 닥쳐오든지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두려울것도 겁낼것도 없다.
늙은 나이에 아이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브람과 사래는 그저 웃고 넘겼다.
이미 태가 끊긴 두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떻게 그 말을 믿을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은 보란듯이 그 두 사람에게 뒤통수를 쳐주신다.
거봐 믿으랬잖아.
적당히 믿는 것 보다, 거기서 조금 더 믿는 과정이 너무도 큰 믿음을 요하는 것 같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 약속들... 일단 믿고 봐야겠다..
이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머리로는 믿고있지만 마음깊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한 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말씀이었다. 또한 지금도 수많은 불신으로 가득찬 내 자신을 위해 '탄식으로 나를위해 중보기도 하시는 성령님' ... 한편으로는 마음이 많이 무겁지만.. 끝까지 놓지 않으시고 안타까워하시고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라는 구절이 와닿았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담대한 용기를 갖고 나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겠습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이란 도무지 믿기지 않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진실한 믿음을 가졌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믿음을 가지는것이 어렵더라도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기도하려고 노력해야 하겠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기도하고 생가하고 마음을 열면
언젠가 진실한 믿음이 생기는 날이 있을 것만 같다
나의 사역과 역할, 그리고 주어진 임무를 하루하루 해나가는데 있어서 매일 화창한 봄날 같은 것은 아니다.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이 있고, 내리막길이 있으면 오르막길이 있듯이 나의 삶도 그렇다. 당연한 이치인데 이를 잊고 살 때가 많다. 잘 되면 내 탓이고 못 되면 조상 탓일 경우가 허다하다. 왜 그런가? 불신을 극복하는 능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불신은 무엇인가? 바로 내 능력만 믿고, 내 실력이 최고라는 자만심이라고 생각한다. 믿음은 적어도 두 사람이상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것인데, 자기 자신만 믿고, 의지하는 것, 즉 관계형성부터 안 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엔 그리스도인이고, 더욱이 신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관계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한 믿음의 관계가 아닌 것이 내 삶을 통해서 증명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불안해하고, 자신감이 없고, 자신을 과소평가하려 하고,...... 무엇이 문제인가? 바로 믿음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오늘 민수기 14장 1절부터 19절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도 똑같은 모습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이 불러내신 한 민족이며 하나님의 큰 약속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이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믿음의 눈으로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자기 자신만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나안 민족들을 정복할 수 없고, 한 없이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이집트로 돌아가려고만 한다. 바로 올바른 믿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불신을 없애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세울 수 있는가?
첫째로, 나에게 제시된 비전과 약속을 다시 한 번 상기하는 것이다.(민14:8) 내 앞길이 걸으면 걸을 수록 오리무중인 것처럼 보일때 처음 가졌던 목표와 비전, 계획을 돌아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 목표와 비전을 향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잘못 왔다면 수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비전과 목표는 인생의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계속 상기해야 하는 것이다. 비행기 조종사나 배의 선장은 창밖의 푸른 바다와 하늘만 보고 비행기와 배를 조정하지 않는다 꼭 나침반을 수시로 확인한다. 나침반이 없으면 목적지까지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의 여정에서도 우리가 갖고 있는 비전, 목표, 구체적인 계획은 바로 이렇게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그대로 꿈과 목표를 항상 휴대해햐 하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민 14:9) 그리스도인에게는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과 달리 마치 든든한 사회보장제도처럼 우리의 앞길을 보장해주신다. 바로 우리의 보증인인 되시는 예수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삶에서도 이런 보증인제도는 관계를 확실하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은행에 대출을 하거나, 차를 한 대 사더라도 확실한 보증인을 내세우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혹 계약 당사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채권자는 보증인에게 채무자의 잘 못을 물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신앙에서도 마찬가지 원리가 있다. 우리 인생의 영원한 성공을 보장하고 보증하시기 위하여 나를 지으신 분께서 직접 보증인으로 나섰다. 그리고 나에게 영원한 보증서를 주셨다. 하지만 이 보증서를 깜빡하며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그래서 믿음의 관계가 약해지는 것이다. 믿음의 관계가 약해질 때 내인생의 품질보증서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도를 통해서 약해진 믿음의 관계, 즉 불신을 회복할 수 있다.(민 14:13) 이스라엘 백성이 불신의 모습을 보이자 모세는 이 민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 끝없이 펼쳐진 광야에서 당장 죽을 수 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기도하므로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 이 기도의 원리는 지금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나의 잘 못을 깨닿게 된다면 이를 무시하거나 모른채 하지 말고 얼른 하나님께 고백하고 회개를 할 수 있게 기도해야 한다. 이러한 양심의 민감한 소리를 듣지 못하거나 무시한다면 그 결과는 뻔한 것이다. 이러한 기도의 원리, 공식을 배우라. 그렇게 된다면 나의 관계가 회복되고, 오리무중속을 해치고 앞으로 다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당장 닥친 현실속에서 주춤하거나 뒤돌아 서지 말자. 이런 마음이 굴뚝같을 때 위에 제시된 단계를 내 삶에 적용시켜보자. 그러면 분명 아침 안개가 사라지는 것처럼 믿음의 눈을 뜨게 되고 불신의 장애물을 뛰어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바로 그렇게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