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롬 10:20
느헤미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도움을 구하고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셨다. 그리고 이교도 왕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도와주게 하였다.”(편지 11, 1895)라고 엘렌 화잇이 지적함에 따라 대총회는 솔루시의 선물을 받지 않는다는 결정을 번복하였다. 따라서 선교 사업에 관한 교단 내부의 장애물은 극복된 셈이었다. 그러나 로디지아의 정세는 여전히 불안하였다. 선교사들이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시 최근에 정복당한 마타벨레 족이 영국군에 항거하였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5개월 동안 철수해야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다시 현지에 돌아왔을 때는, 주민들이 기근에 봉착하였으며, 우역(牛疫)이 발병하여 최근 전쟁에서 살아남은 몇 마리 안 되는 선교 본부의 소들마저 희생되고 말았다.
더구나 선교사들은 말라리아라는 또 한 가지 심각한 문제에 맞닥뜨렸다. 필자는 현재 솔루시 대학교 캠퍼스 안에 있는 조그만 묘지를 방문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선교사들은 1890년대에 말라리아 예방약으로 알려진 유일한 약품인 키니네 사용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거의 모두 사망하였다. 그들은 왜 생명을 구하는 의약품 사용을 거부했을까? 해로운 약품을 사용하지 말라는 엘렌 화잇의 권고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었던 약을 융통성 없이 거절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기까지 “충성스런 건강 개혁자”였다. 1894년에 로디지아에 파송된 7명의 초기 선교사들 중에 1898년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단 세 명에 불과하였다. 그 중 두 명은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캐이프에서 투병해야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