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아침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서른 일곱 번째 이야기 -  바티칸 교황청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한 안식일 교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인 사무엘레 바끼오끼 박사(Dr. Samuele Bacchiocchi)는 천주교회의 제수이트가 세운 그레고리안 교황청 대
학교(Pontifical Gregorian University)를 최우등(summa cum laude)으로 졸업할 뿐만 아니라 교황 바오로 6세로부터 금메달을 수여받으며, 그의 박사 학위 논문(From Sabbath to Sunday)은 1977년 교황청 인쇄소에서 출판되었다. 그후 바끼오끼 박사는 이디오피아에서 선교사로 봉사했고, 2000년 7월까지 앤드루스 대학교에서 교회사와 신학 교수로 봉직했으며, 16권의 책을 저술했다.


 


바끼오끼의 출생과 안식일의 발견

바끼오끼는 바티칸 성벽에서 넘어지면 코가 닿을 아주 가까운 거리, 바티칸 박물관 입구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태어나, 성 베드로 사원의 그림자가 미치는 곳에서 자라났다.
부모님은 신실한 천주교 신도였다. 바끼오끼의 아버지가 스물 네 살 되었을 때 일하는 일터에서 왈덴스인 한 사람을 만났다. 왈덴스인이 그에게 성경을 읽어보라고 하면서 성경 한 권을 주었다. 일생을 통해서 처음으로 보고 만져본 성경이었다. 아주 진지하게 많은 것을 기대하며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바끼오끼의 아버지는 로마에 있는 왈덴스 인들의 교회에 참석했다. 일요일에만 참석한 것이 아니라 왈덴스인들이 운영하는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인도하는 성경연구 집회에도 참석했다.

어느 수요일 밤 집회에서 두 명의 신학생이 안식일과 일요일에 관한 문제로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학생이 놀랍게도 제칠일 안식일은 창조의 기념일로서의 정당성과 연속성을 강조했다.
바끼오끼의의 아버지는 창세기 2장 1-3절에서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시고 쉬시고 일곱째 날을 복주시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말씀을 읽고 또 읽으면서 스스로 “내가 지금 첫째 날에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질문을 했다. 신구약 성경에서 안식일에 관계된 원칙과 안식일 준수에 관한 것을 발견하면서 놀랐다.
아버지는 로마에 안식일을 지키는 교회가 있는가 하고 찾기 시작했지만 찾지 못했다. 부모님들은 집에서 안식일에 구주를 높이며 찬양하기로 했다. 세상에서 자신들만 유일하게 안식일을 지킨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시험이 되었다.

안식일 준수에 따르는 고통

건축 일을 하는 아버지가 토요일에 일할 수 없다고 하셨기 때문에 직장을 잃고 말았다. 그런 일이 있은 후 6개월 동안 직업을 찾았지만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했다. 로마에 일거리는 많았지만, 어떤 건설업자도 토요일에 쉴 수 있도록 허락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6개월이 지난 후, 가족은 굶주리기 시작했다. 음식도 없었고, 음식을 살 수 있는 돈도 없었다. 어느 날 아침 부모님들은 절박한 상황에서 기도드렸다. 저들은 하나님께서 건설업자의 마음에 감명을 주셔서 토요일에 쉬면서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를 드린 후 지난 6개월 동안 했던 동일한 방법으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나갔다. 그가 간 첫 건설 현장에서 혹 그가 그곳에서 일을 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두말 할 것 없이 당장부터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 날 이후 그의 아버지는 50년 동안 단 하루로 일이 없어서 일을 못하는 경우가 없었다.
안식일은 바끼오끼에게도 시험거리가 되었다. 토요일이 쉬는 날이 아니라 학교에 가야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교장 선생님은 어머니에게 의사의 진단서 없이 토요일에 세 번 연속 결석하면 퇴학당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바끼오끼를 데리고 의사에게 찾아가 우스꽝스러운 진단서를 만들어 학교에 제출했다. 내용은, “사무엘레 바끼오끼는 토요일만 되면 심리적으로 학교에서 공부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고, 교장은 의사가 내린 진단서이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도록 허락해주었다.

그러나 천주교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학교에 오는 천주교 사제로부터 문제를 당했다. 천주교 신부는 바끼오끼가 안식일을 지킨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학생들에게 그를 배교도 개신교주의자라고 경고했을 뿐만 아니라 같이 놀아서도 안 된다고 경고했다. 급우들은 신부의 말을 듣고 마치 바끼오끼가 에이즈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멀리했다.

바끼오끼의 교황청 대학 입학과 안식일에 관한 연구

바끼오끼는 중학교 교장 선생님, 천주교 신부들, 급우들과 친척들로부터 안식일을 지킨다는 이유 때문에 비웃음과 냉대와 핍박을 받으면서, 언젠가 어느 날이 하나님의 거룩한 날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분명히 밝혀내리라고 굳게 결심하게 되었다.
바끼오끼는 천주교회의 수도회들 가운데서도 가장 호전적인 예수회에서 세운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바티칸에 있는 도서관에서 초대 교회 당시 안식일이 일요일로 바뀌게 된 것들을 찾아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입학 허가 자체가 문제가 되었다. 당시까지 500년 동안의 역사를 통해 천주교인이 아닌 어느 누구도 그 대학에 입학고자 시도한 사람이 없었다. 제2차 바티칸 회의에서 분리된 형제들이 교황청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결정했기 때문에 비천주교인들도 이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게 허락했고 바끼오끼가 그레고리안 대학에 비천주교인으로는 첫 번째로 입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조건부 입학이었다. 그레고리안 대학에 입학한 후 사람들을 개종시키거나 변절시키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다. 교수나 학생에게 자신이 믿는 것을 말해서는 안되었다. 예외가 있다면 누군가가 그가 믿는 것에 대해 질문할 때는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교황청 안에 있는 그레고리안 대학은 제수이트 대학으로 명성을 떨치는 대학으로 1451년 스페인의 성직자 이스나티우스 로욜라가 설립했다. 대부분의 교황들과 추기경들이 이 대학 출신이다. 50년간 지어 1584년도에 완공한 제수이트 교회에 있는 조각상들을 보면 제수이트의 목적을 알 수 있게 된다. 예수회 교회로 들어가는 문이 두개가 있는 데 두 문 위에 아주 의미 있는 조각상이 있다. 출입구 오른쪽에 있는 상은 이그나티우스가 이교주의자를 짓밟는 것을 묘사한 것으로 이교도들을 색출해서 없애버리고자 하는 제수이트의 결단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석관 위에 서 있는 제단 양 옆에 두 개의 의미심장한 상이 있는데 제수이트들의 사명을 묘사했다. 제단 우편에는 개신교회의 개혁자들이 이루어 놓은 일들을 제수이트들이 억압하는 것을 묘사한 상이 있다. 천주교회를 상징하는 여자가 개혁자들인 루터와 캘빈을 짓밟으면서, 오른 손에는 횃불을, 왼손에는 십자가를 들고 있는 상이다. 왼편에 서 있는 천사는 루터의 성경을 찢고 있는 형상이다. 
바끼오끼가 수도사나 사제들의 옷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자주 그가 믿는 신앙이 어떤 것인지를 묻는 질문을 받았다. 급우들은 때때로 그가 어느 수도회에 속하느냐고 물었다. 바끼오끼는 자신 있게 아주 특별한 수도회인 애드벤티스트(재림교회) 수도회에 속했다고 말하곤 했으며, 저들은 천주교회 안에 있는 많은 수도회 가운데 한 수도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질문들은 재림신앙을 소개할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가 되었다.

교황청 인쇄소의 개신교도 논문 인쇄와 다시 준비된 학위증

그는 이 대학교에서 안식일이 어떻게 일요일로 옮겨지게 되었는가를 연구했으며, 마침내 1974년 6월 14일, 금요일 오후에, 그레고리안 대학 아울라 마그나 대강당(Aula Magna-the Grand Hall)에 있었던 논문 심사를 통과하게 되었다. 그의 학위 논문, “안식일에서 일요일로”라는 논문은 1977년 교황청 그레고리안 대학의 인쇄소에서 바끼오끼의 논문집이 교황청의 공식 허락을 받아 인쇄되었다. 개신교도가 그것도 안식일교인이 교황청에서 운영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 천주교의 허락을 받아 논문을 인쇄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안식일에서 일요일로”라는 논문집은 비천주교인이 쓴 것으로 교황청 안에 있는 인쇄소에서 교황의 허락을 받아 인쇄된 유일한 책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책이다.
교황청 그레고리안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게 된 그는 그의 탁월한 학문적인 성취로 인해 바오로 6세 교황으로부터 전면에 교황 바오로 6세(Pope Paul VI)가 그려진 금으로 된 메달을 받았다.

그는 금메달뿐만 아니라 양피지에 손으로 직접 정사한 특별한 학위증을 받았다. 이 학위증은 바끼오끼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이었다. 그는 학위증의 맨 첫 말이 내 자신이 천주교회의 가르침에 동의하는 것으로 서명했기 때문에 이 증서를 수여한다고 기록되어 있어 학위증을 거절했다. 그는 학감에게 그러한 문구가 있는 학위증을 받을 수 없는데, 바끼오끼가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자신의 신앙을 저버리고 천주교회로 개종한 것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학감은 학위증서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는 것이라고 설명을 했다. 그저 그 종이 위에 바끼오끼의 이름만 적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면서 학위증에 적혀 있는 말에 대해 라틴어로 되어있으니까 미국 사람들은 라틴말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래도 바끼오끼가 그런 학위증을 받지 않겠다고 하자, 학감은 바티칸 서기에게 천주교회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했다고 하는 말을 빼고 특별한 학위증을 준비하게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중앙 아메리카를 비롯해서 천주교세가 강한 나라의 천주교 지도자들의 반발로 인해 그레고리안 대학은 세 가지 조치를 취했다. 첫째 바끼오끼의 논문 “안식일에서 일요일로”가 천주교회의 모든 서점에서 수거되었고, 둘째 바끼오끼의 주임 교수(Vincenzo Monachino, S.J.)는 더 이상 바끼오끼와의 접촉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으며, 셋째 그레고리안 대학에 비천주교인들을 위한 입학의 문이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