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교육을 찾아 (7)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욥 14:7
1882년 봄, 재림교회의 교육이라는 어린 나무는 전정을 받은 것이 아니고 잘려 쓰러졌다.
그러나 그런 극단적 조치는 헛되지 않았다. 그 그루터기로부터 새순이 여러 갈래로 돋아나 체제를 살리고 적절한 교육을 찾는 일에 열정적으로 기여할 것이었다. 배틀크릭 대학은 선교 사명에 더욱 충실하려는 결의를 가지고 1883년 가을 다시 문을 열었다. 그 후 10여 년 동안 이 대학은 그 방향으로 뜻 깊은 발전을 이룩하였다.
아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틀크릭 대학의 전직 지도자 두 사람이 각기 미국의 동과 서로 분산된 사실일 것이다. 그들은 배틀크릭에서 배운 교훈으로, 그 후 재림교회의 교육을 강화하는 일에 기여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구들로 하퍼 벨은 매사추세츠 주로 가서 본거지를 잡은 후 1882년 봄에 사우스 랭캐스터 아카데미(South Lancaster Academy)를 설립하였다. 이 학교는 후일 아틀란틱 유니언 대학(Atlantic Union College)으로 발전하였다.
시드니 브라운스버거는 반대로 서쪽으로 갔다. 1882년 4월 그는 힐즈버그 아카데미(Healdsburg Academy)를 설립하였는데, 이는 후일 힐즈버그 대학이 되었다가 지금의 퍼시픽 유니언 대학(Pacific Union College)이 되었다. 브라운스버거는 같은 실수를 두 번 다시 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이었다. 그가 힐즈버그에서 교직을 시작할 때는 배틀크릭에서 시작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교육 이념을 가지고 있었다. 미시간의 쓴 경험을 기억하고 그는 “증언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아닐 때는 결코 [교단 사역]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브라운즈버거 재직 당시의 힐즈버그 광고와 안내 책자를 보면, 학교가 책 공부와 실업 과목간의 균형, 심신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두드러져 보인다. 간단히 말해, 학교는 학과 뿐만 아니라 노동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었다. 그 뿐만 아니라 학교는 “특히 사역을 희망하는 남녀들을 준비시키는 학과들을 제공하였다.” 준 개혁 기관인 힐즈버그 대학은 배틀크릭에 있는 대학에 좋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늙은 개도 새 재주를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기관도 사람도 그분의 이상에 보다 가까워지는 개혁이 가능한 것이다. 이때 시작된 재림교회의 교육이 본격적인 혁명기를 맞이한 것은 1890년대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