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8일
대총회의 권위 (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5
때로는 우리가 실패의 쓴잔을 마신 후에야 교훈을 배운다. 대총회장 조지 I. 버틀러의 경우가 그랬다. 그는 자기가 높이 존경하는 화잇 부부가 자기가 내놓은 개인 중심의 지도자론에 반대하자 자기의 행위를 회개함과 동시에 대총회 회장직을 사임하고, 그가 출판했던 ‘지도자’란 소책자를 최대한으로 다시 회수하여 (약 960부) 소각 처분한 후, 1875년 대총회 회기 때는 자신의 지도자론을 승인했던 과거의 결정을 번복할 것을 건의하는 의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문제의 중요성에 비추어 그 안건을 성급하게 표결에 붙이지 않고 총회는 그 문제에 대한 연구를 전담 위원들에게 위임하였다. 1877년 대총회는 연구위의 보고를 받고 “조직의 지도자는 어떤 한 사람에게 국한된다”고 가르친 버틀러의 <지도자론, Leadership> 책자의 원칙을 승인했던 결정을 번복하기로 결의하였다. 계속하여 1877년의 총회는 다음과 같이 의결하였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신도들의 의지가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대총회의 결의로 채택되었을 때, 그것은 하나님 아래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 단, 그런 의결이 하나님의 말씀과 개인적 양심의 권리와 충돌하지 않는 한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거기에 순응해야 한다.”
이리하여 1877년에는 버틀러와 화잇 두 사람은 대체적으로 대총회의 집단적 권위에 대해 뜻을 같이 한 것 같다. 그들은 1869년부터 1888년까지 교대로(화잇은 1869-1871년까지, 다시 1874-1880년까지, 버틀러는 1871-1874년까지, 다시 1880-1888년까지) 대총회 회장직을 맡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였지만, 불행하게도 대총회에 참석한 각 지방 합회의 대표들은 일 년에 겨우 몇 주 정도만 서로 만나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그 결과 재림신자들은 무슨 일이 생길 때 자연히 대총회장과 소수의 행정위원들의 지도를 기대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는 특히 버틀러나 화잇 같은 강력한 지도자들이 대총회장으로 있을 때 더 그랬다. 두 사람 다 권위를 심하게 행사하였기 때문에 실제에 있어서는 버틀러가 주장했던 일인 지도 체제 쪽으로 기우는 경향이 많았다.
우리의 지도자 역할이 합회 직원이든, 지방 교회의 책임자든, 아니면 심지어 한 가족의 가장이든 여기서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머리로는 우리가 어떤 리더십 철학을 믿던지를 무론하고 거의 모든 사람은 만사를 자기가 “쥐고 흔들려는” 유혹을 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