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행 12:32, 33
“복음” 즉, “복된 소식”(흠정역)을 전파하는 일은 총회가 끝난 후 1888년 개혁자들이 감당할 사명이었다. 엘렌 화잇은 재림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실망하며 미네아폴리스를 떠났지만, 재림신도 전체에 대하여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총회가 끝나기 전, 엘렌은 그 곳에 모인 목회자들에게, 목회자들이 빛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백성에게 기회를 주자. 그들은 받아들일 것이다.”(원고 9, 1888)고 말하였다. 일반 성도들은 분명 그 기별을 필요로 하였다. 1889년에 화잇 부인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의 의미와 “그리스도가 유일한 소망이요 구원이다.”(RH 1889. 9. 3.)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백 명 중 한 사람”도 없었다고 언급하였다.
1891년 가을이 지나도록 화잇 부인과 존즈 및 왜고너는 전국을 순회하며 “백성”들과 목회자들에게 믿음의 의를 전도하였다. 화잇 부인이 1891년 호주로 떠나고 왜고너가 영국으로 건너간 후에 존스와 W. W. 프레스코트는 미국에서 계속 기별을 전하였다. 당시는 물론 그 후까지 엘렌 화잇은 하나님이 존즈와 왜고너를 선택하사 재림교회에 특별 기별을 전하게 하셨다고 강조했으며, 자신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해 널리 출판하였다.
O. A. 올슨(Olsen, 1888-1897)과 G. A. 어윈(Irwin, 1897-1901)이 이끄는 총회는 존즈와 왜고너에게 1890년대에 발언 기회를 줌으로써 그들의 기별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두 사람은 교회를 통하여, 안식일학교 교과 공부를 통하여, 대학에서, 목회자 대상의 정기적인 수양회에서, 그리고 출판 사업을 통하여 일반 신도들에게 기별을 전하였다. 1889년부터 1897년까지 존즈와 왜고너가 총회가 열릴 때마다 성경과 신학 연구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은 특히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존즈는 1897년에 영향력 있는 <리뷰 앤드 헤럴드> 지 편집자 역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