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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금요일 - 교인에게 남아있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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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눅 15:31, 32).

아버지의 뜻을 한 치도 헤아리지 못하면서 평생을 아버지 집에서 보내는 것이야말로 비극입니다. 더 심각한 일도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일평생 교회에 왔다 갔다 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도 없습니다.
맏아들 이야기와 관련하여 누가복음 15장의 동전 비유로 돌아가 봅시다. 반짝반짝 빛나는 동전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동전이 제자리에 있지를 않습니다. 동전은 영적 지각이 없습니다. 반짝이는 외모에 도취되어 자신이 제자리를 잃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이 동전에 해당합니다. 집이든 교회든 회당이든 어쨌든 건물 안 어딘가에 있기는 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1, 2절에 소개된 청중 가운데 특히 바리새인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양의 비유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쩔 줄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일반적인 죄인)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탕자의 비유에 해당하는 청중은 부당한 수익으로 사는 세리와 반역자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서기관, 바리새인 그리고 소위 ‘모범’ 교인들에게는 동시에 적용되는 두 가지 비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지각이 없는 동전의 비유이며, 둘째는 꼬박꼬박 교회에 출석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흐트러진 구석이 하나도 없는 것 같지만 완전히 제자리를 잃어버린, 게다가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비유는 맏아들의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하나님이 왜 잔치를 좋아하시는지 맏아들은 털끝만큼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는 남에게 비판적이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연민을 품습니다. 그도 얼마든지 잔치를 벌일 수 있었습니다. 요청만 했다면요. 맏아들처럼 사는 사람의 비극은 아버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에 가서도 툴툴대기만 합니다. 은혜조차도 그들에게는 불만의 대상입니다.
여인이 등불을 켜고 동전을 찾는 것처럼, 아버지가 맏아들의 마음을 열지 못할까 염려하면서 어둠 속을 탐색하는 모습으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이 비유에서 가장 답답한 것은, 그 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두컴컴한 저녁에 밖에 나가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저와 여러분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품꾼의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마침내 진정한 자녀가 될 것인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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