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 잠 25:25
1886년이 되니 임박한 재림교회의 신학적 대결 구도가 현저히 드러났다. 한편에는 대총회장 G. I. 버틀러와 대총회 서기 유라이어 스미스, 반대편에는 두 사람의 서부 출신 편집인들인 A. T. 존즈와 E. J. 왜고너가 있었다.
이 대결에서 유일한 여성 참가자는 양측과 함께 일하기 위해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1887년 초순 엘렌 화잇은 젊은이들이 불공평한 대결에서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반드시 들어야 할 무엇을 가르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1887년 4월 그녀는 존즈와 왜고너가 1888년 대총회 때 발표할 기회를 얻도록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존즈와 왜고너의 1888년 기별의 진정한 의미를 가장 명백히 설명한 사람은 엘렌 화잇이었다. 그녀의 주제는 요한 계시록 14장 12절의 한 부분에 대한 재해석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성도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여기 있도다.”
이것은 재림교회 역사에서 핵심적 본문이다. 이 말씀에는 재림 전에 세상에 주는 하나님의 마지막 기별이 들어 있으며, 14절부터 20절까지에는 그 때 일어날 일들이 묘사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1888년의 문제로 맞서 투쟁하는 양편이 모두 요한 계시록 14장 12절에 신경을 집중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각기 강조하는 부분이 달랐다. 수구파는 “하나님의 계명”을 치켜들었고, 개혁자들은 “예수의 믿음”에 역점을 두었다.” 그런데 미네아폴리스 대총회에서 요한 계시록 14장 12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흘러나왔다. 그 때문에 재림교회의 신학은 영원히 변할 것이었다.
엘렌 화잇은 존즈와 왜고너를 지지하였기 때문에 수난을 당하였다. 1888년 12월 그녀는 그 해의 대총회를 회고하며 “내 증언은 무시되었다. 내 평생에…내가 그 때만큼 푸대접 받은 일은 결코 없었다.”고 기록하였다(편지 7, 18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