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11 21:48:18 (*.208.83.201)
지금의 우리들은 불신의 눈과 감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듯하다.
매일 나오는 뉴스나 신문에서 보면 갖가지 좋지 않은 소식들로 이들이 모두 불신의 감정으로 시작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민수기 13장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의 땅에 대한 내용과 그 언약을 믿는 사람들에게 많은 비젼과 이상을 보여주신다.
남을 믿는 다는 것은 어려운 지금 우리가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본문의 내용은 나에게 믿음을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바로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과 믿음으로 소통하면 서로 사랑한다면 현재의 상황을 점점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매일 나오는 뉴스나 신문에서 보면 갖가지 좋지 않은 소식들로 이들이 모두 불신의 감정으로 시작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민수기 13장에서는 하나님의 언약의 땅에 대한 내용과 그 언약을 믿는 사람들에게 많은 비젼과 이상을 보여주신다.
남을 믿는 다는 것은 어려운 지금 우리가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본문의 내용은 나에게 믿음을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바로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과 믿음으로 소통하면 서로 사랑한다면 현재의 상황을 점점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009.03.11 21:55:50 (*.145.30.203)
믿음의 눈 , 불신의 눈... 제목이 나의 눈에게 어떤 눈 인지 물어보고 있다.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다.
이 정탐꾼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믿음" 인 것 같다.
12명의 정탐꾼 중 갈렙과 여호수와를 제외한 나머지 10명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의심하고 두려움에 잊고 말아 버린 것이다. 이 믿음의 차이는 엄청나게 큰 차이인 것이다.
나는 어떤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너무 연약하여 기쁠 때에는 기뻐하기만 하고 슬플 때에는 하나님께 왜 나에게 이런 슬픔을 주셨느냐고 따지는 누를 범하기도 한다. 이것은 정말 이기적인 사람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꼐서 우리에게 슬픔을 주신 이유는 나를 굳건하게 바로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않는다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매순간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어야 하고 하나님을 항상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약속을 기다리는 준비 된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불신의 눈을 가진 백성들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없이 믿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을 변함없이 신뢰하게 하소서!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다.
이 정탐꾼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믿음" 인 것 같다.
12명의 정탐꾼 중 갈렙과 여호수와를 제외한 나머지 10명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의심하고 두려움에 잊고 말아 버린 것이다. 이 믿음의 차이는 엄청나게 큰 차이인 것이다.
나는 어떤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너무 연약하여 기쁠 때에는 기뻐하기만 하고 슬플 때에는 하나님께 왜 나에게 이런 슬픔을 주셨느냐고 따지는 누를 범하기도 한다. 이것은 정말 이기적인 사람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꼐서 우리에게 슬픔을 주신 이유는 나를 굳건하게 바로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생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않는다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매순간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어야 하고 하나님을 항상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약속을 기다리는 준비 된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불신의 눈을 가진 백성들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없이 믿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을 변함없이 신뢰하게 하소서!
모세가 12두령을 파송하는 일, 본문에서 특이한 점은 16절이다. 파송할 두령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왜 모세가 호세아의 이름을 여호수아라고 부를까? 유독 이 구절을 저자 모세는 기록했을까? 모세와 여호수아의 관계가 더욱 특별했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이 12두령의 반장 격인가? 호세아는 에브라임 지파이며, 눈의 아들이다. 모세는 레위지파이다. 과연 16절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는 언약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하는가? 고대근동사회에서 언약 당사자 간에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을 맺는 장소의 지명을 바꾸거나 서로의 이름을 바꾸기도 한다.(창 17:5 등) 이러한 관점에서 16절을 생각해 보면 모세와 여호수아 사이에 이러한 언약의 행위가 있었다고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본 교회 주석이나 부조와 선지자에는 이에 대한 언급은 특별히 없다.
“하나님의 언약에 의하여 그 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증되어 있었다. 그러나 불충실한 정탐꾼의 허위 보고가 수용되고, 그것 때문에 온 회중은 기만을 당했다. 반역자들의 노력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그 때의 불신을 볼 때에는 두 사람만 불길한 보고를 하고 열 사람이 모두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 땅을 점령하자고 격려했을지라도, 그들은 역시 그들의 사악한 불신 때문에 열 사람의 충고보다 두 사람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열 명이 반역 편에 서 있는 반면, 두 사람만이 정의를 옹호하고 있었다.”(부조, 390)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이 정복대상으로 있는 것처럼 나의 앞길에는 많은 도전들과 비전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가끔씩 내 미래가 불투명한 것처럼 보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이러한 생각들이 계속 이어지면 때로는 우울해지기도 하고, 싶게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요즘 나에게 닥친 상황들이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듯하다. 집안의 경제적인 문제와 나를 생각해 보면 ‘마냥 공부한 하고 있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고 공부를 잠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나에게 다시 한 번 용기를 준다. ‘믿음의 눈’, 내가 지금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것. 비록 내 앞이 불투명해 보일지라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속 같을지라도 ‘믿음의 투시경’으로 현재 상황을 뚫고 하나님께서 준비해주신 그 미래를 쳐다봐야겠다. 오늘부터 다시 믿음의 투시경을 쓰고 하루를 시작한다.